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69화 (69/1,559)

# 6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18화

"흠...... 불사의 근원 자체를 파괴한 건가?"

-조금 달라. 본녀가 보기엔 근본적인 시스템을 흩어버린 느낌인 게야.

"수르트 이 양반은 도대체 검에 뭘 담아둔 거야."

이정도면 인간이 신을 죽일 무기를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불사파괴권능은 내가 담은 권능이 아니기에 그 메커니즘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긴 했지만 그는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결정적인 것들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외에도 오랜 시간 숙성되었고 마감 재료가 사기적이었다는 게 그 힘을 배로 실어준 것이겠지. 단순 불사파괴라고 해서 모든 경우에 적용되진 않았을 게야.

어마어마한 놈이 탄생할 줄은 알았다만.

미묘한 기분에 입안이 텁텁해진 기분이 들었다.

"일단...... 복잡한 건 나중에 생각하자."

담담하게 말한 내가 시선을 한곳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꼭꼭 숨어라."

콰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이 순간적으로 일렁인 듯하지만.

곧이어 내가 방출한 붉은 검기가 그보다 빠르게 허공을 베어 넘겨버렸다.

"머리카락 보일라, 새끼야."

* * *

콰아앙!!

어마어마한 폭음.

뱀파이어 페드키드는 뒤도 보지 않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잡히면 죽는다!

본능적인 공포가 그의 온몸을 지배했다.

'죽는다! 잡히면 진짜 죽는다!'

위세 높고 긍지 있는 귀족인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꼴사납게 도망쳐야 하는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저 미치광이 인간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저놈은 보통이 아니다!'

놈을 자극하기 위해 보낸 마수가 너무도 간단히 썰려버렸을 때. 그리고 놈이 아무런 전조 없이 그를 발견하고 섬뜩하게 웃어 보였을 때.

그는 이미 모든 체면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후였다.

쾅!!! 쾅!!

"머리카락 보인다니까."

오싹한 기분에 반사적으로 온몸을 던져 바닥을 구르자 방금까지 그의 목이 있던 부분으로 붉은 궤적이 섬뜩하게 나타났다.

"흐윽!!"

"계산 안 하고 가셨습니다, 손님."

처음 짐승을 조종해 그를 도발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를 놀리듯 다가오는 인간은 꽤 많은 거리를 달렸음에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인간!!"

격하게 욕설을 토해낸 그가 반사적으로 다시 몸을 던졌다.

처음엔 그도 예상치 못했다. 아니, 처음엔 얕잡아 보고 있었다.

상대는 고작해야 인간이 아니던가. 처음 임무를 부여받았을 땐 왜 그의 상관이자 주인인 상급 뱀파이어, 페이스가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은 긍지 높은 귀족이다. 고작 인간을 잡는 데에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의 주인인 페이스는 일반적인 뱀파이어의 궤를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 그런 그의 은혜를 받은 페드키드 또한 중급의 뱀파이어이지만 가진 권능은 상급 뱀파이어에 못지않은 힘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그가 다룬 마수 또한 엄청난 은혜를 부여받은 만큼 어지간한 인간들의 소드마스터도 쉽사리 죽이지 못할 만큼 강한 존재.

예상대로라면 마수의 힘으로 공포를 자극해 그를 가지고 놀고자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의 생각이었고, 그의 착각이었다.

쾅!!

"커헉!"

순식간에 날아든 괴물 같은 인간이 그를 짓누르듯 제압하자 그의 본능에 생존의 경종이 정신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란 말이냐! 흐. 흐아악! 뭐하는 거야?! 그만둬!!"

"뭐긴 뭐야! 사랑의 교미지!"

"......."

순간적인 정적 끝에 페드키드는 놈이 정말 미친놈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니, 이런 장난도 좀 처가면서 살아야 사는 맛이 나지. 꼭 그렇게 사람을 게이로 몰아야겠냐?"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투정을 부리던 인간은 곧 페드키드를 움직이지 못하게 그대로 짓누른 채 검지와 중지만을 펼쳐 그대로 몸을 강하게 찔러넣었다.

"컥!!"

그러자 격심한 통증과 함께 그의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고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이제 좀 얌전하네."

"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인간! 하등한 종족 주제에 죽고 싶은 거냐! 이걸 풀어라!"

자신이 뭐라 하는 건지도 잊은 채 격하게 소리치는 그를 향해 인간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풀어주는 건 나중이고, 지금은 우선 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말투는 당장에라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미안하지만 자신은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도 입이 무겁기로 정평이 나 있다!

절대 원하는 바를 말해주지 않을 거라고,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그리 말하며 악을 쓰던 그는 곧 인간의 한마디에 우뚝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 미안한데, 내가 남의 머리통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완벽한 마법을 하나 알고 있거든."

그딴 게 존재할 리가, 그렇게 생각했건만.

곧 페드키드는 그의 손에 피워올려 지는 기괴한 검보랏빛의 화염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 * *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은 기괴한 화염이 그의 하반신을 태워버릴 듯 끔찍하게 타올랐다.

[삼매진화]

[흑마법 저주의 낙인]

[병합기]

[심문의 불]

하지만 어째서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워 보이는 검보랏빛 화염은 그의 몸을 일절 태우지 않고 지독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끄아아아아악!!! 뜨거워! 뜨겁다고! 꺼줘! 꺼줘 제발!!"

침, 눈물 콧물을 질질 흘려 가며 버둥거리는 뱀파이어의 모습에 페르세르크의 인상이 콱 찡그려졌다.

-그대, 아무리 적이라 해도 이건.......

"안 죽어 걱정 마."

-본녀가 저놈이 죽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마왕님, 내가 내 목숨 노리는 놈의 사정까지 봐줘야 해?"

침착한 내 질문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대의 말이 맞아, 하지만.......

마땅찮은 말을 찾지 못한 그녀가 우물쭈물하자 나는 곧바로 놈의 몸을 불태우던 화염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뭐, 그러자, 상책이 있는데 괜히 야만적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

-그대가 인지하고 있다면 본녀도 더는 말리지 않아.

쓸데없을 정도로 착해 빠진 이 작은 소녀가 한 세계를 종족 전쟁으로 번지게 한 불씨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담담하게 말하며 내가 벌벌 떨고 있는 뱀파이어를 짓밟았다.

"커헉!"

상처 하나 없지만 정신적인 쇼크가 상당했던 탓일까.

당장 살을 찢어발긴 것처럼 녀석의 동공이 급속도로 증폭되었다.

"자, 많은 건 필요 없고 간단히 가자고."

"끄윽...... 끅......."

"우선 네 정체는?"

"하아...... 하아...... 인간! 내가 그걸 히이익!"

반사적으로 버둥거리며 내 손에서 피워올려 지는 검보랏빛 화염을 바라본 녀석이 바들바들 떨었다.

무서울 만도 하지, 일반적인 화염과 다르게 이건 고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저주이니까.

상대에게 온몸이 타오르는 지독한 통증을 쥐여주면서 결코 죽이거나 상처입히지 않는다.

더럽다고? 간악한 마법이라고?

애초에 목적부터가 불순한 저주에 뭘 더 바랄까.

내게 이 마법을 가르친 로 아이아스는 이것을 써먹으라고 알려준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저주가 있으니 대처를 하라는 의미에서 가르쳐주었다는 소리였다. 다만, 나는 손에 있는 건 죄다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더 해?"

"페...... 페드키드다! 자, 자자...... 자작 급 귀족!"

"호오...... 중급 떨거지가 불사의 권능도 가지고 있나?"

불사의 권능. 귀족들이 귀족처럼 자신만만하게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근원이다. 하지만 페드키드도 보았을 테니 알고 있을 것이다.

불사의 권능을 지니고 있던 마수가 일격에 완전히 침묵해버린 것을.

"작정하고 베면 너 여기서 완전히 죽어. 다음 질문 가자. 넌 목적은 나를 노린 것일 테고, 그 이유는 그 뱀파이어 시녀 아가씨 때문이겠지, 맞아?"

"그...... 그렇다!"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입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내가 가한 고통이 너무 과한 탓에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절로 반응하는 것일 터다.

"그럼 여기서 문제, 너를 포함해서 좀 전의 마수까지, 어째서 불사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내 질문에 그가 바들바들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오만가지 고민을 하는 듯한 그 모습.

말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고, 하기 싫지만 고통이 너무 무서운. 애매한 상황이었다.

조금 더 자극을 줘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끄윽!! 끄르륵!!"

놈이 갑자기 괴로워하며 온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오?"

"난 죽음을 택하겠다!"

그 말이 끝이었다.

그의 몸이 마치 폭탄처럼 부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터져버린 것이다.

콰아앙!!

-금제...... 그것도 사멸이라니, 악독한 저주로군.......

마지막의 발작적인 외침은 분명 그의 의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제를 건 자의 메시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불사의 권능의 사용조차 허락받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쓸모가치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능이 닿지 못한 완전한 침묵은 허무할 정도로 깔끔했다.

"예상은 했지."

순식간에 수천 갈래의 육편으로 나뉘어 터져버린 놈의 행태에 적당히 거리를 벌린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아낼 수 있는 건 딱 여기 까진가?"

-데이비.......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의 중얼거림에 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가 미안해할 게 뭐 있어, 이럴 것 같아서 일부러 천천히 돌려 깎듯이 물어본 것뿐인데. 나머지는 다시 들이미는 놈들 잡아 족쳐봐야지."

내 말에 페르세르크는 미묘한 찝찝함이 들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 * *

저주는 해주가 될 시 그것을 건 이가 풀렸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고?

칼루스에게 걸어둔 저주 중의 하나가 풀렸다는 소리다.

정확히는 휴면상태에 든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어지간해선 그걸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찾아내지 않았는가.

밤낮없이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드워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씁쓸함이 작게나마 몰려왔다.

예상을 못 한 바는 아니었다. 뱀파이어는 제 위신을 깎아내린 존재를 절대 용서하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베어버린 샤리라는 이름을 가진 뱀파이어 시녀 아가씨는 분명 혈통이 꽤나 고귀한 축에 속했던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