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18화
우웅.......
내 손끝에서 빛나는 주먹만 한 돌덩어리들의 변화상태를 지켜보는데 걸린 시간이 일주일이었다.
-이건...... 좀 대단하군.
"도대체 얼마나 힘을 응축시킨 게지?"
거대 마정석이 내뿜은 저주가 땅을 죽였다.
하지만 있는 걸 없애버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
그런 만큼 거대 마정석은 땅의 지기를 소멸시킨 게 아니라 그것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한 곳에 극도로 응축시키고 있었다.
하인스 영지의 경우는 대부분의 지력이 지하 깊숙한 곳에 모여들고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결국 그 지력을 땅 위로 끌어올리면 만사 해결인 상황이다.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냐고?
수만 년간 충전되어온 힘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게다가 사이즈부터가.......
일주일.
겉보기엔 아직 푸석푸석한 모래, 그리고 갈라진 땅들이 보이곤 있지만 고작 일주일 만에 지기가 이제 간단한 작물을 심을 수 있게 되는 데에 걸린 시간이다.
아직 딱딱한 땅이라 무언가를 심으려면 땅을 뒤집어엎어야 하지만 그 부분은 어려울 것도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마정석은 말 그대로 간단한 상황판.
즉, 각 지역의 땅덩어리 속에 심어놓은 마정석과 원거리로 유지되게 만들어 언제든지 정보확인으로 지기나 그 외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그리고, 아직은 조금 불안정하지만 마나 배열을 원격으로 제어해 영지의 기상상태를 바꿀 수도 있었다.
사람이란 자고로 귀찮아서 발전하는 생물.
직접 매번 유적까지 가기 귀찮으니 멀리서 손가락 까딱하는 거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지.
-마정석의 힘도 대단하지만 이걸 만드는 그대도 정상은 아니야.
"마정석은 원래부터 사용 범위가 엄청난 물건이니까."
게다가 그 크기가 주먹만 한 사이즈라면 그 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분간은 공간확장 주머니를 써야겠네."
작은 주머니에 새겨진 마법진, 그리고 그 안에 넣어둔 마정석의 힘으로 크기는 고작 내 손만 하지만 내부의 공간은 수백 평의 땅덩어리에 가까운 공간을 얻었다.
-한 개만 팔아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는 마정석을 그렇게 막 쓰는 건 그대뿐일 게야. 이건 자원낭비 그 자체이니.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이건 정말 낭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 팔지도 못하는 것 따위.
"투자라 생각하자고. 나중에 대처할 수단만 생기면 냅다 팔아버려도 되니까."
마나석으로는 불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니 오히려 잘된 꼴이다.
주식이든 땅이든 마냥 돈이 된다고 팔아버리는 건 옳지 않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 내가 잘 나가기 시작하면 괜히 시선이 모이고 시기를 받게 될 터.
지금은 달가운 현상이 아니다.
"저하, 말씀하신 기온 측정 결과가 나왔어요......."
마정석을 정리해 공간확장 가방 속에 밀어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에이미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얼마나 나왔던?"
내 말에 에이미가 조심스레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보통 직접 받아서 확인하는 게 맞지만 나는 에이미를 전속 시녀가 아니라 이 영지의 행정을 담당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제법 영특한 인재를 이런 클린하고 발전적인 기업에서 그냥 둘 리가 있나.
"자경단원 분들이 조사해주신 대로면 실온 13도 정도로......."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쉬이 믿지 못하는 눈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하권의 기온을 오가던 영지의 일부가 갑자기 다른 세계가 된 것처럼 따듯해지기 시작했으니까.
"딱 좋네."
씨익 웃음이 나왔다.
아직 추위가 다 가지 않아서 땅이 얼어있는 탓에 농업을 할 수 없다고?
기온을 바꾸면 됩니다.
어때요, 참 쉽죠?
"그래, 지원자는 얼마나 모였다던?"
"방어를 위해 남은 최소인원을 제외한 자경단원 전원과 일부 영지민도 모였어요. 총 60여 명 정도 돼요."
이런 광신도 같은 작자들.
속으로 혀를 쯧쯔 차면서도 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기온도, 강수량, 지기의 상태도 멋대로 바꿀 수 있는 상황.
이런 꿀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일반 농사나 짓는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무슨 장사건, 빠르게 돈을 벌고 싶으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미리 준비해둔 장비 가지고 나오라고 해. 바로 작업 시작할 거니까."
압도적인 물량. 그리고, 희소성.
-그대는 둘 다 할 생각이지.
그 말대로였다.
* * *
메말라가던 땅에 갑자기 비가 온다.
그리고 추위로 칼바람이 불던 들판에 며칠 기준으로 따스한 공기가 돌기 시작했다.
체감상의 차이가 아닌 실제로 체크한 온도가 엄연히 봄의 온도.
갑작스런 영지의 변화에 경악하고 의심할 법도 하건만, 몬미더를 제외한 영지민들은 이미 내가 하늘을 감복시켰을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가설을 믿는 분위기였다.
"많이도 모였네."
내 말에 모인 영지민들 중 일부가 히히 웃어 보였다.
"영주님이 하시는 일을 저희가 손 놓고 구경하겠습니까요!"
"영주님의 넓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그건 금수나 다름없지요."
노파의 말에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조금 빡센 노동을 할 건데 괜찮으려나 몰라.
말없이 시선을 돌리고 있자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리니라고 했나.
고블린들에게 잡혀갔었던 작은 소녀였다.
치료나 받으라고 했더니 여기까지 따라올 줄이야.
자경단원들은 하나같이 평소의 무기나 갑옷이 아닌 활동복에 커다란 괭이를 가지고 있었다.
"뭐. 일단 우리 영지는 청정수 같은 기업이니까. 적어도 임금 체불은 없을 거야."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멀뚱멀뚱 나를 바라볼 뿐이고 알아들은 이들은 희희낙락하며 웃어 보였다.
"웃지 마, 정들어."
"하하하!"
괜히 말했나 보다.
말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뒤 넓게 퍼진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딱딱하고 갈라져 식물이 자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땅덩어리였는데 제법 많이 회복된 모양새였다.
고작 일주일 만에 이만큼 회복하다니, 마정석에 고대문명의 저주클라스가 확실히 남다르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건 간단하다. 어제 기사들이 이 근처의 땅에 경계를 그어놨을 거야. 거길 모조리 개간한다."
내 말이 황당하다 여겼는지 곁에 서 있던 몬미더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못하겠으면 그만둬도 좋아. 계산은 철저하게 하니까."
영지민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어도 방법은 있다.
다만 이렇게 나와줬으면 써먹는 수밖에.
"기간은 사흘."
내 말에 몬미더의 얼굴에 더욱 경악이 어린다.
"퇴근 시간은 보장해주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너희들이 얼마나 잘하냐에 달려있다."
내 말에 몬미더가 급히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여, 영주님!"
"음?"
"외, 외람되오나 아무리 기후가 갑자기 변해 땅의 얼음이 녹았다고 해도 사흘 안에 이 넓은 땅을 개간하는 건......."
"예전에 농지로 쓰던 곳이잖아. 기본적인 틀은 있을 텐데?"
"그것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너무 과한 노동력을 요구한다.
"하하, 이번에도 뭔가 보여주신다에 내 불알을 걸지."
"더럽게 그걸 어따 써."
다만, 몬미더의 그런 말과 다르게 자경단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 따먹기나 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 영주님 재고를...... 영주님의 은혜로 고블린 놈들을 토벌하고 영지민을 구해온 걸 잊은 건 아닙니다만...... 너무 과합니다."
"과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내 물음에 그의 얼굴이 벙쪘다.
내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느니 더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거겠지.
뭐라 말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그를 무시한 채 내가 몇몇 영지민들을 불렀다.
"조장들은 확실하게 작업 통제하고."
"예!"
"그럼 시작하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을 감은 내 주변으로 빛이 천천히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영주님이시여."
"우리들의 구세주......."
"엉엉 날 가져요!"
조금 부담스러운 단어가 들려온 것 같다만.......
'또 자고 있네 이놈은.'
수면이라도 취하는지 일어나기 싫다며 칭얼대는 신성력을 때려서 깨운다.
그리고는 눈앞에 모인 60여 명의 영지민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으며 딱 2가지의 간단한 마법을 걸었다.
근력 강화, 그리고 체력 강화.
다만, 이번엔 고도의 노동이 필요한 만큼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스트랭스]
[스트랭스]
[스트랭스]
.......
힘이 부족하면 중첩해서 쌓으면 되고 체력이 달리면 체력증가 마법을 중첩해서 쌓으면 되는 일.
다만 어느 마법이건 쉬운 마법이라도 다수 중첩하는 건 상상 이상의 난이도를 지닌다.
중첩 한 번의 난이도가 1이라면 중첩 두 번은 2. 세 번은 4, 네 번의 중첩은 8의 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오른다는 소리다.
어지간해서 3번 이상 중첩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내가 가진 건 숙련도와 지식뿐.
신성력의 총량도 이제 어느 정도 받쳐주기 시작했으니 못할 것도 없었다.
남는 게 숙련도인지라.......
이것도 어디 가서 받기 힘든 버프일걸?
마음 같아선 전처럼 버프효율 증폭 영역이라도 걸어주고 싶지만 이 넓은 땅에 그걸 사용했다간 신성력 탈진으로 뻗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쓰읍...... 칼디라스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대는 신검을 신성력 창고로 보고 있군.......
질렸다는 듯한 페르세르크의 중얼거림이 들려오지만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우오오!!"
"힘이 솟는다!"
마치 초강력 건전지라도 된 것마냥 포효하는 영지민들의 모습에 몬미더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뭐해. 작업 시작하자고. 농땡이 피우다 걸리면 임금 삭감이야."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가볍게 말했다.
* * *
자경단장 몬미더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콱!! 콱!! 콱!!
"쯔아아아!! 힘이 넘친다!!"
퍽퍽퍽!!
"나가 젊을 적에 이렇게 밭을 갈았어야!"
제 눈으로 보는 이 모습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지 몇 번이고 눈을 비빈다.
근력을 조금 올려주는 마법이라도 그것이 열댓 번 중첩되면 나이 지긋한 노파가 거구의 사내를 들어 나뭇가지마냥 휘두르는 근력을 보조받는다.
체력이 달려 조금만 달려도 헉헉대는 꼬마가 42킬로 마라톤을 전력질주로 달릴 체력을 보장받는다.
사기적이라고?
한번 해보시든가.
"어때?"
내 말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몬미더가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영지는 클린한 기업이라고, 내가 말도 안 되는 과제를 던져주겠냐. 회사원의 복지는 회사의 얼굴인데."
비유가 그렇지 진짜 회사는 아니다.
"이...... 이게 어떻게......."
내가 성흔을 받은 왕자라는 것은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신비한 힘으로 영지민들을 강화해 고블린들을 잡은 것도 들었을 것이다.
다만, 직접 보는 것과 들은 것의 차이는 있는 법이다.
그저 과대 포장한 것이라 생각했겠지, 다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실제로 지원자로 온 노파는 무슨 괭이 마스터라도 된 것마냥 아주 황량한 들판을 날아다니며 땅을 갈아엎고 있지 않은가.
경악으로 굳어있는 그의 등을 툭 쳐주며 내가 빙그레 웃었다.
"어때, 이정도 속도면 사흘 안에 끝나겠지?"
"세상에......."
제 눈으로 보는 현실이 그제야 와 닿는지 그가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