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7화
[저하? 혹, 드워프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오나 그들은 폐하의 명이 없으면 함부로 접촉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지위가 높다고 쉽게 협조를 하는 그런 인성 좋은 종족이 아닙니다만.]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말한 대로 자재만 준비해놔. 가급적이면 신용 좋은 상단으로."
[아...... 예, 확실히 준비해두겠습니다. 상단은 이미 알라우이 상단에서 전적으로 물량을 빠르게 제공하겠다고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달의 풀 잎사귀 경매에서 압도적인 자금력으로 반 이상의 물량을 털어간 대륙규모의 대형 상단이다.
하여튼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 작자들 같으니라고.
그러니 대상단이라 불리는 것이겠지만.
[저하께서 하시는 일이니 신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만.......]
자존심이 강한 만큼 기술에 대한 열망이 큰 작자들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들의 관심을 잡아 끌만 한 물건이 두 개나 이미 내 손에 있다.
비록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미완성품들이지만.
* * *
드워프 종족은 과거 난쟁이나 지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종족이다.
100센티에서 130센티 정도 되는 신장을 가진 그들은 키는 작지만 인간이 기를 수 없는 길이의 수염을 기르거나 우락부락한 근육, 그리고 굉장한 열기 내성을 지닌 종족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종족적인 특성 때문에 한때는 철의 종족이라 불리기도 한 자들이었다.
드워프라는 종족은 근 300여 년 가까이 모습을 감춘 덕분에 존재 자체가 전설이 되어버린 엘프족과 다르게 인간과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편이다.
머릿수로 치자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들은 일정 수가 부족을 이루고 산악지대나 화산지대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
태생이 장인 종족이라고 할까.
인간에 비하면 체격이 작은 편에 속하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근력은 인간의 배가 넘었고 섬세함 또한 보통 장인들과 궤를 달리할 만큼 정교하다.
-사실 섬세한 작업은 페어리를 따라올 종족이 없다지만.
'페어리는 이미 멸종했다면서.'
-그렇지. 다만 엘프처럼 어딘가에 숨어서 연명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
결과적으로 비견되는 페어리 종족이 멸종했다 알려진 이상 드워프는 이 티오니스 대륙 내에 존재하는 최고의 장인 종족이라 불리어도 이상할 것이 없으리라.
달의 풀 재배 성공으로 인해 무엇이든 한 가지를 말해보라 말한 국왕 크리아네스.
귀족들은 분명 내가 차기 왕태자가 되게 해달라 말할 거라고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라운 왕국은 왕태자가 없고 선발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자리에 관심이 없었던 만큼 과감하게 다른 선택을 내렸다.
라운 왕국의 남부에 위치한 드워프 족의 마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
다른 종족과 교류를 그리 환영하지 않는 드워프족답게 그들은 인간과 교류하면서 가장 먼저 내건 조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국왕급이나 그 대리인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부족의 내부에 들어오지 마라.
곱게 말해서 사양하는 거지 대놓고 오지 말라고 말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드워프들이 그런 조건을 내걸고 몇 가지 생필품을 거래품목으로 받아 드워프족의 기술이 담긴 물건을 왕국에 납품하곤 했다.
라운 왕국은 남부에 위치한 황색 바위 드워프족과 그런 계약을 맺었고 매해 상당량의 육류와 주류를 건네주고 그들의 기술이 담긴 상등품의 물건들을 받아오기도 했다.
실제로 국왕 크리아네스의 허리에 채워진 보검이나 그가 쓰고 있는 왕관들은 전부 드워프제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이기도 했다.
같은 철검이라도 내구성, 예리함. 보존력이 압도적으로 차이 나는 것만 봐도 그들의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건축 같은 분야에서도 굉장한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당장 시간과 기술, 그리고 인력이 부족한 하인스 영지에 가장 필요한 인원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대를 따라 하인스 영지로 갈 일이 있을까.
페르세르크의 말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행렬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내가 드워프 마을과 접촉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나를 단신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
크리아네스 국왕의 대리인 신분으로 떠나는 이상 어느 정도 사용인들의 대동은 별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 조촐하게 떠나려고 했던 황색 바위 부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상당한 행렬이 되고 말았다.
물론 더욱 커다란 행렬이 될 뻔한 걸 겨우 줄이고 줄여서 이정도로 만족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저하, 곧, 황색 바위 부족의 영역에 들어섭니다."
"그래,"
말에 올라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가던 내게 한 명의 상급기사가 보고를 올려왔다.
확실히 마나 게이트를 통과한 뒤 하루를 내리 달렸더니 벌써 주변의 풍경이 거대한 황색의 암석지대로 변해있다.
내가 갑자기 드워프 족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 생각났다.
안 그래도 영지에서 큰 사고를 터뜨린 내가 갑자기 드워프와 만나고 싶다고 한 탓에 귀족들은 이 자식이 또 뭔 짓을 저지르려는 거지? 라는 시선을 보내왔고 크리아네스 국왕은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느냐.'
'영지의 시설 정비에 그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흐음.......'
'저...... 저하! 드워프 족들은 깐깐하기 그지없습니다! 괜히 그들의 심기를 자극했다간.......'
내가 혹여 그곳에 가서 깽판이라도 칠까 싶어진 귀족들이 절대 안 된다며 소리쳤지만 당연히 나는 그들의 말을 모조리 무시해버렸다.
확실히 이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여길 수밖에.
괜히 그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그들이 다른 국가의 영토로 떠나버린다면 라운 왕국으로써도 굉장한 손해일 테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데이비, 혹여 부족한 생각으로 그들을 괜히 자극하고자 한다면 제아무리 포상이라 한들.......'
'걱정 마십시오. 최소한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 제안 거리를 준비해 갈 테니.'
나를 따라 행렬에 오른 기사들도 그 사실을 아는지 혹여라도 내가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자 붙은 자들이라 봐도 무방했다.
불안하다는 낌새를 숨기지 않던 그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 사고 한 번 칠 생각이다.
-검은 연기에 쇠의 냄새. 이것도 굉장히 그리운 냄새인 게야.
'드워프랑 엮인 일이 있었어?'
-본녀의 나이가 몇인데 드워프를 보지 못하였을까.
허공에 떠올라 느긋하게 주변 경치를 감상하던 페르세르크가 멀찍이서 풍겨오는 비릿한 쇠의 향기와 검은 연기를 보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나 오래 검 속에서 잠들어있었는지 세상일 모든 것이 다시금 새롭고 신선한 듯 그녀의 표정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행렬이 멈춘 것은 암석지대의 거대한 바위틈 사이를 가리고 있는 철과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정지! 누구요!"
암석지대를 지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행렬을 막아 세우며 커다란 망루 위에서 머리를 꺼내 들었다.
1m 정도 되는 키에 인간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락부락한 근육, 그리고 제 키만 한 수염을 기른 난쟁이족.
바로 이곳에 터를 잡은 황색 바위 부족의 드워프였다.
한 손에는 거대한 베틀액스를 들고 전신에 튼튼한 갑주를 입은 그들은 부족을 지키는 파수꾼들인 듯했다.
"라운 왕국의 왕실에서 왔소! 황색 바위 부족에 입장을 허락해주시오!"
이윽고 나를 대신하여 상급기사 하나가 천천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간 뒤 소리쳤다.
"마을에 입장을 허가해달라? 우리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소만."
사전 연통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탓에 그들로서도 굉장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좋은 제안 거리를 가져왔습니다만."
이에 내가 기사들을 대신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파수꾼 중 가장 번쩍번쩍하는 갑옷과 배틀해머를 쥐고 있던 드워프가 고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라운 왕국 1 왕자 데이비입니다."
"크흠! 파수병장인 게르트요."
어색하게 헛기침을 흘린 그가 몇 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약속은 약속이지. 하나 현재 부족 내에 큰 문제가 있어 그대들 인간의 국가와는 현재 거래를 할 수 없소이다."
"그게 무슨 소리요! 거래를 할 수 없다니!"
"거, 나는 모르겠고! 일단 약속은 약속이니 들어오시오! 단, 말은 거기에 두도록 하고, 우린 말과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니."
파수병장 게르트의 말에 기사들이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묵묵히 말에서 내려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는 거대한 철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 * *
황색 바위 부족의 마을은 그 규모가 상당한 편에 속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드워프의 수는 약 2천여 명으로 소규모로 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드워프들의 생태를 생각하면 실상 중견급 규모의 부족이라 봐도 무방했다.
"오오......."
"세상에, 스스로 움직이고 있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는 거지?"
나를 따라 들어오는 행렬에 속한 인원들과 기사들은 스스로 움직이는 문이나 여러 기계장치의 모습이 신기한 듯 감탄을 아끼지 못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마을에 들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그들 또한 드워프를 본 적은 있어도 이런 마을 내부로 들어온 건 처음이라는 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인간뿐만 아니라 드워프들도 마찬가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돌아다니던 마을 내부의 드워프들 또한 갑자기 나타난 우리의 모습에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인간? 인간이 어떻게 이 마을에?"
"설마 인간 놈들이 우리를 공격하려는 겐가?"
불안함, 경계 호기심.
여러 감정이 섞인 시선 때문에 행렬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 시선을 끌어모았다.
"저...... 저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히 그들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내가 문제가 아니라 제 목들이 달아날 테니 겁이 날 것이다.
기사 한 명이 조심스레 나를 향해 물어왔지만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괜히 호들갑 떨지 말고들 있어, 문제가 생겨도 너희들은 어떻게든 구해줄 테니."
내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던 덕분인지 안도하는 표정들이지만 불안감을 지울 순 없었다.
대부분의 행렬 인원들을 밖에 대기시킨 후 기사 두엇만 대령한 채 거대한 기계장치가 섞인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고요한 원탁 위로 나이 지긋한 드워프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다른 드워프들에 비해 유별날 정도로 수염이 길고 덩치도 큰 사내였다.
주름을 보면 나이가 상당한 듯한데 아직도 정정함을 드러내듯 그의 허리춤에 채워진 한손도끼는 당장에라도 몬스터를 때려죽일 수 있을 만큼 예기를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