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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7화 (67/1,559)

# 6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16화

"고맙습니다. 향이 좋네요. 마냥 독하지도 않고."

"은사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니 다행이군. 드워프라고 해서 모두가 독주를 좋아하지는 않으니, 실은 그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러 왔소."

"다른 이야기요?"

아, 설마 내가 미스릴 제 모루를 잘라먹은 걸 따지려는 건가?

어떻게 변명할까 고민이 든다.

그냥 쌍둥이검 중 한 자루를 담보로 넘겨줘야 하나 하는 웃긴 생각까지 들었다.

우웅!!

물론, 자아가 깨어나지도 않은 주제에 순식간에 반발하는 두 녀석의 공명에 머리를 감싸 쥐어야 했지만 말이다.

"사실은......."

"아, 모루는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다시......."

"으음? 그건 무슨 말이오?"

그가 의아하게 나를 보자 나는 잽싸게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무슨 일인데요?"

"크흠! 내 나이는 먹었어도 듣는 귀는 아직 밝소, 듣자 하니 은사께서는 천일야장의 유작을 완성하는 일 이외에도 우리 드워프들의 힘을 빌려 영지의 시설을 정비하려 하셨다고 들었소."

"뭐, 그렇죠."

나중에 이야기를 따로 꺼낼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이야기를 꺼내주니 한결 일이 편해졌다.

"우리 드워프는 은원을 절대 잊지 않지, 비록 은사의 실력이 비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기술이나, 시켜만 준다면 뭐든 도와드리겠소."

"그래도 되겠습니까?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요?"

"우리 드워프족은 은사께 너무 큰 은혜를 받았지 않소. 후대에 무능한 선조로 남지 않을 수 있게, 또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선조들이 연구한 기술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게."

그의 말에 나는 침묵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신물이 가지는 의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들에게 큰 의미였다.

"멍청한 아집에 휩싸여 드워프라는 종족의 이름에 크게 먹칠을 하고 있는 우리를 바로잡아주어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소."

담담하게 말한 그가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처럼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하고 호의적인 미소였다.

"비록 비루한 실력이나 황색 바위 부족은 은사를 따를 것이외다. 은사께서 곤란할 땐 언제든 함께할 것을 철의 신께 맹세하는 바요. 다른 드워프 부족 마을이 모두 은사를 적대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황색 바위 부족만큼은 은사를 따르리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우리가 할 말이 아니겠소."

껄껄 웃는 그의 얼굴에는 한 줌의 미련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제 영지민이 돼주세요."

"영지민?"

"나는 제가 관리하는 하인스 영지를 조금 특이한 영지로 만들 생각입니다."

현 대륙은 수많은 종족이 살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서로의 영역을 가지고 있을 뿐 완전히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 말인즉슨, 이곳을 떠나 이주를 생각해 보라 이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뭐, 당장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이곳 황색 바위 부족의 드워프 분들께 이주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내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면?"

"자세한 건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죠. 우선은 협조해주신다는 말만으로 충분합니다."

내 말에 그는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잊어버리려는 듯 털어내 버렸다.

그리고는 무언가 다시 말하려 입을 뻐끔거렸다.

그때였다.

"장로!! 골고다 장로!!"

멀찍이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이곳으로 뛰어오며 골고다 장로를 급히 부른 것이다.

"무슨 일인가."

이에 표정을 지우고 근엄한 얼굴을 한 골고다가 그를 바라보았다.

마을의 파수병을 맡고 있는 전투 드워프였다.

"큰일이오! 마을 안에 침입자가 숨어든 것 같소!"

"침입자?"

그의 말에 골고다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쌔애애앵!!

카앙!!

그리고,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붉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두 드워프를 향해 날아들자 해먹에서 내려온 내가 그대로 팔을 휘저었다.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내 손에 맞아 튕겨 나간 것은 다름 아닌 붉은 색의 날붙이였다.

그것도 금속이 아닌 피로 뭉쳐진 특이한 암기였다.

* * *

"으아아아악!!!"

거의 광기에 가까운 괴성이었다.

"빌어먹을 데이비!!!"

거의 반쯤 이성을 놓은 소년의 발작에 근처에 서 있던 시녀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지만 소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괴성을 내질러댔다.

그는 현재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격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데이비!! 데이비!!!"

계속해서 데이비만 부르짖으며 주변의 물건을 걷어차고 집어 던지는 등 닥치는 대로 파괴 행각을 벌이는 그의 상태는 척 봐도 무척 좋지 않았다.

우선 젊은 소년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머리는 마치 정수리 부분만 크게 개봉했다가 봉합한 것처럼 머리가 한 올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거대 원형 탈모!

더욱 화나는 것은 아예 깔끔하게 빠지는 것도 아닌 정수리 부분부터 한 뼘 정도의 크기만 시원하게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의 저주 아닌 저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칼루스 왕자 저...... 저하. 고, 고정하시옵......."

"뭐냐!! 개굴!!"

말끝마다 따라붙는 이 정체 모를 울음소리!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때를 기다리듯 이 정체 모를 울음소리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요한 시점에서만 갑자기 툭툭 튀어나왔다.

그러니 누가 보면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은 모양새.

어찌나 황당한지 그의 생모인 리네스 왕비조차 얘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지경이었다.

일반적인 병도 아닌 만큼 당연히 궁정의인 람다스의 진찰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낌새를 눈치챌 수 있는 것은 신관 정도. 하지만 그에게 걸려있는 저주는 다름 아닌 끝없이 탄압받고 핍박받던 흑마법사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급 신관들이 진찰한다고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흑마법은 광포하고 파괴적이지만 그만큼 은밀하게 발전되어왔다.

그렇기에 그의 광증에 가까운 그 증상은 쉽게 단서조차 잡히지 않았다.

다만, 칼루스의 입장에선 자신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나라의 1 왕자이자 그 자신의 아래라고 여겼던 멍청한 왕자.

데이비를 만나고 난 후부터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아아악!!!"

"고정하세요. 저하!"

물론, 남들이 보기엔 유별날 정도로 데이비에 집착하는 그의 광증이 도진 것이라고 여길 뿐이다.

"까아악!! 꼬꼬댁!!"

칼루스의 얼굴이 극도의 혼란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어떻게든 숨기고는 있지만 머리에 관한 소문이 이미 왕성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말을 할 때마다 붙는 이 정체 모를 괴이한 울음소리 때문에 더더욱 소문이 기괴하게 돌기 시작했다.

제 삶에서 한 번도 뜻하지 않은 대로 흘러간 적이 없게 살아온 칼루스로썬 그야말로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풉!"

그때였다.

안절부절못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시녀 하나가 칼루스의 기괴한 목소리에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이다.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아주 짧은 웃음소리는 이미 그의 귓가에 들린 후였다.

"저...... 저하!"

"그래, 너희도 날 무시하는구나. 감히 천것들이 감히 나를!!!"

반쯤 이성을 놓은 칼루스는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시녀가 격한 살기에 질려 주저앉아 버렸지만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목을 사정없이 졸라댔다.

"네깟 게 날 무시해?! 죽어!! 죽으라고!!!"

"꺼억!! 꺽!"

온몸을 버둥거리며 발버둥을 치지만 작은 소녀가 그래도 검을 배운답시고 날뛴 칼루스의 근력을 이길 순 없었다.

바닥에 오줌까지 지려가며 발버둥 치던 시녀의 몸이 결국 추욱 늘어져 버리자 주변에 있던 시녀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명백히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향해 무어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곳에는 현재 그를 제지할 수 있는 인간이 없었으니까.

"너희도...... 너희도 날 무시하는 거냐!?"

"아...... 아니옵니다 저하!"

"사, 살려주시어요!"

이윽고 그 불똥이 다른 이들에게도 튀자 시녀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벌벌 떨며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처참하게 죽은 시녀와 같은 꼴이 될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아니야...... 아니야! 너희도 날 무시하고 있어, 그렇지? 으흐흐흐...... 개굴개굴!"

기괴하게 웃어 보이는 그는 금방이라도 이곳 시녀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처럼 섬뜩하게 눈동자를 빛냈다.

어떻게든 그를 진정시켜야 했지만 시녀들은 그저 공포에 질려 벌벌 떨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흐음, 모처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군."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

시녀들을 향해 다가가던 칼루스가 눈을 희번덕 뜨며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창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침입했기에 놀라서 멈췄다?

그것도 그러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침입 여부가 아니었다.

"꺄아악!"

"히익!"

그의 손엔 방금 머리를 따기라도 한 듯 피가 뚝뚝 흐르는 인간의 목이 쥐어져 있었다.

참혹해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그 참상에 시녀들은 거품까지 물며 기절했지만 반쯤 이성이 나가 버린 칼루스는 험악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뭐하는 놈이냐. 감히 예가 어디라고!"

"이런,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페이스라고 합니다."

시리도록 하얀 백발, 섬뜩한 붉은 눈동자를 지닌 사내는 상당히 얍삽한 인상의 미남이었다.

하지만 지독할 정도로 창백한 피부 덕분에 그가 정말 사람인지 의심이 들 만큼 의아한 모습이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히 인사를 올린 페이스가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실은, 얼마 전 저희 쪽에서 꽤 실망을 안겨 드렸다고 들었습니다만."

"너희 쪽이라고?"

칼루스의 말에 그가 스산하게 웃으며 허공에 손을 튕겼다.

우웅.......

동시에 그의 곁 공간이 열리며 누군가가 거대한 십자가에 매달린 채 끌려 나왔다.

상처투성이, 당장 살아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상태가 좋지 않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도 한 번쯤은 본적이 있는 여성이었다.

"넌, 어머니의......."

바로 리네스 왕비가 데리고 다니던 과묵한 시녀, 샤리였다.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더니.

"네놈...... 정체가 뭐지? 그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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