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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47화 (47/1,559)

# 4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2권 22화

'하이에나 떼도 덤벼들겠지.'

-그런다고 그대가 눈 하나 깜짝할 위인인가.

'설마.'

"아마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으니 당장에라도 물건을 사겠다고 바빠질 거다."

"예?"

소문을 내가 퍼뜨렸으니 그 정도도 예상 못 할까.

"다만, 그냥 맞이할 수야 있나. 내가 과로로 앓아누웠다고 해."

-음냐, 그대는...... 돈 귀신이 들러붙은 게야.

내 말뜻을 이해 못 한 듯 에이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집무실의 낡은 책상 위에서 고롱고롱 졸고 있던 페르세르크는 잠결에라도 그 말뜻을 이해한 듯 배시시 웃어 보였다.

* * *

공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많은 물건이 형성하고 있는 가격 밸런스가 공급이 늘어나면서 뒤집히는 경우는 많이 본 적이 있었다.

당연히 이것을 아무런 제약 없이 유통해버린다면 가격은 퍽퍽 내려갈 게 틀림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적어도 나는 이 세계에 내 한 몸 불살라 공헌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다.

가장 우선순위는 나의 편안함. 나의 미래.

나머지는 그다음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소식이 전해진 지 며칠 만에 모든 것이 변했다.

한적하던 영지가 어느덧 장사꾼과 달의 풀 잎사귀를 어떻게든 확인해 보려 찾아온 이들로 붐비는 사태가 생겨버린 것이다.

하인스 영지는 고작 200여 명이 생활할 공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린 곳이다.

그런 장소에 수백의 인간이 들이닥쳤으니 영지는 그야말로 미어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저...... 저하! 밖에서 저하를 뵙겠다고!......."

허겁지겁 달려와 내게 보고하는 에이미의 외침에도 나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발 빠른 인간들 같으니라고."

"어......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난 앓아누운 거야. 아직 쾌차하지 못해서 행차할 순 없으니 못 만난다고 해."

"그...... 그것이, 이미 전했는데도 어떻게든 물건을 확인할 순 없냐고......."

달의 풀의 수요량이 생각 이상으로 높다.

아주 그냥 소식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주변 국가의 상단이나 마탑 지부, 연금술사 지부의 사람들까지 대거 몰려온 꼴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량 신전의 사람들까지 보이니 이놈의 달의 풀이 얼마나 인기 품목인지 대략 알 만했다.

'계속 애태우라고.'

서대륙에서 소량 수입해오던 달의 풀이 동대륙에서 재배되었다는 사실만 확실하게 입증되어도 신나게 난리가 날 것이다.

안 그래도 비싼 물건인데 물량만 있다면 그 배를 주고도 살 수 있다고 외치는 작자들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물론, 정말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칫 거짓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세워선 내게 좋을 것도 없었다.

"에이미, 몬미더와 베르닐 시종장을 불러와."

그녀는 내 명령을 재빠르게 수행했다.

갑작스레 사람이 많아진 탓에 정신이 없어져 버린 자경단장, 아니 이제는 근위조장이 된 몬미더의 얼굴은 꽤 초췌해 보였고 베르닐 시종장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다들 고생이 많아. 조금만 더 참자고."

"아닙니다. 응당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그렇습니다요. 저는 이 영지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몰려온 게 얼마 만인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절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선 하나씩 처리하자고. 자경단원...... 아니지 이제 위병들이라고 해야지. 위병들의 치안 상태는?"

"일단 바쁘게 굴리고는 있습니다만, 솔직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몰려온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서 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서류상의 문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명확한 매뉴얼도 없어서 우왕좌왕하는 일도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다 쫓아내."

"괜찮겠습니까?"

"괜한 놈들 몰려서 큰 사고 터지는 것보단 안전할 거다."

달의 풀이라는 게 마냥 기호 물품이 아닌 이상 갑의 위치는 언제까지고 내게 있다.

지금 그들의 사정을 하나하나 봐줄 이유는 사실상 없었다.

물론, 그들의 호의를 사고자 알량하게 구는 것보단 적당히 호의와 갑질을 섞어야 저들의 반감을 사지 않을 것이다.

"숙소문제는?"

"이전에 영지민들이 버려두고 간 건물을 개조하고 청소해 사용하곤 있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내가 전에 돈 주면서 사오라고 했던 천막은? 대충 그걸로 치고 일단 간이 숙소라도 만들어서 팔아. 가격을 후려쳐도 좋다."

"아......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곧장 나가는 베르닐을 두고 내가 몬미더를 불렀다.

"몬미더."

"예, 영주님."

"아마 그대에게 접촉해오려는 이들이 많을 거다."

"예?"

"뇌물, 까짓거 다 받아. 딴에는 마탑이나 연금학파라 돈도 많을 거다. 다 챙겨놓으면 돈 좀 되겠지."

"예?"

큰돈을 만질 기회를 두고도 멈추지 않는다!

"대신 못 이기는 척하면서 이걸 보여줘. 잘할 수 있지?"

내가 내민 것은 고급스럽게 보관된 유리 케이스였다.

그 내부엔 내가 고르고 골라 챙겨둔 달의 풀 잎사귀가 들어있었다.

모두 자란 달의 풀 잎사귀는 스스로 옅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아주 미약한 빛이지만 어두운 곳에 홀로 두면 혼자 존재감을 드러낼 법한 그런 빛이었다.

"오오......."

완성된 것들의 포장은 나름대로 비밀리에 한 탓에 곱게 포장된 잎사귀를 보는 건 그들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마법 처리가 된 거야. 한 케이스에 4장."

내 말에 몬미더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한 개당 100골드."

그 돈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아는 그로선 절로 욕심이 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눈동자에서 탐욕을 지웠다.

그는 경계심이 많다.

그런 만큼 똑똑한 사내였다.

"팔라고 주는 건 아니야. 보여주기만 해. 소문이 알아서 퍼지게. 우리 목표는 물건의 가치를 최대한 올리면서 저들이 최장기간 이곳에 체류하게 만드는 거다."

영지민도 늘리고 돈도 생기고.

꿩 먹고 알 먹고.

어쩌면 이곳에 지부가 생겨날지도 모르지.

신전, 마탑. 연금학파.

그 외에 여러 상단까지.

뭐가 되었건 좋은 반응이다.

"흐흐."

절로 헤실헤실 미소가 피어나오자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는 소리만 들려왔다.

* * *

자신들의 새로운 영주 데이비의 말에 사실 정말 그리될까 의문을 품었던 몬미더는 일이 급증하면서 생긴 편두통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동안 조용한 영지였다.

사람이 많아 봐야 200여 명이다 보니 다 아는 이들을 아는 정도에 그쳤고 그만큼 사고도 없는 편이었다.

물론, 고블린들이 쳐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자경단원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막아내곤 했다.

그런데.

바빠도 너무 바쁘다!

자경단원, 아니 이제는 근위병이 된 이들의 수는 고작 40여 명.

그 숫자로는 영지에 찾아온 수많은 이들 사이에서 치안을 관리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뿐일까.

왕년에 근위조장으로 위병들을 훈련했다는 베르만 경의 혹독한 가르침은 이 와중에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있었으면 별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주님인 데이비 왕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의 전속 시녀였다는 에이미라는 소녀와 함께 자신을 베르닐 시종장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전문적인 행정 업무에 대한 수업까지 병행시켰다.

그렇다.

이번에 새로 오신 영주님은 굉장한 능력자임과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겠다. 스스로 파악하고 깨닫도록, 조언 정도는 해주지.'

모든 것을 혼자 꽁꽁 싸매는 이들보다야 훨씬 나은 처사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엔 그냥 다 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부른 투정이다.

"단장님, 아차 이제 조장님이쥬?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유?"

"손님?"

"예, 녹마탑에서 오셨다는데......."

"후우...... 만나보자고."

평민 출신의 그였지만 데이비의 권한 덕분에 기사의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평기사는 준 남작부터 높게는 자작위까지 수여가 된다.

몬미더의 경우는 준 남작이라는 최하위 계급의 귀족이지만 평민이었던 그의 삶을 생각하면 굉장한 출세나 다름없었다.

'열심히 하라고, 건수만 잡히면 곧바로 승진시켜줄 테니까.'

제 영주님의 말이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평기사 급의 실력엔 조금 못 미치는 실력이지만 이미 경험과 기지는 평기사 그 이상의 수준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긴장감으로 굳은 몸을 풀며 그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낡고 헤진 건물이지만 오랫동안 이 영지를 지켜준 자경단원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뻣뻣하게 굳은 발걸음으로 응접실로 향하자 고풍스러운 로브를 입은 사내 하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이는 40대 중후반.

꽤 중후한 나이의 사내였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평기사가 된 근위조장 몬미더라 합니다."

"반갑소. 녹마탑의 4급 익스퍼트. 할라스라 하오."

4급 익스퍼트

4 서클 익스퍼트 마법사를 칭하는 말로 마탑에서는 그 계급을 1급부터 9급으로 나누고 있다.

물론, 표면적일 뿐 급수에도 비기너, 익스퍼트, 마스터 3단계로 나뉘지만 말이다.

4급의 익스퍼트면 마탑에선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계급인 건 분명했다.

물론, 냉정하게 평가해서 깡촌이라고밖에 부를 길이 없는 이 영지까지 몸소 찾아오기엔 상당히 높은 직위의 마법사이기도 하다.

대륙에서 마법사는 상당히 귀한 인재일 테니까.

"혹, 이렇게 연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이가 많아서 불편할까 저어되오만......."

"아닙니다. 할라스 4급 이외에 손님은 없었습니다만......."

"그렇군!"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은 영지에 갑자기 사람이 들이닥쳐서 혼란스러우실 텐데 치안관리가 완벽하더이다. 듣자 하니 영주님이 부임하기 전부터 영지를 홀로 지켜오셨다고 하던데."

사실상 저들끼리 눈치를 보느라 단속을 잘하고 있는 꼴이지만 그걸 끄집어낼 이유는 없었다.

"영주님의 은덕이죠."

몬미더는 꽤 머리가 좋은 사내였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금방 깨달은 그가 어렵사리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이렇게 용맹한 사람이 근위조장을 맡고 있으니, 영주님이신 데이비 왕자님도 든든하시겠소."

"하하, 그저 평기사 나부랭이일 뿐이죠. 과한 칭찬이십니다."

평기사 정도면 어디서든 대접을 받을 수야 있다지만 4급 익스퍼트라는 계급에 있는 그의 눈에 차기나 할까.

마탑은 국가와는 독립적인 집단인데 말이다.

실제로 기사와 마법사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기도 했다.

"혹, 바쁜 일 와중에 대접을 하느라 곤란한 게 아닌가 걱정이오만."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대부분의 일을 인계한 상태라지만 영주님의 명에 따라 영지의 내정관리도 하고 있으니까요. 관련된 일이라 하시면 제가 나서야지요."

"하하. 영지의 치안을 관리하는데 내정까지 관리하고 계시다니 정말 대단하시오!"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아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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