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13화
"내가 손대 줄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과거랑 똑같네요. 천일야장도 여기까지 작업하고 드워프들에게 넘겨주었으니, 나머지는 당신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작업의 마감처리조차 현재 우리들의 기술론 부족하네."
"그럼 배워야죠."
싱긋 웃으며 내가 말하자 골고다의 얼굴에 열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자...... 자네는...... 그 기술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가!"
"공짜는 아닙니다. 기브 앤 테이크인데. 괜찮으시죠?"
"당연하네! 선조들의 기술을 따라갈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네!"
"아...... 알려주게! 자네가 시키는 대로 모두 할 테니!"
"알려주게! 아, 아니! 알려주십시오! 은사님!"
이 양반들 태세전환 보소.
"좋습니다. 그럼......."
나를 애송이로 보는 시선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무엇이든 직접 보기 전까지는 쉽게 믿기 힘들겠지.
드워프도 아니고 이제 성년이 된 듯한 인간 소년의 모습에서 관록 있는 야장의 모습을 찾긴 힘들 것이다.
내가 말끝을 흐린 채 고민하자 드워프들이 긴장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제 일부터 처리하고 시작하죠."
하지만 곧 이어지는 내 말에 순간 힘이 풀렸는지 삐끗거렸다.
저들에겐 미안하지만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존재한다.
내가 이곳에 들른 가장 큰 이유.
영지의 시설 정비도 목적이긴 하지만 가장 우선 과제는 다른 것이다.
"자네의 일?"
"사실 제가 황색 바위 부족까지 직접 찾아들어 온 것은 대화로를 빌리려고 찾아온 겁니다."
"대화로를?"
"나름대로 부탁받은 유작이라, 직접 마무리 지어야 하거든요."
그리 말하며 등에 멘 가방에서 천에 둘러싸인 물건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검인가?"
천 더미를 휙휙 풀어낸 내가 물건을 꺼내 들자 드워프들의 눈이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아직 완성처리가 안 된 검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호오......."
"놀랍군!"
"세상에......."
비록 미완성품, 그리고 드워프들의 실력이 과거만 못하다곤 해도 시대를 풍미한다 알려진 장인들답다.
그들은 곧 내가 꺼내 든 투박한 검면을 가진 두 자루의 환도를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드워프들의 얼굴엔 공통으로 경악, 그리고 놀라움이 어려있었다.
* * *
이건 징크스를 의심해봄 직한 일이다.
-왜 그대가 무언가를 보여줬다 하면 다들 저런 시선인 게지? 그대, 그러다가 언제 한 번 신성모독으로 잡혀갈 게야.
'성흔까지 내려받은 마당에 신벌이 무서울까.'
-쯧쯧. 현실적인 신벌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내리는 게지.
내가 보여준 기술도 기술이지만 드워프들의 시선은 다름 아닌 내가 꺼내 든 두 가지 검으로 향해 있었다.
단검이라고 하기엔 길고 롱소드라고 하기엔 조금 짧은, 대륙의 무기 디자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지만 장인들의 눈으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금방 깨달은 듯 보였다.
"이...... 이보게, 이, 이 검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놀란 드워프들을 대신해 조심스레 내게 질문을 던진 것은 다름 아닌 1 장로이자 황색 바위 부족 최고의 장인이라 불리는 골고다였다.
"어때 보입니까?"
"말이라고 하는가! 도대체 이건...... 설마 이걸 직접 만든 겐가?!"
"음, 제가 만든 건 아니고요. 이제부터 마무리를 제가 짓는 겁니다."
재료가 있다고 해도 내가 아직 이정도의 검을 만들기엔 기술력이 조금 부족한 게 현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쌍둥이 검은 천일야장 수르트가 생의 끝자락에 만들어낸 것들이니까.
"그...... 그러면 그 검을 만든 장인은......."
"죽었죠. 오래전에."
"크흠! 미, 미안하군."
내 말에 괜히 지레짐작이라도 한 것일까.
골고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러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죽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니 양심에 찔릴 건 없다만, 괜히 역린을 건드렸나 당황해하는 노년의 드워프를 보고 있자니 픽 웃음이 나와버렸다.
"오래전에 죽었죠. 벌써 몇천 년이 됐는데."
내 말뜻을 이해한 것일까.
골고다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여졌다.
"몇천 년 전이라고? 서...... 설마 그건!"
그 오랜 시간 방치되며 숙성된 탓에 검의 성능이 초기 설계보다 수십 배는 높아졌다는 게 문제지만.
재료는 신검 칼디라스에 비해 훨씬 떨어지기에 성능을 기대할 순 없지만 오랜 시간 마나와 결을 잘 순환하도록 숙성시킨 덕분에 실 성능은 나조차도 얼마나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술도 아니고 숙성이라니.
'마나 가공법은 전부 일정 기간 숙성기간이 필요해. 태초의 섬광...... 아니지 이제 새로 만드는 저 검도 더 손대려면 몇 달은 철저하게 관리해서 기다려야 하고.'
-그렇군.
'뭐, 난이도 차이는 확연히 나지.'
말없이 검면을 쓰윽 쓸어내린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마무리를 짓는 게 좋을까.
너무 좋은 물건이 들어와 버린 탓에 솔직히 나로서도 고민이 되었다.
10%를 남겨놓은 물건이라 해도 이만한 물건이라면 긴장감이 들 수밖에 없다.
작업시간이 길진 않겠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얼마나 역량을 쏟아붓냐에 따라 검의 질이 상당히 차이가 날 것이다.
"자...... 자네! 혹시 마감 재료는 가지고 있는가!"
"음? 없어요. 일단은 미스릴을 섞은 합금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서 이곳에 있는 것들을 좀 빌리려고 합니다만."
당장 고급진 재료를 기대할 순 없다만. 드워프 마을이니 질 좋은 미스릴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마음 같아선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티움 정도 되는 물건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엄청난 물건은 현재엔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그 문제는 의외의 부분에서 해결되어버렸다.
"기, 기다려 주게! 작업실은 내 공방을 내어주겠네! 비록 내 실력이 자네에 비하면 미흡하나 관리만큼은 철저히 해왔네! 자네가 충분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도구들이 가득할걸세!"
"음?
장인에게 개인 공방은 불가침의 영역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골고다는 잔뜩 열정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마감 재료로는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으니!"
새로운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하였기에 저렇게 협조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에 어린 감정에는 천일야장 수르트가 남긴 유작의 완성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이미 태초의 섬광은 그의 안중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보세요. 당신이 그러면 안 되지.
뭔가 묘하게 주객 전도된 기분이다만, 그들은 내가 또 뭘 보여줄 것인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자네라면...... 자네라면 어쩌면 신검에 버금가는 엄청난 검을 만들 수도 있을 테지! 기다리시게!"
마치 꽁무니에 불이 붙은 것마냥 그가 어딘가로 후다닥 뛰어가자 드워프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골고다 영감 설마!"
"그걸 꺼내오려는 건가?!"
"미쳤군! 그 많은 영감탱이들이 보여만 달라고 해도 절대로 꺼내지 않던 것을!"
놀라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들 난리를 치는 건지.
그런 내 의문은 곧 헐레벌떡 뛰어온 골고다에게 건네받은 작은 물건을 받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마나, 하지만 기본적인 마나와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강렬하게 느껴져 왔다.
"이거...... 뭡니까?"
생전 처음 보는 마나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천 더미를 스윽 풀자 백색의 무언가가 시야에 비쳤다.
아주 순간적이지만,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말았다.
-뼈?
'미친.'
"고대용의 뼈일세. 추측하기론 만년은 더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네.
"이게 고대용의 뼈라고요?"
고대용. 간단히 말하면 드래곤이다. 다만 고대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면 최소 5천 년에서 8천 년 이상의 고룡의 뼈를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지도 못한 마감 재료에 내 얼굴에서 얼이 빠져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경악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네, 우리 가문의 초대 어르신 때부터 넘겨져 온 가보일세. 지금껏 그 뼈를 다룰 수 있는 자가 없었던 탓에 고이 모셔두긴 했지만...... 자네라면......."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최초 설계와 다르게 수천 년간 마나가 순환하며 숙성된 미완성 검에 만년은 넘게 이어져 온 고대용의 뼈.
"와우."
절로 입에서 사심없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수르트에 비하면 나는 조금 떨어지는 장인이다. 하지만, 그가 했던 걸 내가 못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가장 가까이 빗댈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장인의 길이었으니까.
어쩌면, 이거 어마어마한 놈이 탄생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 *
"크흠! 으, 은사! 나 좀 보시오!"
주변의 눈치를 흘낏흘낏 살피던 장로 드워프 하나가 우물쭈물 다가왔다.
"그 뭐냐...... 골고다 영감탱이가 이것저것 다 지원한 것으로 아는데......."
"네, 과한 선물을 받기는 했죠."
"해서 말인데, 고대용의 뼈까지 받은 마당에 개인 작업실까지 가져다 쓰면 그도 조금 곤란하지 않겠소, 해서 말인데...... 차라리 내 작업실을......."
"이...... 이놈의 영감탱이가!"
"히익!"
"썩 꺼지게! 어디 침 발라놓은 곳에 엄한 손을 뻗는가!"
"에잉! 자네만 영광을 독차지하는 게 어딨나!"
"맞소! 이건 횡포지 암!"
"우리 개인 공방 또한 자네에게 밀리지 않네! 이건 은사님이 직접 골라야 하는 게야!"
"뭬, 뭬야?!"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주먹다짐까지 할 것 같은 그들이었다.
드워프들은 다혈질에 격하기로 유명한 종족.
저대로 뒀다간 그대로 주먹다짐까지 가겠지. 마치 일생의 숙원이라도 되는 양 침을 튀겨가며 설전을 벌이는 그들을 제지해야 일이 진행될 듯했다.
"자자, 그만들 하세요."
"크흠!"
"일단은 골고다 장로님이 먼저 제의해주셨으니 그곳을 사용하는 게 맞겠죠."
"크흠! 은사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하시오! 내 기꺼이 구해드리지!"
"아! 내 아주 극소량이다만, 오리하르콘을 가지고 있소이다!"
"아니! 이 영감탱이가?! 그, 그러면 나도 가보를 꺼내놓도록 하지! 100년 동안 숙성시켜온 토르스림 시약을 내놓겠소!"
6 장로 페르돔이 크게 경매라도 하듯 소리쳤다.
"에잉!! 아다만티움 100g! 우리 집안 가보일세!"
질 수 없다는 듯 7 장로 란셀이 외쳤다.
드워프들이 앞다투어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하자 분위기라도 탄 것처럼 여기저기서 외침이 들려왔다.
한 명 한 명이 내놓는 건 골고다 장로의 고대용의 뼈처럼 큰 비중을 차지할 순 없지만 하나둘 다 모이니 그 양이 상당하다.
어이구야.
줄줄이 나오는 재료에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드워프라 해도 그만큼 고급진 재료를 쉽게 구하긴 힘들다. 특히 오리하르콘이나 아다만티움 같은 극도의 희귀 금속은 드워프가 평생을 야장 일에 바치며 한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귀한 금속이기도 했다.
한번 발견되는 양은 아주 경미한 정도, 그것을 대를 거쳐서 조금씩 모아 한 개의 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