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11화
"오크의 부락?"
처음에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건축 기술이나 양식은 엄연히 고블린과 앙숙이라는 오크의 것이었다.
스스로 전사라 칭하는 놈들에게 약탈꾼인 고블린은 그야말로 앙숙일 것이다.
그런데 오크의 부락에 고블린들이 있다?"
"주인 없는 부락이었습죠. 얼마 전부터 놈들이 이곳에 모여든다는 이야기를 파수꾼들이 해주었습니다요."
확실하진 않았던 정보지만 다행히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그 수는 예상대로 150여 마리. 습격으로 인해 다수가 죽었음에도 다시 채워진 것을 보면 어딘가에서 보충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있다는 소리겠지.
고블린들에게 납치당한 영지민들은 부락의 허름한 건물 안에 잡혀있는지 따로 보이지 않았다.
"저놈들이...... 리니를......."
뿌득 뿌득 이를 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자경단원 중 젊은 소년 하나가 충혈된 눈으로 당장에라도 피눈물을 흘릴 듯 분노하고 있었다.
혈기가 넘쳐서 당장 뛰어들고 싶은 것을 분위기 때문에 겨우 내리누르고 있는 모양새였다.
"분한가?"
이에 내가 담담하게 녀석을 보고 말하자 녀석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번엔 자경단원 전체를 바라보았다.
"저놈들을 죽이고 싶은가?"
담담한 말은 파동처럼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네!"
"복수하고 싶습니다!"
분한 듯 소리치는 그뿐만 아니라 다른 자경단원들도 한껏 분노한 듯 크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쥔 허름한 무기들을 당장에라도 휘두를 기세였다.
인심이 좋은 영지라는 게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가족도 아닌 이들을 향해 저렇게 분노해주진 않을 테니까.
"내가 영지는 잘 골랐나 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후 손에 쥔 활을 들어 화살을 시위에 매겼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마나를 끌어올렸다.
영주로서의 첫 실전은 참 빨리도 찾아왔다.
* * *
'강살(强虄).'
겉보기엔 그저 화살을 당겨 비튼 자세.
겉보기엔 엉성해 보이지만 절대 엉성한 한발은 아니었다.
궁신 아폴론의 기술을 전부 빨아먹은 나였으니까.
그 느끼한 양반이 성격은 그렇지 궁술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양반이었던 만큼 그의 기술을 배운 내가 쏘는 한발은 절대 일반적인 한발이 아니다.
내가 갑자기 활을 당긴 탓에 기사들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내가 하려는 짓은 정공법.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저...... 저하?!"
"정공법은 안 됩니다!"
말도 안 된다 여긴 것이겠지.
이렇게 넓은 곳에서 놈들에게 포위당하면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 테니까.
부락에서 발견된 고블린들의 숫자나 자경단의 상태를 보면 사상자는 물론, 전멸이 더 확률이 높아 보일 만큼 불리한 상황이다.
그들은 본래 내가 적절한 함정이나 게릴라전으로 수를 줄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단 한 명도 죽지 않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하기까지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속 터지게 놈들을 청소할 생각이 없었다.
먼지가 무서워서 빗질을 못 할까.
"잊지 마. 단 한 명도 죽지 않게 한다는 말."
빙그레 웃으며 내가 활시위를 가볍게 뒤틀었다가 놓았다.
파앙!!
동시에 공기가 튕기는 소리가 들리며 날카로운 화살이 허공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억!!
-끼에에엑!!
-까아아악!!
순식간에 날아든 화살이 휘어진 몽둥이를 들고 있던 고블린 한 마리의 골통을 가볍게 부숴버리며 절명 시켜버렸다.
동시에 동료의 죽음을 발견한 고블린들이 내지른 기괴한 울음소리가 부락 전체는 물론, 근방 숲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언제 들어도 기괴한 울음소리였다.
순식간에 소리를 듣고 모여든 고블린들은 곧 화살을 들고 여유롭게 서 있는 나를 발견했고 흉포한 괴성을 내지르며 적의를 터뜨려댔다.
마치 건드려진 벌집에서 벌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살기등등한 모습에 압도되기라도 한 것일까.
자경단원들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미친 애송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직접 말을 하진 않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지.
그렇기에 나는 곧장 활시위에 다시 화살을 메기고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목청에 힘을 담았다.
당신네 영주님은 대단한 놈이야. 지금부터 잘 보라고.
"오늘부로 그대들의 영주이자 가족이 된 내가 처음으로 명하겠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그들을 돌아본다.
"전원!!!"
어그로는 제대로 끌렸고.
그 말과 함께 내 등 뒤의 성흔이 옅게 빛나기 시작한다.
[하드 스킨]
[스트랭스]
[어질리티]
[바이탈 펌프]
[마나 실드]
[하이 블레싱]
피부 강화, 근력 강화. 민첩 강화. 체력 강화. 마나 방어. 전체적인 능력치 강화.
내가 서 있는 바닥을 시작으로 원형으로 퍼져나온 순백의 빛이 여러 가지의 버프 마법이 되어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한둘도 아닌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 전원에게.
가벼운 버프 마법이지만 같은 마법이라도 위계를 강제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신성 마법의 효과는 탁월하다.
내 몸을 타고 갑자기 수많은 버프 마법들이 흘러나와 그들을 감싸자 그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어렸다.
기묘한 빛과 함께 제 몸에서 힘이 넘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너무 놀라는 거 아닌가? 여기서 끝이 아닌데?
이어지는 백색의 휘광을 휘어잡듯 휘두르며 재차 신성력이 담긴 내 의지가 추가로 발현되었다.
-그대. 죄다 써버릴 생각인가?
기왕 시작한 거, 천재 성자님 코스프레 좀 해보지 뭐.
어차피 이게 무슨 마법인지도 모르는 이들이니까.
[디바인 프로텍션]
[레노바티오]
[리인포스 더 마인드]
상위 방어력 향상, 체력 회복률 상승, 정신 강화,
이정도도 충분하지만...... 까짓거, 대 출혈 서비스다.
[세인트 글로리아]
버프 효율 증폭 영역.
화아아아악!!
금빛의 휘광이 주변을 휘감으며 6 위계의 버프 증폭 마법인 [세인트 글로리아] 가 발현되자 그들의 몸이 한층 더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특정 조건에 한해서 일반인도 익스퍼트 급 실력을 뽑아내리라.
"이게 대체......."
"세상에......."
현재 내가 끌어올릴 수 있는 신성 마법은 아티펙트의 경우까지 감안해서 최대 6급의 최후반.
기본적으로 1급에서 2급, 높게는 3급 정도의 신성 강화 버프지만 위계를 끌어올리면 효과는 비교할 수 없다.
기대하라고, 이만한 버프 어디 가서 받기 힘드니까.
주신 프리아의 교단 본산인 성국 발샤스의 성기사도 이정도로 호강하진 못할 거다.
마법이나 흑마법과 다르게 신성 마법은 그 경지를 올리는 게 가장 어려운 직종이니 말이다.
성녀나 법황쯤 되어야 7 위계를 끌어낼 정도겠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몸에 무언가가 되었음을 깨달은 자경단원과 기사들은 제 몸에 넘쳐나는 기묘한 힘에 놀란 듯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서히 체감이 된다는 듯한 표정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내 황당무계한 행동거지에 당장에라도 분통을 터뜨릴 것 같던 표정을 짓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말없이 미소로 답해주며 다시 숨을 빠르게 들이쉬었다.
믿음.
혹은 사기진작은 중요하니까.
"지금껏 쌓인 울분을 모조리 풀 것을 내가 허락한다!!"
계속되는 습격에 지친 그들에게 이번 싸움은 중요하다.
지쳐가는 이들에게 자신감만큼 확실한 각성제는 없는 법이니까.
때로는, 직접 싸우지 않는 게 도움이 되는 법이다.
'아, 이거 한번 꼭 해보고 싶었는데.'
-무엇을 말인가?
너흰 강해졌다! 돌격해!
-.......
* * *
사실 영지의 자경단원들은 전날 고블린들의 습격에 복수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걸어준 버프를 그저 신비한 마법 정도로 인식하는 그들이지만 몸에 흘러넘치는 힘은 당장에라도 저놈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을 부여해주기에 충분했다.
-까아아아악!
-끼에에엑!!
그렇지 않고서야 불구대천 원수 보듯 덤벼드는 저 고블린 무리를 보면서도 희열에 잠긴 표정을 지을 리가 없으니까.
"가자!"
"놈들을 쓸어 버려라!!"
수는 놈들에 비하면 고작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숫자.
겉보기엔 굉장히 차이가 크게 나는 것 같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한 명당 세 놈씩만 처리해도 어렵지 않게 처리 가능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병법에서는 수가 3배 이상 많으면 절대 정공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던가.
어찌 보면 이것도 정공법은 아니니 상관은 없을 테지.
기본적으로 스펙 차이가 나는 인간과 고블린의 싸움. 지치고 부상을 입어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던 싸움은 내가 걸어버린 신성 마법 때문에 모조리 붕괴되어 버렸다.
"으아아아아!"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투박한 무기들을 쥐고 돌격하는 그들을 보며 다시 활을 당겼다.
그리고는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뜬다.
마나가 안광에 감돌며 순식간에 강화된 시야 너머로 고블린들의 우두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락온]
가볍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강살(强虄)을 준비.
미련 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놈들의 목덜미를 향해 화살촉을 겨누고 시위를 놓았다.
파앙!!
공기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괴성을 지르던 고블린 한 마리가 또 한 번 쓰러졌다.
쾅!!
동시에 전열에 서서 달려나가던 기사들과 자경단원들이 고블린 무리와 충돌했다.
"이놈들!!"
-끼에에에엑!!
상상 이상으로 빨라진 몸, 강해진 근력. 튼튼해진 몸. 끝없이 솟아오르는 자신감!
그 여파는 처음 격돌한 자경단원 한 명의 검이 고블린의 머리를 가볍게 날려버리고 나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오오......."
제아무리 인간보다는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고블린들이라지만 마나도 발현하지 못하는 인간이.
이렇게 깔끔할 정도로 일검에 목을 날려버리는 건 통상적으로 불가능한 모습이다.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기사들이야 단련해온 육체와 기술이 있으니 가능하다지만 이런 벽지의 자경단원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았을 리 만무하지 않는가.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길 수 있다!!"
"겁먹지 마라!"
"영주님이 함께 하신다!"
자신들의 변화를 깨달은 이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어리자 전황이 순식간에 전투에서 일방적인 토벌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물론, 극도의 자신감 때문에 무리를 하는 이는 나오는 법.
"큭!"
지나치게 무리한 탓에 자신이 가진 일반인 기준 평균 마나 양을 웃도는 공격을 받은 이들은 마나 실드가 일순간 해제되며 타격을 받는 일도 있었다.
그냥 두면 하나둘 정도는 크게 다칠지도 모르는 상황.
당연히 그것을 그냥 둘 생각이 없다.
[힐]
1급의 간단한 회복마법.
하지만 이놈 역시 위계를 끌어올릴수록 그 효과가 증폭되리라.
"어어?"
"상처가......."
제 몸에 난 상처들이 따스한 빛에 휩싸여 순식간에 치유되자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나는 대답 대신 화살을 다시 한 번 쏘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