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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59화 (59/1,559)

# 5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8화

-으음, 표정부터 귀찮다는 티가 팍팍 드러나는 게야. 역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종족.

머리에 칼을 들이밀어도 자신이 몰두하던 일이 있으면 신경도 쓰지 않는 고집불통 종족답다.

페르세르크의 말대로였다.

일단 손님이고 약속이니 들이긴 했지만 그는 나를 그리 반기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보통 드워프들은 부족장이 여럿일 텐데, 혼자인 걸 보니 다른 이들은 부재중인가 보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부족장이 마을을 떠나는 일은 잘 없음이지.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묵묵히 그의 앞에 선 뒤 조용히 특유의 손짓과 몸짓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인간의 인사법과는 다른 드워프들 사이에서나 자주 사용하는 그들만의 인사법이었다.

첫인상이 반을 간다고 했던가. 솔직히 당장에라도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제안 거리는 있지만 나는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후에 영지민이 될 드워프들도 있을 텐데, 서로 얼굴 붉혀봐야 좋을 게 없지.'

"철의 신의 가호가 있기를, 라운 왕국의 1 왕자, 데이비 올 라운이라고 합니다."

내 인사가 예상외였던 탓일까.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앉아있던 드워프 장로의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감돌았다.

"어잉? 크흠! 8 장로인 골다라 하외다. 인간이 드워프들 간에 사용하는 인사법을 알다니 조금 놀랍군."

"드워프는 뛰어난 장인 종족이지요. 그 실력을 대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자일 겁니다."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유창하게 떠들어대자 그의 표정이 아주 잠깐 누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흠! 보기 드물게 마음에 드는 인간이로군. 뭐, 다른 장로 영감탱이들은 하나같이 바쁜 일에 몰두하고 있어서 내가 대신 나왔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라운 왕국은 우리 황색 바위 부족과 오랜 거래처이니."

최근 들어 귀족들의 횡포로 나라가 휘청이곤 있다지만 실상 과거의 라운 왕국은 꽤 살기 좋은 국가였다.

종족, 계급에 따라 차별하는 일이 적었고 서로 간의 예의를 안다는 말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바리에타 공작을 필두로 한 귀족들의 깽판이 심해지고는 있다지만.......

사실상 그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드워프들을 자극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쌓아둔 이미지 덕분에 이렇게 무리 없이 드워프 마을에 입성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 거기 애송이 왕자님께선 무슨 볼일로 이리 찾아오신 겐가? 보통의 거래는 마을 밖에서 대부분 이뤄질 텐데."

"그렇지요."

"실제로 그대들 왕국과 거래하는 시기는 아직 어느 정도 남은 것으로 아오만."

골다의 말에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습니다. 본래 계약대로의 거래 시기는 앞으로 몇 달 뒤이지요."

"한데 무슨 일로?"

"실은 다른 일로 인해 몇 가지 협조를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밖에 가져온 수레에 담긴 보리 맥주와 고기들은 그 성의일 뿐입니다."

내 말에 그가 두껍게 묶어둔 수염을 가볍게 쓸어넘겼다. 다시 귀찮다는 표정으로 바뀌어버린 그였다.

"크흠! 뭐, 예의를 아는 인간은 그리 싫어하지 않지. 게다가 인간들이 만들어낸 보리 맥주 또한 싫어하지 않아.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황색 바위 부족은 현재 그대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내놓을 수 없소."

"그건 무슨 뜻인지요?"

내 질문에 그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외부인에게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가볍게 말을 끊은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뿐이오. 먼 걸음을 했을 테니 당장 축객령을 내리진 않겠소, 며칠 정도는 이곳에서 머물러도 좋을게요. 다른 이들에겐 내 미리 일러두지. 단, 사고를 친다면 그 즉시 추방당할게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그가 벌떡 일어나자 기사들의 표정에 은은한 노기가 일었다.

자신들과 자신들이 호위해온 내가 무시당하니 기분이 좋지 않은듯한 표정이었다.

당장에라도 뭔가 큰소리가 오갈 법한 그 행동에 나는 그저 묵묵히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 채 골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가볍게 한 가지 권능을 끌어올렸다.

'정보확인.'

삐릭!

드워프라 해도 마왕의 권능을 쉽게 벗어나진 못하리라.

-성명 : 골다.

-나이 : 180

-성별 : 남

-종족 : 드워프

-칭호 : 무(無)

-상태 이상 : 피로, 짜증. 고민 중

-특이사항 : 황색 바위 부족의 막내 8 장로.

-현재 심리 :

드워프들의 신성한 검이라 불리는 태초의 섬광을 제련하는 작업에 다시 참여하여 몰두하고 싶어 함.

나이가 가장 어려 인간을 대면하는 자리로 쫓겨나온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음.

인간이 마을 내부까지 들어온 일이 굉장히 오랜만이라 아주 약간의 흥미와 의문을 느낌.

예의를 아는 시전자에게 일정 호감을 느끼고 있음.

대접이 귀찮은 상태.

드워프의 평균 수명은 250세.

딱히 놀라울 것 없는 나이라 할 수 있다.

뭔가 귀찮은 표정으로 다시 뭔가 할 말이 없냐는 듯 바라보는 골다를 둔 채 나는 내 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박스의 내부에 적힌 글귀 중 한 가지에 꽂혔다.

[태초의 섬광.]

익숙한 이름이다. 그 이름의 출처는 망치와 결혼했다는 미치광이 대장장이에게서 들었다.

[그 양반들하고 작정해서 만든 게 하나 있긴 하제, 한데 그게 꽤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내가 실력이 부족할 때 맹근기라...... 솔직히 질은 떨어진다 아이가. 고때 당시만 혀도, 그 똥자루들하고 나허고 아주 좋다고 서로 몇 날 며칠 축제를 벌이기도 혔제,]

[어느 정도로 뛰어난 물건이냐꼬? 니가 뚜드린 거 하나 가져와 보그라.]

[뭐, 딱 요정도 되긋네. 웃기나? 처음부터 잘하는 놈이 으댔노! 됐고 망치나 뚜드리라!]

"그럼 며칠간 신세 지겠습니다."

순식간에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한 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25. 거, 망치 줘보세요.

드워프들의 마을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시끄러운 편에 속했다.

그 작은 키에 체격 때문일까. 기본적으로 드워프들의 왁자지껄한 떠드는 소리는 거의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조용조용한 엘프와 다르게 그들은 활기가 넘치는 성정을 지닌 자들.

그들의 삶은 왁자지껄한 생활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편이라 할 수 있다.

개중에 드워프들이 죽고 못 사는, 환장하는 것들이 두 가지가 있다.

술, 그리고 도박.

멍청하게 모조리 꼴아박아 패가망신하는 드워프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이 난쟁이들은 도박을 일정 선에서 끊는 기예를 보이는 특이한 종족이다.

그러니 오래도록 이리 멀쩡히 잘도 살아있는 것이겠지.

드워프들의 대접 아닌 대접을 받는 동안 나는 정말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것처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드워프들 사이에선 부족 내의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는 모양이다만 나는 거기에 끼어들지 않고 소문을 긁어모았다.

세상만사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

기세 좋게 나섰다가 안 되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는 일이렷다.

-태초의 섬광은 대단한 검인 게야?

"솔직히 보통 기준으로 보면 대단한 검인 건 맞아."

-그대의 기준으로는?

"시간만 있으면 못 만들 것도 없지?"

베지 않는 검.

그것이 드워프들이 신물마냥 여기는 보검인 태초의 섬광이다.

이것을 만들어낸 고대 영웅인 수르트와 드워프 장인들은 이 검에 몇 가지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의미를 새겨넣었다.

화합, 발전. 그리고 대장장이 신의 축복.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에 관해선 수르트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나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솔직히 이들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태초의 섬광이라는 검이 부서진 시점부터 그런 의미는 실상 그들의 손을 떠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수르트의 기술이 누군가에게 전승되어왔다면 모를 일이나 어지간한 노력으론 그 특유의 기술을 흉내 내기 쉽지 않으니까.

"어떻게 보면 태초의 섬광은 프로토타입에 가깝지."

-프로토타입?

"그러니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칼디라스의 시작품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사용방향은 달라도 공정 방식 자체는 비슷하거든."

그러니 이걸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일 터다.

마나를 사용한 특수가공법.

어지간한 장인들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런 시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도 결국 물리 법칙과 비 물리 법칙에 의해 돌아간다.

기본적인 물리력에 의해 작용하는 물리 법칙.

그런 물리 법칙을 벗어나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인 마나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비(非) 물리 법칙.

세상은 그 두 가지 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건 아마 지구도 다르지 않으리라.

-마법사들의 기본이론이로군.

"신검이건 태초의 섬광이건, 결국 그 두 가지 법칙을 잘 융화시키는 게 관건이니까. 보통 장인들은 그런 시도를 하려 들지 않아. 순수하게 금속을 두드려서 극한을 보려고 하니까."

물론 괴짜들이 가끔 튀어나오긴 한다만.

"망치를 때리는 방법부터 주괴를 다루는 방법까지 기존의 방식을 조금 뒤틀어야 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던져버렸을 때 겨우 실마리가 보이는 게 바로 마나 가공법인데 그걸 외골수인 드워프들이 개발한다고? 어림도 없지."

인간이 아니고 자존심과 실력이 모두 뛰어난 장인 종족이기에 할 수 없는 방법이다.

-한데, 그런 뛰어난 물건이 어째 이런 곳에 있는 게지?

"태초의 섬광은 인간과 드워프의 첫 교류를 위해 만든 공동작이야. 뭐, 자세한 건 나도 들은 바가 없어서."

담담하게 앉아 설명해주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충분히 놀았잖아. 이제 슬슬 나도 내 할 일 해야지."

드워프들을 데리고 영지로 돌아가는 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내 본래 목적은 이곳에서 만들어진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대(大)화로를 빌리는 것.

-그게 불만이면 직접 만들었으면 되었을 것을.......

"지금 기술력으론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난 물건을 빌리고 기술도 빌리고, 드워프들은 좋은 구경하는 거고."

픽 웃은 내가 미련 없이 방을 나섰다.

갑자기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호기심 가득한 드워프 꼬맹이들이 멀찍이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가 잽싸게 사라졌다.

어지간히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들에겐 생소하게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교류를 위해 인간과 접촉하는 드워프는 극소수일 테니까.......

-해서? 그 고집불통들이 쉽게 대(大)화로를 빌려줄 것 같진 않다만.

"우선은......."

고민하듯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볍게 움직였다.

"선술집부터 가볼까?"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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