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10화
"그럼 3층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거야?"
나와 알리사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속도를 줄인 일리나가 칼디라스를 끌어안은 채 물어왔다.
"맞아요. 황녀 저하, 저희들이 이번에 탐사할 지역은 1층 2층. 약 사흘간 탐사를 개시한다고 들었어요."
"3층엔 위험한 마물들이 많은가 봐?"
"그게...... 저도 얼핏 들은 건데요."
주변을 휙휙 둘러본 그녀가 우리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3층엔 마물이 없다고 해요."
"없다?"
"대신...... 정말 위험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대요."
"위험한 것들이라......."
상념에 빠지는 일리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생물이 아닌 거죠. 듣기로는 골렘이라는 말도 있고."
도대체 이 녀석은 어디서 이런 정보를 주워온 것일까.
궁금한 건 묻는 것이 예의렷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가져오는 거야?"
"사실은요. 제가 밤 귀가 밝아요."
내 질문에 그녀가 귀엽게 윙크하며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쿡쿡, 그래도 도움이 되셨나요? 데이비 님은 골렘술사이시니까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을 것 같았어요."
"그렇지. 고마워."
"헤헷!"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리는 모습을 일리나가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나는 딱히 그 부분을 짚지 않았다.
1층 유적은 정말 알리사 페트릭의 말대로 기본적인 신형 마물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신형이라 해도 견습생들이 페어를 짜고 신중하게 상대하면 어려울 것 없는 적들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의 의지에 따라 현현하라! 운디네!"
"흐리야아아앗!"
샤이르 렌다의 외침과 함께 거병을 든 헤그가 덤프트럭마냥 파고들어 기괴하게 생긴 마물들을 거침없이 갈랐다.
마물의 이름은 거대 스텀프.
생김새는 마치 거대한 나무 밑동처럼 생겼는데 중간에 커다란 눈이 달려있고 가지인지 촉수인지 모를 것들이 머리 위로 돋아나 있었다.
"전방에 스텀프 3마리가 더 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일단은 그루터기, 스텀프라고 명명된 마물들은 힘은 강하지만 속도가 느린 편이라 크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생긴 것과 다르게 놈들의 힘은 마냥 긴장을 놓고 하기엔 충분히 위협적이다.
3층엔 마도 골렘으로 추정되는 놈들이 있고, 그 아래층도 있다.
혹시 영구동토라 불리는 이 판도라 영역도 하인스 영지처럼 멋대로 기후가 고정되어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데이비."
기이이잉!!
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
아니면 그에 따른 귀한 무언가가 보관되어있는 것일까.
키이이잉!!
-끄으아아아아!!
"데이비!"
말없이 스텀프들을 지켜본 채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급히 나를 부르는 다른 이들의 부름에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돌렸다.
"음?"
"너......."
이어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자.......
-끄아아아아아!!
처참하게 스텀프들을 짓이기고 있는 메가트론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페어가 한 마리를 끌어와 신중하게 싸우고 있다면 메가트론은 내 명령 없이도 놈들을 네다섯 마리씩 끌고 와서 아주 곤죽을 만들어놓고 있다.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려는 스텀프를 잡아 촉수를 잡아 찢고 머리통부터 전기톱으로 갈라버리거나!
눈에 드릴을 찔러넣어 꼬치를 만든 다음 마구잡이로 다른 스텀프를 향해 휘두르거나!
누가 악질적인 괴물인지 알 길이 없다.
"데이비의 골렘은 정말......."
"너무 강하잖아...... 우린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도 신중해야 하는데......."
"골렘술사들은 원래 그렇게 강한 거야?"
황당하다는 듯한 질문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단언컨대, 이 대륙에서 메가트론 이상급의 출력을 내는 골렘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크흠! 데이비 견습생. 의욕이 앞서는 건 좋지만 파트너 간의 호흡을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적당히 힘 조절을 해야 했는데 유적에 관심이 가 있다 보니 메가트론이 멋대로 날뛴 것을 보지 못했다.
덕분에 일리나는 할 일을 잃고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꼴이다.
"아......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을 좀 하다 보니. 잠시 쉬어도 될까요."
"크흠! 그래, 그렇게 하게."
내가 전장에서 이탈하기가 무섭게 압도적으로 한쪽이 우세하던 전황이 조금씩 밸런스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데이비.
"음."
-그대, 솔직히 지금 현 상황을 깨고 싶지 않지?
그녀의 질문에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말 학창 생활은 될 수 없지만 비슷하게라도 경험해보니 새로웠을 게야. 그래서 일부러 수준을 맞춰주고 이런저런 도움도 주고.
"솔직히,"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기사단 생활이라지만 이 작고 소소한 평온은 솔직히 내게 상당히 충격적인 일상에 가까웠다.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신선했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겨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명심해 데이비.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야. 적어도 후회할 일은 하지 않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이걸 어리광이라고 할까.
-딱히 드러낼 필요도 없는데 힘자랑하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그대가 늘 말했지 않은가.
'그것도 그러네.'
-다만, 모종의 위협이 저들을 노리게 된다면.......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만들어야지."
가로로 한 번 위로 한 번.
연금술로 빙 돌아가야 가는 길을 검을 통해 대각선으로 갈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검을 들 것이다.
-그대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된 게지.
완성되지 않은 골렘 메가트론으론 이 이상의 위험요소가 나오면 한계에 부딪힌다. 그때가 된다면, 숨기고 있던 것을 꺼내 들 수밖에 없다.
적어도 저들의 시선이 나를 정체 모를 무언가로 보는 한이 있어도.
멍청하게 중요한 순간까지 유희 놀음을 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부대끼고 즐거워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은혜가 되어왔다.
"......."
그때였다.
말없이 전장을 지켜보던 내 시선이 어두운 유적지 안의 어느 곳으로 향했다.
-데이비?
"기분 탓이겠지."
내 시선은 아무것도 없는 복도의 너머에 한참 동안 꽂혀있었다.
* * *
타박...... 타박.......
고요한 유적의 최하층.
누군가의 발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페이스,"
"이런, 어디 처박혀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나?"
담담하면서도 느긋한 사내의 질문에 주변이 침묵했다.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뱀파이어, 그리고, 최근 라운 왕국의 2 왕자 칼루스와 결탁한 페이스였다.
"최근에 유희 거리를 찾았다고 들었는데."
"유희 거리? 아 그 애송이 인간 말이군."
"샤리를 이겼다고 들었어."
"그런 가진 것도 없는 년 하고 비교하면 쓰나."
느긋하게 대답한 그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뭐, 제 영지에 처박혀서 경영이나 하고 있는 모양이다만. 지금은 기다리고 있지."
"어쩌려고?"
"어쩌긴, 열심히 만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되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
"취미가 나쁘네."
담담하게 중얼거린 여성이 그를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차가워 보이는 인상, 그러면서도 언뜻 보면 한없이 느긋한 인상을 가진 페이스의 얼굴을 마치 파악하듯 계속해서 뜯어보았다.
"왜 자꾸 쳐다보나?"
"별거 아니야. 다만, 그렇게 안심하고 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고작 인간이야. 뭐 재능이 조금 있는 것 같긴 하다만. 그래 봐야 인간."
"불사의 권능을 심어놓은 네 부하가 죽었다면서."
"그깟 레플리카. 몇 번 죽이는 걸 반복하면 사라질 미약한 권능이지."
어깨를 으쓱인 그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거기까지 몰아넣어 죽인 것도 솔직히 의외이긴 하지만 말이야."
느긋하던 그의 시선에 싸늘함이 어렸다.
"진짜 불사자인 내게는 의미 없지 않겠어? 장난감이 너무 빨리 무너지면 재미없으니까. 기다려주는 거야."
"횟수의 차이일 뿐, 계속되는 죽음으로 권능이 파괴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혀를 짧게 찬 여성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페이스의 얼굴은 여유가 가득했다.
"그나저나 뭘 발견했길래 이 추운 곳까지 왔나 그래? 알고 있나? 이 위쪽에 자리를 트고 있는 괴물 자식이 어떤 놈인지."
"샨드라라고 했던가? 누가 들쑤셔 놔서 예민해 보이긴 했지만 여긴 문제 없어."
담담한 그녀의 대답에 페이스가 침묵했다.
"나는 여기 잠겨있는 것들을 꺼내야 하니까 그만 사라져."
"이게 이 유적지의 최하층에 숨겨진 보물들인가?"
"일단은...... 자세한 건 꺼내 열어봐야 알겠지만...... 내 힘으론 어림도 없어......."
페이스와 여성의 눈앞에 보인 것은 연녹빛의 빛을 발광하는 수백 개의 시험관.
그리고 그 시험관 중 유일하게 내부가 차있는 두 개의 관이었다.
하나에는 자그마한 기계 심장이 담겨있었다.
"이건 또 뭐냐. 네가 만든 건가?"
"데우스 액스 마키나(기계장치의 신)"
"그건 또 뭐야."
"만들어진 자아. 무려 스스로 성장하는 골렘의 심장이야. 호문클루스 학문에서 현자의 돌이 있다면 골렘 학문엔 이게 있으니까."
영혼이 스며드는 에고와는 다른, 직접 만들어진 생명이다.
"흐음."
페이스의 질문에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없는 진흙 골렘에 넣어도 스스로 한계치를 넘어서 성장할 거야."
그녀의 말에 페이스가 흥미롭다는 듯 기계 심장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하나는......."
"잘 모르겠어, 눈을 뜨지 않아."
기계 심장의 옆에 있는 것은 작은 소녀였다.
다만 인간과는 다르게 소녀의 등 뒤엔 백색의 날개가 제 존재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숨어있었다.
"이미 뒤져버린 거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신(新) 종족의 육체는 연구할 가치가 있으니까."
"마음대로 해. 네 말대로 슬슬 나도 이제 재미 좀 봐야겠으니까. 안 그래도 계약한 그 멍청한 왕자 놈이 언제 처리할 거냐고 땍땍거리던 참이야."
"그 인간. 죽일 거야?"
"일단 돌아가는 대로 간이나 봐줄 생각이다."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페이스를 보던 여성은 한 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미약한 빛에 휩싸여있는 시험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만 기다리면, 유적이 움직이겠지."
그런 그녀의 곁에는 마치 잘게 부서진 것 같은 검푸른 석재 파편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