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13화
[이도 이기어검술]
[쌍아]
거기에 멈추지 않고 놈에게 파고들며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후웁!"
[혈마공]
[중검]
[복합 충격기]
[흑백 쌍뢰장]
기교 없이 압도적인 중량을 이용하는 검술인 중검의 방식을 그대로 한 손에,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 검보랏빛의 화염을 머금어 충돌시키듯 붙인 뒤 그대로 튕겨내며 주먹을 내질렀다.
콰르르릉!!
대량의 중량이 뒤섞인 검보랏빛의 화염이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내며 놈의 몸체를 가루로 만들다 못해 뒤편의 벽까지 일면 뒤틀어버릴 만큼 강렬하게 내리꽂혔다.
"아이고 머리야......."
-데이비! 무리하지 말라고 본녀가 말했어!
'알아. 아니까 좀 조용히 해주라.'
머리가 징징 울린다, 야.
찌르르 울리는 몸의 경고를 무시한 채 조각이 나버린 골렘의 머리에서 코어의 역할을 하는 마정석을 뽑아냈다.
"읏......."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루시아였지만 그것으로 그녀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경험과 실력이 아직 견습생에 불과한 그녀에게 이 같은 일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울 테니까.
"시오 하울."
"......."
"정신머리 똑바로 박혀있으면 무조건 루시아를 지켜."
"......."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한 번만 더 내 입에서 똑같은 소리 나오면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죽이고 간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마나를 끌어올리는 녀석을 보며 그나마 살려둔 게 도움이 되는구나 싶은 기분도 들었다.
녀석은 내가 어떻게 말도 안 되는 검술을 펼치고 주먹을 내지르며 소드마스터에 비견된다는 6 서클 이상의 마법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해 보였다.
다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기엔 내가 좀 전에 했던 말이 걸리는 듯 보였다.
"갈 길이 멀어, 어서 따라와."
일대가 정리되자 나는 곧바로 안쪽을 향해 다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가급적이면 전부 챙기고는 싶다만, 저 큰놈들을 하나하나 챙길 공간이 부족한 건 애석한 일이었다.
아쉬운 대로 마정석과 마나 배열이 새겨진 소형석판만 뜯어내 주머니에 챙기기를 한참.
멀쩡히 사용 가능한 마정석이 30개가 넘고 석판이 20개가 넘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고생한 보람은 확실히 있네.
이 정도면, 적어도 메가트론급 골렘을 4대에서 5대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곧바로 천장을 박살 내고 올라가지 않은 보람이 있다.
사실, 안쪽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더 이상 마도 골렘들이 튀어나오지 않게 되자 나는 숨을 짧게 고르며 주변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데...... 데이비! 잠시만요!"
아주 조금씩 체력을 회복시키던 중, 멍한 얼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루시아가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달려왔다.
"뒤에 있으라니까."
"저...... 저도 신관이에요! 체력 회복마법이라도 걸게 해주세요!"
"신성 마법은 나도 쓸 줄 알아."
"본인이 쓰는 것과 남이 걸어주는 건 차이가 있다고 배웠어요!"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가득 보였다.
사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긴 하다만, 루시아는 울먹거리면서도 급히 신성력을 끌어올려 내 몸에 치유마법을 시전했다.
다만,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은 마법의 형태를 만들기도 전에 계속해서 바스러지듯 흩어지기만 했다.
급하게 사용하는 신성 마법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엉엉 울면서 억지로 신성력을 끌어올려 보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인간이건 신성력은 대부분 게을러터진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진정해."
"......."
"숨을 고르고."
내 말에 그녀가 격하게 숨을 몰아쉬다 천천히 내뱉기 시작했다.
"그래. 잘했어. 신성 마법은 다급해질수록 더 쓰기 어려우니까."
"데이비 님......."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면 돼. 시간은 많아."
그녀를 안심시키며 다독여주자 울먹거리던 그녀의 손에서 화려하고 밝은 백색의 빛이 터져 나왔다.
미약하지만 찌르르 울리던 몸이 약간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훌륭해. 그 정도면 충분해. 잊지 말고, 신성 마법은 침착하게 사용하는 거다. 넌 파트너든 팀원이건 모두를 살려야 하는 책임이 있어, 알고 있지?"
"네......."
"그런 네가 패닉에 빠지면 아무도 치료해줄 사람이 없어."
"명심...... 할게요."
"그래. 잘했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것처럼 맹신을 보내는 그녀의 눈빛은 꽤나 익숙한 부류였다.
다만 그 안에 서린 자책감은 어쩔 수 없었다.
쿠웅!!!
잠시간의 휴식을 마친 나는 침묵하는 두 사람을 데리고 복도 끝의 거대한 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삐익!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모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반대쪽 벽면에서 10 : 00이라는 숫자가 석판 위로 출력되며 1초씩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도 주냐?"
허탈함에 털썩 주저앉은 내가 숨을 고르자 루시아가 급히 달려와 내 팔을 꼭 잡았다.
"고마워요...... 이 말도 못하고, 나 정말 민폐만 끼치고......."
울먹거리는 그녀를 토닥거려주고 있자 좀 전까지 침묵하던 시오 하울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하나...... 물어도 될까."
"기분 내키면 대답은 해줄게."
내 말에 그가 이를 악물고 조용히 물었다.
"너, 오러 블레이드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대단한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왜 처음엔......."
"처음?"
"그 엉성한 움직임......."
그의 외침에 내가 심드렁하게 웃어 보였다.
"취검."
"취...... 검?"
"술 취한 검술이라고, 남들이 보기엔 검술도 모르는 초짜한테 개 박살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 예능검술."
"뭐...... 뭣?!"
"몰랐냐? 너 물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라고. 쉬워 보이지? 남들 속이는 검술이 쉬울 리가 있나."
"망할!"
진실을 깨달은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런 주제에 네가 누굴 재단하고 판단해."
내 말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내게서 느꼈던 괴리감은 좀 전 내가 마도 골렘들을 무참히 베어 넘겨버리면서 이미 확신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압도적인 검술.
검술 선생인 보리스나 프리도스도 보이지 못하는 틈이 없는 검술을 보여주었으니 이제 와서 내 육체가 약하다느니 하는 생각은 멍청한 판단일 뿐이다.
"그...... 그럼 왜 훈련이나 평소에 마법을 쓰지 않은 거지?"
"골렘을 이겼으면 보여줬겠지."
나는 너희들의 수준에 맞춰서 대련해준 것뿐이다.
그 속뜻을 이해한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게 무슨...... 너...... 인간이 맞는 거냐?"
"아 참, 루시아."
황당하다는 듯한 그의 질문을 무시한 채 나는 문득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위해 루시아를 불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쪽 벽면을 바라보았다.
10분을 가리키던 시간이 모두 소진되고 반대쪽 벽이 열리며 내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싱긋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속에는 뭐가 들었을지 몰라."
"네...... 네?"
"기억해두면 언젠가 크게 정신건강에 도움될 거야."
하, 이걸 말할 수도 없고.
쿠웅!
왠지 모르게 당나귀 귀의 임금님을 모시던 신하의 기분이 묘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 * *
공간 너머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홀이었다.
하지만 좀 전 지나온 거대 홀과 다르게 이곳은 녹빛의 발광하는 액체들이 수천 개의 시험관에 담겨있다는 게 달랐다.
마치 거대한 연구소 같은 모습.
모조리 액체만 담겨있을 뿐 속이 비어있는 그 모습에 두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일 끝 방까지 들어온 거 같은데."
내 중얼거림에 루시아가 천천히 시험관 쪽으로 걸어갔다.
"전...... 부 비어있어요."
그녀의 말처럼 텅 빈 공간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움직이다 천천히 멈췄다.
내 시야가 닿은 것은 벽면에 붙은 수많은 시험관과 다르게 유별나게 툭 튀어나와 있는 두 개의 시험관이었다.
-저건.......
거의 동시에 그것을 발견한 페르세르크가 의아한 듯 중얼거리며 쪼르르 날아 나를 따라왔다.
시험관에 든 것은 기계로 만들어진 심장이었다.
사이즈는 고작 인간의 심장만큼 작지만 어째서인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소녀가 알몸으로 용액 속에 담겨 있는 것도 보였다.
나이는 대략 18살 정도 되어 보인다만, 체격이 워낙에 아담한 편이라 그보다 더 어려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만 인간과 다르게 그녀의 허리엔 사람 팔 길이 정도 되는 백색의 날개가 돋아나 있었고 봉긋한 가슴의 아래에 미약한 균열이 있었다.
마치 그 부분을 조작해 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보는 종인데. 호문클루스라도 연구했나?"
골렘과는 쌍벽을 이루는 연금술 극한의 학문.
호문클루스.
골렘이 완벽한 심장이자 핵인 데우스 액스 마키나(기계장치의 신)를 만들기 위해 파고드는 학문이라면.
호문클루스는 현자의 돌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염원하는 끝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이거 설마......."
말없이 지켜보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기계 심장.
나머지 하나는 호문클루스로 추정되는 정체 모를 작은 소녀.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지만. 초 고대문명은 마법도 마법이고 연금술도 극한까지 다다랐다고 추측된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어쩌면 저 기계 심장은.......
"데우스 액스 마키나, 완성품."
데우스 액스 마키나. 다른 이름으론 기계장치의 신.
골렘 계통 학문의 정점, 내 지식으로도 도저히 구현 불가능한 만들어진 자아를 가진 심장.
연금술 학문의 스승이었던 이바도 평생에 걸쳐 단 한 개 우연히 만들어진 게 전부라던 물건.
-기계장치의 신?
"기술로 만들어진, 자아를 가진 심장. 여기 도대체 뭐하던 곳이냐?"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