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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34화 (34/1,559)

# 3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9화

* * *

하인스 영지는 부지가 굉장히 넓은 편에 속하는 영지였다.

그런 만큼 성벽으로 모두를 둘러쌀 수 없기에 기본적으로 영주성을 포함한 일부 지역만 좁은 내성으로 둘러싸고 나머지는 넓은 평야로 유지된다.

"대단한 영지구만."

-관리가 엉망 그 자체로고.

다만 오래되고 낙후된 영지였기 때문일까. 내부 영지를 감싸는 성벽은 반쯤 풍화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곳도 존재했고 풀이 듬성듬성 자라있는 곳도 있었다.

굳건하게 닫혀있어야 할 성문은 이미 풍화되어 사라지기라도 했는지 엉성한 목책으로 성문을 대신해 막고 있는 꼴이었다.

-그나마 지키는 이가 있다는 게 다행인 게지.

"몬스터가 출몰하는 대숲의 인접 영역인데 자경단조차 없었으면 버티지도 못했을 거다."

"멈추십시오! 이곳부터는 하인스 영지입니다! 신분증을 제시해주십시오!"

"이번에 하인스 영지에 부임하신 데이비 왕자님이시네! 길을 열게!"

누가 나서기도 전에 앞장서서 말을 몰던 노신사가 엄중하게 소리쳤다.

일단 저들도 보는 눈은 있을 테니 보통 귀한 행렬이 아니라는 건 금방 눈치챈 듯 보였다.

"자...... 잠깐 기다리십시오. 자경단장님께......."

"어허! 왕자 저하를 기다리게 할 셈인가!"

"그만, 절차는 밟아야지. 난 아직 정식으로 영지의 권한을 위임받는 게 아니야."

왕명에 따라 영지의 권한을 위임받는 건 맞지만 영주가 부재중일시 대리 영지관리인이 그 권한을 일임받는다.

이후 영주가 된 귀족이 관리인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완전히 영주가 되는 시스템이다.

"저하."

"퍽퍽하게 굴지 말자고, 이제 다 가족인데."

마차에서 내리며 내가 말하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하."

"와...... 왕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요."

내 얼굴은 알지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흐르는 귀티 때문일까.

내가 노신사가 말한 그 영주이자 이 나라의 왕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경비병들이 몸을 납작 엎드렸다.

"일어나. 경계를 서는 인원이 몸을 엎드려서 어쩌겠다는 거야."

내 말에 두 경비병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예?"

"경계 자체는 훌륭하네. 그런데 성 상태가 왜 이래."

담담하게 묻자 그들이 눈치를 설설 살폈다.

그때였다.

성벽 안에서 가벼운 경장갑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허겁지겁 뛰어오기 시작했다.

"자...... 자경단장님!"

"어...... 어서 오십시오 저하! 먼저 기별을 받았사오나 맞이하는 게 늦었사옵니다! 죽여주십시오!"

잘게 떨며 몸을 납작 엎드리는 그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보니 묘한 흔적들이 보인다.

몬스터의 습격.

최근 하루 안에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다는 흔적이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어수선하더라니.

"먼저 기별을 보낸 이가 도착한 게 언제야."

"이...... 이틀 전이옵니다."

"그 후에 몬스터가 습격한 건?"

"허, 허업! 저, 저하께서 그것을 어찌......."

놀란 듯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에 내가 빙그레 웃었다.

"혈흔의 흔적만 보면 최근에 습격이 있었네. 긴급한 사태였다면 판단을 잘했어."

"저...... 저하......."

"이런 고리타분한 절차가 무슨 소용이야. 우선 들어가지. 자세한 내용은 들어가서 들을 테니까."

내 말에 그가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내정을 담당하는 대리 영지관리인도 같이 오라고 해줘."

겁에 질려있던 그가 십년감수 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납작 숙였다.

* * *

헤라클래스가 내게 생존에 관한 기술을 가르쳤을 때 가장 먼저 가르친 건 다름 아닌 관찰력이었다.

멀리서 볼 땐 몰랐지만 성벽의 주변에 묻은 혈흔이나 부서져 제때에 회수하지 못한 병장기들도 보였다.

시체는 없었지만 혈흔은 짙게 남아 있다.

남들은 맡지 못했을 혈향이나 싸움의 흔적에 대한 냄새가 아주 미약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떻게 냄새를 맡았냐고?

환골탈태를 하지 않았어도 신의 영역 발현 이후 마스터 급 육체에 들어선 내가 그 정도 감각증폭도 못 할까.

내가 전투의 흔적을 눈치챘다는 사실이 못내 놀라운 듯 주변의 시선이 꽂혀온다.

왜들 그래. 이정도는 경지만 받쳐주면 다하잖아.

-그대는 가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잊는 것 같군. 속된말로 재수 없음이야. 보통 그 정도 경지가 되어도 재능이 부족한 이는 멍청하게 놓치기 마련인 단서임을.......

'그래서 내가 말했냐?'

-본녀는 듣지 않아도 느끼고 있음이야. 한 대 쥐어박아도 괜찮은가 싶네만.

"여, 영주님의 부재로 자경단장을 맡아 영지의 군권을 담당하고 있던 몬미더라 하옵니다요."

"영지관리인은?"

"그...... 것이......."

우물쭈물하던 그가 고개를 재차 숙였다.

"보, 본래는 다른 이가 담당하고 있었으나 얼마 전 습격으로...... 그 후엔 이...... 이 쌍놈이 담당하고 있습죠."

혼자서 내정과 자경단 모두 신경 쓰고 있었다라. 딱히 욕심이 있는 인물 같지는 않은데, 제법 재능이 출중한 사내다.

-저런 이를 등용한다면 필히 도움이 될 테지.

'5년간 거의 죽어가던 영지를 꾸역꾸역 살려내고 있는 실력이라면 믿을만하긴 해.'

내가 말없이 앉아 있자 그가 불안한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겁을 먹었다. 혹여라도 영지의 상태가 나빠서, 혹은 다 낡아빠진 영주성의 상태가 안 좋아서 내가 행패를 부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이었다.

반대로 비굴하면서도 당당한 시선은 분명 남아 있었다.

"그동안 고생했어."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여기저기 부서진 민가나 평민들을 본 후였다.

명백히 말하자면 그들은 갑자기 부임한 새 영주라는 존재를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현재 라운 왕국의 상태를 보면 귀족들이 평민을 수탈하는 건 일상에 가까운 수준이니까.

어쩌면 겁을 먹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벌써부터 그렇게 겁에 질리면 곤란한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에 있는 사내, 몬미더라는 이름을 지닌 중년을 바라보았다.

"영지를 관리하려면 글은 읽을 줄 알아야 할 텐데?"

"제가 비록 미천한 놈이지만 어깨너머로 조금씩 글을 배웠습니다요."

'인재 발굴이구만.'

절로 그런 감상이 들었다.

"이...... 이제라도 저하께서 오셨사오니......."

"계속 일 해줘."

"예, 옙?"

"자경단이라고 했나? 영지 정식 근위대로 승격하고 정식적으로 조직을 꾸려보라고. 훈련은 여기 근위조장 출신이었던 베르만 경이 도와줄 거야."

"저하의 명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제...... 제가 말씀입니까요?!"

기겁한 얼굴을 한 채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누가 해? 실력만 좋아지면 얼마든지 기사로 채용하고 작위도 내려 줄 테니까. 내게 그 정도 권한은 있어."

그의 의문에 나는 귀를 휘적휘적 파며 간단하게 던졌다.

"하, 하오나 이 쌍놈은 천민 출신인지라......."

"능력이 있으면 채용한다. 그게 내 주의야."

내 말에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 * *

고블린의 습격이 있었다.

수는 약 100여 마리. 놈들의 체구는 어린아이 정도로 뇌가 작아 지능이 떨어지고 체격이 작아 힘도 아이 정도의 힘밖에 되지 않는다.

놈들의 유일한 장점은 지독한 번식력.

종족을 불문하고 번식해대는 놈들의 수는 죽여도 죽여도 쉬이 줄어들지 않는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보통 고블린들이 출몰하는 영지는 상당히 골치를 앓는 편이다.

놈들은 야행성 몬스터로 대화조차 통하지 않으니까.

본래라면 산속에 숨어 살며 간혹 나타나 민가의 가축이나 아이, 혹은 처녀를 잡아가기로 유명한 놈들이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무리 지은 놈들은 처음이었다.

이정도 규모라면 같은 숲에 사는 자칭 전사부족이라는 오크들에게 토벌당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영지가 황폐해지는 범위가 숲까지 번지면서 놈들의 습격 주기는 점점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영지의 어르신들은 이것이 땅이 저주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몬미더는 그리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왕실에서 관리가 내려왔다.

자경단과 영지의 실정을 관리하는 그에게 온 왕궁의 관리는 잔뜩 거만한 목소리로 이제 이곳에 영주로서 왕국의 1 왕자가 부임할 것이라 말하고는 홀랑 떠나버렸다.

마치 이런 벽지의 촌구석은 원치 않는다는 듯 말이다. 몬미더는 귀족을 극도로 불신하는 축에 속하는 평민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글을 익히고 초급이지만 교육이라는 것을 접해본 그는 과거 영지를 관리했던 알리샤드 남작님을 제외한 모든 귀족을 싫어했다.

그들은 오만했고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기를 원했으니까.

그런 마당에 왕자? 빌어먹을 왕국의 왕자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이 영지의 꼴을 보고 분개하며 자신의 목을 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겁은 났다. 하지만 비굴해지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 문제인 건 안 그래도 위태위태한 고향에 그런 놈이 올라앉아서 멋대로 휘두르는 꼴을 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고블린들의 습격이 또 한 번 이어졌다.

이번엔 거의 150마리에 가까운 숫자의 습격이었다.

어디서 이런 머릿수가 증식되는 건지 알 길이 없지만, 하인스 영지 근방의 고블린들이 모조리 모여서 규합한 것만 같은 숫자였다.

아무리 훈련받은 자경단원이 용맹하게 싸운다지만 계속되는 싸움에는 지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지민 몇몇이 도망치는 놈들에게 끌려간 사실도 있었다.

명백한 패배.

약탈을 당했다.

침울해진 영지민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의 지원이 전혀 없다는 것에 실망한 듯 보였다.

왕국의 지원이 끊어진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본래 있던 알리샤드 남작님과 안주인은 오래전 타계하셨다.

그런 마당에 그가 왔다.

척 보기엔 아직 저보다 반도 살지 못한 작은 소년이었다.

왕국 법상 16세 이후는 성년이 된다지만 제대로 성인구실을 하는 이는 20세에서 그 이상의 나이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새파란 애송이라는 소리였다.

젊은 귀족은 자존심이 강하니까.

게다가 왕궁에서만 자랐을 왕자라면 경험도 부족할 게 분명했다.

이번 일로 얼마나 자신을 닦달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런데.

그는 전날 자신들의 싸움흔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견했고 고생했다고 치하했다.

거짓인 줄 알았건만 그의 얼굴은 지극히 담담했다.

마치 당연한 걸 한다는 듯 말이다.

멍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지만 그는 자신을 막아선 자경단원의 행동조차 오히려 잘했다며 칭찬했다.

묘하게 모든 것을 눈치챈 듯한 눈동자와 말투.

그의 앞에서 거짓을 고한다는 건 이상하리만치 본능이 거부했다.

여정이 힘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곧장 영지의 실태를 확인하고자 실무자를 불렀기에 진실을 전부 고해바쳤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황무지로 만들고 있는 저주를 해주하기 전에 고블린부터 청소하자."

수백에 달하는 고블린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집안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자는 듯 가볍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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