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4권 1화
31. 의학 전선 참전!
"뭐 하는 겁니까!!"
정중하고 차가우면서도 분노가 서린 노호성이었다.
동시에 칼날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목소리의 주인공이 낚아챘다.
"당장 죽어가는 환자에게 뭐하는 짓이냐 물었습니다."
나를 막아선 사내는 붉은 제복에 깐깐한 인상의 사내였다.
붉은 천으로 코와 입을 막고 있는 그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들어와 있는 내 존재에 의문을 품은 듯 보였다.
"이곳은 관련자 이외에 출입금지구역입니다. 대체 뉘신데 이곳에 들어와 계신 겁니까."
그의 말에 나는 품 안에서 작은 패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왕족의 신분증명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라운 왕국 1 왕자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크흠...... 인사가 늦었군요. 고르네오 남작이라 합니다. 부족하나마 중앙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 중 일좌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개에 복식을 훑어보니 확실히 링튼 백작과 같이 붉은 복장에 특유의 문양이 새겨진 배치를 달고 있었다.
"그렇군요."
"다만 왕자님이라고 하여도 이곳은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나가주십시오!"
요지부동으로 나를 막아서는 행동에 나는 들고 있던 칼날을 내려놓고 물었다.
"제가 있으면 안 됩니까?"
"지금 이 영지에 퍼져있는 병은 특수한 상황에서 호흡기를 통해 감염...... 이런! 일단 이것으로 코와 입을 막으십시오! 어서!"
말을 하던 그는 곧 내가 얼굴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놀라며 품 안에서 작은 천을 내밀었다.
"밖은 감염확률이 낮지만 이곳에는 대량의 감염자가 있습니다! 어서요!"
그의 강압적인 요구에 말없이 천을 받아들자 이어서 내 등을 떠밀듯 몸을 들이밀었다.
"왕자님께서 이 일로 인해 이 영지로 오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성흔을 가지고 계시다고요. 하지만 이 병은 성흔의 힘으로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외침에 내가 그를 멈춰 세웠다.
"치유할 수 없다는 건 직접 확인하신 겁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성흔을 보유한 이는 거의 보기 힘드니까요. 다만 이전에 고위 신성력을 지닌 대신관 분께서 이 같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아아아아악!!!!"
그때였다.
내 등을 떠밀던 사내와 내 귓가로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진 것이다.
이에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자 침대에 묶여 비명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이런!!"
그 모습에 고르네오 남작은 나를 막던 것도 잊었는지 급히 환자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고 곧 상태를 확인하며 소리쳤다.
"언제부터 이랬던 게야!!"
"그...... 그것이......."
"페인 킬러를 가져와! 일단 진정시키게!!"
당황했으면서도 단호하게 처방을 내리는 그의 행동을 무시한 채 나는 환자의 상태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참혹하군.......
"피거품에 눈에서 피눈물 같은 진액. 전신의 반점이 불규칙하게 이동."
-데이비?
내 중얼거림을 들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불렀지만 나는 과감하게 관과 약병을 가지고 오는 이를 막아섰다.
"뭐...... 뭐하시는......."
"지금 그거 투여하면 저 환자 죽어."
"예, 예?!"
"관 이리 내놔."
깔끔하게 소독된 관을 빼앗듯 챙겨 든 나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들 사이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리고는 비명을 지르는 사내의 입을 틀어잡고 마구잡이로 흘러나오는 피거품을 모조리 손가락으로 걷어냈다.
잘못 물리면 손가락 날아가는 건 일도 아닌 위험한 일이지만 일반인의 치악력으로 아작 날 만큼 무르지 않다.
"이...... 이 보십시오 뭐하는?!"
갑작스런 내 난입에 놀란 고르네오 남작이 뭐라 소리치려던 찰나.
말없이 그의 상의 부분을 더듬던 내가 과감하게 옷을 찢어버리자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뜬다.
시간이 생명인 위급환자 앞에서 뭐하는 짓인지.
'멍울이 두 개...... 아니 세 개로 늘고 있다.'
기포의 존재에 내 눈이 가늘게 뜨여졌다.
폐 속에 바이러스가 엉긴 피가 고였다. 당장 뽑아내지 않으면 급사(急死)는 확정적인 상황.
'아래쪽에서 8mm, 우측에서 3mm. 티끌만큼만 오차가 나도 이 인간은 죽는다.'
짧게 숨을 고르며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자신을 다독이듯 중얼거리며 검지와 중지 손가락 끝으로 사내의 갈비 부분을 더듬던 내가 과감하게 끝이 날카로운 관을 들어 올렸다.
치잉!
동시에 내 손에서 옅은 빛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환자를 잡은 손에서 한 번, 관을 쥔 손에서 한 번.
[통각 경감]
[홀리 코팅]
우웅.......
신성 마법도 마법의 일종, 방식만 다르지 더블캐스팅의 난이도는 상당한 편이다.
순식간에 두 가지의 신성 마법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미련 없이 관을 그의 갈비뼈를 넘겨, 폐 속으로 찔러넣었다.
푸욱!
섬뜩한 파육음에 고통 어린 몸부림을 칠만도 했건만.
버둥거리는 환자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건지 그저 비명을 지르고 피거품을 물며 발버둥 칠 뿐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고, 그리고 천천히 밀어 넣던 관의 끝을 따라 손끝을 움직이던 내가 좀 더 과감하게 관을 찔러넣었다.
내 기괴한 행동에 놀란 고르네오 남작은 내가 관에서 손을 떼기도 전에 달려들어 내 멱살을 잡았다.
"이이!! 사람의 목숨을 무엇으로!!......."
격분한 그의 분노는 절절히 느껴질 정도로 짙었다.
자기 일을 빼앗겼다는 게 아니라 환자를 너무 함부로 다뤘다는 이유 때문이리라.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내 행동은 의료활동이라기보단 누군가를 죽이는 것 같은 과격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분노에 나는 말없이 턱 끝을 까딱여 환자를 가리켰다.
"뭐라고 말을 해 보......."
내 행동에 더욱 분노한 것일까. 왕자고 뭐고 한 대 칠 것처럼 행동하던 그는 곧 내 턱 끝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가 그대로 멈칫 굳어버렸다.
"쿨럭...... 쿨럭......."
좀 전까지 숨도 못 쉬며 고통스러워 하던 사내가 힘을 빼고 털썩 드러누워 짧게 기침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푸슉.......
그리고 내가 꽂아넣은 관에서 기다렸다는 듯 검푸른 액체가 줄줄 새 나오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동안은 저렇게 액체를 빼주지 않으면 호흡곤란이 다시 올 것이다.
"그거 이리 주세요."
이후 멍하게 굳은 고르네오 남작을 가볍게 털어낸 나는 곁의 의원이 가지고 있던 작은 시험관을 받아 그 액체를 망설임 없이 챙겨 들었고 뚜껑을 닫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혈시키고 봉합하면 됩니다. 참고로 저런 증상 발병 후 24시간 안에 페인 킬러 포함, 진통제를 투약하면 저 환자 쇼크사하니 투약하지 마세요. 그리고."
말끝을 흐린 내 시선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고르네오 남작에게 꽂혔다.
"성흔을 가진 사람은 어지간한 질병에 면역입니다."
신의 힘 클라스가 보통은 아니거든.
멍청한 표정으로 할 말도 잊은 채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무시한 채 나는 망설임 없이 검푸른 액체가 담긴 시험관을 가지고 그곳을 빠져나와 버렸다.
그리고, 내가 나가는 순간까지도 치료소 내부에 있던 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 * *
치료소에서 있었던 소동을 뒤로 한 채 영주성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상심하고 있을 윈리의 방을 찾았다.
"앗 오라버니!"
방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울상을 짓고 있던 윈리가 눈을 크게 뜨고 허둥지둥 일어났다.
"오셨군요."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율리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빨개진 얼굴로 허둥지둥거리는 윈리는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오...... 오라버니, 혹시 들으...... 셨나요?"
"뭘?"
"아...... 아니에요!!"
화들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묘한 분위기에 율리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율리스는 그저 묵묵히 웃어 보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윈리와 대륙 최고 신랑감 중 하나라 불리는 율리스라.......
확실히 저 나잇대의 소녀라면 얼굴을 붉히고 호감을 품기 마련이겠지.
결국 윈리도 소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그러니까 저 아이는 그대의 딸이 아니래도!
페르세르크의 외침은 내 귓가에 닿지 않았다.
"몇 가지를 좀 알아봤습니다. 현재 이 영지에 와있는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은 두 명. 링튼 백작과 고르네오 남작입니다. 아, 참고로 뒤에 붙은 계급은 과거의 계급일 뿐 이들의 소속은 중앙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입니다."
"의회원이요?"
지친 얼굴로 약차를 노려보던 윈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우선 중앙 질병 관리단에 대해서 알려드려야겠네요. 괜찮겠습니까?"
"마침 궁금했던 참입니다."
"아하하. 제가 알아오길 잘했네요."
기분 좋게 웃어 보인 그는 곧 종이 위에 깃펜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아래로 원을 세 개 그리고 그 밑으로 원을 15개 그려 넣었다.
"우선 중앙 질병 관리단의 계급체계도입니다. 큼지막한 것들만 설명하는 게 효율적이겠지요."
"흐음......."
"중앙 질병 관리단은 3 황제의 회담으로 만들어진 치료활동을 목적으로 한 단체라는 건 알고 계시지요?"
"일단은 그리 알고 있습니다."
뭐라 해도 대륙 공식 최고 규모의 의료단체다.
"그 계급에는 1명의 총수와 3명의 의장, 그리고 15명의 의회원이 있습니다. 이 아래로 기사단이나 수많은 의학계통 관련 인물들이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이들이지요."
"3명의 의장은 3 황제입니까?"
"눈치가 빠르시네요. 그리고 1명의 총수는 다름 아닌 성국 발샤스의 교황 성하입니다. 의도가 좋은 이 일에 지원을 하기 위해 참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외상은 회복마법으로 금방 고칠 수 있지만 질병은 의외로 구멍이 많다.
그렇기에 질병 관리단의 창설 목적 자체는 제법 투명하고 건설적이었다.
"그 아래로 15명의 의회원이지요. 대부분 뛰어난 업적을 이뤘거나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큼 대단한 의술을 지닌 이들입니다. 다만, 개인적인 용무를 배제하기 위해 모두의 개인정보가 말소되어있다고 하더군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정보까지 말소하고 활동하는 양반들이라.
광기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현재 이 영지엔 두 명의 의회원이 있습니다. 링튼 백작과 고르네오 남작이지요. 뭐, 뒤에 붙은 직급은 이제 와선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그저 호칭에 불과합니다만."
말끝을 흐린 그가 쓰게 웃어 보였다.
"중요한 건 이들이 3 황제는 물론 국가 연합의 권한을 위임받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링튼 백작의 말에는 정당성이 존재해요."
즉, 이 영지에 발병한 전염병을 막기 위해 파견된 그들의 행동에는 정당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게 무분별하게 영지민을 다 죽여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