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6화 (66/1,559)

# 6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15화

27. 겁 없는 뱀파이어들.

"내가 얼마나 여기 있었던 거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체감시간은 별로 오래된 것 같지 않지만 확실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한번 작업에 몰두하면 몇 날 며칠 정신 못 차리고 망치를 두드린 게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끝이 나긴 났군.

"기다리느라 고생했어."

-아니, 본녀도 흥미로운 구경을 했으니 대가를 받은 셈 쳐야겠지.

쿡쿡거리며 귀엽게 웃어 보이는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흥미로운 구경?"

-뭐, 되었느니라!

"야, 뭔데, 말해봐."

괜한 불안감에 그녀를 다그쳐 보지만 그녀는 내게 혀를 쏙 내밀어 보이고는 흩어지듯 몸을 숨겨버렸다.

절대 말해줄 생각 따윈 없다는 그 모습에 묘한 찝찝함이 오소소 돋아나는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 털어내 버렸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끼이이익! 쿵!!

이윽고 굳게 닫힌 개인 공방의 문을 천천히 열자 눈앞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몇몇 젊은 드워프들이 졸고 있는 게 보였다.

척 봐도 장인들인데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소란이 나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흐음......."

그냥 자게 내버려둘까 고민했지만 나는 미련 없이 그들을 깨웠다.

"크으 쓰읍...... 엉?"

내 손길에 정신을 차린 드워프는 곧 몽롱한 눈으로 나를 보다 눈을 부릅떴다.

"으허어억!!"

"귀신이라도 봤습니까?"

"으...... 은사님!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는데, 여기서 뭐 하세요."

"그것이...... 이 자식아! 쳐 자지 말고 일어나!"

이윽고 당황한 드워프가 횡설수설하며 옆에 졸고 있던 동료 드워프를 두들겨 패 깨웠다.

"흐읍! 은사님! 나오셨습니까요!"

"저희는 혹시 은사님의 작업을 방해하는 놈이 없는지 지키고 있었지요!"

"제가 들어간 지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겁니까?"

"나흘...... 정도 되었습니다만. 괜찮으신 겁니까요?"

"나흘이요?"

"예, 안 그래도 식사도 안 하시고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으셔서 어찌나 애가 탔는지...... 아! 이럴 게 아니라 저는 장로님들께 이 사실을 전하겠습니다."

헐레벌떡 뛰어가는 드워프들의 모습에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기본적으로 밤을 새워가며 작업한 경험은 있지만 나흘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망치를 두드렸단 말인가.

-거의 광인에 가까운 집념이었지.......

페르세르크의 중얼거림에 묘한 불안함이 일었지만 끝끝내 물을 만한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나흘, 시간으로 치면 96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잠도 자지 않고 식사도 없이 물만 마셔가며 작업에만 몰두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작업하다가 과로로 넘어가 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묘하게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까지 들었다.

-좀 자두는 게 어떠한가?

"아직까진 괜찮아."

말은 그리 하지만 장시간 심력을 쏟아부은 탓에 상당히 피로가 몰려와 있었다.

드워프들은 내가 작업에 들어가기 전 남겨둔 몇 가지 힌트들을 해석하고 연구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새였다.

"오오! 은사!"

"나오시었소!"

한창 설전을 벌이며 논쟁하던 드워프 장인들은 내 등장에 하던 것도 던져둔 채 내게로 정신없이 몰려들었다.

마치 간식을 나눠주는 이를 향해 달려드는 어린애와 같은 모양새였다.

"그동안 진전은 있으셨습니까?"

"그렇소이다! 은사께서 남겨주신 힌트 일부를 해석해서 나름대로 진전이 있었소!"

마치 자랑하는 아이처럼 골다 장로가 한편에 놓인 커다란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아직까진 조금 엉성한 느낌이 들지만 조금만 손본다면 제법 괜찮은 완성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그보다 은사, 그건 완성된 게요?"

궁금증을 참지 못한 노년의 드워프 장로 하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다른 드워프들 또한 말만 안 했지 내심 궁금했는지 그를 제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 이거요. 생각보다 더 좋은 놈이 나오긴 했네요."

내가 품에 들고 있던 두 개의 천 뭉치를 내려놓자 그들의 탄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이것이 천일야장의 유작 완성품인가!"

"드디어 완성됐군!"

좀 전까지만 해도 새로이 신물을 만드는 연구를 거듭하는 터라 지쳐 보이던 이들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으, 은사! 어서 보여주시오!"

"거참......."

보채는 그 모습에 천을 풀어내자 아직 검집도 존재하지 않는 두 자루의 검이 은은하게 빛을 내뿜으며 그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은은한 붉은 빛을 띠는 홍단이와 푸른 빛을 띠는 청단이.

보는 것만으로 베일만큼 섬뜩하게 예리한 느낌이 순간적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기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오오......."

"이럴 수가! 검이 스스로 빛을......."

"이것이 진정 장인의 손에 만들어진 무구란 말인가!"

마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무릎까지 꿇고 탄성을 흘려대는 그들이었다.

개중엔 마치 실실한 독자가 신을 영접한 것처럼 눈물까지 보이는 이도 있었다.

"이런 대작을 보다니...... 내가 준 재료가 섞여서 이런 엄청난 것이 나오다니!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소!"

"나도일세!"

"오오...... 이 고운 자태를 좀 보게!"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 대장장이의 기준으로 본다면 다시 보기 힘들 대작이고 검을 쓰는 기사들의 입장에선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한 번쯤은 휘둘러 보고 싶은 검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검에 어린 기이한 힘을 눈치챈 드워프들이 내게 검의 효능에 관해 묻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일단은 저도 사람인지라 조금 쉬고 싶네요."

"커흠!"

"미, 미안하오이다."

그리 말하면서도 드워프들은 검을 구경하고 싶다는 욕망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 * *

결과적으로 나는 그대로 뻗었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하루가 꼬박 흐른 후였다. 어지간한 일로는 피로를 쉽게 느끼지 않을 만큼 몸이 힘을 되찾았건만.

검을 만드는데 상당한 심력을 쏟아부은 탓인지 거의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뻗어버리는 불상사를 낳고 말았다.

물론, 그 덕분에 정말 편안하게 잤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이후, 정신을 차린 나는 곧바로 드워프들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신물의 재완성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전수해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으...... 은사! 이 부분은 강도가 너무 약해지는 게 아니오?"

"아, 그건 불의 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미스릴 이상의 강도와 마나 친화력을 가진 금속은 불의 온도를 그때그때 맞춰 바꿔서 작업해야 무리가 오지 않으니까요."

"호오......."

"그리고, 롬디 장로님. 마냥 두드려서 억지로 결을 만들려 하지 마세요. 물 흘려보내듯 자연스럽게."

"이...... 이렇게 말이오?"

"좀 더 약하게요."

"오오! 그렇군! 은사! 고맙소이다! 와하하핫!"

그들이 누구이던가.

한 드워프 마을의 수장급 장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록 장로가 되지 못한 자도 있지만 대부분 실력을 인정받은 뛰어난 장인들만 모인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작자들이기도 하고.

같은 드워프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이들만이 오른다는 장로직에 오른 이들이지만, 지금의 모습을 다른 이가 본다면 이제야 야장 일을 배우는 애송이들의 모습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만큼 그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한번 자존심을 내려놓은 그들은 정말 순수할 열정파가 따로 없었다. 처음 망치를 잡았을 때처럼, 그들의 눈엔 열의가 가득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것은 가르쳐주는 이로서도 굉장히 흥미롭고 보람찬 일이기도 했다.

드워프는 다혈질에 성격이 꼬인 고집불통 종족이지만 은원관계만큼은 확실한 종족.

그들에게는 이번 일로 큰 빚을 지워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고마워할수록 내가 그들에게 얻어낼 게 많은 만큼 나쁘지 않은 거래라 할 수 있었다.

-속내는 그게 아니지.

'명분 내세워 놓고 맘 편하게 놀고, 얼마나 좋아.'

-느긋한 성격이로군.

'기회가 생겼을 때 푹 쉬어야지 이 짓도 다 잘 먹고 편하게 살자고 하는 짓인데.'

-본녀도 육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육체가 생긴다면 온종일 느긋하게 드러누워 과일 음료나 마시고 있을 것만 같다.

영지의 상황은 매일 베르닐 시종장에게 통신 수정구를 통해 듣고 있기에 걱정거린 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차피 영지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하려면 한 달 정도의 유예시간이 더 필요하기에 내가 영지에 있는다고 한들 하는 건 그저 멍하니 하늘 보기 정도일까.

내가 가르쳐주는 기술 덕분에 순조로이 신물의 두 번째 제작 과정이 술술 흘러가기 시작하자 곧 신물의 주체가 되는 거대한 검이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핵과 뼈대는 내가 만들긴 했다만 나머지는 그들의 기술과 실력으로 만들어진 것일 테니 아마 그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뿌듯함은 실로 대단하리라.

내게는 그저 간단한 도구일지라도 그들에겐 다시금 드워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신물이 될 테니까.

다시금 신물을 자신들의 손을 통해 재현해냈다는 기쁨은 보통의 감격이 아닐 것이다.

드워프들이 거주하는 거주구역에서 조금만 떨어져 나오면 바깥이 잘 보이는 높은 바위 절벽 길이 존재한다.

암석지대로 이루어진 이 황색 바위 부족의 장인들이 땔감으로 쓸 나무를 구하러 가는 길이 바로 이곳인데 우연의 산물인지 누가 노리고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근처의 경치를 구경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장소이기도 했다.

무슨 말이냐고?

근처 나무에 해먹이라도 설치하고 느긋하게 누워서 시간 보내기에 이만한 장소가 잘 없다는 소리다.

"정말 고맙소 은사, 비록 우리 드워프족이 다혈질이라는 말은 많이 듣지만 은원관계는 확실한 법.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오."

야자 열매와 비슷하게 생긴 씹어먹는 식감이 좋은 열매를 아삭거리며 경치를 구경하고 있던 중 누군가가 다가와 내게 특이하게 생긴 도자기 하나를 건네어 주었다.

황색 바위 부족의 최고 장로, 골고다 장로였다.

"아, 골고다 장로님."

"이건, 으음...... 내 동생 놈이 아끼던 술이오만, 듣자 하니 술을 꽤 좋아한다고 들었소."

청단이와 홍단이를 만든 이후 드워프 장인들에게 간간이 지식을 전수해주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그동안 낮에는 기술을 전수해주고 밤에는 드워프들과 대작을 벌였다.

드워프들은 인간이면서 드워프의 예우를 알고 그들에게 구원이나 다름없는 동아줄을 내려준 내게 매우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최고의 술고래라는 8 장로 골다 영감을 술 대작으로 이겨버린 덕분에 더욱 호감을 산 것도 없잖아 있지만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