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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9화 (29/1,559)

# 2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4화

[그렇게 막 부탁해도 됩니까? 내가 어떻게 망쳐버릴 줄 알고?]

-캬, 고놈 자슥 말하는 거 보소, 니가? 내보다 더 독종인 니가 그걸 망친다꼬? 가 보믄 안다.

그는 자신의 생이 짧아 완성하지 못한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면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슬슬 치워버려야지.'

-치운다라...... 그대에게 원한을 받고 있는 이가 있다는 소리로군.

'이미 다 알지 않나?

-그렇지. 다만, 본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진 못함이야. 실제로 그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본녀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구간이 있으니.

심연의 마왕조차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라, 애초에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건 익히 느끼고 있는 바였다.

-한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 게지? 그대는 마냥 때려 부수는 걸 원치 않는 듯한데.

'그래, 준비 없이 저지르는 일은 안 한 것만 못해. 리네스 왕비는 몰라도 바리에타 공작을 필두로 한 귀족파는 급하게 걸러내 버리면 라운 왕국 전체에 비상이 걸릴 만큼 중책들이 많아. 당장 숙청을 개시한다 해도 라운 왕국이 휘청거리는 걸 막을 순 없지.'

하나하나 걸러내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렇기에 그녀가 그렇게 오만방자한 꼴을 유지하는 것일 테고, 왕실에서도 귀족파를 함부로 처단하지 못하는 거지.

'방법 정도는 생각해 놨어.'

-하나 물어도 되겠는가.

'뭔데?'

-그대가 원하는 바는 뭐지?

그 목소리는 마치 사람을 꼬이는 마족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그만큼 깔끔했다. 내가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들어줄 그녀가 아닐 테니까.

그녀의 질문은 애초에 답을 알고 있는 자가 내리는 결론이었을 것이다.

'가정을 꾸리고, 배부르고 등 따습게, 머리 아픈 일 없이 오래오래 사는 거.'

내 말에 그녀가 재밌다는 듯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왕족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이로군. 하나 그대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 보이냐?'

-전혀.

'그럼 알겠네, 난 왕궁을 뜰 거야. 다행히 왕족은 소규모이지만 영지를 보유하고 있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비록 불모지이긴 하지만.'

담담하게 말하며 내가 미소 지었다.

-그대.......

'기왕이면 특색이 있어야지. 어때, 대륙 유일한 첨단 도시.'

-꽤 두서없이 방대한 꿈이로고. 차라리 라운 왕국의 왕이 되어 그렇게 바꾸는 게 더 빠르겠군.

'왕이 되면 편하게 놀고먹질 못하잖아.'

-영주라면 다를 줄 알았는가?

'가능해, 영주라서. 신경 안 써도 될 만큼 돈 벌고, 취미생활을 할 거다.'

가능할지 몰라도 될 때까지 한다.

기술적인 결함이 존재한다면 다른 것으로 대처하면 그만이다.

이 세계는 과학의 발달이 더디지만 다른 방면으로는 상당히 발달한 세계이니 말이다.

어쩌면 더 안전하고 대단한 곳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지.

'그곳에 내가 돌아올 나만의 도시를 만들 거다.'

* * *

라운 왕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 이상 습격이 없었다. 아니 이제는 습격할 여력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척 봐도 리네스 왕비의 측근으로 보이던 시녀, 샤리까지 실패한 마당에 누가 나를 노릴까.

그녀가 진상을 알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이제 나를 함부로 건드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눈치챘을 것이다.

"고생 많았다."

짧은 격려였다.

"면목 없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국가 연합을 상대로 당당하게 그런 뻔뻔한 짓을 저지른 볼티즈 국가의 문제일 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바리스가 침묵했다.

괴물로 변한 발르티앙 때문에 현재 대륙의 여론은 볼티즈 국가에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친한 형제국이나 동맹국이었다면 사실상 도와줄 방법을 모색할 법도 하건만, 애석하게도 볼티즈 왕국은 라운 왕국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큰일이 있었음에도 안전하게 돌아온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담담하게 말하는 국왕 크리아네스의 표정엔 피로가 가득 담겨 보였다.

"그리고......."

말끝을 흐린 그가 나를 본다.

묘하게 애증이 섞인 그 시선에 나는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흔을 발현했다 들었다."

"과분하게나마 신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경사로군."

짧게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돌렸다.

"왕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예...... 경사...... 로군요."

이제는 여유를 잃어버린 그 표정.

그녀의 얼굴엔 혼란, 그리고 복잡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반드시 죽을 거라 예상했던 내가 버젓이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서 성흔까지 얻어왔다.

내가 누가 되었건 성흔을 보유한 이는 중요인물.

만약 그녀가 나를 대놓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성국이 끼어들 명분을 줄 테니까.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국의 비호를 등에 업어버린 꼴이다.

물론, 도움을 받을 생각은 일절 없다.

"왕비 저하께서는 제가 성흔을 받으신 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부채를 펼쳐 입을 가렸다.

그리고는 눈꼬리를 휘어 눈웃음을 쳤다.

눈꼬리 떨린다. 이 여자야.

"그럴 리가 있겠니, 자식의 흥복은 곧 어미의 흥복이거늘."

"그렇다면 안심이겠지만요."

내 말에 그녀가 이를 악무는 게 보였다.

부채로 가린듯한데 티가 팍팍 나니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친 곳은 없다 하더냐."

"예, 주신 프리아 님이 굽어살피신 탓인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습니다."

담담하게 답해주자 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바리에타 공작."

"예, 폐하."

"이 일은 가벼이 넘길 수 없음이니, 나아가 국가 연합에 청원을 넣어 이 사태를 초래한 볼티즈 국가에 강하게 항의해야 할 것이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리네스 왕비처럼 티를 내진 않았지만 묘하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였다.

하필 마음에 들지 않던 놈이 성흔까지 얻어왔으니 골치가 여간 아픈 게 아닐 테지.

"오랜 여행으로 피로했을 텐데, 돌아가서 여독을 풀라."

"받잡겠습니다."

담담하게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자 바리스와 윈리가 나를 따라 돌아섰다.

"데이비."

그때였다.

침묵하고 있던 크리아네스가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른 것이다.

정말 더럽게 오랜만에 아들 이름 불러주시네요.

목구멍까지 목소리가 튀어나왔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잠시, 남아주겠느냐."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깨달은 내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자 모든 이들이 천천히 일어나 물러가기 시작했다.

집무실에 남은 나와 크리아네스 국왕을 불안하게, 또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바라보던 리네스 왕비가 있었지만 곧 크리아네스의 시선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 버렸다.

조용한 독대.

깨어난 직후 그렇게 요청해도 무시당하던 그와의 대면이었다.

"데이비."

"근 반년만입니다."

"......."

"폐하께서 깨어난 저를 이리 따로 불러주신 게 말이죠."

담담한 내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의 패기롭던 모습은 잃어버린 힘없는 사자 한 마리가 보일 뿐이었다.

"나를 원망하느냐."

"거짓말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예, 원망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사실 말할 필요 없겠지요."

뼈가 담긴 말에 그의 입에서 씁쓸한 한숨이 나왔다.

단기적인 문제로 내가 이리 돌아선 줄 아셨습니까.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구나."

"그동안 어느 정도 신경은 써주셨더군요."

"알고 있었더냐."

"제가 감이 좋은 편입니다."

내 말에 그가 쓰게 웃어 보였다.

"역시, 짐의 예상이 맞았구나."

"무슨 말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아둔한 부모는 없는 법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너는 조금 달라졌다고 보는 게 맞겠지."

담담하게 말하며 그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시종이 세팅해둔 테이블에 앉으며 조용히 권했다.

"차라도 들거라."

"과분하니 거절하겠습니다."

"......."

담담한 대답에 그가 다시 한 번 쓰게 웃었다.

"아비라곤 불러주지 않는 것이냐."

"폐하."

담담한 내 말에 그가 침묵했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아비를 지칭하는 단어이지요."

불경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그는 그저 쓰게 웃는 모습을 유지할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라 불러드려야 합니까?"

"아니, 네게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게 한 내가 무슨 염치로 너의 아비를 자청하겠느냐."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알긴 아시나 봅니다.

"그동안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그동안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번엔 다른 질문이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예전의 일이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바마마!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왕비의 병세는 이미 알려져 있지 않았더냐.]

[병이 아니라구요! 마치 독처럼!.......]

[그만하거라!]

그때 그는 엄하게 나를 다그치며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묻게 했었다.

4년 후 9살이 되어 어머니를 죽인 배후가 리네스 왕비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에게 다시 물었고, 그는 그리 답했다.

[전 왕비, 레니 알리샤드는 지병이 있었다. 의원의 힘으로도 신관의 힘으로도 고칠 수 없는 그런 지병 말이다!]

[아직도 그 말씀이십니까. 타이밍이 말이 안 되잖아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데이비!! 한 번 더 망발을 지껄이면 너라도 용서할 수 없음이야! 썩 물러가거라!]

"한때에 그렇게 사랑하셨던 제 어머니를 버리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내 말에 그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데이비."

"폐하께서는 어머니보다 국가를 택하셨지요. 국가의 안위를 위해 독살당하신 어머니의 손을 놓아버리셨고, 국가를 위해 원수와 재혼을 하셨습니다."

"그 여자를 너무 탓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짐의 업보이니라."

"폐하, 저는 이제 폐하의 소싯적 로맨스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리네스 왕비가 어머니의 둘도 없는 친우였건, 질투가 변질되어 이 사달이 났건,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데이비."

"묻고 싶었습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셨습니까? 제 어머니는 죽기 전에도 폐하의 존안을 뵙고 싶다고 말씀하셨지요. 독으로 인해 피를 토해내시면서도 폐하만을 찾았습니다."

"......."

내 말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정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셨지요. 제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미안하다 하시곤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왕이 되거라."

내 대답 대신 그는 침착하게 그가 하려는 말을 했다.

"나는 뛰어난 왕도, 자상한 아비도 되지 못했다. 지식이 부족했고, 힘이 부족했다."

"......."

"하지만 너는 다를 거다. 네가 바로잡거라. 하나 지금은 아니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널 구워삶아 버릴 만큼 세 치 혀가 능수능란한 이들이 깔렸다."

"그렇습니까."

"왕이란 네 생각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왕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선택 또한 내려야 한다. 그러니 숨죽이고 힘을 길러라. 그 누구도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거부할 수 없게."

그의 말에 내가 차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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