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11화
1층에 이어 2층 공략 자체는 순조로웠다.
애초에 위험한 개체들은 지하 3층에 존재하고 있고 그들 대부분을 선발 탐사대가 밀고 내려가 처리하고 있으니 실상 위험할 만한 요소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이번에도 내가 나섰다간 전황이 너무 순식간에 뒤집히는 바람에 일정 숫자만 잡고 후방으로 이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 견습생의 골렘은 너무 강하니까. 처음 시오 견습생과 싸울 때보다 훨씬 민첩하고 강해졌어."
보리스의 판단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출력의 힘이 더 늘어난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연금술사는 수련이 아니라 지식으로 싸우는 직종이니까요."
내 말에 그는 마음에 드는 듯 호탕하게 웃어 보이며 내 등을 두드렸다.
미묘한 감촉이 처음 회랑에 떨어졌을 때 내게 덕담을 하며 등짝을 툭툭 두드려 주던 헤라클래스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하하!! 그렇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자신의 육체 단련도 절대 빼먹어선 안 되는 일 중 하나일세."
"그런가요."
"만약 저 골렘이 행동불능이 된다면? 만약 그런 상황에 자네가 이곳에 있다면 어찌 되겠는가. 스스로 싸우는 수밖에 없지!"
뼛속까지 무인인 그 다운 발언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겠지요."
"허허, 데이비 견습생은 그래도 영특한 편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 자네가 들어온 건 우리 기사단의 흥복이구만! 파하하하!"
정식 단원이라고 모두가 마스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원이 20명이면 그중에 마스터는 고작해야 2명에서 3명 정도.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재 어지간한 단원보다 뛰어난 전투능력이나 유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대는 정식 단원으로 제대로 활동할 생각은 없겠지.
'그렇지.'
즐기는 건 견습 단원까지다. 이후부터는 차라리 자금적인 지원을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날뛰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
"표정이 좋다?"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휙 던지자 내게 다가오던 일리나가 지친 얼굴로 백색의 거검을 내려놓았다.
"칼디라스는?"
"칼디라스에 의존해선 수련할 수가 없으니까."
검 하나 쓴다고 무력이 세배에서 네 배 가까이 증가한다면 스스로 단련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땀에 절어있는 얼굴로 물통을 벌컥벌컥 마신 그녀가 호탕하게 물통을 돌려주었다.
땀에 젖어 물기가 가득한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그래도 넋 놓고 보지 않는 건 눈이 기본적으로 높아져 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매번 동거하듯 같이 다니는 이 이기적인 미모의 마왕님 때문이기도 하리라.
"처음엔 나를 도와주려고만 움직이더니, 요즘 들어선 제법 스스로 움직이고."
"재밌네."
"흐응...... 너 가끔 보면 진짜 수백 년은 살아온 할아버지 같아."
그녀의 독설에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수백 년 살아와 관록이 쌓인 노인처럼 생각이 깊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그녀의 말은 어찌 보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보기 좋아. 그래도. 억지이긴 해도 널 여기 데려온 건 잘한 거 같아."
귀엽게 웃어 보이며 그녀가 말끔하게 말하자 내 입에서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놓아버렸다.
"꺅!"
"까불기는."
"너!"
내 행동에 잔뜩 뿔이 난 그녀가 소리치려던 찰나였다.
내 시야에 문득 이상한 게 비쳤다.
"보리스 선생님."
"음?"
"저쪽 지반. 조금 위치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고개를 돌린 보리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쿠구구구구구궁!!!!
역시나 더러운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꺄악!!"
"이게 뭐야!"
갑자기 유적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기겁한 견습생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다들 모여! 흩어지지 말고 주변을 경계해라!!"
유적은 거대한 정사각형 석재들이 수백 개 틈을 맞춰 끼워져 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하인스 영지와 같은 방식.
그런 구조의 유적 특성상 무언가를 잘못 건드리면 지금처럼.
"헉! 벽이!"
유적 전체의 구조가 뒤바뀌기도 한다는 점이다.
"실리아 선생님! 견습생들을!"
"네!"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보리스가 급히 검을 뽑아 들며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견습생들 또한 당황하던 것을 멈추고 잔뜩 긴장한 채 무기를 뽑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그그그그극!!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긴장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유적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 형태를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굳게 막혀있던 벽이 열리고 열려있던 길이 틀어막힌다.
"서...... 선생님...... 이게 대체.......
이윽고 변화를 마친 유적의 모습에 창백하게 질린 펜디르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덜컹!!
견습생들 중 가장 바깥에 있던 두 녀석이 딛고 있던 바닥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어?"
"읏?!"
그들은 다름 아닌 초대 성녀 다프네의 광팬인 루시아 쉘만과 시오 하울이었다.
견습생들 중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두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그나마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선생들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반응하기엔 너무 찰나의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아주 잠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그렇게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도 결국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찬 나는 두 사람이 사라지고 다시금 닫히기 시작하는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데이비?!"
"메가트론!! 출력제한을 해제한다, 모두를 지켜라!"
묵묵히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흉악한 골렘. 메가트론에게 한 가지 명령을 던진 후에 말이다.
[명령...... 수.......]
멀어지는 구멍 너머로 메가트론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라이트!]
구멍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가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발광 마법인 라이트였다.
순식간에 몸 안에서 소량의 마나가 빠져나가며 주변이 환하게 비친다.
아주 찰나의 순간.
추락 시간은 길지 않기에 무조건 두 사람이 바닥에 처박혀 피떡이 되기 전에 받아내는 게 우선이었다.
콰드득!!!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몸에 재워놓았던 세 가지 마나를 동시에 활성화 시켰다.
'말 안 들으면 뒷일 책임 안 진다. 재깍재깍 움직여.'
[헤이스트]
[어질리티]
[블러드 엑셀러레이션]
[그라비티]
속도 강화계 마법, 버프 마법, 그리고 흑마법인 혈류가속.
그것으로 모자라 중력 강화까지.
[에어 타일]
공기를 뭉쳐서 만드는 공중발판 마법이 발끝에 걸렸다.
두 사람이 떨어지고 내가 뒤이어 들어온지라 낙하속도의 차이가 크다.
당연히 어지간한 육체 능력으론 두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버프란 버프는 다 걸고 허공에 생긴 발판을 걷어차듯 튕겼다.
그리고 거기에 반동을 얻어 몇 번이고 반복해 따라붙었다.
급 가속된 낙하속도 덕분에 두 사람의 위치까지 쫓아오긴 했지만, 플라이 마법은 너무 느리고, 중력역전 마법인 6 서클 리버스 그래비티는 현재 내 몸으로 사용할 수 없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기가 무섭게, 나는 양손을 깍지 끼워 수인을 맺는다.
보통 때라면 영창이고 수인이고 필요 없다만.
[7 서클]
[강제 기어변속]
[과부하]
[하이 리버스.......]
다른 마나와 다르게 아직 5 서클 정도까지밖에 회복하지 못한 마법 서클로는 6 서클은커녕 7 서클 마법 또한 구현할 수 없다.
다만, 썩어도 준치라고 나는 8 서클 동화의 경지를 넘어선 적이 있던 마법사.
마나의 의지를 느끼는 '동화'의 경지를 이용해 강제로 마법을 가동했다.
어차피 아주 잠깐 발현될 마법. 그렇기에 위험부담이 큰 6 서클을 넘어 7 서클 마법을 택했다.
[그라비티]
일반적으로 중력을 역으로 작용시키는 중력역전과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중력의 법칙을 내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중력계통 최상위 마법.
전신의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몸에서 터져나간 마나가 일대의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며 퍼져나갔다.
45. 유적의 최하층, 그곳의 유산과 방해자.
생각해보면 루시아 쉘만은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지만 시오 하울은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왜 하필 이놈이 떨어진 건지.
그런 심리 때문일까.
"크으악!!!"
상대적으로 부상이 없는 루시아와 다르게 시오 하울의 팔은 충격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는지 한쪽 팔이 기괴하게 꺾여 박살이 나 있었다.
완벽한 마법이 발현되었다면 저럴 일도 없었겠지만.
물론 세 사람 중 가장 리바운드가 심하게 온 건 다름 아닌 내 몸이었다.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은 출력의 마법을 사용했는데 반동이 없을 리가 없다.
당장 일반 마법사라면 온몸의 피가 역류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쿨럭......."
-맙소사! 아직 6 서클도 회복하지 못한 몸으로 무슨 짓을 저지른 게야!
비명을 지르듯 페르세르크가 내 몸에 손을 얹고 급히 마기를 끌어올렸다.
기본적으로 파괴적인 힘을 지닌 마기이지만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얼마든지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만해."
다만, 마기로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페르세르크가 대량의 마기를 끌어 사용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이가 아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낚아채 내게서 떨어뜨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생명력을 끌어올려 나를 살리려 한 것이다.
-닥치고 받아! 반 시체가 된 주제에 어디서 편식을!
그녀의 비명 섞인 외침에 숨을 헐떡이던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힘겹게 중얼거렸다.
"기다려봐. 좀, 자비를 내리사...... 어린양을 굽어살피시는 주신께 황공하옵게도 고하오니."
짧은 기도문과 함께 강화된 자연 치유마법이 꼬여버린 내장을 조금씩 회복시키기 시작하자 당장 끊어질 듯 거칠던 숨이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명백히 이상할 정도로 빠른 회복이었다.
"후우......."
-데이비!
"됐어, 호들갑 떨지 마라. 좀."
-말이 되는 소리......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게야?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치던 그녀가 내 몸의 변화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마나의 성격에 대해 내가 말해줬던가?"
-.......
내가 가진 세가지 힘의 성격.
자신을 쓰라고 악을 써대는 사령 마나.
그리고 게을러터진 신성력.
마지막으로, 굉장히 까칠하면서 필요할 때엔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일반 마나.
각기 개성 넘치는 성질머리를 지닌 힘 중에서도 일반 마나만큼은 내 생명에 굉장한 영향을 받는다.
평소에 까칠하기 그지없는 마나가 주인인 내 생명반응의 위험을 느꼈을 경우 취하는 행동은 의외로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