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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5화 (55/1,559)

# 5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4화

"그나저나 왕궁 분위기가 말이 아니네......."

일은 내가 저지르고 튀긴 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예, 비밀장부가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해서 관련된 귀족들이나 사용인들이 대거 작위를 몰수당하고 참형을 선고받았지요."

"폐하께서는?"

"과중한 업무를 마치시고 이제 침소에 드셨습니다."

마치 지금껏 참아온 모든 것을 터뜨리듯, 거침없다.

제아무리 페일트리스 후작을 기준으로 왕당파의 소수 귀족들이 큰 정보를 입수했다 해도 국왕 크리아네스의 협조가 없다면 이런 속도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지.'

-데이비.......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부른 그녀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도 고집불통이군.

게다가 귀족파는 서로 핑계를 미루다 보니 서로 분열하고 있다.

"1 왕자 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본래라면 곧바로 국왕 크리아네스에를 알현하는 게 맞겠지만 이미 침소에 들었다면 후일을 기약하는 게 맞으리라.

말없이 그를 따라 걷던 중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잔뜩 건들건들한 목소리였다.

"칼루스."

이에 어두운 복도를 넘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하면서도 평범한 인상의 소년이 거만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데이비 형님 아니십니까."

피식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나는 베스퍼스 시종장에게 고갯짓을 했다.

"하면, 신은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수고해."

그를 보내고 난 후 내가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느냐."

"뭐, 잘 지내고 있었지요."

능글거리며 씨익 웃어 보인 녀석이 건들건들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주변을 스윽 훑더니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꼴에 천것이 사업 한 번 성공했다고 여유가 넘치는구나."

"그래, 서로 보기 싫은 면상 보려고 이곳까지 찾아올 만큼 부러웠더냐?"

빙그레 웃자 녀석 또한 씨익 웃어 보였다.

"네놈 같은 천출이 성공할 사업이었다면 누구나 성공할 사업이었겠지, 운이 좋았던 거로 우쭐대지 마라. 더러운 천출의 피는 어디 가지 않는 게지."

"이 새끼가 형에게 못하는 말이 없네."

"하! 누가 형이란 말이지?"

아직 녀석은 내가 벌인 일이 얼마나 큰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쯧, 그러니 모지리 소리나 듣고 평생 리네스 왕비의 치마폭에서 못 벗어나지."

"뭐라?"

내 말에 녀석이 단숨에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틀리면 당장 주먹을 날릴 것 같은 흉악스런 표정이었다.

"네가 간이 부었......."

"간이 부은 건 너고."

내 멱살을 틀어잡은 녀석의 손을 가볍게 쳐내자 녀석의 인상이 더욱 찡그려졌다.

"뭐...... 뭣?!"

"주변에서 떠받들어주니 뭐라도 된 양 착각하는 모양인데, 빡대가리도 이정도면 따라올 놈이 없겠네."

"빠...... 빡대......."

"가진 건 수저밖에 없는 놈이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좋아야지."

"감히 날 모욕해?!"

이미 제 형이라는 위치는 상관도 없다는 듯 녀석이 길길이 날뛰며 내게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래, 저 정도로 정신 나간 돌대가리가 아니고서야 거슬린다고 사냥대회에서 내게 화살을 쏘진 않았을 거다.

아. 생각하니 열 받네.

파악!

"어엇?!"

콰앙!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녀석의 주먹을 그대로 낚아채 엎어치기를 꽂아버리자 녀석의 얼굴에 의아함과 고통이 동시에 드러났다.

"네가 입버릇마냥 생각 없이 뱉어대는 발언이 폐하를 모독하는 말인 건 알고 있나?"

어머니가 변방 남작가의 출신이었다 해도 아버지는 이 나라의 국왕이다.

그런 혈육인 내가 천출이라면 결국 국왕 크리아네스도 동시에 싸잡아서 까내리는 것과 다를 게 없으리라.

"아프냐?"

가벼운 내 질문에 녀석이 악을 쓰려다 꺽꺽거리며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통혈을 조금 자극해주니 녀석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내가 장난스레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뭔가, 그 신박한 개소리는. 아프면 의원이나 신관에게 가야 하는 게지.

'전생에 그런 말이 있었지.'

-놀라운 사상이로고.

혀를 쯧쯔 차는 페르세르크의 표정에는 한심함이 가득했다.

페르세르크와 같이 이건 무슨 신박한 개소리냐는 듯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눈은 적의와 굴욕, 그리고 이해 못 할 고통으로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으윽!"

고통스레 신음을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을 보던 나는 문득 이놈을 어떻게 해야 깔끔하고 신박하게 엿먹일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잠시의 고민 끝에 나는 미련 없이 놈을 놓아주었다.

"크흑...... 도대체 무슨 짓을......."

당장에라도 다시 달려들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지만 좀 전에 당한 게 있었던 탓일까. 놈은 곧 내게서 뒷걸음질 치더니 악악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두고 봐라! 네놈이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일들이 네 것이 아니게 될 거다!"

그리 소리치며 도망치듯 벗어나는 모습에 페르세르크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대, 저 인간에 대한 분노가 상당한데 어찌 놔주었는가?

"그냥 놔준 건 아니야."

글러 먹은 놈을 가족의 정이랍시고 끝까지 믿어주던 건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의 삶으로 충분하다.

피식 웃는 내 질문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재미 좀 봤지."

빙그레 웃는 내 미소에 그녀가 눈을 찌푸렸다.

-그대...... 정말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그 미소는 가급적 짓지 않는 게 좋은 게야.

"왜?"

-솔직히 무서우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았던가? 이것도 어찌 보면 안 좋은 버릇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스윽 허공에 훑어버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마법으로도 못 고치는 탈모는 만국 공통의 죄악이지. 그중에서 최고봉은?"

-워, 원형 탈모! 그대 설마.......

"그리고 하나 더 선물해놨다. 내일 회의장에서 볼 수 있을 거야."

-히끅!

내가 도망치는 칼루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은 듯 핼쑥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딸꾹질을 했다.

그래, 쉽게 죽일 순 없는 노릇이지.

어리니까 죄가 안 된다는 소리를 나는 가장 싫어한다.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특히 정말 순수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닌 어느 정도 알 만한 나이에 든 놈은 더욱.

* * *

내 것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칼루스 놈이 도망치면서 했던 말이다.

좋은 말로 포장해 주려 해도 돌대가리 그 이상이 안 되는 놈이라 대부분의 말은 걸러 들어도 되겠다만.......

"제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땡깡 부리면 다 되는 줄 알진 않을 텐데."

-혹시 모를 일이지. 그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 칼루스라는 소년의 상태가 안 좋았을지.

"설마......."

그 설마가 사람 잡더라.

"대단하지요. 암요! 이건 라운 왕국에 있어서 경사입니다!"

"그러니까요. 달의 풀이 재배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4개월 정도입니다. 한데 분기 수익이 무려 왕국 연 지출량의 배를 넘어요."

"이 금액이면 왕국이 더욱 번성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당장 국방비를 늘릴 수도 있지요. 각 영지에 자금을 보태어 사업을 더욱 번창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침을 튀겨가며 소리치는 귀족들.

왜 정작 사업주인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지들끼리 김칫국을 마셔대는 건지.

'아...... 영지의 시설 정비만 끝이 나면 요식업에 손을 대볼까.'

-요식업?

'원래 가장 돈이 잘되는 사업이 물장사, 음식 장사라잖아.'

-생각해둔 게 있는가.

'음...... 나는 한식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쪽 분야는 초보라.'

영웅들 중에 요리사가 없었다는 건 참 안타까운 사실이다.

국정 회의실.

수많은 귀족들이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이 회의장에서 유일하게 홀로 나만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쾅!

"그러니까!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달의 풀 재배 사업을 지원하고!"

"허허, 참 답답하십니다. 벨리스 백작! 달의 풀 사업이 어디 돈만 들인다고 다 되는 일입니까! 듣자 하니 하인스 영지에서 달의 풀이 자랄 여건이 되는 땅은 현재 일정 부분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사업을 국유화해서 좀 더 연구하고 규모를 늘린 다음에 야심 차게 내놓으면......."

머리가 아파온다!

옥좌에 앉아 있는 크리아네스 국왕 또한 머리가 아픈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게 무슨 개판인지.

귀족파와 왕당파의 개 논리 싸움에 머리가 지끈지끈 울려왔다.

귀족파의 머리통을 쉬지 않고 날려버리고 있는 페일트리스 후작이 부재중이라더니 그 기회를 못 참고 욕심을 드러내는 꼴이었다.

결국 왕당파나 귀족파나 권력을 향한 욕심을 보이는 건 양측 모두 똑같았다.

그저 그 방향의 차이가 극소하게 존재할 뿐.

"다들 그만."

결국, 듣다 못한 크리아네스 국왕이 나섰다.

"먼저 왕국에 경사를 가져다준 왕자 데이비에게 포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는 마치 나를 탐색하듯 바라보며 물었다.

"데이비."

"예, 폐하."

문득 다음 사업을 어떻게 굴려볼까 고민하던 내가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잘해주었다. 아무런 지원도 없이 정말 큰일을 해냈구나."

"황공하옵니다. 폐하."

"네가 영지에서 보내온 소득세로 인해 왕국은 큰 위기를 벗어났다. 말해보라, 그 어떤 포상이라도 내려줄 터이니."

내 말에 순식간에 수많은 귀족들의 시선이 내게 몰려왔다.

내가 당장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무엇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크리아네스 국왕의 말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뭔가를 요구한다 한들 저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다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겠지만.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왕자 데이비의 공로는 근 10년 안의 어떤 공로보다 크다. 기탄없이 말해보도록."

마치 시험하듯 말하는 그 모습에 순간 짜증이 일었다.

다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은 채 그저 어리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폐하, 너무 큰 포상이라 쉬이 생각해둔 것이 없사옵니다. 조금 더 말미를 주셨으면 하옵니다."

"허가한다."

그것을 끝으로 그가 침묵하자 귀족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요는 하인스 영지에서 성공한 달의 풀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 지원해야 한다. 또는 국유화해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하나같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개소리에 가까웠다.

사태는 점점 더 가관으로 이어졌다.

그 시작은 바리에타 공작이었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게 있소."

바리에타 공작의 위세가 흔들리고는 있다 해도 아직은 건재하다는 듯, 모두가 침묵했다.

"데이비 왕자님께서 달의 풀 사업이 성공하면서 벌어들인 재화 중 일부를 소득세로 상납한 금액은 약 7만 골드."

말을 잠시 끊은 그가 주변을 스윽 둘러보곤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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