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5화
뿌드득.......
"게다가 뭐? 골렘이 강했던 거지 데이비가 강한 게 아니라고? 그럼 골렘술사가 골렘을 내버려 두고 육탄전을 해? 멍청이야? 돌대가리 고블린도 그것보단 잘 생각할 거야, 착각하지 마, 넌 네가 가장 잘난 줄 알지?"
속사포마냥 쏟아지는 일리나의 비난에 시오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만!! 일리나 견습생의 말이 일면 맞다. 시오 하울! 리인포스 알파의 수칙 8조!"
"......기사단은 언제고 최선을 다하고 승패에 승복하여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입니다."
"알았으면 물러가도록!"
쌍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선생인 프리도스의 호통에 시오의 표정이 싸늘하게 일그러졌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우연스럽게 공격이 성공하지만 않았어도 넌 내게 반 정도는 죽었을 거다."
"시오 하울!!"
그의 도발에 일리나가 격하게 화를 내려던 찰나.
귀를 후비적 거리던 내가 툭 던지듯 발언했다.
"실전이었으면 넌 이미 죽었어."
"뭐라?"
"네 머리가 검에 맞고도 멀쩡할 만큼 단단하진 않잖아? 죽고 나서 프리아 여신 앞에 가서도 그런 소리 할 건가?"
그리고, 일리나가 아니었으면 대련이고 뭐고 시작부터 쥐어 터뜨려버렸을 테고.
뒷말은 구태여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한 말만 해도 이미 그에게는 충분히 심기를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날 우롱하지 마라, 외부인."
죽일 듯 노려보던 시오 하울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버리자 이윽고 대련을 참관하던 선생들이 단원들을 다독여 기숙사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나를 단원의 일부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회의를 해야 한다며 그들 또한 사라졌다.
갑작스런 외부인의 방문, 그들로썬 혼란스러울 법도 하지만 이미 이런 경우는 자주 겪어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후 내게 보리스의 호출이 도착했다.
"결론부터 말하지. 골렘 조종사에게 마나나 육체적인 재능을 요구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지, 일리나 견습생에게 들었네, 저 골렘은 자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들었네만."
"뭐 그렇습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일찍이 여러 전투 연금술사들을 봐왔지만 저만큼 강력한 골렘을 제작해서 다루는 이들은 본적이 없어."
보리스는 꽤 호탕하면서도 시원시원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7대 3일세. 물론 나도 찬성이고, 자네의 입단을 환영하지."
하하 웃어 보이며 그가 내게 작은 잔을 내밀었다.
"보통 술은 아니겠죠."
금제.
"역시 연금술사들은 똑똑해, 눈치가 굉장하지 않은가. 아니면, 일리나 견습생에게 들었는가?"
"뭐, 감으로 때려 맞춘 겁니다."
술잔 안에 미약하지만 마나의 잔향이 남아 있거든.
"흐음...... 일리나 견습생이 제대로 물건을 건져왔군. 뭐, 말이 제자이지 비슷한 이, 혹은 그보다 더 잘난 이를 데려오는 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아. 중요한 건......."
말을 이어나가던 그가 하던 것도 멈추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내가 술잔을 싹 비워버렸기 때문이다.
"뭐 문제 있습니까?"
"자네...... 그게 뭔지 듣지도 않고 마셔도 되는가?"
"눈칫밥이 제법이라서요."
- '동화'의 경지까지 깨달아버린 마법사에게 금주의 언이 통할 리가 있나.......
그에겐 미안하지만 이거.
마셔도 내겐 의미가 없다.
진실을 아는 페르세르크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럼 확인하지, 자네는 리인포스 알파, 그리고 라스트 위스프에 대해 속세에서 비밀을 엄수하겠다고 약조하겠는가?"
"그것 때문에 마신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그거면 되었습니다. 친구를 도우러 왔다는 핑계도 있긴 하지만, 라스트 위스프의 활동 자체에 관심이 없진 않아요."
정확히는 다양한 마경과 그 내부의 마물에 관해서.
"흐음 자네는 마치 리인포스 알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기분 탓, 아닐 겁니다.
괜히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좋네. 거짓은 없군."
이윽고 품 안에서 작은 보석을 꺼낸 그가 흡족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짓말을 탐지하는 아티펙트일세. 자네의 말에 거짓은 없었으니 자네의 신변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도록 하지."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닙니까?"
"첫대면에서 조금 과하게 말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애초에, 우리 리인포스 알파의 적은 인간이 아닐세."
그의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라스트 위스프의 창설, 존재 목적은 대륙에 위협이 되는 미지의 적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내는 것.
그것에는 위험 구역의 마물부터 세상엔 알려지지 않은 위험천만한 천적들이 해당한다.
즉, 인간은 그들의 적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속세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다툼은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일인 게지. 뭐,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푹 쉬게."
담담하게 말하고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제법 가벼웠다.
* * *
"자 받아. 다시 반환해야 하는 물건이니 막 부수거나 까서 열어보거나 하지는 말아줘 제발."
일리나가 건네주는 나무로 된 반지를 바라보자 미묘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져 왔다.
"네가 가진 반지랑 같은 건가?"
"열화판이지만 말이야. 단원이 되려면 상부의 허가가 떨어져야 하는데. 뭐, 보리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딱히 문제는 없을 거야."
"효과는?"
"이 숲에 펼쳐진 결계의 면역. 그리고 이동의 자유. 본래라면 처음 아티펙트를 썼을 때 그런 숲 한복판이 아니라 고성에 바로 도달했어야 했어. 하지만 넌 반지가 없었으니까."
확실히 그렇게 마구잡이로 들어올 수 있는 아티펙트가 있다면 기밀유지의 위험성은 상당하다.
"그 반지가 있으면 이제 하인스 영지와 이곳을 왕복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을 거야."
그녀가 싱글싱글 웃어 보였다.
"이걸로 나는 사기적인 조력자를 얻은 거야."
"내가 안 해주면 어쩌게."
"이제 와서?"
배시시 웃던 그녀의 웃음이 순간 끊겼다.
"진짜 그럴 건 아니지?"
"생각보다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는 있네."
"휴......."
내 말에 눈에 띄게 안도하는 그녀였다.
"가자, 아직 견습 단원 보결이지만 훈련은 빠를수록 좋다고 선생님들이 그러셨으니까."
"훈련?"
"응, 견습생들은 선생님들이 자유롭게 짜둔 커리큘럼에 따라 일정 시기마다 통합훈련을 개시해. 그리고 내가 이번에 돌아온 이유 중에 하나도 사실은 그 때문이고."
바깥에서 제 일을 하면서 이곳에서 훈련까지 병행했다라.
어지간히도 성실한 황녀님이시다.
"훈련의 내용은 선생님들이 직접 말씀하시는 거니까. 기본적인 역량의 상승은 그에 따른 선생님들이 나서지만 통합훈련은 전체적인 협동성과 임기응변을 기르는 실전형식이라 할 수 있어."
적당히 설명하는 그녀는 제법 즐거워 보였다.
"재미있나 보네, 단원 생활이."
"딱히 불편한 점도 없고, 내 목적을 위해선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길이니까. 게다가 다들 착한 애들이라 이곳에 오면 황족이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거든, 아...... 몇 녀석 빼고."
말을 하던 그녀의 표정이 왈칵 찡그려지는 걸 보니 아무리 그래도 친해지기 애매한 녀석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견습 단원과 합류하려던 중이었다.
"먼저 가."
문득 걸음을 멈춰 선 내가 조용히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뭐, 뭣?"
"들어가 있어. 조금 있다가 합류할 테니."
내 말에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를 향해 매번 정신 나갔다는 표현을 써대는 괄괄한 소녀이지만 눈치는 상당한 편일 테니.
나를 두고 조용히 멀어지는 그녀를 직시하던 나는 곧바로 흩어지듯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그러고 기척을 완전히 죽인 채 이동하니 곧 아주 미약하던 대화 소리도 천천히 아주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청문회부터 대련 시험까지 참관했던 거구의 사내, 보리스와 정령사인 실리아였다.
-데이비.
'쉿.'
기척을 완전히 죽인 채 다가가자 내가 있는지도 모르고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흐음.......'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상황을 대충이나마 깨달은 내가 헛웃음을 흘렸다.
시오 하울이라는 그 청색 머리의 마법사 견습생을 물 먹이려고 했던 엉성한 움직임은 확실히 그의 프라이드를 개 박살 내버리긴 했지만.
반대로 선생들에겐 안심을 주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 * *
"어딜 다녀온 거야?"
거대한 숲의 입구.
활동이 편한 경장형 복장을 한 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던 일리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별거 아니야."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쓴 표정으로 그녀가 어색하게 움찔거렸다.
"표정이 왜."
-거울이라도 보여주고 싶을 지경이지.
페르세르크의 말과 동시에 그녀의 가슴팍에 채워진 브로치가 옅게 빛나며 칼디라스의 사념까지 흘러들어왔다.
[뭔가 사악한 음모를 꾸미면서 킬킬거리는 악당 같아.]
하나도 아니고 셋 모두가 같은 소리라니, 섭섭할 따름이다.
"일리나."
"으...... 응?"
불안한 얼굴을 하는 그녀에게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진다.
"시험, 치르고 싶지?"
"당연한 걸 물어?"
"좋아, 그럼 됐어."
대화 내용은 간단했다.
내가 만든 골렘의 효율성이나 여러 면을 보면 장래는 밝지만 묘하게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고 한다.
아직 제대로 된 훈련이나 마물 대처 지식도 없으니 함부로 실전 시험에 투입했다가 큰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애매모호해서 실력을 못 믿겠다고?
이 양반들은 아직 연금술을 가미한 골렘술사가 다수전에서 무슨 여파를 미치는지를 모르는 게 분명하니 또 보여주는 수밖에.
이번엔 조금 신경 써서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게.
* * *
숲의 부지는 객관적으로 봐도 굉장히 넓었다.
중부대륙의 북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마경인 판도라 영역의 바로 아래 대숲은 어지간한 용병들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함부로 찾아오지 않는 위험한 장소.
결과적으로 일대의 숲은 모두가 리인포스 알파의 견습 단원들이 사용할 훈련장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번 훈련은 익히 아는 땅따먹기 방식이다! 하지만 처음 훈련을 받는 이도 있으니 설명하도록 하마!
"흐응......."
한 번쯤은 해본 훈련인지 옆에서 일리나의 옅은 비음 소리가 들려왔다.
-영역은 1번 숲부터 5번 숲까지!
-지역마다 필드 마법을 펼쳐 각 팀의 영역을 표시해 두었다.
-늘 그렇듯, 서로를 향한 공격을 허가한다! 제한 시간 내에 가장 많은 땅을 얻은 쪽이 가장 평가점수를 크게 받는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이외에 추가점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마라!
결국 방해하는 선에선 얼마든지 날뛸 수 있다는 소리다.
"죽도록 아프고 괴로운 거면 상관없다는 거 맞지?"
"아...... 뭐야, 쟤 왜 저래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벌써 겁나는데.......]
전적이 있다 보니 인간 한 명과 신검의 투덜거림이 들려온다만, 가볍게 무시한다.
-시작은 지금부터 10분 이내! 시작 신호는 임의로 내리도록 한다! 그러면 준비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보리스의 목소리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