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4권 19화
게다가 바리에타 공작가의 본 영지에서 아주 은밀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조만간 일 한 번 터지리라.
"데이비 님? 어디 가십니까?"
"같이 가실래요?"
기본적으로 연금술사들이 더욱 열광할 내용이긴 하다만, 마법사인 그에게도 제법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내 말에 율리스는 내가 또 뭔가를 보여주는가 하는 기대 어린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뭔데요? 나도 데려가요!"
그리고, 작정하고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일리나 황녀가 싹싹한 말투로 따라붙었다.
봐도 모르겠지만, 재밌는 광경이 될 테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 * *
내가 지내고 있는 영주성은 굉장히 낡은 오래된 건물.
본래 내 어머니였던 레니 알리샤드 왕비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이기도 하며 어머니의 조상, 즉 알리샤드 남작가의 보금자리이기도 한 자리였다.
다만,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건물의 수명이 극도로 좁혀져 있던 터라, 영주성을 보수하고 증축하려던 8 장로 골다가 기함을 토하고는 새로이 영주성을 짓기 시작했다.
내가 도착한 공간은 바로 그곳이었다.
"오오! 은사! 오시었소!"
"그새 엄청 높아졌네요."
"크흠! 내 비록 은사의 실력에 비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나부랭이이지만 기본적인 종족의 섬세함은 갖추고 있는 편이외다."
새로 지어지는 영주성은 이전의 영주성에 비하면 그 크기부터가 달랐다.
재료도 많고 건축을 보조해줄 마법 도구도 대량 사들였다.
수많은 장인들과 인부들을 동원한 덕분에 그 속도 또한 보통이 아니다.
"일단은 지하도 있으니 7층 정도로 만족했소만. 마음에 드시오?"
"들다마다요. 이렇게 도와주시니 솔직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하!! 은사의 일은 곧 우리 황색 바위 부족의 일이 아니겠소! 안 그래도 골고다 그 영감탱이가 안부를 물었소."
"골고다 장로님이 말입니까?"
"신물이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갔다 하더이다."
태초의 섬광.
드워프의 신물이자 3천 년 이상 드워프들을 지켜왔다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물건이다.
기본적인 골자나 뼈대는 내가 쌓아 올렸지만 이후의 일은 그들의 몫.
막연하게 막혀있던 신물의 완성에 내가 굉장한 공헌을 해준 덕분에 아주 난리도 아니라는 모양이었다.
회광의 불씨라는 이름의 두 번째 신물이 완성되는 것도 이제는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드...... 드워프! 그러고 보니 영지 내에서 몇 번 보이긴 했군요."
드워프는 제 마을을 나오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 말인즉슨 드워프라는 종족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도 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소리였다.
물론, 괴짜들도 있는 만큼 세상 밖으로 나온 드워프들이 없진 않지만 어지간해선 보기 힘든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들이긴 했다.
아예 존재가 숨겨진 엘프와 다르게.
"실제로 본건 처음이네요. 저도......."
나를 따라온 세 사람은 골다를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음? 여기 이자들은 누구요?"
당연히 드워프이니 인간들의 직위는 의미도 없음이다.
"제 손님들입니다. 그리고 여긴 제 동생 윈리."
"아...... 안녕하세요. 윈리 올 라운이라고 합니다."
"오오! 은사께서 그리 자랑하시던 분이 아니시오!"
뒤뚱뒤뚱 걸어온 골다가 투박한 손으로 윈리의 손을 꼭 잡고는 호탕하게 웃어댔다.
"내 은사께 윈리 왕녀님에 대한 자랑은 딱지가 앉도록 들었소! 참으로 고운 인간이로고!"
"아·하하...... 고, 고마워요."
당혹스러운지 윈리가 나와 골다를 번갈아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럼 이쪽은?"
"적탑의 장로님과 팔란 제국의 황녀님이십니다."
"흐음...... 높은 분들이군, 뭐 나야 상관없지만 말이오! 파하하하핫!"
"끄응......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이곳이 처음이네요."
반대로 관심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 일리나는 자신의 취급이 묘하게 차갑기 그지없다며 조용히 불평을 늘어놓았다.
"크흠! 이럴 게 아니지, 건축상황이라도 안내해 드리오?"
"아닙니다. 실은 지하에 만들어둔 공방에 재료가 도착했다고 들어서요."
"아. 그 거신병 말이군, 알겠소. 내 미리 전해두리다."
"감사합니다. 괜히 몸을 혹사하진 마세요. 하인스 영지는 클린한 기업이 목표입니다."
"우리 황색 바위의 건아들에게 체력을 빼면 시체뿐이지! 이놈들아! 피죽도 못 얻어먹었냐! 재깍재깍 움직여서 우리 자존심을 보여주자고!"
다시금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가 버리는 골다를 보며 율리스가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대단하네요. 한차례 폭풍이라도 왔다 간 것 같습니다."
드워프 양반들 성량이 대단하긴 하지.
개중에 골다 장로의 성량은 어지간한 드워프 이상이니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기가 질릴 만도 하다.
"가죠."
인부들이 부단히 뛰어다니며 작업하는 모습을 본 나는 이미 거의 완성된 일층 내부로 들어간 뒤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거대하네요...... 혹시 무너지진 않겠죠?"
불안한 듯 일리나의 질문이 들려왔지만.......
"헹, 드워프잖아요? 드워프, 드워프가 만드는 건물이 설마 부실공사이려구요."
"그...... 그렇긴 하네요."
윈리의 말에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일리나 황녀였다.
세 사람을 데리고 지하로 들어서자 마석 등이 박혀 환하게 빛나는 넓은 지하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걸 만드는데 그대가 쏟아부은 돈이 어마어마하지. 흔히 말해 돈지랄이라는 표현을.......
'거대한 개인 공방은 공돌이의 로망이야, 그렇게 매도하지 마라.
다른 건 몰라도 공방에 꽤 돈 좀 썼다. 후회는 되지 않는다!
수많은 마석 등이 박혀 환하게 밝혀진 내부는 그 높이부터가 10m가 넘었고 공간도 상당히 넓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건물을 짓는 게 가능한가요?"
일리나가 불안하게 중얼거려왔다. 확실히 보통 건축기술론 이런 무리수를 뒀다간 그대로 무너져 내릴 터다.
"연금술과 마법에 드워프식 건축기술이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자동 재생 마법진, 자동 수복 마법진, 강도 증가, 충격 완화, 내진 설계까지!
깊이도 상당하니 그야말로 자연 벙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니 콧대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쯧.......
드르르르륵!!
굳게 닫힌 문의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톱니가 부드럽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그 위로 녹색 빛깔을 내뿜는 구슬이 천천히 올라왔다.
-디셉티콘 편대 격납 공방. 개방합니다.
마치 누군가가 녹음을 한 듯한 반듯한 목소리가 구슬 안에서 흘러나오자 주변에서 움찔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본래 녹음용 마법 도구지만 써먹기에 따라서 안내 문구가 되기에도 충분하다.
"크으, 근 미래 식 공방. 언제 들어도 기분이 붕 뜨네."
-그런 걸 두고 헛바람이라고 하지 않은가?
공돌이의 혼과 야메를 갈아 넣으면 안 되는 게 어딨나, 다 되는 법이다.
* * *
그그그그극!!
자동화 공방. 거대한 홀의 형태를 지닌 그곳은 말 그대로 정말 거대한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여러 가지 테이블이 놓여 수많은 약병과 종이뭉치가 쌓여있었고 한쪽엔 사용하다가 정리가 덜 된 공구들이 한가득 보였다.
드르르륵! 드륵!
문이 완전히 열리고도 아직 변할 것들이 남았던 것일까.
정신없이 움직이는 내부 구조의 모습에 세 사람은 얼빠진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확실히, 마법사라도, 제국의 황녀라도 이 같은 황당한 공간은 잘 보기 힘들긴 하지.
나름대로 머리를 제법 굴린 공간이다.
그야말로 공돌이의 욕심이 가득 담긴 공간이다.
딱히 효율적인 면에선 대단하다 할 것들이 없지만 시도 자체는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다.
-우우웅.......
-공방 개방 완료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누군가의 녹음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히 문을 개폐할 때 일정 목소리를 녹음한 마법 도구가 작동하도록 만든 시스템이지만 제법 운치가 있다.
물론, 녹음용 마법 도구의 가격이 싼 편은 아니기에 흔히 말하는 돈지랄이지만.......
내 취미생활에 돈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해.
그게 본심이다.
"세상에...... 여러 가지 공방을 본 적은 있지만......."
"이건 좀 대단하네요......."
한 치의 사심 없이 감탄하는 세 사람의 얼굴엔 신기함과 흥미로움이 묻어났다.
"오오! 은사!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수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열렸다가 닫히며 안에서 작업하고 있던 드워프 서너 명이 나를 향해 반색하고 뒤뚱뒤뚱 걸어왔다.
본래 이곳은 골다가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지만 그는 이 일 외에도 바쁜 인물이었다.
"네, 재료가 도착했다고 들어서요."
"크흠! 안 그래도 방금 외피가공 준비에 들어간 참이오, 한번 보시겠소?"
드워프 장인 하나가 자랑스레 한쪽에 비치된 거대한 천 더미를 가리켰다.
"데이비 님, 저건...... 대체 뭡니까?"
"가디언입니다."
"가디언...... 골렘이요?"
내 말뜻을 이해하려는 듯 중얼거리던 율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골렘.
주로 단단하게 뭉친 진흙이나 강철로 만들어지는 거병으로 마법사의 마법진과 연금술사의 기술력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뛰어난 병기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전쟁 당시 소규모 골렘 부대를 운용하는 국가도 있었으니까.
"저 정도 크기면 1급 골렘! 유지비가 어지간한 영지의 반년 수익에 버금갈 텐데......."
"그렇게 비쌌던가요?"
쓸데없는 인건비 다 버리고 재활용한 덕분에 실상 돈은 많이 들지 않았다.
어디서 가져와서 재활용했냐고?
저주의 매개체가 있던 동굴의 마도 골렘이 바로 이놈의 부품이 되었다.
내가 한 것은 조금의 개조, 그리고 강화, 수정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이윽고 천 더미를 걷어내자 거대한 조형물이 모두의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일면 눈에 보인 것은 골렘이라기보다는 그저 특유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조형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음? 저건 그냥 조형물이 아닙니까?"
"그러게요 오라버니?"
"도색이나 이름은 짓지 않았소만, 이름은 역시 은사께서 지어주셔야지."
"그렇네요. 그럼 이름은 프로토타입 메가트론으로 하죠."
"무시무시한 어감의 이름이로군! 은사께선 역시 작명 센스도 보통이 아니시군!."
그는 그리 말하며 킬킬 웃어 보이고는 거대한 조형물의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일단 자잘한 장갑은 덧대어 놓았소만, 아직 시험가동을 해보지 못해서 방치 중이오."
조용히 조형물의 위쪽으로 올라가 머리 부분에 손을 얹고 마나를 끌어올리자 대량의 마나가 연동되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치이익!! 철컹! 철컹!
"세상에......."
"저런 게...... 골렘이라고요?"
당황한 율리스와 일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그저 동상 같은 조형물이 갑자기 수십 갈래의 균열을 만들며 천천히 변모하는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을 터다.
철컹!! 철컹!!
이윽고 부분 파츠를 덮어둔 금속 하나하나가 움직이며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