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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4화 (74/1,559)

# 7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23화

"아부아!"

"꺄르륵!"

윈리가 깨어난 건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였다.

"몸은 괜찮아?"

"그럼요 오라버니, 오라버니 동생 몸 하나만큼은 튼튼하다구요."

"실없는 소리 하긴."

"홍다니도! 홍다니도 코~ 잤서!"

"처. 청다니도!"

검이 잠도 잔다는 사실을 다시금 들으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꺄르륵 거리며 방 내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정말 신기하네요. 저 아이들이 와서 그런가...... 평소보다 몸이 좋아진 기분이에요."

그냥 좋아졌을까. 은연중에 몸 안에 체류하고 있는 마나의 양이 더 늘었을 거다.

일단은 마법사인 윈리인 만큼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인 두 아이가 내뿜는 힘을 소량 흡수했을 터였다.

"다행이다. 얘들아, 잠깐 나가서 놀고 있을래?"

"네에!"

입을 모아 크게 답하고는 쪼르르 뛰어나가는 녀석들을 보던 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 괜찮아?"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얼마나 달려온 거야. 연락을 하면 차라리 내가 갔을 텐데."

"어...... 어떻게 그래요! 오라버니도 바쁘실 텐데......."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우선 차근차근 설명해봐."

내 말에 그녀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

"처음엔 신관들을 불렀어요. 그런데, 신성력으론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그래서 의원을 불렀는데 의원도 고칠 수 없다고 해서......."

"고칠 수가 없었다고?"

내 말에 안심이 되기라도 한 것일까, 그제야 윈리는 품고 있었던 고민거리를 내 앞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포트나라는 그녀의 호위이자 절친한 친우가 야적들이 쏜 독화살을 그녀 대신 맞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무리하게 추격전을 펼친 윈리가 역으로 함정에 빠진 상황이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윈리는 아마 크게 다치거나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해독은?"

"신관님이 해독주문으로 독을 빼내긴 했는데...... 그때 이후로부터. 온몸에 검푸른 반점이 돋고...... 계속해서 피를 토하고...... 흑...... 흐흑......."

하지만 큰 문제는 해독 이후 병영으로 돌아와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포트나가 밤새 고열에 시달리더니 온몸에 검푸른 반점이 돋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수시로 피를 토하며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신관의 힘도, 의원의 의술도 전혀 먹히지 않는 이 정체불명의 질환 때문에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하던 도중 포트나를 치료하던 신관이 마냥 흘러 말하듯 말했다는 모양이었다.

성흔을 가진 초고위 신관이라면 어쩌면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이토록 급히 하인스 영지까지 오게 한 발단이나 다름없었다.

"......."

-데이비?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나를 페르세르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불러왔다.

-표정이 왜 그런 게야.

'아니. 증상이 익숙해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다시금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윈리를 진정시킬 단어가 떠오르지 않자 나는 묵묵히 그저 윈리의 싱그러운 녹발을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고생 많았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거야. 이번 실수를 되새겨서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흑...... 흐흑, 오라버니. 저 이제 어떻게...... 어떻게 해요? 저 때문에 포트나가...... 흑...... 흑 흐아아앙!"

결국 다시 품에 안겨 엉엉 우는 윈리의 등을 토닥여주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증상이 발현된 건 약 2주 전.

처음엔 몸이 나른한 정도에서 시작한 이 정체불명의 독은 해독작업을 거쳐 완전히 빠져나갔음에도 질병으로 전환되어 끊임없이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검푸른 반점이 온몸에 돋아나기 시작했고 수시로 피로를 느끼며 피를 토한다.

신관에게 그녀를 보였더니 신성력으론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모양이었다.

결국 신관이 아닌 의술에 맡겨보려 했으나 의원들조차 그녀의 병명에 대해서 알아낸 게 하나도 없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좌절하던 중 윈리의 모습을 안쓰럽게 본 신관 하나가 성흔을 가진 이의 힘이라면 어쩌면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녀가 치료를 부탁할 수 있는 성흔의 보유자는 이 대륙에서 단 한 명.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된 윈리는 그 길로 곧장 내가 있는 하인스 영지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고 한다.

현재 그녀가 어떻게든 부탁할 수 있는 성흔을 가진 이는 유일하게 나뿐일 테니 말이다.

"걱정 마. 내가 봐줄 테니."

"저...... 정말요?!"

치료해 준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듣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아끼는 사람이 죽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나는 윈리가 어느 정도 진정할 때까지 다독여 줄 수밖에 없었다.

"베르닐 시종장."

"찾으셨습니까."

고요한 집무실.

영지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상세하게 기록된 서류들을 정리하던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영지 내에 정보 길드가 자리 잡고 있을 거야, 그중에서 가장 정보력이 뛰어나고 믿을 만한 곳을 수배해서 지부장을 호출해줘."

"명...... 받잡겠습니다."

내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법도 하건만, 베르닐 시종장은 묵묵히 알겠다는 듯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아무런 근거도, 아무런 징조도 없이 불현듯 이런 일이 터질 것 같다, 혹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냐고?

내가 윈리의 말을 듣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느끼고 있는 이 싸늘한 기분이 딱 그런 느낌이거든.

"아...... 뭔가 크게 일이 터질 거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데."

"무언가 일이 터졌다 하면 그대는 그것을 크게 이득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그렇긴 한데."

씁쓸하게 답하며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가 늘어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지."

담담하게 중얼거리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상만 보면 딱 한 가지 정말 익숙한 병이 하나 있긴 해."

-그런 병이...... 정말 있는 게야?

"문제는 그 병이 이 대륙에 있을 리가 없는 병이라는 거지."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흐음? 그게 정보 길드를 호출한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게야?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그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려왔다.

"인과율이라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어. 독화살에 맞았고 해독마법을 받았는데 다음날 갑자기 정체 모를 병에 걸린 것처럼 시름시름 앓는다고? 게다가 신관도 의원도 정체를 모를 병이라...... 웃기지도 않지."

애초에 자신들만의 터전이 없어서 왕국들의 변방을 습격하고 약탈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야만족들이 그만한 독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신관과 의원들이 모두 포기할 정도의 독이면 보통 독이 아닌데 말이다.

-이런 경우엔.......

"누군가가 특수한 병균이 담긴 독을 야만족들에게 넘겼거나."

말끝을 흐린 내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녀석이 말하지 않은 경로에서 발병할 만한 원인이 있었거나,"

느낌상으론 전자에 의견이 실리긴 한다만.

무슨 병이건 그 병의 해결 법은 원인에 있는 법이다. 의술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운 것들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이것이기도 했다.

전후 상황파악.

"왔으면 들어와."

묵묵히 선 채 서류를 읽어내리던 내가 서류 더미를 휙 던지고는 조용히 말했다.

"괜히 파악하려 들지 말고."

타인이 보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싶게,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내가 중얼거리자 곧 아주 미약한 존재감과 함께 좀 전까지만 해도 없던 검은 복면의 사내 하나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실력은 있어 보이네.'

"......."

묵묵히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인 그는 전체적으로 검은 무복에 복면을 쓴 사내였다. 밤에 동화되듯 새카만 복장인 그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 부위는 단단하고 커다란 손과 날카로운 눈매뿐이었다.

보통 이들이라면 그 갈무리된 살기에 본능적으로 긴장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 기준엔 아직 못 미치는 은신 실력이라 크게 긴장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필요한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윽고 짧은 침묵 끝에 먼저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바쁠 텐데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하게 되었군."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일단 앉아."

천천히 소파에 앉으며 맞은편 의자를 권했지만 그는 끝끝내 자리에 앉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 나를 대면했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담겨있는 감정은.......

아무래도 긴장감 같아 보였다.

확실히 은신이랍시고 존재감을 미약하게 죽였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냈으니 긴장할 수밖에.

살수들은 제 위치를 발견할 수 있는 이를 극도로 경계하는 습성이 있으니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정보를 사려고 한다. 어디까지 제공할 수 있지?"

내 물음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용히 답했다.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른다고."

그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그럼 그 대가를 지불하면 무엇이든 구해줄 수 있다?"

"충분한 금액만 지불하신다면 근처 왕국의 공주들이 전날 입었던 속옷 색도 알아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입었던 속옷을 구해드리는 것도......."

"쯧, 그런 지저분한 걸 구해서 뭐해."

담담하지만 자신만만한 그 목소리에 내가 헛웃음을 흘렸다.

제 길드의 정보력, 행동력을 확실하게 선전하긴 했다만.

그놈 참 표현 한번 거시기하네.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녀석을 보고 있으니 페르세르크도 못마땅한지 입을 삐쭉이며 팔짱을 꼈다.

그렇게 짧은 침묵이 집무실 내부에 휑하니 감돌았다.

라운 왕국의 수도에서 활동하고 있던 여러 정보 길드들은 뛰어나긴 했지만 딱 작은 소국의 정보 길드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대면하고 있는 이 남자가 속한 정보 길드는 아무래도 그런 수준을 넘어선 대륙적으로 노는 정보 길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확실히 그만한 규모라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이곳에는 현재 수많은 상단과 마탑, 그리고 연금학파가 모여 어우러지고 있어, 그야말로 교류의 장이 되면서 빛이 커질 대로 커지고 있다.

당연히 그림자는 그만큼 짙어질 수밖에 없다.

돈 냄새를 잘 맡는 건 상인보다 오히려 이런 정보 길드가 더 발 빠르기로 유명하니 말이다.

이곳은 새로운 정보가 쉬지 않고 만들어지는 혼란의 장소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대륙 급 규모의 정보 길드라면 눈독을 들여도 이상하진 않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신속하게 구해줄 여력이 충분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내가 조용히 입을 뻐끔거리자 복면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에 언뜻 긴장감이 어렸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나에 대해선 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무언가 말하는 게 절대 가볍지는 않을 거라 판단하고 있을 터, 게다가 자신의 은신까지 간파한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이 아니던가.

절로 긴장한 게 눈에 보일 정도라 안쓰러운 기분까지 든다만, 일단 묻고 싶은 건 물어야 직성이 풀릴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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