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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1화 (41/1,559)

# 4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16화

마나석은 대륙 여기저기서 채굴되는 편이라 비싸긴 하지만 구할 순 있다. 하지만 마정석은 다르다.

자연에서 고도로 정제되고 응축된 마나의 덩어리.

잘만 이용하면 마나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도 마법사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만큼 사용방도는 마나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게 바로 이것이었다.

한 개도 아니고 무려 20개에 가까운 마정석.

게다가 크기도 보통 크기가 아니니 아마 이것을 내어놓는 순간 대륙에 있는 마법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뻔했다.

괜히 마법사라는 직업이 돈 잡아먹는 직업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사실상 이 마정석 하나만 팔면 대량의 돈이 쏟아진다.

"그래도 지금 팔순 없지."

문제는 이만한 물건이 아직까지 대륙에 등장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륙에 알려진 마정석이라고 해봐야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아주 극소량의 마정석이 대부분.

그것만으로도 백금화 수백 개를 받아먹는 와중에 그 수배는 거대한 놈이 나왔다?

대비 없이 그냥 내놨다간 수많은 사건에 휘말리기 딱 좋다.

-결국 빛좋은 개살구였지.

"아니지. 이걸로 뭘 해먹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지."

그리 말하며 나는 바닥에 쓰러진 골렘의 몸체를 바라보았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고성능 골렘.

마정석을 빼고 이것들만 내다 팔아도 돈이 되겠지만 이건 마정석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리라.

버려지고 저주받은 땅이라고 아무도 오려 하지 않는 이 별골 오지에 실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설이 7곳이나 숨어있었다니 절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복도의 끝으로 난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거대한 홀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우."

동시에 내부를 들여다본 내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똑같은 마정석이다.

하지만 그 크기부터가 달랐다.

-저주의 핵이군.

페르세르크의 말대로였다.

지금껏 골렘들의 머리통에서 뽑아낸 마정석은 커봐야 주먹만 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작고 큰 사이즈였다.

하지만 눈앞의 이건 그 사이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마정석이었다.

높이만 3m. 넓이만 1m에 가까운 이 거대한 바위 전체가 마정석이라는 소리니 말이다.

게다가 어떻게 가공했는지 표면에는 알아보기 힘든 수 없이 많은 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건 진짜 세상에 나오면 골 아프겠다."

거짓말하나 보태지 않고 세상에 나타나는 순간 수많은 국가가 마정석을 소유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크고 순도 높은 마정석이다.

"이 안에 응축된 마나를 사용할 수만 있으면 9 서클 마법을 신나게 갈겨도 되겠는데."

어처구니없는 사이즈와 정교함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다만,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정도 사이즈가 되니 그 넓은 영지 전체의 기후를 멋대로 바꿔온 것이겠지.

저주가 발현된 게 5년 정도이니 망정이지 이곳을 찾지 못했으면 몇십 년, 몇백 년. 아니 몇천 년이고 계속해서 이곳을 생지옥으로 만들었으리라.

비를 불러오는 마법이나 자연을 조종하는 마법은 기본적으로 고위마법사라면 하나둘 정도는 쓸 수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영지에 펼쳐진 저주는 사실상 그런 범위를 벗어나는 비상식적인 변화였다.

묵묵히 걸음을 옮겨 마정석에 손을 올린 내가 사령 마나를 끌어올려 다시금 리픽스 커스 마법을 사용하자 처음 지면에 대고 사용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암호문자가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작 영지 하나 말려 죽이려고 만든 것치고는 지나치게 공을 들인 모양새로군.

"이 땅에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시선은 수많은 문자를 쉴 새 없이 읽어내려갔다.

마지막 홀이다 보니 이곳을 보호하는 마지막 가디언이 하나 있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넓은 홀의 한쪽 벽면에서 조금 난해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고 있기도 했다.

다만, 시간이 너무 흘렀기 때문일까.

마지막 방어시스템은 가동하지 않는 듯했다.

"오호...... 이런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네."

수많은 마법 이론을 배운 나로서도 흥미롭기 그지없는 배열.

마법사로서의 도전심이 새록새록 돋아나기 시작했다.

-손댈 수 있겠는가?

"난도가 있긴 한데...... 규칙만 찾으면 조작하는 것 정도는 충분해, 음, 이건가?"

리픽스 커스 마법으로 나열된 마나 배열의 한 부분을 집어 그대로 비틀어버리자 옅은 빛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마나 배열의 식이 기괴한 빛을 뿌리기 시작하자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하지만 내 시선은 눈앞에 있는 빛을 뿜는 문자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우웅!!!

이윽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문자들이 서서히 진정하기 시작하며 녹빛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안정된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페르세르크가 나를 바라보았다.

-뭘 바꾼 게야?

"그냥."

말끝을 흐린 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가문이 몇 년이고 지속됐잖아. 그러니 물부터 뿌려줬지. 쌓인 게 많아서 폭우가 되어버린 모양이다만."

아마 지금쯤이면 영지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 * *

자경단원인 고든과 프리먼은 엉성하게 보수된 성채의 망루 위에서 나른한 얼굴을 한 채 성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아암...... 역시 평화로운 게 좋은 거야."

"프리먼 아저씨, 왜 영주님은 나머지 고블린까지 토벌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최근에 와서야 생긴 정말 꿀 같은 여유였다.

고든의 말에 프리먼이 허허롭게 웃으며 성 너머의 황량한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이놈아, 영주님도 다 생각이 있으신 게지. 게다가 일대의 고블린은 죄다 토벌되었으니 당장 급할 게 뭐 있겠냐."

처음엔 데이비를 믿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이 나라 라운 왕국은 귀족파가 위세를 잡으면서 귀족들의 수탈이 심해질 대로 심해져 있었다.

직접 이 오지까지 찾아와서 자리를 트고 영지민을 괴롭힐 만큼 한가한 귀족들은 없었다지만 살길을 찾기 위해 타 영지로 떠난 이들이 보내온 연락 정도는 받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평민이지만 왕국민이지 농노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영지가 무너져 가고 있는데 왕국은 그저 세금 감면이라는 혜택만 던져준 채 영지를 나 몰라라 하고 버려두었다.

그들에겐 그저 오지의 영지일지 몰라도 이곳 영지민들에겐 이곳은 고향이었다.

오래전 알리샤드 남작이 영지를 다스릴 때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이곳은 집이요 곳 돌아올 곳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영지가 죽어가는 마당에 몇 년이고 방치하던 왕국이, 갑자기 영주랍시고 새파란 애송이를 보내왔다.

견식이 높은 어르신들은 이곳에 부임하는 신임영주인 데이비 1 왕자가 권력싸움에서 밀려 이곳으로 좌천되었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 그가 이곳에 와서 영지민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할 확률도 아주 높다고 말했다.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이리라.

걱정이 된다곤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안 그래도 고블린들의 습격이 계속되던 시기라 다른 곳에 신경 쓰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고블린들이 결국 성채를 넘었고 영지민을 납치해가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당시의 자경단원들의 힘으론 고블린 부락을 습격해 영지민들을 구출하기 힘든 상황.

모두가 포기하고 있던 찰나. 그가 왔다.

말끔하게 호감 가는 미소를 띤 소년은 그들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당장에라도 영지의 상태를 들은 그가 분개하며 자경단장을 매질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다.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목숨을 걸고 그에게 대항할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 왕자는 묵묵히 영지를 둘러보았고 순식간에 영지 내부까지 고블린들이 습격해왔다는 사실을 눈치채버렸다.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

지극히 담담한 얼굴로 그는 자경단원들을 향해 폭탄선언을 했다.

한 명도 죽게 하지 않겠다.

원하는 만큼 분노의 칼을 들이밀어라.

그리고, 데이비 왕자가 처음 고블린 한 마리의 머리통에 화살을 박아넣었을 때.

그들은 기적을 보았다.

기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으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데이비 왕자가 보여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나온 신성한 빛은 자신들을 강하게 만들었고, 잡혀간 영지민을 구하지 못할 거라 여기며 자책하던 자경단원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그 작은 소년이 그런 심리까지 파악했던 것일까.

그는 지속해서 놈들과 싸우면서 지쳐가던 자경단원들의 마음속에 의욕이라는 불을 지른 것이다.

내가 이곳의 영주가 된 이상 우리는 한가족이다. 그리고 나는 가족을 헛되이 죽게 할 생각은 없다.

그가 자경단원을 이끌며 했던 말이었다.

기적에 가까운 전공을 올린 영주, 데이비 왕자는 이후로도 자경단원을 소수 차출해 고블린들을 토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마치 그때 보여준 기적이 그저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듯 말이다.

본인은 성자가 아니라며 투덜투덜하긴 했다만 그는 알고 있을까.

새로 부임한 젊은 영주님은 고작 며칠 만에 이 영지민들 사이에서 신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당장 신성모독이라며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영지민들은 그 생각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저 지켜본다고만 할 뿐 어떤 기적도 내려주지 않던 신보다 눈앞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이가 더 믿음직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프리먼 아저씨."

"음?"

"그런데 말입니다. 영주님 덕분에 고블린을 처리한 것까진 좋지만 과연 이 영지에 미래가 있을까요."

평소라면 화를 내고도 남았을 소리였지만 프리먼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영지가 점점 죽어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몇 년이고 가뭄으로 말라가는 영지는 이제 영지민들이 살고 있는 산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땅을 죽음의 땅으로 바꾸어버렸다.

제아무리 신의 화신 같은 존재감을 내뿜으며 등장한 그라도 이건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제아무리 영주님이 성자님이라 해도 하늘이 노해서 비가 오지 않는 것까지 어떻게 하겠냐."

"하아...... 이제 이곳까지 가뭄으로 메말라버리면 정말 영지를 떠나야 할까요."

영지가 부유하기라도 했다면 물을 사 오기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지는 가난했고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농사마저 가뭄으로 피폐해져 간다.

씁쓸하게 한숨을 내뱉는 고든의 모습에 프리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다. 이정도면 그도 충분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이라도 몇 년 동안 이어진 가뭄과 죽어가는 땅은 어떻게 하진 못하리라.

서서히 다가오는 가뭄의 여파는 이제 유일하게 비가 내리던 이 성채의 주변까지 미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풀이 자라던 성채 주변의 평야가 서서히 말라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점차 저 끔찍한 저주가 유일한 보금자리인 이 성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성채 내부에도 서서히 가뭄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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