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85화 (85/1,559)

# 8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4권 9화

"왜 저런 작자와 손을 잡았는지 물어도 알려주진 않겠지요."

느긋하게 말하며 그에게 다가가자 기세가 변한 그가 한발 두발 뒷걸음질 치며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마검의 힘으로 강해진 케이스인 줄 알았더니 검을 버리고 나서도 묵직하기 짝이 없는 공격들이 쏟아진다.

정확히 템빨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네놈은......."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고위급 신성 마법에 마스터 급 검술. 그리고 검을 버리고 나서 이어지는 피스트 마스터 급의 피지컬.

상식적으로 내 나이에 이정도의 경지가 나오는 건 불가능하리라.

세기에 남을 뛰어난 천재들이라면 하나 정도는 이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는 길에 봤습니다. 보니까 인간의 몸에 다른 몬스터의 세포를 이식해놨던데."

내 말에 놀란 율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거, 망가진 몸을 회복하려고 이런 짓에 가담한 겁니까?"

"닥쳐라!!"

격노하며 소리치는 그는 평소라면 분명히 덤벼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떨리는 손을 들어 제 명치를 가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극도의 경계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니까 황당한 생각도 드네. 이 영지에 병을 퍼뜨리기 위해 야적들에게 병원균이 담긴 독을 넘긴 거."

내 시선이 링튼에게 꽂혔다.

"당신이지?"

"히익!"

"정답이네, 쓰레기 새끼들."

병의 치료법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에 따른 자금의 지원을 받아 알려지지 않은 연구를 하기 위해 멀쩡한 영지에 생화학 테러를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모르긴 몰라도 단체가 아작 나는 수준으론 안 끝날 텐데."

좋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의료단체가 멀쩡한 사람에게 병균을 투여하고 사람을 납치해 몰래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아무리 평민 목숨이 파리목숨인 세계라지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도리라는 게 있는 법이다.

웃긴 노릇이다. 저들도 평민 목숨 파리만도 못하게 여기는 귀족들이, 아주 건수 물렸다고 작정하고 달려들 모양새를 생각하면 말이다.

"끄으...... 윽...... 코...... 콜리오 백작!"

"조용히 하시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링튼이 처절하게 콜리오 백작을 불렀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채 내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콜리오 백작의 표정엔 긴장감이 가득해 보였다.

-적당히 해 데이비.

'그럴까?'

픽 웃으며 내가 주먹을 가볍게 펼쳤다.

"명치만 노리는 건 관둡시다."

"......."

어지간히도 조롱하는 말투였지만 그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쿠웅!!

이윽고 나를 향해 날카로운 경계의 털을 세우던 그가 한발 내디디고 빠르게 파고들어 왔다.

아직까지 놓치지 않은 그의 검은 마지막이라는 듯 있는 모든 마나까지 쥐어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확실히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망가진 소드마스터라 하더라도 벨런스가 비정상적인 내가 막아내기엔 버거운 위력이다.

내가 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건, 대인전에 대한 경험, 그리고 순간적인 전투 흐름에 대한 맹점을 보는 깨달음이다.

"후웁."

포탄처럼 쏘아져 들어오는 그의 거리를 미리 단위로 감지한다.

격투술의 장점은 지근거리에서 검보다 자유롭고 빠르게 움직인다는 점.

그리고 그의 움직임이 가장 부자연스러워지는 한순간.

콰드득!

나는 바닥을 박살 내며 그의 정면으로 파고들며 그의 얼굴에 그대로 주먹을 찔러넣었다.

"흡!!"

반사적으로 그가 검을 이용해 제 얼굴을 보호하려 틈을 보이는 그 순간.

미련 없이 방향을 강제로 뒤틀었다.

하하! 또 속았구나 막내야!

[마왕 유르그 식(式) 쌍격]

[금강불괴]

[명치 분쇄]

또다시.

투쾅!

"컥!?!"

한자리에 모은 양 주먹이 그의 명치에 꽂혔다.

치졸하고 잔혹하다는 듯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콜리오 백작에게서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쿠당탕!!

충격파와 함께 허공에서 튕겨 나간 뒤 몇 번이고 바닥을 구른 콜리오 백작이 피를 울컥 토해냈다.

그리고는 반쯤 공허해진 눈동자로 나를 직시했다.

"이...... 비열한......."

"그걸 대처 못 한 점에서 할 말 없지 않나."

내 중얼거림에 그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졌다.

황당한 대치에 잊고 있었던 가장 단순한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기본적인 역량에서 이미 내게 완전히 밀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눈에 비친 감정은, 시기, 질시, 부러움. 내가 가진 정체 모를 경지를 향한 분노.

복잡한 찰나의 감정이 스쳐 지나간 후 그의 눈은 완전히 색채를 잃고 공허해졌고 노쇠한 몸으로도 단단하기 짝이 없던 그 육체는 서서히 지지하는 힘을 잃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아직 살아있다니...... 힘 조절을 너무 한 게 아닌가?

'아니, 저 양반이 튼튼한 거야.'

익스퍼트와 마스터의 전력 차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세심하고 디테일하다.

게다가 콜리오 백작은 전 황실 기사단장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위용을 자랑했던 이.

그가 멀쩡했다면 아마 검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숨통이라도 끊는 게.

'그냥 둬도 어차피 죽을 인간이야.'

"오라...... 버니."

자세한 상황을 잘 모르는 윈리나, 그녀와 마찬가지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해를 못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데이비 님."

"몸은 어때요."

담담히 묻자 그가 쓰게 웃어 보였다.

"이거, 완전히 민폐를 끼쳐버렸네요.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콜리오 백작이 들이닥쳐서 치료제들이......."

말끝을 흐리는 그의 의중에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줄을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치료 약이 전부 불타버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초기에 고르네오 남작에게 건네준 양으론 모두를 치료할 수 없다.

게다가 지속해서 투여해줘야 하는 점을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양일 터다.

"아 그거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방비가 허술했던 내 불찰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이에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하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네? 그게 무슨?"

"제가 죽으면 그 치료방법이 그대로 허공에 증발할 텐데, 링튼 그자가 그걸 그냥 방치했을 리는 없잖아요."

빙그레 웃는 내 말에 그가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먼저 돌아가세요. 가서 윈리를 부탁합니다."

"데이비 님은......."

"아직 남은 놈만 처리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앗! 리...... 링튼 백작이!"

내 말에 그제야 떠올랐는지 고개를 돌린 윈리가 놀라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홍단이와 청단이에 의해 어깨가 관통당해 벽에 박혀있던 링튼 백작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를 고정하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은 이미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고 그가 흘린 피로 추정되는 흔적들이 이 공동의 바깥까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이런! 그가 도망을!......."

"그러니까 먼저 돌아가세요."

"죄...... 죄송합니다. 단거리 텔레포트는 사용할 수 있지만...... 지금 제 마나 상태로는......."

"그냥 가만히 계세요."

"예?"

내 말에 놀란 듯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가 눈을 부릅떴다.

5 서클에 들어선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초단기 공간이동 마법.

다만 그 사정거리가 길어야 5㎞에서 8㎞ 정도이기에 내가 하인스 영지에서 오르뎀 영지로 오는 길에 사용을 고민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현재 내가 가용 가능한 마나 서클은 고작 5 서클이니까.

"그...... 그게 무슨?! 데이비 님! 당신 설마 마법까지?!"

"그럼......."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경악한 표정을 지은 율리스와 윈리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두 사람이 완전히 마법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미련 없이 바닥에 떨어진 홍단이와 청단이를 주워들었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이렇게 내팽개치고 갔네."

입에선 우스갯소리가 나왔지만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경직되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 되먹잖은 사태보다, 윈리를 이 상황에 이용했다는 점에서 기분이 극도로 다운되기 시작했다.

* * *

"끄윽...... 흣, 끅!"

링튼의 도망은 그야말로 처절한 발버둥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 지나간 길을 천천히 따라 들어가니 거대한 제어 시설의 한편에 그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로 사라져 있었고 양어깨는 사정없이 찢겨 있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 이것을 버틴 것을 보면 그의 생존에 대한 집착이 상당하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이 괴물 같은 놈......."

"누가 누구보고 괴물이라는 건지 모르겠네."

쌔애애앵!!! 카앙!!!

순식간에 붉은 잔상이 날아들며 채찍처럼 휘둘러진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몸을 자를 듯 날아들었다.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의 앞에 활성화된 분홍빛의 기류에 의해 오러 블레이드는 그에게 닿지도 못하고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흐...... 흐흐, 이래서 사람은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해야 하는 게지"

어지간한 마법도 양단해버리는 오러 블레이드로도 자를 수 없는 배리어의 모습에 한편으로 찌르르 울리는 손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꽤 단단하다.

물리적인 저항이 아니라 마치 공기가 단단해져서 진행을 막는 느낌이 들었다.

상당한 양의 마나를 강제로 밀집시킨 배리어라니, 제법 돈 좀 쓰셨네.

홍단이를 천천히 납도한 채 그를 느긋하게 지켜보자 그는 곧 품 안에서 꺼낸 리모컨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잘도 날뛰었구나. 괴물 같은 놈."

링튼의 몸이 마치 신기루처럼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속도는 상당히 느리지만 고대 유산으로 가장 흔하게 알려져 있는 마나 게이트의 현상과 흡사했다.

-도망을 치려는 게야!

놀란 페르세르크가 소리쳐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날 벨 건가? 아하하하하! 그래! 베어 보고 싶으면 베어봐라!"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소리친 그가 찌그러진 안경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광소를 띤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씹어뱉었다.

"나는 내 연구를 방해한 놈을 절대 그냥 두지 않아, 기다리고 있어라. 언젠가 네놈을 산채로 시험관에 처박아버릴 테니."

"그래 기대할게."

"크흐...... 크흐흐...... 크흐흐흐흐흐!!"

이 상황이 그렇게 웃긴 것일까.

결국 비소하던 링튼이 크게 웃어대며 나를 깔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네놈이 뛰어나 봐야 인간인 게지! 네놈이 만든 치료제는 모두 내가 가지고 있다. 결국 네놈은 아무도 살리지 못했어! 지금도 그럴 것이고, 내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그럴 테지!"

미친 듯이 웃어대는 그의 웃음소리가 제어실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크흐흐흐흣! 뭐 좋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있나?"

마치 선심 쓰듯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미련 없이 청단이를 뽑아냈다.

"잘 가라고."

"뭐?"

이미 발동한 마나 게이트는 피시전자를 물리 법칙계통에서 제외시킨다. 즉 반쯤 흐릿해진 그의 몸은 이미 이차원 반대편으로 넘어간 후라는 소리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