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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79화 (79/1,559)

# 7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4권 3화

"서부 콘타스 제국 산하 영지의 경우 어땠습니까. 결국 영지민 전원이 죽었지요. 게다가 병이 옮은 의원에 기사단도 수십 죽었습니다."

"그것은......."

"그때에도 당신은 있었지요. 고르네오 남작. 어떻소,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을 챙기는 겝니까? 티끌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걸 잡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깟 자존심!...... 후우...... 뭐 좋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꾹 참는다는 듯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왕자님께서는 꽤 자신하시는군요. 정말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겁니까?"

"부정 안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왕자님이 이 나라의 1 왕자님이시기에, 또한 특별 권한을 가진 성흔 보유자이시기에 찬성하는 겁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인간의 생명에 대해 허투루 생각하신다면! 반드시 왕실에 책임을 묻겠습니다!"

제 나라 국민도, 제가 돌봐야 할 영지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초점을 환자들에게 맞추었다.

확실히 나 같아도 믿지 못할 이에게 권한 일부를 넘기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적어도 후회는 안 하게 해드리죠......."

빙그레 웃으며 말해주자 그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밖으로 나서버렸다.

반대로 링튼 백작은 느긋한 시선을 유지한 채 내게 물어왔다.

"왕자님을 믿어드리겠습니다, 하하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요."

"배려에 감사드리지요."

"아니요. 왕자님께서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의학지식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아주 극히 드물게 나타나곤 했습니다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그런 지식을 배웠는지 물어봐도 될는지요."

그의 질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회랑에 있는 다른 세계의 신의 히포크리아에게 배웠다고 말하랴.

믿을 리도 없거니와 말해줄 이유도 실상 없었다.

* * *

정식으로 내가 의료활동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은 윈리는 불안해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에게 든든한 것은 질병 관리단이 아니라 나였던 모양이었다.

당연히 내가 의외의 의학지식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 보이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내 혹시라도 자신들이 도울 게 없는지, 또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달라는 의사까지 내비쳤다.

"적탑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제 개인 권한으로 유용할 수 있는 자금도 상당하니까요. 이외에 마법적인 처리가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호의는 고맙지만 실상 필요 없었다.

이후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치료 천막에 들어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검푸른 액체가 담긴 시험관을 몇 개 더 구한 뒤 미리 준비해둔 시험관에 나누어 담았다.

아트마이트 광석.

단단한 고체의 광석이나 일정 온도에서 장시간 녹일 시 끈적끈적하고 질기게 변한다.

그것을 가공해서 만드는 것이 바로 유리관이었다.

실상 티오니스 대륙에선 유리기술이 크게 필요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리라.

링튼 백작은 기왕 참전하기로 한 것 확실히 지원하겠다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정보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자잘한 정보들은 상당히 여러 가지 가정을 내세울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래도 대륙 최고 의원집단답다는 건지."

서류뭉치 안에 든 경과보고서나 자료들을 스윽 훑으며 중얼거렸다.

기왕지사 시작한 것이라면 완벽하게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내 행동을 의회원 중 하나인 고르네오 남작이 못마땅하게 바라보긴 했지만, 그것까지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데이비 왕자님, 말씀하셨던 환자들의 분류가 끝이 났습니다."

시험관의 변화를 지켜보던 중 내가 말해두었던 부탁을 마쳤는지 관리단의 의원 두어 명이 다가와 경과를 보고 했다.

"자, 그러면 일단 시간을 좀 벌어보자고."

항체가 완성될 때까지의 예상시간은 약 나흘.

그때까지 영지민들 중 누구도 죽게 하지 않으리라.

* * *

"괜찮겠습니까."

노령의 사내의 입이 열렸다. 나이는 지긋해 보이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거대한 풍채와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은 그가 절대 범인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콜리오 백작"

콜리오 백작.

전 린디스 황실의 기사단장이며 현재엔 중앙 질병 관리단의 산하 기사단인 멸재(滅災) 기사단의 단장 중 한 명인 사내.

과거 린디스 제국에서 위용을 떨치던 소드마스터가 바로 그였다.

"라운 왕국 1 왕자의 일 말입니다. 만약에 그가 정말 뭐라도 해낸다면......."

"그렇지요. 중앙 질병 관리단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겠지요."

대륙 최고의 의료집단이라 자부하는 작자들이 수년간 해결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것을 아직 20세도 되지 않은 새파란 소년이 해결하려 나섰다.

물론 여기까지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링튼이 보기에도 그 데이비라는 소년에게는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성흔은 신성한 힘이지 지식을 전달해주는 흔적이 아니다. 그 말인즉슨 그가 개인적으로 이것을 알아챘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서 의술을 배웠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자칫 자질을 의심하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고르네오 남작처럼 거부했다 해도 저들은 항변하지 못했을 테지요."

콜리오 백작의 말에 링튼은 그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면 어찌......."

"다만, 콜리오 백작."

"예."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다 좋은 것 아니겠소?"

그의 미소에 콜리오 백작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렇군요."

"차라리 이렇게 된 것 그 데이비 왕자가 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하면 뭐 어떻소"

그리 말하며 링튼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서로 윈윈하는 겝니다. 그에게도 저희에게도. 정체된 의학도 발전하고 명예를 얻을 이들은 명예도 얻고, 서로 윈윈하는 거 아니겠소."

그 명예가 누구의 명예가 될지.

콜리오 백작은 따로 그 말을 꺼내놓지 않았다.

32. 항체, 그리고 움직임.

"링튼 백작의 말대로 중앙 질병 관리단은 왕자님의 의견에 맞춰 현 치료방침을 모두 왕자님께 맞춰드리기로 했습니다."

"큰 결정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다못해 제가 곁에서 지켜보겠습니다.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되어야겠지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그것도 굴러온 돌이 돌멩이를 흉내 내는 흙더미라면 박힌 돌의 반발이 보통이 아닐 수밖에 없다.

"실제로 왕자님의 의견을 수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르네오 남작."

"잊지 마십시오, 의술은 명예를 위한 발판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억지 같지만 믿기 힘들어도 믿으세요. 다른 이도 아니고 윈리와 바리스의 영지민들을 죽게 할 생각은 없으니."

"......."

"이 병은 고열에 체온이 제멋대로 변하고 시시각각 온몸을 녹여 먹는 병, 아니 변종 바이러스입니다."

"그건 무슨......."

융해 가속바이러스는 처음 발병했을 땐 큰 차이가 없다.

"일단 바이러스는 사람의 몸에 스며들면 일정 기간 잠복기를 거치지요. 그리고 그 잠복기가 끝이 나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며 신음하는 환자의 팔을 잡고 몸 전체를 꾹꾹 지압하기 시작하자 침상에 누운 환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으윽......."

"조금만 참아. 금방 통증은 가라앉을 거다."

그리 말하며 나는 다시 설명하듯 증상을 늘어놓았다.

"처음엔 근육이 녹기 시작합니다. 이후 관절과 연골을 시작으로 전신의 뼈가 녹아내리고."

"......."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죠, 뼈가 모두 녹아내리면 그다음은 장기. 직장과 고환부터 시작해 신장, 대장, 소장, 위로 올라오며 췌장, 간, 위장."

내 설명이 계속될수록 고르네오 남작의 얼굴에 놀라움이, 그리고 곧 놀라움을 넘어 경악이 어리기 시작했다.

내가 발병환자의 초기부터 말기 증상까지 훤히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병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병이니까.

"그때쯤 되면 전신에 있는 구멍으로 몸 안의 것들이 녹아내린 액체가 흘러나오는데 그게 반점의 색처럼 검푸른 색, 그래서 누가 보면 악마처럼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겠지요."

내가 왜 이런 걸 설명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데이비 왕자님, 당신은 설마 이 병을......."

"뭐, 이곳에서의 정식명칭은 [악마의 피]이지만 다른 곳에선 이렇게도 부릅니다."

융해 가속 바이러스(Melting Acceleration Virus).

"다른 곳......융해가속 바이러스."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보통 이 병을 본 의사들은 다들 갖은 방법을 쓰다가 한 가지 결론에 이르죠. 약물만으론 도저히 치료가 안 되니 근원을 찾아서 절개해야 한다고."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

"제 생각대로라면 열에 아홉은 시술 도중 사망했을 테고, 나머지 하나도 다시 증식한 바이러스에 완전히 아작이 났을 텐데."

제 말이 틀렸습니까?

고르네오 남작의 표정이 아주 볼만하게 떨리고 있다.

"으읏...... 나으리. 조금...... 조금 편해졌습니다요......."

"그래, 고통스럽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뎌. 네가 살겠다면 나는 반드시 널 살려주마."

"가, 감사합니다요......."

환자는 고작 평민. 이놈의 왕정체제 대륙에선 한 명 억울하게 죽어 나가도 묻히는 게 부지기수인 사회적 약자 계층.

하지만, 환자인 이상 결국 내게는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내게 의술을 가르쳐준 이와의 약속 때문에라도, 나는 의술에 한해서는 절대 협상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말한 물건들은?"

"말씀하신 곳에 준비해두었습니다."

"허억!"

내 말에 갑작스런 남성의 대답이 들려오자 곁에 있던 고르네오 남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좀 전까지 기척도 없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으니 놀랄 법도 했다.

"좋아, 수고비는 외상 달아놓고 사흘 내로 끝장을 보자고."

내 말에 다시금 흩어지듯 사라지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고르네오 남작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뒤따라왔다.

* * *

그로부터 사흘.

고르네오 남작은 솔직히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세상에, 색이 변하고 있어요."

"검푸른 색이 어떻게 다시 붉은색이 되는 거지?"

신기하다는 듯 말하는 작은 소녀와 뿔테안경을 쓴 사내의 말은 그의 귀에 들려오지도 않았다.

"이게 어떻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기지 않는 상황은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내가 말했죠? 사흘 내로 끝장 볼 거라고."

"오라버니!!"

"이제 적당히 상황을 보고 투약만 해주면 돼."

"흑...... 흐흑, 오라버니 정말 고마워요......."

결국 울음을 터드리며 데이비 왕자에게 안겨드는 작은 소녀, 윈리 왕녀의 모습에 고르네오 남작은 허탈하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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