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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4화 (44/1,559)

# 4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19화

"몬미더."

"예, 예?!"

멍한 얼굴로 있는 그를 내가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이 돌아왔다.

"작업을 관리·감독하는 역할은 그대에게 맡기겠어."

"마...... 맡겨주십시오!"

몬미더는 경계심이 많은 사내이지 절대 멍청한 작자가 아니었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믿기 힘들어도 상황판단을 못 하진 않았다.

"적어도 나보단 더 잘 관리할 테니까."

내 말에 그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 영주님."

"음?"

"한데, 이곳에 무엇을 심으시려고......."

굉장히 넓은 땅을 한꺼번에 개간하는 만큼 미리 사들인 밀의 모종이 부족할 거라는 그의 판단이었다.

그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데 내가 당장 무언가를 가득 심을 것처럼 구니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가난하던 영지가 빠르게 부를 축적하려면 뭘 해야 할 거 같아."

내 물음에 그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것이......."

"달의 풀을 심을 거야. 이곳 전부에"

"달...... 의 풀 말입니까요?"

내 말에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였지만 나는 이 이상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기상 여건, 지기의 상태. 기온의 변화 때문에 동대륙에선 재배가 불가능한 식물.

그런 주제에 마탑이나 연금술사 학파에도, 또 포션을 만드는 신전에서도 사용해야 하기에 대륙의 서쪽에서 비싸게 수입해오는 게 바로 달의 풀이다.

가격만 비싼 게 아니라 물량이 적어 경쟁률이 보통이 아닌 그야말로 농업계통의 블루오션!

보통이라면 불가능한 상상이겠지만.......

까짓거 달의 풀이 자라기 좋은 기상환경으로 바꿔버리면 그만인 것을.

물론,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내가 영지의 기상이나 여건들을 멋대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 걱정하는 것일 터다.

"영주님. 외람되오나, 달의 풀은 이런 계절이 뚜렷한 지방에선 자라지 못합니다요."

그렇지. 열대 지방인 대륙의 서쪽에서만 자라는 풀이니까.

"괜찮아. 하늘이 감복해서 당분간 이곳은 열대 기후일 테니까."

내 말에 그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설명을 하진 않았다.

"그럼, 이제 숲의 채식주의자들이 사는 곳만 찾으면 되나?"

-귀쟁이들은 고집이 어마어마하지, 본녀는 딱히 그 깐깐한 종족을 좋아하지 않아.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 하필 궁신 아폴론이 엘프 출신이라는 게 문제였다.

"종족 망신은 혼자서 다 시켰지 그 양반이."

-그대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의 행동거지만 봐도 그리 가까이하고 싶지 않음이야.

부르르 떠는 페르세르크의 표정은 진심이다.

남자는 몰라도 그는 여자가 지독할 정도로 거부감을 나타내게 하는 데엔 도가 텄으니까.

말에 올라탄 나는 곧바로 고블린들이 가득하던 숲을 향해 그대로 말을 내달렸다.

* * *

청명한 느낌을 풍기는 녹음.

다른 숲과 다르게 마치 정령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아름다운 절경인 이곳에 누군가의 발길이 닿았다.

녹빛의 로브를 입은 남성이었다.

"자연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정령의 부름에 당신의 방문을 들었답니다. 메디스."

"자연의 가호가 함께하길, 무례하게 연통조차 넣지 못하고 방문한 점을 용서하세요. 유리아 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금발의 남성을 향해 소녀가 조용히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승의 방문은 언제나 환영한답니다. 들어오세요. 마침 좋은 찻잎이 들어왔으니까요."

유리아의 제안에 메디스라 불린 사내가 조용히 나무 그루터기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으며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하늘빛 머리카락, 그리고 에메랄드빛이 머금어진 반짝거리는 녹안의 소녀는 실로 엄청난 미모를 지닌 소녀였다.

나잇대는 십 대 후반 정도.

하지만 성년이 지나면 죽을 때까지 늙지 않는다는 그들에게 겉 외향은 나이를 판단하는 지표가 되지 못했다.

실제로 눈앞에 있는 느긋한 표정의 소녀는 이 숲에 사는 이들의 수장이었으니까.

숲을 고향으로 두고 정령의 가호를 믿는 이들.

그리고, 인간과 다르게 긴 귀를 가진 이들은 다름 아닌 숲의 종족.

엘프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유리아, 나의 친우. 꿈을 꿨습니다."

찻잔을 바라보던 메디스가 답답하다는 듯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꿈이라, 나의 스승님. 도대체 무슨 꿈이었기에 이리 급히 이 먼 곳까지 오셨나요."

여유로운 유리아의 질문에 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숲에 정령의 저주가 내렸다는 꿈이었어요. 나의 친우 유리아,"

메디스의 말에 유리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래전 스승님이 말씀하셨지요. 정령의 일은 자연의 섭리. 그건 자연현상과도 같다고요."

"유리아...... 그건......"

울적한 얼굴을 한 채 메디스를 바라보는 유리아는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숲이 말라가고 있어요. 이제 이 숲은 틀렸답니다. 모두 신목의 곁으로 돌아가요. 우리들의 고향으로."

"나의 스승 메디스."

메디스의 말에 유리아가 싱긋 웃었다.

"이제 저희들에겐 이곳이 고향이랍니다. 그곳은 더 이상 저를 원치 않아요."

"유리아......."

"다만, 이곳의 다른 분들은 데려가시는 것도 좋을 거예요. 그들은 정령의 저주를 받지 않을 테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최소한의 침착함을 유지하던 그였다.

"여기 있다간 모두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또한 자연의 섭리."

답답할 정도로 느긋한 그 모습에 메디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향해 유리아는 그저 숲의 저편을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모르지요. 누군가가, 이곳을 구해줄지. 바람이 활발하네요. 좋은 만남이 있을 징조군요."

"그건......."

"그나저나, 귀뚜라미의 날개를 우려낸 차는 맛이 있나요? 나름대로 자신작이었는데."

"푸웁!!"

유리아의 말에 메디스가 체통도 잊은 채 입안에 든 것을 뱉어내 버렸다.

그리고는 거멓게 죽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잊고 있었다. 그녀가 왜 엘프들 사이에서 싸이코, 혹은 이단아라 불리는지를 말이다.

환하게 웃는 유리아는 정말 한 치의 악의도 없는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바람이 활발하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귀인이 오시려나 봐요."

19. 돈 덩어리 재배!

사박...... 사박.......

고요한 숲길은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본래는 야생동물이 살던 숲이었지만 최근 들어 고블린들이 터를 잡으면서 야생동물들의 씨가 마른 곳이기도 했다.

물론, 그 고블린 놈들도 자경단원들을 이끌고 한차례 싹 쓸어버린 덕분에 숲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놀랍군, 이 숲이 그저 뒷산 수준으로 작은 숲은 아니라지만 엘프까지 터전을 잡고 있었을 줄이야.

엘프는 대륙에서도 보기 극도로 희귀한 종족이다.

기본적으로 대륙에 남은 엘프가 얼마 없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엘프들은 기록에 남겨져 있는 대로 300여 년 전 대형사건을 기점으로 대부분 대륙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하니 실상 엘프라는 종족을 본 이는 거의 없다 못해 엘프라는 종족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수인족이나, 오크족, 그리고 드워프는 그나마 나은 편일 것이다.

수인족은 그 수가 많지 않지만 태생적인 육체 능력이 뛰어나 여러 왕국에서 암암리에 용병으로 고용하곤 한다.

드워프는 어마어마한 기술력으로 그나마 가장 인간과 교류가 많은 종족이다.

반대로 숲의 요정은 그렇지 않았다.

'뭐든 너무 뛰어나면 안 좋은 거지.'

미의 종족.

숲에 사는 이 요정들은 그 외관이 너무 아름다운 탓에 수많은 노림수가 되기도 했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그런 만큼 어지간해선 찾기 힘든 종족이 바로 숲의 요정들.

하지만 이곳에 오고 나서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그들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으음...... 이쯤 이었던 거 같은데."

고요하기 짝이 없는 숲 속을 바라보던 내가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파악하듯 바라보다 그대로 돌멩이를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던졌다.

가볍게 내던진 돌멩이라 딱히 속도가 빠르거나 힘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주변에 담긴 마나는 지극히 이질적이었다.

츠츳!

동시에 일정 허공까지 날아든 돌멩이가 옅은 스파크를 튀기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마치 경보라도 울린 것처럼 스산한 바람이 돌멩이가 날아간 방향으로 불기 시작했다.

정령의 힘이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정령과 벗 삼아 살아가는 엘프들의 숲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만은.

-가급적 만나지 않았으면 싶지만 달의 풀의 모종을 구하다 보면 엘프들과 마주칠 수 있음이지.

"마주치면 마주치는 대로 가야지."

언제 화살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쫄아서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옅은 파장을 흘리는 장막의 너머로 가볍게 한발을 내디뎠다.

* * *

엘프의 숲은 일반적인 숲과는 그 생태가 다르다.

정령의 힘의 밀도가 다른 곳과는 압도적으로 다르기 때문일까.

"새삼 대단한 숲이네."

보통 인간의 영역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식물과 나무들이 즐비하다.

장막을 넘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숲과 다름없던 이곳은 완전히 별천지가 되어 있었다.

푸른 하늘과 녹음으로 가득하던 숲에는 보랏빛의 은은하면서 신비로운 빛의 가루들이 하늘하늘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들 사이사이로 미약한 무언가가 흐릿하게 시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령계약을 하지 못한 탓에 정령이 완전히 보이진 않는 것이다. 물론, 존재를 느낄 수 있기에 이곳을 찾아낸 것이지만 말이다.

정령은 호기심이 강하고 자유로운 존재.

자경단원을 이끌고 고블린들을 토벌하던 당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구경하러 나온 몇몇 녀석이 내게 딱 걸린 덕분에 이곳에 엘프의 숲이 있다는 것도 알아낸 후였다.

페르세르크의 기억, 그리고 궁신 아폴론에게 들은 엘프 숲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이곳에 내가 원하는 게 있으리라.

-한데, 달의 풀의 씨앗을 머금은 달의 꽃의 생김새를 알아볼 순 있겠는가. 본녀도 그것까진 알지 못해.

"그건 내가 알아, 아폴론 그 양반이 술만 들어가면 별의별 소리를 다 했었거든."

종족 망신은 다 시킨다고 했지만 그를 혐오하는 건 아니었다. 그와 대화하며 생겼던 깊은 빡침도 결국은 추억이리라.

발소리를 죽인 채 조용히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니 인간이라는 존재에 경계심을 품지 않는 동물들이 하나둘 보였다.

일반적인 사슴보다 거대한 뿔을 지닌 엘크디어. 정령과 공생하며 초식 활동을 하는 페어리 드래곤.

"아무리 작은 숲이라 해도 있을 건 다 있다는 소리겠지."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엘크디어에게 손을 뻗자 녀석들이 하나둘 다가와 내 손에 머리를 비비적거리기 시작 했다. 엘프들의 손을 탄 덕분인지 제법 호의적인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인간과 엘프의 차이를 저놈들이 모르진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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