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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5화 (45/1,559)

# 4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20화

"정령 친화도만 따지면 어지간한 엘프보다 내가 더 좋을걸. 엘프 숲의 생명체들은 대개 정령의 친화도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태생적으로 태어나 정령 친화력을 가진 놈들보다야.

불의 친화력을 올리겠다고 화염저항을 끌어올리고 불구덩이 속에서 몇 년을 생활하던 나에 비할까.

이것이 종족을 초월하는 영웅들의 수련 클래스이다.

실제로 모든 정령과 계약한 영웅이자 내 정령술의 스승인 정령 여제, 유리아나는 인간 출신이기도 했다.

하이 엘프, 그중에서도 최고위 계급인 엘프 신관조차 평생에 걸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정령왕을 무려 13명이나 계약했으니, 보통 재능은 아닐 것이다.

"어디, 내 말 알아듣냐?"

등을 쓸어내리면서 가볍게 물어보지만 엘크디어는 그저 고개만 갸웃거리며 나를 볼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을 알아들을 만큼 영리하진 않지.

"너무 많은 걸 바랐나 보다."

그렇게 말하며 느긋하게 녀석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였다.

사박...... 사박사박.......

숲 안쪽에서 엘크디어 여러 마리와 페어리 드래곤들이 하나둘씩 내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령계약도 맺지 않은 주제에 정령수들이 이리 친밀한 감정을 보이다니.

'부러워 보이는데?'

-솔직히.

발그레해진 얼굴을 한 채 저도 쓰다듬어보고 싶어 하는 듯한 눈치였다.

다만, 그녀가 내뿜은 은은한 마기 때문일까.

동물들은 그녀가 조금만 손을 내뻗어도 본능적으로 느끼며 그 자리를 떠버리기 일쑤였다.

-그대도 사령 마나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하는군.

'마기와 사령 마나는 비슷하긴 하지.'

-삐이익!

그때였다.

멀리서 날아든 페어리 드래곤 한 마리가 내게 다가오더니 입에 물고 있던 무언가를 내어준 것이다.

"개이득 인데?"

동시에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내가 눈을 크게 떴다.

-달의 꽃.

"아이고 고맙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삐이익!

내 말에 녀석은 물기 가득한 눈망울로 어서 칭찬해달라는 듯 삑삑거려왔다.

"알았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내가 녀석의 등을 쓸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삑삑 울던 녀석이 곧 내 주변을 빙빙 돌더니 어딘가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 해 줄 모양인데."

-그나마 다행이군, 엘프의 숲은 겉보기보다 그 넓이가 상당한 편인 게야, 당연히 마냥 찾고 있다간 엘프들의 눈에 띄었겠지.

귀쟁이들을 구워삶는다곤 했지만 솔직히 그들과 마주치는 건 그리 반가운 상황이 아니었다.

나를 안내하며 날던 페어리 드래곤은 곧 무리를 만들더니 일제히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곧 나를 거대한 꽃밭으로 안내했다.

-아아.......

페르세르크의 표정에 놀라움이 어렸다.

그리고, 이 장관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삐이익!

-삑삑!

페어리 드래곤들이 춤을 추듯 거니는 꽃밭은 넓은 푸른 빛의 장관이었다.

-모두 달의 꽃.......

달의 여신의 축복을 받아 피어난다는, 엘프들의 숲에서만 볼 수 있는 꽃.

인간의 영역에선 특수한 재배법으로만 자라는 바로 내가 찾던 놈들이었다.

"제법 많은데, 이정도면 영지 전체에 심어도 남을 양이야."

꽃 한 송이가 100여 평에 달하는 땅에 꽃을 심을 수 있을 만큼의 씨앗을 품고 있다.

달의 꽃을 신성시하는 엘프들에게 들키면 조금 곤란하겠지만 조금 정도 퍼가는 정도라면야.

"그 전에."

말을 멈춘 나는 꽃밭의 앞에 천천히 선 뒤 눈을 감고 양손을 펼쳤다.

동시에 좀 전까지만 해도 미약하던 정령의 기운이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했다.

정령력의 근간은 마나, 혹은 신성력, 혹은 사령 마나.

그 때문에 사실상 정령이라는 건 부르고자 한다면 다른 힘을 얻은 이들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편리한 힘이기도 했다.

결국 그 수준의 차이라는 건 친화력의 높고 낮음이라는 건데.

친화력은 이미 수치상으로 따져도 맥스를 찍어버린 나였기에 사실상 정령을 소환하지 못해서 빌빌댈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도 아직 정령왕은 힘들겠지.'

정령술을 수련할 때 나는 유리아나의 정령을 빌려 수련을 하곤 했다.

실제로 회랑에선 이미 계약이 된 정령 이외의 존재는 존재하지 않기에 내가 계약을 새로이 할 순 없었다.

-정령 마나? 그대는 정령과 계약을 하려는 겐가?

"다들 착각하는 게 있는데, 달의 여신이라는 건 말 그대로 정령의 일부야. 그러니까 정령의 힘을 머금은 꽃을 따는데 그냥 허락 없이 따면 당연히 탈이 날 수밖에 없지."

그리 말하며 정령 마나를 끌어올린 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지금껏 내가 말해온 언어와는 다르면서도 신비로운 목소리를 천천히 냈다.

[내 말이 들리나?]

[응? 인간?]

[인간이야!]

[인간이다!]

내가 달의 꽃밭 위로 거니는 정령들을 부르자 허공에서 옅은 빛으로 이뤄진 정령들이 하나둘씩 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생김새는 다양했다.

어떤 녀석은 돌덩이, 어떤 녀석은 물방울. 어떤 녀석은 얼음 결정의 형태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정령의 생김새는 계약자의 바람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연 정령은 정확히 말하자면 원소형태에 가깝다.

그러니 이곳의 자연 정령들도 그러하리라.

[우와! 우리가 보여?]

[우리 말도 들리나 봐!]

쉴 새 없이 재잘대며 내 곁으로 날아온 정령들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녀석들은 천성적으로 선하고 순수한 존재.

그 때문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 잘 들리고 잘 보여.]

페르세르크는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겠는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지만 정령들은 내 말뜻을 정확히 알아듣고 있었다.

[우와 우와!]

[인간이 어떻게 정령의 말을 하는 거야?]

[신기해! 나도 말 걸어볼래!]

귀가 아플 정도로 수다를 떨어대는 녀석들의 말을 하나하나 받아주다간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런 녀석들의 흐름을 적당히 끊은 내가 부탁하듯 물었다.

[이곳의 꽃이 필요해. 조금 나눠줄 수 있어?]

[꽃?]

[그래그래! 가져가도 좋아! 우리가 보이는 인간은 믿을 수 있어!]

[몸에 기분 좋은 기운이 가득해! 꽃들도 얼마든지 피워줄 거야!]

[얼마든지 나눠 줄게!]

신나게 떠드는 녀석들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이제 거리낄 것은 없다.

남은 것은 적당히 수급한 뒤 엘프들에게 들키기 전에 이곳을 뜨는 것.

들키면 조금 피곤해질 테니 가급적 안 보이는 게 최상책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마 신경을 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는 걸 말이다.

* * *

'놀라워.'

나긋나긋하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그는 누구일까.

달의 여신의 정원.

고위 엘프들 사이에서 달의 꽃이 자라는 정원을 가리킬 때 그리 말하곤 한다.

고도로 응축된 정령력에 이끌린 정령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자라기 시작하는 달의 꽃들이 거대한 꽃밭을 이루는 장소.

그건 어디까지나 엘프들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신성시되는 장소인 만큼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엘프의 성역.

그곳에서 자라는 달의 꽃을 따기 위해 인간이 정령과 소통하고 있다.

아마 이걸 엘프들의 마지막 도시라 불리는 엘븐하임에 가서 전한다면 비웃음만 살 것이다.

확실히 자신들의 문을 닫아버린 현재의 엘프들은 이제 하이 엘프, 그중에서도 가장 귀하다는 신관들조차 쉽게 자연의 정령과 소통하지 못하니 말이다.

친화력?

뛰어나다. 정령과 계약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실제로 헬리샤나라는 성을 이어받은 고귀한 혈통인 그녀는 최상위급 정령과도 계약을 맺을 만큼의 친화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저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연의 정령을 보고, 자연의 정령과 소통하며,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에게 호의를 얻어내는 건 그녀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마당에 인간이, 그것도 아직 20세도 넘지 못한 듯 보이는 소년이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일었다.

숲을 지키는 엘프 가드들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속이고, 정령수들의 호의를 받아 숨겨진 달의 여신의 정원까지 들어간 소년이다.

자신도 우연히 놀러 가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정도로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 숲은 다른 존재가 들어온다면 스스로 헤매다 밖으로 나가게끔 결계가 펼쳐져 있으니 호기심이 많은 그녀로선 궁금증이 강하게 일었다.

"알아보고 싶어."

"유리아, 나의 친우여, 무엇을 말입니까?"

곰곰이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엘프 사내의 목소리 때문에 그녀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하늘빛 머리카락을 곱게 쓸어내린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눈앞의 사내는 정확히 이 마을의 엘프가 아니었다.

그녀와 같은 엘프들의 마지막 도시, 엘븐하임의 최고위 신관 중 하나이며 엘프의 마법인 정령마법에 대해선 따라올 자가 없다고 알려진 그녀의 스승이다.

그에게 자신이 본 것을 전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놀라는 티도 내지 않는 그도 이 일엔 깜짝 놀라지 않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물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메디스, 나의 스승님."

"무엇이 마음에 걸리십니까?"

부드러운 사내의 질문에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미의식이 뛰어난 엘프들조차 얼굴을 붉힐 만큼 아름답고 청초한 미소였다.

"왜 차를 드시지 않으시나요?"

"......."

다만 그녀에게 가장 고민이 되는 건 그에게 인간 소년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정성 들여 우려낸 차를 자신의 스승님이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귀뚜라미의 사체를 찾아 날개를 분리해낸 뒤 일주일 이상을 바싹 말려 우려냈다.

그런데 제 스승님이 그 성의를 무시한다!

"끄응...... 유리아. 실은 제가 속이 그리 좋지 않아서......."

앓는 소리를 낸 메디스의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 과장된 행동거지였지만 귀엽고 청초하게 느껴졌다.

"어머, 그러면 큰일이군요. 마침 제가 얼마 전에 숲을 돌아다니면서 새로 개발한 메뉴가 있답니다. 소화에 도움이 되는......."

"아...... 아닙니다!"

"흐응...... 효과는 좋은데 말이죠."

기겁하며 물러나는 메디스였다.

제자의 버릇을 잊는 바람에 한 번 당하긴 했지만 그녀의 미식과 건강에 대한 욕구는 조화를 추구하는 엘프와 다르게 많이 이질적이었다.

건강에 좋고 맛만 좋아진다면 뭐든 먹을 괴짜 엘프. 그게 그의 제자이자 눈앞에 있는 이 하늘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아니던가.

"나의 스승님."

곤란해 하고 있던 찰나, 메디스는 자신을 부르는 유리아 헬리샤나의 어조가 살짝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군요."

"만약에 말이에요. 달의 여신님의 정원에 엘프들의 눈을 속이고 들어간 인간이 자연 정령들과 소통하는 게 확률이 높을까요."

"유리아. 그건 무슨......."

"아니면 위대한 존재가 오랜 시간 만에 잠에서 깨어났을 확률이 높을까요."

미소 띤 얼굴이지만 장난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에 침묵한 메디스는 곧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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