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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5화 (75/1,559)

# 7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3권 24화

"그럼 말이야, 팔란 제국의 황녀님의 것은 어때. 그만한 건 구하기 힘든가?"

"......."

-......변태 새끼.

아주 찰나.

진심으로 짜증이 섞인 페르세르크의 투덜거림이 귓가에 들려온 것 같다.

아니, 그만한 미녀 정도면 마음이 동할 수도 있지.

아직 어린 나이이긴 하다만 그녀도 나도 이제 이 대륙에선 홀로 자립하는 성년의 나이를 지나지 않았던가.

딱히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지 않은 채 내가 그를 직시하자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짐작하려 애쓰는 듯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진심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복잡하게 고민하는 그를 지켜보기를 잠시, 그는 자신이 내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내놓았다.

"저도...... 목숨은 소중한지라."

미묘하게 한숨 섞인 말투엔 피곤함이 서려 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담담하게 말한 내가 그를 향해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가볍게 던져 넘겼다.

"선금이다."

금화가 담긴 돈주머니를 가볍게 받아 챙긴 그가 생각 이상으로 묵직한 무게에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150골드다. 내 동생, 윈리의 휘하 기사 중 [포트나]라는 이름의 여성마법사가 있을 거다. 그 여자의 최근 행적을 조사해봐."

"여자의 뒷조사입니까."

"의료활동이라고 해주면 좋겠네. 누굴 변태 스토커로 보나."

내 말에 그의 눈이 미묘하게 식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주제에 좀 전엔 팔란 제국 황녀의 속옷을 들먹였는가?

페르세르크와 대화가 되진 않지만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이 남자도 같은 생각인 듯 나를 보는 눈치가 심상치 않다.

'정보확인'

삐릭

-성명 : 잭(아이나 헬리샤나)

-나이 : 124

-성별 : 남(여)

-종족 : 인간(다크 엘프)

-칭호 : 살성(殺星)

-상태 이상 : 무(無)

-특이사항 :

마스터 초입 암살능력 겸비.

대륙 급 정보 길드 메아리의 소속4부장 일좌.

정보 길드 내에서 [잭]으로 활동 중.

-현재 심리 :

혼란.

'움? 여자였어? 게다가 다크 엘프?'

문득 사내의 정보에 적힌 종족란에서 멈춘 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딱히 피부가 검다거나 귀가 길어 보이진 않는다.

-애초에 다크 엘프라고 피부가 검지 않아, 마법사와 흑마법사를 나누는 것처럼 그 계열이 다를 뿐 모두 같은 엘프이지.

'괜히 들쑤셨다간 좋은 꼴 못 보겠네.'

-당해줄 그대인가?

'설마.'

속으로 피식 웃으며 내가 말을 이었다.

"가능한가?"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때였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조용히 돈주머니를 내게 다시 건네준 것이다.

"이건 무슨 의미지?"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공짜로 해주겠다고?"

"그것도 아닙니다."

묵묵히 답한 그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대금은 차후에...... 계산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떼어먹으면 어쩌게?"

픽 웃으며 묻자 그가 묵묵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는 것과 다르게 색골 기질은 보이십니다만, 치졸하게 약속까지 떼어먹을 분은 아니신 듯하여 제안하는 겁니다."

내 행보를 조금 지켜보고 마음에 들면 연줄을 만드시겠다?

건방지긴 한데 마냥 나쁘지 않다.

다크 엘프라는 종족 때문에 조금 놀라긴 했다만, 애초에 성별까지 바꿔 숨길 정도면 종족 숨기는 거야 무에 어려울까.

듬직한 체구지만 실은 저게 가짜 모습이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좀 더 심연의 권능을 깊게 사용하자 아주 흐릿하게 호리호리한 체구에 아담한 키를 가진 소녀의 모습이 얼핏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신의 의지에서 흘러나온 파편이 파생한 힘답다.

"그건 네 조직의 의견인가?"

"제 개인적인 제안입니다."

"좋아, 마음대로 해."

"그럼......."

짧게 묵례한 뒤 그는 마치 연기가 되듯 흩어져 버렸다.

"은신 능력에 좀 더 신경 쓰시겠다? 자존심은 있어 가지고."

피식 웃으며 나는 좀 전 그, 아니 그녀를 향해 사용했던 정보확인의 내용을 곱씹었다.

"다크 엘프에 성별까지 숨겼다라......, 뭣보다 메아리라는 길드는 대륙에서도 유명한 정보 길드 아닌가?"

-돈 냄새를 잘 맡는 건 상인뿐만이 아니지. 그것보다.

말끝을 흐린 그녀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그대는 헬리샤나라는 성에 대해 알고 있는가?

"헬리샤나?"

-모르는가?

"아까 그 엘프의 성인 것 같은데 뭔가 있어?"

내 질문에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면 상관없는 일인 게지. 잊어버리게.

"싱겁기는."

그녀와의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 * *

장기간 달려온 탓에 윈리는 상당히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지만 한 치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따라나섰다.

다만 시안이 급한 터라 제 몸도 돌보지 않고 달려온 탓에 윈리의 몸은 며칠간 이어질 행군을 견딜 만큼 체력적으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심력 소모도 심한 마당에 전장을 활보했다곤 해도 기본적으로 체력이 달리는 마법사가 바로 윈리가 아니던가.

"네 상태는 내가 잘 알아, 여기에 남아."

"싫어요! 저도 따라갈 거에요!"

"고집부리지 마라."

엄한 목소리로 다그쳐 보지만 윈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무리하게 달려온 탓에 제 체력상태가 얼마나 나쁜지는 알고 있는 건지.

승마라는 게 의외로 체력 소모가 심한 편이다.

문득 상황이 이 지경인데 바리스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닌척하면서도 제 쌍둥이 동생을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녀석인 만큼 나름의 사정이 있으리라.

"오르뎀 영지까지 가려면 며칠은 달려야 해. 마차를 타면 더 느려질 거고, 네 말대로 증상을 살펴보면 시간이 급해, 오히려 방해된다."

에둘러 쓴소리로 타박해 보지만 윈리는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다며 울먹거렸다.

-그대는 왜 이렇게 저 쌍둥이 동생 한정으로 약해지는지 모르겠군.

"저도 갈 수 있어요 오라버니! 저는 약하지 않아요!"

할 수야 있겠지, 정신적으로 버티면 어떻게든 가는 게 문제일까. 다만 내가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소소한 고민에 어찌할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찰나,

의외의 부분에서 그런 고민이 해결되어버렸다.

* * *

"반갑습니다. 5급 마스터 율리스라 합니다. 과분하나마 적탑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마법사는 제 소개를 할 때 자신의 성별은 떼어내고 급수와 숙련도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5급 마스터.

마나의 맹세를 한 이들은 그 등급을 속이는 걸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다.

즉 눈앞의 이 붉은 색의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20대 후반의 청년은 5 서클 마스터 급의 마법사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5 서클.

마스터 초입에 가까운 실력으로 제 나이를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경지나 다름없다.

어지간한 소드마스터급 이상의 재능과 노력을 필요로 할 테니 말이다.

검이 육체를 단련한다면 마법은 정신과 두뇌를 강화하는 계통.

나이 4~50에 평생을 바쳐 극소수 마스터가 되는 이들과 다르게 그는 아직 30도 안 된 나이로 마스터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는 소리였다.

내 경우는 시간의 규격이 다르니 예외로 치고 있다만.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율리스 5급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런 누추한 영지까지 찾아오시다니, 영광이네요."

알기는 무슨, 사실 관심도 없었다. 그와 만나 이렇게 대화를 나눌 이유도 없었고.

대륙적으로 유명하건 말건 그는 중부대륙의 중앙 마탑 인물. 엮여봐야 귀찮은 일밖에 더 생길까.

"누추하다니요. 현재 동대륙에서 가장 반짝이고 있는 영지인 것을요. 게다가 윈리 왕녀님께서 자랑하시던 분이라 한 번쯤은 뵙고 싶기도 했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그의 말투엔 빈정거림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이미지를 생각하자면, 정직하고 너무 성실해서 문제인 의기로운 청년 정도일까.

다만, 이미 머릿속에 그에 대한 위험수치는 최대치까지 오른 후였다.

'위험한 놈이다!'

-그대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제 동생과 동행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경계할 이유가 있는가.

있지, 충분히 있지.

감히 어디에다가 검은 손을 뻗는단 말인가.

듣자 하니 그는 온화한 성품에, 마탑 측에서도 혀를 내두르며 인정한 초유의 천재라는 모양이다.

게다가 출신도 좋은 편!

출신, 재력, 성격, 외모, 능력.

그 어느 것도 뒤떨어지는 게 없는. 그야말로 엄마 친구 아들이 바로 율리스 5급이라는 이 청년이었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 마스터가 된다는 메리트는 상상 이상으로 뛰어난 편이다.

거, 키도 훤칠하시네.

문제는 그런 그가 윈리와 왜 인연이 있냐는 점이었다.

"한데 율리스 5급 같은 분이 제 동생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신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보자 윈리가 화들짝 놀라며 내 팔을 툭툭 쳤다.

"오...... 오라버니!"

"하하, 괜찮습니다. 저라도 경계할 테지요. 실은 하인스 영지에 볼일이 있어서 오는 길이었습니다만, 우연히 윈리 왕녀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윈리였다.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안 되겠다. 이 자식 지금 처리하자'

-참아야 하는 게야, 게다가 윈리 저 아이는 그대의 딸도 아니지 않은가!

순식간에 무형의 힘으로 내 팔을 낚아챈 페르세르크의 외침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손에 두른 기검을 휘둘러버릴 뻔했다.

'후우.......'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기검을 사라지게 만든 내가 쓰게 웃어 보였다.

"부족한 동생을 도와주셨다니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듣자 하니 오는 길에 만난 겁 없는 산적들이 율리스를 노린 것을 말을 타고 달려오던 윈리가 마법으로 죄다 쫓아내 버렸다는 모양이었다.

"해서 어떻게 보답을 드릴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이리 찾아뵈었습니다."

"아...... 네."

"실은 부족하나마 제가 화염 마법 이외에 공간 마법 분야에도 일면식이 있어서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 공간이동 마법!"

놀란 윈리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보통 마법사는 한 가지 분야를 평생토록 파고든다.

하나에 꽂혔다기보단 다른 계통까지 익히기엔 삶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마침 필요물자를 옮기기 위해 소형 마나 게이트를 동반해서 가지고 있거든요."

"소...... 소형 마나 게이트!"

놀란 윈리의 외침에 내가 그녀를 나지막이 바라보았다.

"대단한 건가?"

"그...... 그럼요! 오라버니! 설치형 거대 마나 게이트와 다르게 소형 마나 게이트는 마탑의 마법사들 중에서도 보유한 이가 극히 드문 초 고급품의 아티펙트인걸요!"

"흐음......."

"5 서클 이상의 공간이론에 정통하고 하이 위저드에 근접한 마나를 보유한 이가 사용할 수 있는 대륙 급 비보랍니다. 설마 그중 하나가 적탑에 있었을 줄이야."

본래는 마탑의 중요 물품이 중간에 훼손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그가 직접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윈리도 일단은 마법사. 그렇기에 그녀 또한 여타 다른 마법사에 못지않은 왕성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지니고 있다.

결국 나는 일단 그를 처리해버리는 걸 보류하기로 했다.

소형 마나 게이트라면 큰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윈리는 공간계통이 아니라 해도 일단은 마법사. 공간이동마법의 반작용도 거의 받지 않을 터.

장거리 텔레포트는 6 서클 이상이니 지금의 나로선 사용하기 상당히 번거롭다.

"그럼,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내가 손을 내밀자 그 또한 하하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미묘하게 손에 힘이 들어간 탓일까. 그의 낯빛이 약간 창백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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