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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0화 (80/1,559)

# 8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4권 4화

"세상에...... 믿기지 않는군!"

절로 탄성을 흘리며 붉게 변한 액체를 보던 그가 소리쳤다.

"설마 정말 백신을...... 만든 겁니까?! 그럴 리가...... 그 어떤 약을 써도 효과도 나지 않았는데!"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현미경이 있으면 좋겠다만...... 그런 건 없으니."

현미경이 뭔지는 그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항체라니...... 항체라니요! 그동안 이 분야에 뛰어든 내로라 하는 의원들이 모두 달려들었지만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이 항체였습니다!"

"쉽진 않죠."

빙그레 웃는 그 모습에 고르네오 남작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몸에는 바이러스가 한번 침투했을 때 그 바이러스를 기억하고 다음을 대비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것이 항원과 항체의 관계.

다만, 고르네오 남작이 알고 있는 이 악독한 질병은 항체가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도 뛰어난 의원이었기에 그것을 몇 차례고 시도한 경험이 있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

그런데 눈앞의 이건 무엇이란 말인가.

이 병의 해결법을 찾기 위해 보낸 3년간 그렇게 찾아 헤맸던 결과가 눈앞에 있다.

"하...... 하지만 이게 이렇게 뚝딱 만들어질 만한 게 아닌데......."

"보통 의약에 쓰이지 않는 걸 넣거든요. 고르네오 남작님,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데이비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을 떼어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바늘에 만들어둔 투명한 액체를 발라 검푸른 피 위에 쿡 찔러넣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푸른 액체가 마치 도망치듯 바늘에서 멀어져 한곳으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검푸른 색이 빠지며 남은 것은 본래 사람이 가진 붉은 액체, 즉 피였다.

"사실 이 융해 가속바이러스는 말입니다."

정확히는 생존 의지를 가지고 사람의 몸을 전략적으로 공략하는 생물이라 보는 게 옳아요.

그것도, 아주 악질적인 기생수 말입니다.

그 설명에 고르네오 남작의 눈동자가 서슴없이 떨렸다.

"그러니 뭐라도 하려면 이 빌어먹을 기생수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향.

거기에 필요한 건 몇 가지 약초. 그리고 약으로 절대 쓸 수 없다고 알려진 독초 몇 종.

"하하, 처음엔 약초의 이름이 달라서 찾는다고 고생 많았어요."

이어지는 말을 들은 고르네오 남작, 그리고 같이 이야기를 듣던 윈리 왕녀와 율리스 5급까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도대체 그걸 어디서 알아낸 것일까 하고 말이다.

* * *

어디까지 알고, 또 뭘 더 알고 있는 겁니까.

뒷말을 꺼내려던 고르네오 남작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래서야 마치 취조라도 하는 꼴이 아닌가.

그런 그의 시선에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데이비는 느긋하게 준비해둔 시험관들을 건네 내밀었다.

"한 사람당 투약량은 50분의 1입니다. 한 병당 50명이 정확하게 나눌 수 있게 투약하세요. 눈금이 있으니 이정도는 부탁드려도 되겠지요?"

"아, 네."

"한번 넣는다고 곧바로 완치되어서 펄펄 날아다니진 못합니다. 어느 정도는 주기적으로 투약해줘야 해요. 뭐, 약의 처방전은 적어놓은 대로이고요. 따로 재료를 공수해서 이 뒤뜰에 가져다 놓았으니 마음껏 쓰세요."

어차피 제 돈도 아니고 질병 관리단에 청구해둔 거라서요.

장난스레 던지는 말에도 그는 웃을 수가 없었다.

너무 태연스럽다.

수많은 의원들이 모두 혀를 내두르고 포기했던 병이건만.

아직 새파랗게 어린 소년은 고작 사흘 만에 해결해버렸다.

고르네오 남작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반대로, 의학도로서 오래 잊고 있었던 의욕이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본래의 목적도, 또 의원으로서 가지고 있던 언제부터인가 꼬장꼬장해졌던 자신의 자존심도 내팽개친 채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 맡겨주십시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이후, 영지 전체에 데이비 왕자가 드디어 이 지독한 병의 치료제를 완성했다는 말이 비산하는 연기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 *

"들으셨습니까."

"아, 그 소식 말입니까."

느긋하게 와인을 마시며 대답하는 사내, 링튼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예, 평민들이 어찌나 시끄럽던지. 악마를 몰아낸 성자라고 하였던가요. 하하, 확실히 성흔이 있으니 성자라 불려도 이상하진 않겠군요."

"......."

"제 눈이 정확했던 것 아닙니까? 설마 했던 라운 왕국의 왕자가 질병 관리단에서도 그동안 미제로 남겨놓았던 문제를 해결해버렸습니다."

그것도 삼일 만에요.

뒷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링튼의 얼굴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어찌할 겁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이대로 둬도 상관없냐는 소리입니다."

문제 될 것은 없다. 원칙적으로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데이비 왕자는 링튼과의 협상을 통해 권한을 되돌려 받았고 보란 듯이 치료에 성공해버렸다.

물론,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링튼은 꽤 많은 이들을 봐왔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아마 그를 계속해서 막았다 해도 그는 다른 방식을 보여줄 만큼 과감한 선택을 하는 자가 분명했으니 말이다.

"이로써 의학은 또다시 발전하는 겁니다."

"흐음......."

"대륙의 내로라하는 의원 중 일부가 달려들어 고민했던 과제이지요. 실제로 해결책을 못 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영원불멸하게 미해결과제로 남을 수도 있을 만큼 악랄한 병이지요."

신성력도 먹히지 않고, 보통의 약도 잘못 투약하면 오히려 독약이 되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죽는 과정 또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고작 20세도 되지 않은 소년의 손에서, 인류는 이렇게 큰 위기를 넘긴 겁니다. 그동안 발병자가 극도로 희귀했던 덕분에 문제가 없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제 악마의 피...... 아니 융해 가속바이러스라고 했나요? 그 병은 제힘을 잃은 꼴이지요."

문제는 그 20세도 되지 않은 소년이 치료제를 개발해버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링튼 백작의 이미지는 상당히 추락한다.

그뿐일까.

이 분야에 연관되어있던 관련인 모두의 이미지가 추락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외부인이 순식간에 일을 끝마쳐버린 꼴이니까.

덜컥!!

"누구냐!!"

그때였다.

열린 문 너머로 기사 하나가 황급히 뛰어들어오자 콜리오 백작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죄...... 죄송합니다! 급보입니다!"

"자자, 너무 열 내지 마세요. 콜리오 백작. 그래요. 말해보세요. 무슨 일입니까."

이런 상황에서까지 느긋한 링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콜리오 백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그것이...... 데이비 왕자가 개발한 신약을 투여받은 환자들이......."

"호오? 뭐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아닙니다! 급속도로 차도를 보이고 있다고......."

스릉...... 촤아악!!!

눈구멍만 뚫린 기괴한 후드를 쓰고 있던 기사가 그대로 피를 흩뿌리며 무너져 내렸다. 콜리오 백작의 검이 번뜩인 것이다.

"마음에 안 드네요."

동시에 빙그레 웃던 링튼이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말입니다. 콜리오 백작."

"말씀하시오."

"의원입니다. 그것도 사람도 고치고 정치판도 고치는 그런 의원 말입니다."

그리 말한 링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수술을 조금 합시다. 마냥 이대로 가면 저희에게 오는 지원이 끊기게 되잖아요?"

섬뜩한 미소와 함께 광기가 섞인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융해 가속 바이러스의 치료를 명목으로 상당한 돈을 지원받았다. 그리고, 그 일부는 그가 자신의 아주 소중한 다른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한다.

콜리오 백작 또한 같은 목적을 위해서 손을 잡기도 했다.

"그러니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사사건건 우리 뒤를 캐고 경계하던 고르네오 남작도 처리해버리지요. 아, 그리고 성흔을 보유한 쪽과 마탑의 재능있는 마법사,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죽이지 마세요."

고민하듯 말하는 그의 입가에 머금어진 미소가 더욱 섬뜩하게 짙어졌다.

"저항이야 있겠지만, 소드마스터 정도면 할 수 있겠지요. 제압만 하세요. 세간에는, 오르뎀 영지가 수많은 몬스터에 의해 짓밟히고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고 하면 그만이니."

서로 윈윈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빙그레 웃으며 링튼이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 * *

"오라버니, 지금 영지민들이 오라버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성자님이래요, 성자님!"

"그러게 말입니다. 왕자님이 대단하신 건 알았는데, 설마 의학까지 조예가 깊으신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윈리의 미소가 퍽 귀여워 녀석의 뺨을 살짝 꼬집어주자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윈리에게서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율리스가 하하 웃어 보였다.

"데이비 왕자님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분이군요. 그런데 어떻게 아신 겁니까?"

"무엇을요?"

느긋하게 자료를 정리하며 약으로 쓰일 액체를 나눠 넣던 내가 물었다.

"그...... 융해 가속바이러스 말입니다. 마치 왕자님께선 그 병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은데."

"일단은 그렇죠."

"오라버니! 그럼 포트나도 살릴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지. 오히려 제일 심각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해."

투약을 위해 자리를 비운 고르네오 남작.

겉보기에 성격은 깐깐하고 굉장히 경계가 많은 사내이지만 나는 일면 그의 의지를 존중하고 있었다.

'그 정도의 선의는 보기 힘들거든.'

-선의라.......

링튼 백작은 겉보기엔 굉장히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의 미소 속에 숨겨진 기시감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어지간해선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사실상 의원이라기보다는 연구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반대로 고르네오 남작은 꽉 막혔지만 그의 의술에 대한 헌신은 상당히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상당히 까칠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에도 나는 상대적으로 유하게 그를 대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대는 누군가 새로운 인연과 만나는 게 극도로 적었으니까, 다만 이제부터라도 그대는 새로이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면 되는 게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이.

페르세르크의 따스한 한마디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바리스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딜 간 걸까요. 듣기로는 병사들을 이끌고 영지 밖으로 나갔다고 들었어요."

"녀석도 제 할 일이 많으니까."

바리스의 부재가 마음에 안 드는지 윈리가 볼을 뾰로통하게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데이비 왕자님, 뭐 제가 도울만한 건 없을까요."

"맞아요 오라버니! 여기 와서 제가 계속 한 거라곤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던걸요. 그러니까 뭐라도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두 사람의 말에 나는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가열되고 있는 용액들의 온도 조절을 좀 부탁해."

"온도...... 말인가요?"

둘 다 적탑의 마법을 알고 있으니 이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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