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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3화 (33/1,559)

# 3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8화

따라오고 싶어도 녀석들은 곧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니 분했던 모양이었다.

'이놈의 궁도 이렇게 떠나는구만.'

-어차피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닐 테지, 본녀는 사실 벌써부터 기대가 됨이야.

'얼마나 처참할지?'

내 의지에 말을 타듯 허벅지에 올라앉아 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씨익 웃어 보였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궁금하고.

과한 기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저하."

고요하게 궁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의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에이미의 안내를 받아 한 노쇠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나이는 70세 전후.

다만, 이 대륙의 기준으로 굉장히 노쇠한 나이와 다르게 풍채는 엄청난 압박감을 주는 강직한 남자였다.

"신 페일트리스, 왕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일어나세요. 페일트리스 후작."

보통이라면 하대를 하겠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라운 왕국에서 고작 3명 존재하는 소드마스터, 그중에서도 최고의 실력과 경험을 지닌 남자다.

라운 왕국의 기사들은 물론이고 대륙에 있는 수많은 기사가 이름만 들어도 존경심을 표하는 그야말로 참된 기사 그 자체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선택한 귀족파를 무너뜨릴 가장 중요한 인사이기도 했다.

소드마스터는 일종의 전략 병기로 통한다.

다수의 병력을 보유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무력만으로도 나라의 큰 축이 되어버린 그는 그가 가진 병력과 유서 깊은 가문의 힘만으로도 굉장한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평소엔 중립을 외치며 적절하게 귀족파를 견제해 왔지만, 이제 그는 중립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정보 길드를 모조리 털고 난 후 며칠 뒤. 그의 침소에 잠입한 내가 귀족파가 숨기고 싶어 하는 정보들을 모조리 넣어두고 왔다.

대쪽같은 성정에 충성심이 어마어마한 그라면 그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즉시 귀족파를 대대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떠나신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왕태자가 아닌 이상 왕족은 모두 궁을 떠나야지요."

"앞으로 저하께서 왕태자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때의 일이지요."

빙그레 웃어주자 그가 모노클을 고쳐 쓰고는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정말, 많이 성장하셨습니다. 전(前) 왕비 저하께서 보셨다면 정말 자랑스러워 하셨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그저 불효자일 뿐입니다."

담담한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왕비 저하를 지키지 못한 이 늙은이는 이미 혀를 깨물고 죽었어야 옳았지요."

그의 말에 절로 웃어 보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아버지와 다르게 과거 어머니의 기사를 자청했던 그는 은밀하게 어머니의 암살 배후를 찾아 증거를 모아왔던 모양이었다.

사실 그 사실도 그의 집에 잠입한 후에 알아낸 사실이지만 그 정도로도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나라를 좀먹는 귀족파를 모조리 흔들어 놓으세요.'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를 보자 그는 그저 손자 바라보듯 나를 지켜보았다.

'막타는 제가 칠 테니.'

전직 프로 막타충의 위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힘이 드신다면 꼭 신에게 연락 주십시오.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중립을 자처하는 후작이 제 뒤를 봐주신다면 귀족파에서 난리가 날 겁니다. 이 어린 조카가 죽길 바라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장난스레 말하자 그가 껄껄 웃어 보였다.

"허허, 그리라도 하지 않으면 이 죄 많은 노인의 삶과 맹세는 거짓이 되겠지요."

마치 자신에게 지워진 죄책감을 채찍질하듯, 그가 쓰게 말했다.

"나는 그곳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바꿀 겁니다. 어렵지 않아요."

"저하."

"그러니 후작은 여기에서 제 할 일을 해주십시오."

"......."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침묵하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제 아주 바빠지실 겁니다."

내 말을 이해 못 한 듯 그는 한참 동안이고 침묵했다.

* * *

마나 게이트로 인접 영지까지 날아오른 후 하루를 내리 달렸다. 하인스 영지는 그래도 수도와 꽤 가까운 편이니 이정도였지 다른 곳이었다면 몇 날 며칠은 더 걸렸으리라.

-왕궁에 그대의 적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로군.

언제 깨어난 것일까.

하인스 영지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 책을 읽고 있던 내 눈앞으로 페르세르크가 가볍게 떠올랐다.

마족답게 개방적인 복장의 그녀는 조금만 잘못해도 속옷이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키득거렸다.

-그만큼 훌륭한 강자도 있음이야.

"페일트리스 후작은 내 어머니의 기사였으니까. 다만 그와 엮인 건 최근이라,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런데 그런 정보를 잘도 넘겼군.

"적어도 그가 이 나라에 얼마 안 남은 충신이라는 건 확실하거든."

내 말에 그녀가 쿡쿡거리며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마차의 창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말라비틀어진 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가 이곳의 대기를 막고 있는 기분이로고.

"그래, 대충 느끼곤 있어."

하인스 영지는 부지 자체가 굉장히 넓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 영지가 버려진 영지가 되는 이유는 땅덩어리의 90% 이상이 저주받은 땅처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정체는 아직 알 길이 없다만, 조금만 더 지속하면 모든 것이 풍화되어 사막처럼 변해버릴 테지.

내륙지방 중에서도 이만큼 척박한 땅은 잘 없다.

라운 왕국에서 유일하게 가뭄을 겪고 있는 땅이니 오죽할까마는.

창밖으로 보이는 황무지는 본래 농경지였으나 저주라는 기이한 힘으로 가뭄이 계속되면서 쩍쩍 갈라진 모양새였다.

그동안 국가 차원에서 마법사를 고용해 몇 차례 물을 뿌렸으니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도 유지되지 못했을 터다.

게다가 마법사를 고용해 대량의 땅에 물을 뿌리는 것도 소수의 자금으로 해결할 순 없을 테니까.

"저하, 외람되오나 오늘 저녁은 이 근처에서 쉬었다가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종 페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민가는 없으니 별수 없지. 적당히 야영을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저하."

그리 말하고는 분주히 움직이는 시종들과 시녀, 그리고 호위기사들을 보며 나는 에이미를 둔 채 마차에서 빠져나왔다.

-건조한 공기. 모래바람이로고.

사막도 아닌 주제에 사막 같은 모양새를 띠는 땅덩어리를 바라보던 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넓은 평야지만 쓸 수 있는 땅은 하나도 없다.

마차에서 적당히 벗어나 유일하게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자 말라 비틀어진 땅이 사방에 깔린 게 보였다.

그것들을 보던 내가 말없이 손을 뻗어 갈라진 땅을 스윽 훑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중얼거렸다.

-정보확인.

페르세르크의 간파 능력은 신의 의지가 깃들여진 고유 권능이다.

그 대상은 살아있는 생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삐릭!

허공에서 기계적인 소리가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눈동자에 옅은 빛이 감돌았다.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공에서 기묘한 반투명의 상태창 같은 것이 출력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방 : 하인스 영지령.

-지기 상태 : 최하

-특이사항 :

오랜 가뭄과 기묘한 힘으로 인해 지기가 소멸하고 땅이 메말라 있음

저주(?)계통 발현. 지기 소모, 기후 조정.

해주(?)가 가능해 보임.

-저주였는가.

"치워버려야겠는데. 그보다 이놈의 주신님의 상태출력창은 왜 이렇게 물음표를 좋아하는 거야."

묘한 기분이 들었다.

16. 영주님 청소하신다.

-그걸 본녀에게 따져본들 답은 나오지 않음이야.

"아니 일단은 네 능력이잖아."

-본녀의 능력은 그저 보여주는 것뿐. 그 안의 내용물은 본녀가 아니라 저 싸구려 취향을 지닌 주신의 의지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역시 마왕 출신답게 신에 대한 신앙심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싫은 게야?

"뭐...... 주신 프리아의 신성력을 받아쓰는 처지에서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취향이 조금 특이한 신이라는 건 부정 못 하지."

-그나저나 예상대로 저주인 듯 저주 아닌 저주로군.

라임까지 맞춰가며 장난스레 말하는 페르세르크의 말을 무시한 채 조용히 손으로 갈라진 땅바닥을 쓸어넘겼다.

이것이 현 하인스 영지 대부분의 실정이다.

10% 정도의 부지를 제외한 모든 땅이 지금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과 같은 상황이리라.

'영지 전체를 뒤덮는 저주라.......'

-그대가 착각할 거라 생각해서 하는 말이네만, 저주계통엔 확산형 저주라는 것이 있지, 작은 매개체로 시작되어 종래엔 끝도 없이 퍼지는 악질적인 저주.

"흑마법의 잔재가 여기에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보아하니 영지민 중 하나가 그 매개체를 건드린 모양이군.

말 그대로 영지민 중 누군가가 불발탄을 건드린 꼴이다.

하인스 영지는 그 재수 없는 일을 겪어버린 것이고.

[정화(Purification)]

말없이 지면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3 위계까지 끌어올린 정화마법이었다.

파창!!

물론, 상태창대로 해주는 가능할지 몰라도 난이도가 쉽지 않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것 봐라?"

흥미로운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아무런 의미 없이 정화마법을 사용했다만, 그저 흡수되다 못해 강한 반발력이 내 신성 마법을 튕겨낸 꼴이었다.

5 위계 [정화(Purification)]

신성 마법의 한 축을 자랑하는 정화마법의 특성은 1급 사제부터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8 위계까지 그 영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3급의 정화마법으로 안 통하면 몇 단계 올리는 수밖에.

콰창!!

또 한 번 시원하게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도 튕겨 나온 마법이었지만 결과는 조금 달랐다.

푸쉬이익.......

무색무취의 연기가 내 손이 닿았던 부분으로부터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순간이지만 저주가 흩어졌다가 다시 회복된 모양새였다.

-장기간 지속된 저주는 쉽게 해주할 수 없음이지.

"그러네."

매개체를 찾아 박살 내 버리든지 해야지, 이런 식으로 해주를 해본들 폭설 한가운데에서 제설하고 있는 꼴을 피할 수가 없다.

말없이 마차로 돌아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뉘며 눈을 감았다.

"대부분의 영지가 이런 꼴이라 이거지."

흑마법, 그것도 대규모 무차별 저주는 오래전에 사장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대륙에서 대규모 흑마법의 잔재는 대부분 그런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대륙은 이종족에 대한 정보도 극히 적은 편이고 한때 대륙을 흔들었던 흑마법사들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변함없음이로고.

낭랑한 페르세르크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민하던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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