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21화
"후자에 가깝겠지요. 드래곤이 사라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선 그저 과거의 전설로 치부되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존재합니다."
담담하게 말한 메디스는 반사적으로 찻잔에 손을 뻗었다가 움찔하며 손을 물렸다.
"하지만 인간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자연 친화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에요. 비록 괴짜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자연 정령을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성향이 혼돈에 가까운 그들은 우리 엘프보다 배는 더 자연 친화력을 쌓기 힘들지요."
그의 말에 유리아 헬리샤나는 미련 없이 미소 지어 보였다.
"조만간 마을을 잠시 떠나려고 해요."
"유리아, 나의 친우여. 그건 무슨......."
"마을을 살릴 방법을 찾은 것 같네요. 물론, 걱정 마세요. 마을을 안정시킨 뒤 떠날 테니."
그녀의 말에 메디스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영지민들은 상상 이상으로 선방했다.
열정을 가진 사원이 많아질수록 회사가 발전한다고 했던가.
그건 지구나 이곳 티오니스 대륙이나 별반 차이는 없는 듯했다.
"설명해봐. 사흘 걸릴 작업량이 왜 반나절 안에 거의 끝맺어지고 있는지."
내 말에 몬미더가 조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것이...... 이들이 영주님께 받은 은혜를 갚겠다고......."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가 과한 힘을 얻었을 때 보이는 패턴 양상은 알고 있지만 조금 내 예상을 웃도는 속도로 작업을 해버린 탓에 시간이 단축되어버린 꼴이다.
당장 눈앞의 이득을 챙기기엔 나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솔직히 손해지.'
품 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그에게 내밀자 그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일주일 후부터 이걸 심어. 소금 뿌리듯이 팍팍 뿌리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둬서 심어두면 될 거야."
내가 건넨 것은 작은 주머니였다.
몬미더는 고작 이거? 라는 표정으로 주머니를 확인하더니 곧 그 안에 걸린 공간확장마법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여...... 영주님 이건......."
"달의 풀, 아니 정확히는 꽃의 모종이야. 그것도 원산지에서 구해온 거니까 질은 더 좋은 거다."
"모...... 모종이라고요?!"
당연히 잎사귀보다 구하기 힘든 게 모종이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구해온 내 모습에 그는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하...... 하지만 저희는 달의 풀을 재배하는 방법을......."
"그건 여기."
근 일주일간 내가 마정석이나 보면서 놀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정말...... 이걸로 되겠습니까? 이건 인간의 영역으론......."
내가 건네준 서류뭉치를 읽어 본 몬미더가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류뭉치 속에는 달의 풀을 관리하는 법이 상세하게 적혀있었으니 말이다.
이걸 만든다고 머리 좀 굴렸지.
"죄송합니다. 영주님의 말씀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나라도 쉽게 못 믿지, 어차피 다 죽어가는 영지인데, 한번 믿고 판돈 걸어봐. 하늘이 감복하면 뭐든 못 도와줄까."
내 미소에 그는 이해할 수 없어 하면서도 굳이 나를 불신하진 않았다.
일단 경계심이 많은 자는 신중한 편이다.
그런 성격이 한번 믿기 시작한다면 제법 큰 신뢰를 준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 * *
자경단원을 동원해 달의 풀, 아니 정확히는 달의 꽃의 모종을 심기 시작하자 영지 곳곳에서 의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심었는가, 혹은 정말 저것이 자랄까.
그렇게 여긴 듯 보였다.
달의 꽃은 다른 여타 꽃과 다르게 완전히 자라는데 4개월에서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솔직히 시도해보긴 나로서도 처음이지만 그렇기에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경향이 없잖아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제는 내가 하는 일에 거의 맹신을 보여주는 영지민들이었기에 영주의 이런 정체 모를 사업추진에도 큰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 나는 그들의 삶에 무언가를 받아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세금도 영지민이 먹고 살만큼의 여유가 생겨야 거두는 법이렷다.
기억에 존재하는 달의 꽃이 자라는 데 필요한 요소.
기상변화와 기온, 그리고 지기의 상태를 달의 풀이 자라기 가장 최적의 상태로 만든다.
본래는 정령의 힘을 가해 꽃이 피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팔리는 건 꽃봉오리가 아닌 잎인 만큼 실상 정령의 힘까진 필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외적인 요소가 함부로 들면 곤란하니 커다란 목책으로 전체를 둘러싸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저하."
"무슨 일이야?"
"정말 이대로 괜찮습니까? 제게 달의 풀을 재배하는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뭐가 궁금한데?"
"그것이...... 잎들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어서......."
"하늘이 감복해서 조만간 비가 내릴 거야."
내 말에 벙찐 표정을 짓는 몬미더.
다만 그의 표정은 곧 다음날이 되기가 무섭게 쏟아지는 보슬비에 싹 변해서는 기겁한 듯 입을 쩍 벌렸다.
"저하. 기온이 생각 이상으로 더워져서......."
다음날엔 새벽부터 달의 꽃을 심어둔 꽃밭 전체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
이제는 할 말을 잃어버린 듯 몬미더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을 보고해왔다.
그렇게.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유지되며 어느덧 4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 * *
근 4개월간 나는 영지를 재차 침공할 가능성이 큰 고블린들을 토벌하거나 영지민들의 새로운 농지 개간 쪽에 대부분의 신경을 쏟아부었다.
고블린들은 워낙에 머리가 나쁜 놈들이라 그렇게 당해놓고도 다시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덤벼들 것이다.
-흔히 빡대가리 라는 게지.
"너,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운 거야."
-그대에게 배웠네만.
"그래......."
샐쭉하니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모습에 묘한 죄악감이 든다.
실체는 나보다 수배는 오래 산 존재지만 외향은 내 손만큼 작은 소녀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거대한 텃밭이 되고 거대한 목책을 둘러 동대륙에서 귀하기 짝이 없다는 달의 꽃의 꽃밭이 되는 것도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비록 모종을 챙길 만큼 건강하게 자란 달의 꽃은 거의 없어서 겨우 본전치기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 외에 멀쩡히 시장에 올려 팔 수 있는 잎의 수는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저 꽃 하나에 100 금화."
희귀하기 짝이 없는 꽃이다.
이만큼 자라게 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그 희소성 때문에 실상 원산지인 서대륙에 비해 동대륙의 달의 풀은 어마어마하게 비싸기 짝이 없었다.
'아마 동대륙의 시장판도는 바뀔 거다.'
희소성과 그 가치 때문에 원가의 10배 이상을 받아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달의 풀이 수십 수레에 담을 만큼 많이 자란 모습은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게 만들었다.
-모두 팔면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게야.
"그렇지."
하지만 이번엔 마정석 마냥 내기 껄끄럽다고 숨길 생각이 없었다.
괜히 달의 꽃을 재배한 게 아니니까. 그 과정에서 달의 꽃의 성장 과정에 대한 정보유출을 강하게 차단한 것도 없잖아 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달의 꽃을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코웃음을 쳤다.
계절이 뚜렷한 동대륙에서는 절대로 자랄 수 없는 꽃이라고.
황무지에 좌천된 1 왕자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다고 모두가 비웃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지에 깔린 거대한 저주가 아니었다면 나도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택하지 못했을 테니까.
내 의도대로 퍼졌던 소문은 곧 1 왕자인 내가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객기부리는 애송이라는 소문이 나돌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럼 이제, 한번 뒤집어 줄 때가 됐지."
차라리 소문이 나돌지 않게 조용히 이 사업을 추진했다면 방해하려는 작자들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방비도, 대책도 없이 마냥 달의 풀을 재배한다고 소문이 난 순간부터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신경 쓸 가치도 없는 희대의 멍청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방식은 두 번 이상은 먹히지 않아.
"그러니까 한 번에 뽕을 뽑아야지."
그리 말하며 내 앞에 놓인 서류 더미를 바라보았다.
달의 풀의 재배는 성공적으로 끝이 나 영주성의 창고에 깔끔하게 보관, 포장되었다.
"자, 그럼 대륙 한 번 뒤집어보자고."
돈 냄새가 난다.
내 말이 마치 스위치가 된 것처럼.
고작 며칠이 채 되지 않아 동대륙 전체에 놀라운 소식이 나돌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황무지, 하인스 영지에서.
이제야 비가 조금씩 내리곤 있지만 제대로 다시 일어서기까진 10년에서 20년은 더 걸릴 거라던 그곳에서.
물건이 없어서 구하기 힘들다는 그 귀한 달의 풀잎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당연하게 실패할 거라 여겼던 이들이 놀라는 표정을 보지 못한 게 새삼 아쉬울 뿐이다.
20. 출하! 뒤집히다!
이놈의 달의 풀은 욕심이 강해서 정령의 힘이 강하지 않으면 함부로 밀집 재배하는 게 위험하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내게 남는 것이 땅이거늘.
"창고에 적재한 달의 풀 잎사귀는 총 20,000장 정도예요."
최근 배울 것들이 많아진 탓에 두통이 오는지 에이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보고해왔다.
이런 오지에 나를 따라 아무런 불만 없이 왔는데 이정도 보장은 해줘야지.
달의 꽃 한 송이에서 나는 잎사귀는 총 4장.
달의 꽃의 씨앗은 한 개의 씨앗이 5~6갈래로 자라 여러 개의 꽃으로 피곤 한다.
덕분에 처음 피워진 꽃의 수는 약 1만 송이 정도였지만 역시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었다.
정확히는 기술의 부재였다.
회랑의 유일한 엘프, 궁신 아폴론에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다 들어봤다곤 해도 내가 꽃이나 재배하고 살았던 건 아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건 그 반 정도인 5천 송이가량.
그 정도만 해도 사실상 굉장한 양인 것은 변함없다.
현 시세의 기준, 4장의 잎사귀 모두 합쳐서 100 금화.
20000여 장 중 멀쩡히 상품가치를 나타내는 것들을 추려내면 대략 반 정도이니 결국 만장 정도를 내다 팔 수 있을 것이다.
1장에 25골드. 1만 장을 모두 제값에 판다고 쳤을 때 25만 골드.
백금화 5천 개에 달하는 수확이었다.
어느 정도냐고?
1골드면 평민가정이 보름간 빠듯하게 먹고살 돈이 나온다.
비교적 부유한 평민의 경우. 여유 부린다면 한 달에 4골드에서 5골드 정도.
'어마어마하구만.'
새삼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 아닌가.
대륙에 달의 풀 잎사귀 매물이 흘러나오는 기간은 대강 1년에 두 번 정도.
그 양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동대륙과 서대륙이 골고루 사용하기엔 상당히 부족한 양임이 틀림없다.
-마법, 혹은 연금술 촉매제의 주요 재료. 신전에선 포션의 재료로도 사용함이지. 돈 보따리 싸 들고 멍때리던 작자들이 침을 질질 흘리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