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14화
46. 뱀파이어와 골렘.
세상에는 해명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다 다르면서도 어느 세상이건 비슷한 마나의 개념이나 연금술의 개념.
그리고, 신의 의지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힘인 신성력과 그에 준하는 신의 권능 일부.
페르세르크의 심연의 권능이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
그리고, 완벽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동력 핵이라고 알려진 진화하는 골렘의 핵.
연금술 학문에서 극도의 끝을 추구하는 생명을 가진 심장.
뭐 여러 가지로 표현방법은 많지만.
기계 심장, 데우스 액스 마키나(기계장치의 신)는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다.
"이건 챙겨야 돼!"
평소의 이미지도 잃어버린 채 눈을 부릅뜨고 시험관에 달라붙은 내 목소리가 더욱 활기를 띠었다.
하인스 영지의 거대 기후 조절 시스템도 황당하지만 이건 그 가치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앞에 있는 이 두 가지의 가치를 모르는 두 녀석은 그저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데이비, 여길 보아.
말없이 빙빙 돌아가며 주변을 탐색하던 페르세르크가 계기판을 발견했는지 나를 불러왔다.
계기판은 홀로그램처럼 시험관 내부에 담긴 것의 상태를 출력하고 있었는데 마치 손이라도 얹으라는 것처럼 형태가 고정되어있었다.
이에 말없이 손을 얹자 내 손을 타고 흘러나온 마나가 전신을 휘감으며 홀로그램 속의 문자를 바꾸기 시작했다.
-데우스 액스 마키나.
[링크 준비 완료, 조율 완료.]
-신의 사자, 백익.
[가사상태, 심장 이식 준비 완료.]
"백익......."
역시나 처음 듣는 종족이다.
"신의 사자라니 광오하기도 하네, 회개나 하셔라."
헛웃음을 흘리며 상태를 나타내는 목록을 훑어보니 대충 이 두 시험관의 목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는 기계장치의 신. 자아를 가진 골렘의 심장.
그리고 하나는 심장이 없는 특이한 종족.
이 작은 소녀가 정말로 백익이라는 특이한 종족이고 신의 사자라면.
어쩌면 이 시설을 만든 초고대 문명의 주인은 신의 사자에 기계장치의 신을 이식해 부리려는 정신 나간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데이비. 여기 연구 일지가 있어.
그때 조용히 주변을 탐색하던 페르세르크가 자그마한 책자를 내게 가져왔다.
남들의 눈엔 그저 책이 허공에 떠서 다가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야 그녀가 잘 보이니 문제는 없다.
"연구일지 같은데 계기판이랑 달라서 읽을 수가 없네."
언어가 달라 읽을 수도 없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해독하기엔 자료가 부족한 것도 현실이고 말이다.
"일단 챙기자."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해도, 일단 없는 것보단 나으리라.
연구일지를 챙겨 들고 청단이를 뽑아 든 나는 그대로 기계장치의 신이 담긴 시험관을 강하게 그어 내렸다.
카앙!!!!
하지만 이 단단한 유리는 모기가 물었나? 라고 하듯 너무 멀쩡하게 견뎌냈다.
"이것 봐라?"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고 후려친 청단이로도 벨 수 없다니. 장난이 과하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이걸 챙겨갈 거거든. 그런데 좀 단단하네."
"맙소사...... 오러 블레이드로도 잘리지 않는 유리라니......."
티오니스 대륙은 그래도 유리가 어느 정도 보급이 되는 편이다.
지구에서 알려진 유리 가공법과는 다르지만 티오니스 대륙의 광물 중 하나는 고열에 녹였다가 천천히 식히면 속이 비어 유리처럼 변하는 광물이 분명 존재했다.
"이거, 그렇다면 꺼낼 수 없는 거 아닌가요?"
루시아의 조심스런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 잠깐 비켜볼래?"
혹시나 방어 계통의 힘을 경계해 청단이를 그어보긴 했는데, 그런 건 없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단순무식하게 단단하다는 것.
그렇다면 오히려 이야기는 쉽다.
우웅.......
이윽고 붉은 잔상을 띠며 내 손에서 빙그르르 회전한 홍단이의 붉은 검신 위로 얇은 오러 블레이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옅어 보이지만 아주 농밀한 압축 오러 블레이드가 만들어지자 나는 망설임 없이 시험관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서걱!!
동시에 오러 블레이드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던 시험관이 완전히 반으로 잘려나가며 녹빛의 액체를 마구잡이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홍단이의 권능까진 견디지 못한다는 게 다행인 일이다.
액체가 사라지며 용액 속에서 부유하던 심장을 꺼내 쥔 내 손으로 미약한 고동이 느껴져 왔다.
기계 주제에 스스로 공명까지 한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이미 내 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검이 그런 경우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수르트 이 양반은 검을 만드는 것으로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민 것이다.'
내가 한 것은 그저 마감질 뿐. 결국 수르트도 미치광이 장인이라는 게 이로써 입증이 된 꼴이다.
따뜻한 향을 풍기는 심장을 챙긴 뒤 곧바로 바로 옆의 시험관 또한 베어냈다.
서걱!!
앞뒤로 한 번씩 베인 시험관은 그 안에 든 작은 소녀를 전혀 상처 입히지 않고 말끔하게 베어냈고 녹빛의 액체가 떨어지며 튀어나온 소녀의 몸을 말없이 받았다.
인간이 아니라곤 해도 일단은 날개만 있을 뿐 인간과 매우 흡사한 소녀였다.
말없이 주머니에서 로브를 꺼내 그녀의 몸을 감싼 나는 기계 심장을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 그녀를 업었다.
"데...... 리고 나가시게요?"
"주운 사람이 임자지. 왜, 필요해?"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알아, 달라고 해도 못 주지 이런 건."
빙그레 웃는 내 말에 그녀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스릉.......
그때였다.
"잘했어."
담담한 말과 함께 내게 다가오던 루시아의 목에 섬뜩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걸렸다.
"이제 그거 두 개 모두 넘겨."
감정하나 느껴지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
갑자기 나타난 여성의 존재에 시오 하울의 눈이 급격히 크게 뜨여졌다.
"설마 그 시험관을 잘라버릴 줄은 몰랐어. 지켜보고 있었던 거, 정답."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녀는 파랗게 질린 루시아의 목에 걸어올린 제 손톱을 조금 더 들이밀며 담담하게 요구해왔다.
"이 아이, 죽게 두기 싫으면 그것들을 넘겨."
그녀의 말에 나는 업고 있던 작은 소녀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요즘 뱀파이어들은 먹튀도 하냐?"
일리나가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녀의 성격을 고려하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달려들었을 테니까.
그녀에게선 지금까지 만나본 뱀파이어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위험한 향기가 났다.
애초에 느껴지는 혈기부터가 급이 다른 수준. 당장 일리나가 덤벼들었다면 결과는 눈에 보듯 뻔한 차이였다.
"나는 꺼낼 수 없었어. 그건 아주 중요한 연구자료. 그러니 내게 줘."
"......."
"그 검은 예리하지만 날 죽이지 못해, 목숨은 거둬가지 않아. 나는 약속은 지켜."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성은 한 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조용히 요구해왔다.
* * *
"이 자식!"
[디스펠]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급히 정신을 차린 시오 하울이 급히 얼음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마법은 완성되기도 전에 내가 시전한 디스펠에 완전히 박살 나며 그대로 피를 울컥 토했다.
"닥치고 얌전히 있어."
담담하게 쏘아붙인 내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밀피유. 너는?"
"데이비."
내 말에 그녀의 눈에 의문이 어리기 시작했다.
"데이비, 음...... 데이비 올 라운?"
"내 이름이 뱀파이어들한데도 퍼졌나?"
"아니, 그리 유명하지 않아. 페이스가 하는 말을 들었어."
"페이스?"
"널 죽이려고 벼르는 녀석."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일전에 드워프 마을 황색 바위 부족을 습격했던 마수와 뱀파이어가 그 페이스라는 놈의 소행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다.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할 데이비가 왜 여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뭔 소리야."
"페이스. 네 집 불태우러 간다고 했어."
"태운다고?"
픽 웃은 내가 한 손을 뻗자 바닥에 꽂혀있던 홍단이가 파르르 떨리며 내 손에 빨려 들어오듯 안착했다.
"그 뱀파이어가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는데."
픽 웃은 내가 검 끝을 그녀에게 겨누었다.
"겁대가리 없이 남의 집 침범하다간 큰일 난다고 전해."
지금 와서 생각난 사실이긴 한데. 지금 영지에 뱀파이어 한정으로 괴물 같은 힘을 발휘할 이가 하나, 체류 중이거든.
얘로부터 하이 엘프는 종족의 특성부터가 뱀파이어의 천적이다.
보아하니 내게 뭔가 용건이 있어서 300년간의 침묵을 끊고 스며든 것 같던데.
"관심 없어. 난 그 심장과 백익이 필요해."
그녀는 자기 일 이외엔 정말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거절하면?"
"이 아이. 죽어."
"근처에 있는 골렘 파편은 전부 네가 치운 건가?"
"거슬려서. 부숴버렸어."
그녀의 담담한 말에 파랗게 질린 루시아가 이를 악물었다.
"데이비 님! 저는 신경 쓰지 말아요!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에게 그걸 넘겨주면 안 돼요!"
격하게 소리치며 그녀가 발버둥을 치지만 여리여리하게 생긴 것치고는 밀피유의 근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듯 보였다.
"넘기면 정말 아무도 죽이지 않아."
"거절한다니까."
"그럼, 어쩔 수 없어. 다 죽이고 가져가면 돼."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루시아의 목을 손톱으로 그어버리려던 찰나.
쩌억!!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모를 푸른 잔상이 그녀의 손톱을 과감하게 베어버렸다.
"읏......."
생각 외의 공격에 당황한 듯 물러난 그녀가 곱게 눈을 찌푸렸다.
"너, 이상해."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경계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인 그녀가 나를 직시했다.
"이기어검?"
"그래."
"어떻게? 인간은 환골탈태를 겪지 못하면 오러 블레이드도 뽑아낼 수 없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환골탈태, 마스터의 경지라는 건 마나를 다루는 숙련도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즉, 이기어검을 다룰 정도로 마나 컨트롤이 뛰어난 이가 환골탈태를 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기어검...... 검선의 경지, 너, 많이 이상해."
이해할 수 없는 내 몸의 구조에 그녀가 눈을 찌푸리며 천천히 혈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을 잠식하는 진득하고 차가운 기운에 파랗게 질려 있으면서도 루시아는 자신이 내게 방해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그녀를 재빠르게 감싸듯 시오 하울이 부축했다.
그래도 눈치는 있으니 봐준다.
"너, 흥미로워."
"아직 다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연구하게 해줘."
밑도 끝도 없는 요구에 홍단이를 겨누고는 남은 한 손을 뻗어 벽에 처박힌 청단이를 회수했다.
그리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조용히 페르세르크의 권능을 끌어왔다.
삐릭.
-성명 : 밀피유
-나이 : 223
-성별 : 여
-종족 : 하프블러드
-칭호 : 연금술사 파라셀루스(호엔하임), 후작급 뱀파이어.
-상태 이상 : 피로.
-특이사항 :
순수한 하프 블러드.
흡혈 경험이 전무.
처녀 뱀파이어.
-현재 심리 :
호기심. 호기심. 호기심. 호기심. 호기...... 심(?), 호기심(......)
하프블러드.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
조금 의외라는 느낌이다.
처녀라는 특징은 왜 기재되어있는지 모를 일이다만.
다만 중요한 건 그녀의 정신머리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