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4권 24화
"라스트 위스프는 기밀이 유지되어야 하지만 조직 자체도 유지가 되어야 해. 그렇기 때문에 단원이든 견습이든 일단 한 번 일원이 되면 제자의 형식으로 일생에 단 한 명을 데려올 수 있어. 물론, 단원이 되어야 하겠지만...... 차후에 사망했다고 허위보고 하면 문제가 사라지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남아 있을 유일한 기회를 내게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 텐데.
물론, 그건 그녀의 사정이지 내 알 바는 아니리라.
간단한 의문이 해소되자 더는 거리낄 것이 남지 않게 되었다.
최소한의 도구만 넣어둔 작은 마법 주머니를 챙긴 뒤 집무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내 주먹만 한 큐브를 챙겨 들었다.
"그건?"
"메가트론 MK2"
"뭐?"
"네가 싸웠던 골렘 가디언이라고."
내 말에 그녀가 황당하다는 듯 작은 큐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무언가 이해한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공간 확장이나 축소마법이 걸린 아티펙트는 제법 흔한 편이다.
"더 준비할 건 없으니까 바로 가자, 할 일이 많다."
내 말에 그녀는 꺼내둔 마법 아티펙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머뭇거리며 손을 뻗었다.
"이동용 아티펙트를 쓸 거야, 다만 이동 중에 이상한 곳으로 튕겨 나가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신체접촉은 해야 해."
"흐음."
묘하게 부끄러운지 조심스레 내 손끝을 잡은 그녀가 짧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시동어를 읊었다.
"그럼...... 크리스탈 워프, 가동."
우우웅!!!
그녀가 사용한 아티펙트는 소형 마나 게이트와는 조금 달랐다.
거리에 상관없이 일정 공간으로 이동시켜주는 아티펙트 유로 보이는데 자세한 것까진 알 길이 없다.
-추적이 불가능한 시스템이군. 제법이야.
적어도 저런 것을 사용한다면 뒤를 밟힐 염려는 없으리라.
순식간에 주변을 감싸는 마나의 파장이 이윽고 일리나와 내 몸을 완전히 감쌌고, 곧 환한 빛과 함께 주변 일대가 완전히 돌변했다.
* * *
환한 빛이 사라진 직후 내 눈에 보인 것은 그야말로 울창한 숲이었다.
"나무가 너무 커서 오히려 풀이 못 자란 숲인가?"
밀림처럼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처참한 숲은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 미터에 달하는 초 거목들이 촘촘하게 하늘을 감싸고 있는 덕분에 오히려 작은 풀이나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여긴?"
"중부대륙 북부에 있는 판도라 영역. 그 아래에 있는 중앙 대륙 북부 대 숲지."
한 번에 어지간히도 멀리 날아왔구나.
라운 왕국은 동부 최대 산맥인 라트마 산맥을 걸치고 있는 두 거대 국가.
성국 발샤스와 린디스 제국의 사이에 끼인 작은 국가라 할 수 있다.
그 왕국의 영토 수배에 해당하는 거리를 단번에 날아온 것만 봐도 그녀가 가진 아티펙트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있으리라.
"걸어서 가면 한 달은 걸릴 거야. 마차를 타면 주 단위. 게다가 일대엔 결계가 있어서 육로로는 쉽게 들어올 수 없어."
그녀의 설명에 나는 말없이 숲을 둘러보았다.
하늘이 빽빽하게 가려진 숲이라 상당히 어두운 편이지만 바닥에 난 빛나는 풀 때문일까. 숲 전체에 약간 푸른 빛이 감돌고 있다.
"내가 속한 라스트 위스프...... 그러니까 비밀 기사단의 이름은 [리인포스 알파]. 판도라 영역에서 흘러나오는 위협을 주로 감지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어."
"네가 바라는 건 판도라 영역 안에 있는 건가?"
내 말에 그녀가 쓰게 웃어 보였다.
"아니, 그저 제대로 리인포스 알파의 기사단원이 되면 다른 지역도 갈 수 있으니까...... 나는 그 권한이 필요한 거야. 아무리 황족이라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는 존재해."
기밀 지역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권한과 실력.
그녀가 무엇 때문에 필사적으로 이것에 매달리는지는 실상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저 아이는 어미를 뱀파이어에게 잃었어, 데이비. 아마 뱀파이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저렇게 필사적인 것일 테지.
'그래서 뱀파이어만 보면 꼭지가 돌아가는 거였나.'
확실히 현재 팔란 제국의 황후는 공석이다.
"나는 꼭 이번 시험에 통과해야 해."
마치 자신을 채찍질하듯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전에 저것들부터 처리해야겠는데?"
다만, 그녀가 고민을 하건 말건 적들은 그것을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순식간에 기척이 느껴지며 숲 저편에서 적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뮤턴트 울프."
그 정체를 깨달은 내가 절로 탄성을 흘렸다.
마물이야 간혹 다른 지역에서도 보이지만 저런 개체는 사실상 흔치 않다.
전신에 기괴한 촉수를 달고 털 하나 없는 민둥민둥한 몸을 가진 놈들은 크기만 따지면 상당히 작은 편이지만 이빨이나 발톱에는 상당히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날렵하기까지.
한번 상처가 나면 치명상이니 어지간한 실력을 지닌 이들이 아니면 상대가 쉽지 않은 적들이다.
"내가 처리......."
"기다려."
어디 남의 경험치를 빼앗으려 들어.
칼디라스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브로치에 손을 올린 그녀를 제지한 나는 곧바로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덮어썼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큐브를 바닥에 휙 하고 던졌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 그리고 그녀의 허무맹랑한 부탁을 들어준 이유는 이곳에 있다.
본래라면 보기 힘든 적을 상대로 한 전투 데이터 수집.
그러니.......
"모든 전투에서 골렘이 메인이 되어야 한다!"
내 말에 일리나는 복잡한 시선으로 침묵을 고수했다.
"자, 그럼 첫 출전이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큐브가 이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커다란 빛을 내뿜고 서서히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그 형태는 처음 봤던 조형물의 형태가 아닌 특이하게 생긴 마차와 흡사했다.......
다만, 마차를 끄는 말을 고정하는 장치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형태 자체도 일반 마차와는 다르다.
"저게 뭐야?"
"뭐긴 뭐야, 장인의 로망이지, 나중엔 비행 기능을 추가해볼까 하는데."
"정말, 상식이 거부당하는 기분이야......."
간단하게 답하며 손을 튕기자 거대한 마차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표면이 순식간에 뒤틀리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부품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곧 정교한 움직임과 함께 거대한 금속 거인이 제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철컹!! 철컹!!
-마정석 효율이 좀 더 좋아졌어. 확실히 새로 짜 넣은 마법진이 큰 도움이 되었군.
일리나와의 대련으로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찾아서 보완한 덕분에 이전에 봤던 메가트론보다 훨씬 강화된 녀석이다.
페르세르크와 나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첫 작품인 만큼 공을 좀 많이 들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은빛 장갑판이 몸을 감싸듯 덮어 씌워지기가 무섭게 허리 부분이 돌아가며 완전히 인간의 형상이 된 녀석은 푸른 안광을 띤 채 뮤턴트 울프들을 압도하듯 몸을 일으켰다.
짐승이든 마물이든 일단 자기보다 큰 개체엔 경계심을 가지는 법이니까.
-그르르르르.......
갑작스레 나타난 금속 거인의 모습에 놀란 뮤턴트 울프들이 낮게 울며 한발, 두 발 조심스레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청소하자. 메가트론"
[명령 대기 중].
"섬멸 모드 가동, 공격범위 내에 저장된 마물은 모조리 지우면서 이동한다."
[명령 수락. 타깃 확인, 작동을 개시.]
이윽고, 내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또 쓸데없이 누군가가 녹음한 듯한 묵직한 목소리가 녀석의 머리 쪽에서 흘러나왔다.
철컹!!!
동시에 녀석의 양 팔뚝의 장갑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형태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3 서클 하드 실드가 인첸트 된 대 방패.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엔 흉악하기 그지없는 물건이 튀어나왔다.
지잉! 기이이이잉!!!!
섬뜩한 톱날이 정신없이 회전하며 존재감을 흩뿌리기 시작하자 곁에 있던 일리나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저...... 저건 또 뭐야......."
철컹!! 쿠웅!!!!
묵직한 중량이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하며 거대한 깡통이 사방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 * *
부우우우우웅!!!
[메인 웨폰 활성화 완료. 신속히 적을 섬멸.]
미친 듯이 베어낸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베는 게 아니라 찢어내고 있다.
실드가 인첸트 된 장갑판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남은 한 손의 전기톱으로 닥치는 대로 적을 찢어발기고 있다.
뮤턴트 울프들이 메가트론의 파괴적인 공격에 당황해 거리를 벌려보지만 그마저도 실상 의미는 없는 짓이었다.
거리가 벌어지기가 무섭게 메가트론의 손목 장갑이 펼쳐지며 초소형 마나석이 박힌 스태프를 통해 연보랏빛 광선이 놈들을 지져버렸기 때문이다.
출력 자체는 그리 강하진 않지만 상당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견제와 원거리 공격에 아주 효율이 높다.
"도대체...... 2주 사이에 무슨 짓을 했기에......."
"음, 역시 전기톱, 훌륭한 대화수단이다."
"애초에 대화를 할 생각도 없는 거 아냐?!"
"자비를 호소하려 낑낑대는 저놈들을 봐라!"
단호한 내 외침에 그녀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미쳤어......."
정확히는 전기가 아닌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대량의 마나가 들기에 어지간한 마나석으론 메가트론의 출력을 감당할 수 없다.
다만, 메가트론의 최대장점. 연료통의 한계치가 극한으로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같은 낭비도 낭비가 아니게 된다.
할 말을 잃은 듯 일리나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전투력이 그녀와 대련할 때에 비해 거의 2~30% 정도 위협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몸을 던져 방패를 막아내면 미련 없이 방패를 버리고 또 다른 전기톱을 뽑아 든다.
몸에 달라붙은 녀석들은 망설임 없이 바닥을 굴러 털어내 버리고 손에 닿는 놈들을 산채로 찢어발긴다.
말 그대로 무식한 광전사 그 자체. 게다가 메가트론은 뮤턴트 울프에게 있어서 보기 참담할 정도로 극상성의 적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독이 통하지 않는다!
뮤턴트 울프의 가장 큰 강점은 다름 아닌 공격 시 화력을 담당하는 맹독이다.
그런데 적이 피도 눈물도 없는 깡통이라니. 결과 자체는 눈에 훤할 수밖에 없었다.
종횡무진 거대한 전기톱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리는 메가트론의 모습 때문에 정신이 팔린 일리나는 제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뮤턴트 울프를 발견하지 못한 듯 메가트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덕분에 겁 없이 덤벼든 놈들은 내 손에 잡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푸콱!!
묵직한 힘에 머리통이 그대로 으깨져 버린 녀석이 그대로 침묵하고 무너져 내렸다.
"아......."
"멍 때리지 말고 따라와, 길 안내는 해야 할 거 아니야."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각을 따로 읽지는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일 지경이다.
"저 파괴병기를 그냥 둬도...... 아니 계속 진화시키게 내버려둬도 괜찮은 걸까......."
글쎄, 괜찮다니까.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