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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2화 (62/1,559)

# 6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11화

탱그랑!

쉼 없이 망치질을 하던 골고다 장로는 더는 살릴 수 없는 환자를 바라보는 눈으로 망치를 집어 던져버렸다.

"아......."

모두가 안타까운 탄식을 흘렸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망치를 쥐고 있던 골고다 장로 또한 분한 얼굴로 이를 악문 채 태초의 섬광을 노려보았다.

어찌나 분한 것인지 그의 눈에는 눈물기까지 어려있었다.

"더 볼 것도 없군! 이미 우리 부족의 장정들이 와있네! 더 이상 고집 피우지 말고 넘기게!"

분노에 쌓인 토르스의 외침에 골고다는 처참한 표정으로 주저앉아버렸다.

동시에 토르스를 따라 들어온 드워프 장정들이 준비해둔 천으로 태초의 섬광을 감싸 챙기기 시작했다.

-그대?

생각이 정리되었다. 뭐든 세상만사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착잡함이 앞섰다.

"어어?"

말없이 일어선 내가 근처에 놓인 작은 망치 하나를 들고 중앙 공방으로 들어가자 내 모습을 발견한 드워프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망연자실한 황색 바위 부족 드워프들을 지나쳐 부러진 태초의 섬광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내가 골고다 장로를 바라보았다.

"자네......."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뭐?"

"장로님은 장인이 맞습니까?"

내 목소리는 생각 이상으로 차가웠다.

26. 네 이름은 청단이, 홍단이로 하자.

뜨겁기 그지없던 중앙 공방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그저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있던 노년의 드워프는 곧 내 말뜻을 이해한 듯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당장에라도 망치를 쥐고 그대로 나를 후려치고 싶다고 느끼는지 그의 눈빛엔 분노가 역력해 보였다.

"뭐라?"

"장인은 만드는 물건 하나하나에 혼을 느끼고 그것을 존중한다. 그런데 장로님은 시작부터 그걸 던지고 계시네,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내 물음에 그가 움찔했다.

[장인이 만들어내는 물건 하나하나에는 아주 미약하지만 혼이 깃든다. 이걸 무시하는 놈은 장인이라 불릴 자격도 읎다. 머리통을 으깨삐라!]

내가 회랑에서 정말 몇 안 되게 스승을 거의 따라잡은 종목이 있다.

야장으로써의 기술이 바로 그러했다.

내게 기술을 가르쳤던 수많은 영웅들 중에 가장 내게 많은 것을 쏟아부었고 가장 나를 빠르게 성장시킨 이.

그게 바로 수르트였다.

그의 가르치는 실력이 뛰어나서였냐고?

정확히는 마법, 검, 연금술, 신성력, 이외에 수많은 기술을 배웠던 내가 특이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리라.

보통 이런 식으로 수많은 분야를 섭렵하는 이가 존재하기엔 한 생명이 가지는 수명이 너무도 짧고 지식도 부족하다.

수르트가 가르쳐 준 기술은 그런 의미에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우연의 산물이라 봐도 무방했다.

물론, 그 괴물 같은 장인의 세심한 실력을 따라잡기엔 부족하다는 감이 있지만.

"인간?"

돌연히 등장한 내 모습 때문에 좀 전까지만 해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던 검은 바위 부족의 드워프, 토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보쇼, 골고다 영감. 이제는 중앙 공방에 인간까지 데려왔소? 언제부터 중앙 공방이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된 거지?"

"데이비! 그만 물러나게! 자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토르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던 8 장로 골다가 허겁지겁 제지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그저 골고다를 바라보았다.

"질문을 바꿔볼게요. 이걸 정말 해결하고 싶긴 한 겁니까?"

"무슨 소리냐. 당연한 소릴.......

내 질문에 골고다가 인상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왜 그랬습니까?"

내 질문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자존심이 밥 먹여 줍니까?"

그리 말하며 내가 성큼성큼 걸어 태초의 섬광에서 떼어낸 부품 일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작은 망치로 그 표면을 가볍게 때렸다.

통...... 통.......

망치로 때린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쯧, 갈 데까지 갔네, 못 쓰겠구만."

시간이 지나며 태초의 섬광이 가진 마나 순환시스템의 수명이 다했다.

일반적인 쇳덩어리라면야 관리만 잘되면 수만 년도 견디겠지만 마나와 섞이는 아티펙트는 실상 그게 불가능하다.

금속 자체가 마나에 의해 풍화되어버리니까.

"이봐 인간! 뭐 하는 거야! 당장 떨어지지 못해?!"

급기야 다른 드워프 몇몇이 정신을 차린 듯 후다닥 뛰어와 나를 격하게 떼어놓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들어."

"당장 꺼지지 못해?!"

당장 내가 무슨 짓을 했다간 손에 쥔 망치로 머리통을 으깨버릴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분위기가 끝없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월권이오! 정식으로 라운 왕국에 항의를 해야 하오!"

"골다 장로!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지?!"

격분하는 드워프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몇몇은 벌써 나를 끌어내려 달려들고 있는 실정이었다.

"골고다 장로님."

"......."

"대답이 안 나옵니까?"

내 질문에 그가 마치 나를 파악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 무슨 헛소리를 하는......."

"해결하기 싫은 겁니까, 아니면 이미 수명이 다한 아티펙트라는 걸 알면서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해서 현실도피 하는 겁니까."

내 말에 몇몇 드워프들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자네......."

"3천 년 정도였나요? 태초의 섬광이 만들어진 지 그 정도 시간이 흐른 거로 아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를 동안 쉬지 않고 마을을 수호해온 검입니다."

내 말에 골고다 장로가 이를 악물었다.

"한계를 넘어서 이미 수명이 다한 물건을 억지로 되살리려 들어? 장인이라는 작자들이? 당신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소중한 물건을 그따위로 다뤄?"

자존심을 떠나서 일단은 스승이던 작자가 만들어낸 물건이다.

나와도 완전히 관련이 없진 않다는 소리였다.

파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격하게 내가 팔을 휘젓자 나를 붙들고 있던 드워프 두어 명이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이쿠!!"

"크헉!"

"언제부터 드워프가 이렇게 후안무치해졌습니까."

드워프는 장인의 종족.

그것도 대륙 최고의 장인 종족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작자들.

그런 자들이 물건의 수명이 다해 이제는 다시 살릴 수 없다고 판단된 물건의 상태도 몰랐다?

개소리에 가까웠다.

드워프들을 떨쳐낸 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부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그대로 근처에 있는 화로 속으로 던져 넣어버렸다.

"안 돼!!"

동시에 드워프 몇몇이 비명을 지르며 소리 질렀지만 나는 곧장 다음 부품이 놓인 곳으로 걸어가 똑같이 스윽 훑어보고 화로 속으로 던져버렸다.

드워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나는 묵묵히 손에 쥐는 대로 확인한 후 화로 속으로 던져넣어 버렸다.

"빌어먹을 인간 놈!"

"죽고 싶은 게냐!!"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죽일 듯 망치를 휘둘러오는 드워프들의 눈가는 이미 흉흉한 살기로 가득했다. 그럴 만도 하지.

아무리 부서졌다고 해도 태초의 섬광은 그들에게 있어서 종족의 상징 그 자체였을 테니까.

하지만 골고다 장로나 검은 바위 부족에서 온 토르스를 포함한 몇몇은 그저 멍하니 내가 하는 짓을 바라만 보았다.

"아, 안돼......."

"끝이야......."

결국 마지막 부품까지 화로 속에 던져 버리고 태초의 섬광이 뎅그러니 원형만 남아버리자 드워프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 얼굴엔 분함과 허탈함, 그리고 극도의 혼란스러움이 어려있었다.

몇몇은 분한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까지 뚝뚝 흘려댔다.

이렇게 보면 내가 진짜 개자식이 된 것 같은 기분인데.

-본녀도 저 고집불통들이 저렇게 서러워하는 건 처음 보았음이야.

페르세르크의 조잘거림을 무시한 채 내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다시 만들 자신은 없고, 이미 수명을 다한 물건은 죽었고."

"닥쳐라! 네가 뭘 안다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천하의 때려죽일 놈!"

내 질문에 드워프들 몇몇이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불가능하다고 시도조차 안 해? 최고의 장인이라는 양반들이?!"

쾅!!

곁에 있던 모루를 걷어차 버리자 모루의 일면이 마치 거대한 쇠공에 맞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만하게! 도대체 자네는 우리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생각인가!!"

다만 모두가 이성을 잃고 격한 분노를 표출하진 않았다.

좋은 예로 좀 전까지만 해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로 하나가 비통하게 외쳤다.

본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이 물건은 수명을 다했고 더 이상 고친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새로 만들어내기엔 기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존심이 강한 이 종족은 못내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급기야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이 물건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자기 합리화에 도착하고 말았다.

장인으로서 해선 안 되는 최악의 수나 다름없다.

"장인 최고의 기술을 지니고 있다는 우리들의 기술로도 복원할 수 없었네!"

"그렇다면 자네는 이 빌어먹을 신물을 만들 수 있다 이 말인가?!"

"예."

"웃기지도 않은 소리! 최고의 장인들조차 그 기괴한 배열로 제련되는 금속을 다루지 못하고 있는데 자네 같은 애송이 인간이 그걸 해낸다고?!"

"다른 이도 아니고 천일 야장의 작품일세! 어중간하게 손댄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럼 마냥 배척하려 들지 말고 배워, 이 양반들아."

-좋게 생각하시게, 어차피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계획 자체가 소용없음이니.......

'손 풀기라고 생각하자.'

결심이 서자 행동은 재빠르게 따라왔다.

나는 곧바로 공방에 비치된 물건들을 하나둘 모아 확인하기 시작하면서 작업의 서두를 끊어 올렸다.

시약류는 꺼내 냄새를 맡아 확인한 뒤 따로따로 분류했고 필요 도구들을 가지런히 한 장소에 모았다.

도구 준비는 이정도면 됐고.

역시 드워프 공방, 그중에서도 최고 장인들이 모인다는 부족의 중앙 공방답다.

이곳은 드워프들의 자존심이며 자랑일 테니까.

미련 없이 몸을 돌린 내가 고개를 들어 거대한 화로를 바라보았다.

섭씨 3천도 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드워프들의 자존심이자 드워프들의 기술의 절정체.

바로 대(大)화로였다.

대화로는 이전부터 계속 작업을 해온 탓에 붉은 화염이 일렁거리며 제힘을 뽐내고 있었다.

어지간히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가까이 가는 것조차 힘들 만큼 뜨거운 열기.

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그 화로의 내부를 향해 가볍게 손을 뻗어 마나를 끌어올리며 조용히 수인을 맺었다.

기본적으로 마법과는 완전히 다르게 마나를 다루는 방식이라 묘한 생소함이 따라붙어 왔다.......

마나 가공법.

대부분의 장인들이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방법이며 엉뚱한 발상이 만들어낸 천일야장 수르트의 장기이자 그의 비전이다.

"헙?!"

"부...... 불꽃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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