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10화
* * *
삐릭.
-성명 : 몬미더
-나이 : 42
-성별 : 남
-종족 : 인간
-칭호 : 하인스 영지 자경단장, 실무 대리자.
-상태 이상 : 극심한 피로.
-특이사항 :
숙달된 검병.
기사의 재능.
-현재 심리 :
혼란
놀람.
시전자를 불신 중.
고블린에게 잡혀간 영지민을 걱정 중.
점점 말라가는 영지에 대한 걱정 중.
그놈의 근심·걱정.
초급 교육이라고 해봐야 글을 배운 것뿐일 텐데, 경험과 연륜으로 이 정신 나간 영지를 지금까지 이끌고 온 장본인이다.
이정도면 등용할 인재로 충분하지.
"오는 길에 흔적이 있던데, 고블린들이 성내까지 침입한 흔적이지, 틀려?"
"바...... 바로 보셨습니다요."
"어째서 방어가 뚫렸지?"
고블린은 수가 많지만 풍화되었다 해도 성채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뚫렸다?
타박하는 것이 아닌 담담한 물음. 하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나를 굉장히 어려워하는 느낌이 들었다.
"타박하는 게 아니야. 앞으로 그대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이 영지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할 거니까."
내 말에 그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새로이 영주로 부임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충복들을 요직에 앉힌다.
보통 그와 같은 경우가 있지만 그런 자들은 대개 위험하다며 토사구팽을 당하는 게 일상다반사라는 소리였다.
"그...... 그것이...... 계속되는 침략으로 인해 자경단원들이 지칠 대로 지치고 다친 탓에......."
"피해는?"
"민가 수십 채가 불타고...... 영지민이 다수 납치되었습니다요......."
분한 듯 중얼거리는 그 말투에 내가 턱을 어루만졌다.
"영지 내의 내정상태는 어때."
일단 중요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고블린의 습격이 없었다면 자치대의 보강보다는 이쪽을 먼저 신경 썼겠지. 뭐든 위태위태한 영지는 조심스레 손을 대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 이번 겨울까지는 날만큼의 식량이 있습니다만...... 실은 이번 연도의 농사는 흉작이라......."
-왕실에서 받아온 재물이라면 성벽의 보수와 영주성의 보수 혹은 시설의 보수금액을 모두 뺀다고 쳐도 2년을 겨우 버틸 정도라 할 수 있음이야.
내가 알아보려 한 부분을 재빠르게 눈치챈 페르세르크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캬, 반하겠다. 너 그냥 내 비서 해라.
-본녀는 사양하지.
담담하게 웃으며 그녀가 의자에 앉은 내 허벅지에 드러누웠다.
-그리되면 본녀의 수면 시간이...... 흐아암.......
잠들어버린 그녀의 행동거지에 헛웃음이 나왔다.
"직접 가는 게 좋겠지."
고민하듯 중얼거린 내가 몬미더를 바라보았다.
이름답게 나를 믿지 못하는 시선이다만.
나는 품 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갑자기 내가 주먹 두세 개만 한 주머니를 건네주자 허겁지겁 받아든 그가 묵직한 무게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 내용물에 또 한 번 경악했다.
"배. 백금화!!"
백금화.
각 한 개 한 개가 금화 50여 개의 가치를 지닌 최상위 화폐다. 그 양은 많지 않지만 금화의 크기가 일반 금화보다 훨씬 큰 대형화폐였다.
"팔리스 경과 홀튼 경이 그를 호위하도록 해. 원한다면 자경단원을 데려가도 좋아. 상단에 내 이름을 대고 식량과 필요물자를 사오도록. 그 정도면 당분간 버틸 식량과 물자를 사올 수는 있겠지."
영지민이 많아야 200명 정도밖에 안 되니 가능한 짓이긴 하다만.
"저...... 저하...... 어, 어찌 저만한 금액을......."
몬미더뿐만 아니라 나를 보좌하기 위해 이곳에 있던 다른 이들까지 놀란 듯한 시선이었다. 그들이 아는 나는 이런 큰돈을 가지고 있을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어디서 구했는지는 묻지 마. 나름대로 정당하게 구한 돈이니까."
정당하게 구했지.
정의로운 도둑이 되어서 정보 길드 탈탈 털고 모아온 돈이니까.
-애초에 절도에 정의는 없음이야...... 음냐.......
'시끄러워.'
자는 주제에 대꾸는 잘도 한다.
아마 놈들은 정보뿐만 아니라 돈까지 털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래 봐야 늦었다만.
내 말에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이내 의심을 털어낸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면 신이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1 왕자궁의 시종장을 맡고 있는 베르닐이었다.
왕궁의 시종장이자 국왕 크리아네스의 심복인 베스퍼스와 같은 가문의 사람이라는데 이미지가 참 닮았다.
"그래, 베르닐 시종장이 따라붙는다면 더 확실하겠지."
"사흘 안에 저하께서 원하시는 품목들을 구비해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곧바로 정리해보자고. 인명구출은 빠를수록 좋으니까. 남은 기사들과 자경단원은 영지를 지킬 최소인원만 빼고 모두 소집해. 에이미는 하녀들을 통솔해서 영주성을 청소해줘."
나는 바깥을 치워버리고 올 테니.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일어나는 나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이들은 이내 상황을 깨달은 듯 화들짝 놀라며 나를 따라나섰다.
* * *
역시나 불신 가득한 얼굴.
최소 방어 인원을 제외하고 모은 영지 자경단의 수는 고작 20명이었다.
젊은이가 대부분 떠나버린 영지에 자경단원이 30명 가까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쾌거이긴 하다만.
여기에 일반인보다 훨씬 강한 축에 속하는 평기사 8명이 붙었으니 고블린을 상대로는 상당한 전력이다만 오합지졸에 가까운 자경단원의 수준을 생각하면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상대해야 하는 고블린은 정확히 150마리.
정공법은 충분히 위험한 전력 차.
-으음...... 그대는 세상을 너무 손쉽게 살려고 하는군, 수는 언제든 변하는 법이지. 지금 상태를 보면 150마리가 아니라 200마리가 넘어도 이상.......
'아니, 150마리가 맞아.'
그 이상 추가되는 고블린은 모두 내가 차단할 거거든.
내 말의 의도를 깨달은 것일까 잔뜩 졸린 표정을 짓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입을 다물었다.
-가끔 그대는 화끈해서 좋아.
"다들 모여줘서 고마워. 다들 처음 보지? 나는 이번에 영주로 부임한 [데이비 올 라운]이라고 한다."
담담하게 단상에 올라서서 그들을 훑어보았다.
빠르게 정보분석이 활성화되면서 그들의 정보가 나열되지만 처음 몬미더처럼 뛰어난 자질을 숨긴 이는 없어 보였다.
"이미 알고들 있겠지만 전날 밤 고블린의 기습으로 영지민이 납치되었다."
내 말에 여기저기서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당장 찾아가 그들을 찾고 싶은 이도 있을 거다. 겁을 먹고 숨고 싶은 자도 있을 거고."
침묵이 계속된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건 이대로 두면 그 초록 난쟁이 놈들이 계속해서 영지를 습격할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담담한 목소리에 모두가 침묵했다.
불신이 가득한 표정이지만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진 않았다.
애초에 그들에게 상당히 프레셔를 주고 있으니까.
"내가 비록 방금 이곳에 도착했지만 영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
"그대들을 모르겠지만, 나는 내 영지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걸 용납할 생각이 없어. 이 영지에 검을 들이밀고 사지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알량한 생각을 가진 놈들을 살려둘 만큼 성격이 좋지도 않아."
내 말에 그들의 얼굴에 곤란함이 어렸다.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찾아가 복수하고 가족들을 찾아오고 싶지만 마냥 그들을 추격해본들 위험해지는 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놈들이 숨어든 숲은 놈들을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놈들의 앞마당이라고 했다.
개도 제집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데 고블린들은 오죽할까.
"하, 하지만 이 인원으로 그놈들을 처리하는 건......."
"자살행위요!"
당연히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를 향해 자경단원들의 불신 가득한 외침이 들려왔다.
젊은 소년도 있었고 검을 쥐기엔 위험해 보이는 노인도 보였다.
나잇대가 일정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손이 부족하다는 소리겠지.
"그래서. 놈들이 계속 침범하게 두자고?"
내 말에 그들이 침묵했다.
그리고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여, 영주님의 말씀은 잘 알겠사오나...... 저희들은 이제 이 영지에 남은 마지막 자경단입니다요...... 그런 저희까지 죽어버리면 누가 영지를 지킨단 말입니까요."
"맞습니다! 고블린들은 원수에 대한 적의가 굉장한 놈들입죠! 저희가 공격에 실패하면 놈들은 분풀이로 다시 이곳을 습격할 겁니다!"
"나도 출정할 거야. 걱정 마."
내 말에 그들의 얼굴에 한숨이 어렸다.
몇몇은 한심하게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경험도 부족한 왕자가 제 혈기만 믿고 까부는 것이라 생각하겠지.
말은 하지 않아도 저들의 앞에 떠올라있는 상태출력창에 극도의 불신이라는 단어가 보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서로를 쳐다보면서 이제 자신들은 다 죽었다고 수군대는 꼴이 퍽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당장 불경한 행동에 기사들이 나서려 했지만 손을 뻗어 가볍게 제지한다.
"그대들의 걱정은 충분히 알았어, 다만 한 가지 정정하지."
내 말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왕자가 아니라 하인스 영지의 영주로 부임했다. 그리고 그대들은 미우나 고우나 영지민. 이제 우리는 한가족이 되었다고 봐도 좋다. 그런 가족을 내가 죽게 둘 거라 생각하는가?"
내 말에 좌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성흔에 걸고 맹세하지. 나를 믿고 따라라.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놈들을 뿌리 뽑게 해줄 테니까."
마음 같아선 혼자 가서 쓸어버려도 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지금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각오나 기본 실력이니까.
"나를 믿기 힘든가? 그렇다면 내게 내려진 신의 흔적, 성흔을 믿어라. 그조차도 믿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나를 폭압 하는 영주라 생각하고 따라와도 좋다."
내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아무리 바깥소식에 어두운 자라도 이쯤 되면 내가 성흔을 발현한 그 왕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나는 내 목숨이 제일 중요해. 그리고 날 지킬 너희들도 중요하다. 단 한 명도 내 허락 없이 죽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압도적인 투기가 방출되며 주변을 순간적으로 위축시킨다.
사람은 전신을 짓누르는 공기를 카리스마라 착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단호한 내 외침에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 * *
인근 숲.
하인스 영지의 근처에 있는 거대한 숲은 본래 야생동물만이 살던 조용한 숲이었다.
본래는 수렵을 하던 영지민들이 드나들던 숲이라는 소리였다.
과거에 오크가 소수 발견되긴 했지만 그들은 인간에게 크게 흥미가 없고, 그들이 발견되던 것도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고블린들이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고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수렵은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해진 숲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고블린 놈들의 부락은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요."
자경단장인 몬미더를 대신해 가장 연장자인 자경단원 코리스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앞 능선을 지나면 고블린들이 다수 모여있습죠."
그의 말대로였다.
소리를 죽인 채 이동하니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부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