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19화
마정석을 겹겹이 쌓아 만든 무기의 화력을 올리기 위해서 다수의 마법을 인첸트 한 건 역시나 성공적이었다.
물론, 화력을 보조하기 위해 대량의 마나가 사용되는 터라 공격속도나 효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푸화악!!
끼에에엑!!!!
-크아아아!!
멍청한 몬스터 놈들을 한순간에 아비규환으로 만드는 데엔 그것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끼이익!! 끽! 끽!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고블린들은 무시한 채 스나이퍼의 초장거리 저격이 큰놈들을 집요하게 노리고 파고든다.
한번 대열을 이탈하고 오합지졸이 된 놈들은 신경 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어서 륀느의 명령을 인식한 중거리 골렘인 저거노트와 방어 골렘인 탱커가 길목을 틀어막았다.
철컹! 철커덕!!!
이윽고 촘촘하게 가시가 박힌 방패를 들이민 녀석이 앞을 틀어막자마자 저거노트의 손이 마치 미니건처럼 빠르게 회전하며 마탄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파파파팡!!
중량 마법과 고속 마법, 그리고 예리함 마법을 부여한 에너지 볼트.
각 위력은 강하지 않다. 연사속도 또한 익히 내가 알고 있는 미니건마냥 분당 6천 발씩 쏟아내는 사기적인 효력도 없다.
끽해야 분당 500여 발 정도.
다만 마법 자체에 관통력을 추가한 덕분에 한발에 서너 마리씩 쓸려나가는 장점이 있다.
저래 봬도 사기적인 출력을 자랑하는 마정석을 쪼개 여러 구로 만든 덕분에 연사력이 오른 것이지 처음엔 한 발 쏘는 데 1초씩 걸렸던 점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한 성장이다.
-끼아아악!!!
-깍깍!!
다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만족감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저게 무슨......."
"데이비 님...... 도대체 뭘 만드신 겁니까......."
메가트론 때보다 더한,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골렘들을 보며 윈리와 율리스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화력이 저게 무슨?! 그저 단순히 에너지 볼트가 아니었습니까?!"
"정확히는 마법에 인첸트를 한 게 아니라 다수의 마법을 섞은 거죠."
"그게 가능할 리가......."
"기계잖아요? 인간이 못 하는 걸 도구가 하고 마법진이 대신해주는 것처럼."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상식......."
"거, 상식이라는 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니까 그러네."
자꾸 깜빡하는 거 같은데 저거 대량의 마법지식이 집약된 골렘입니다.
물론, 그 출력에 따른 과부하가 어마어마해서 저렇게 미니건처럼 회전시켜서 과부하를 줄이고는 있지만.......
-그래도 출력량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어, 충전이 시급하군.
개선의 여지가 있다.
쿵!! 쿵!!
전방에서 탱커가 좁은 길을 틀어막고 바로 뒤에서 저거노트의 무자비한 마나탄 포격이 가해진다.
오합지졸마냥 흩어지는 녀석들이 어떻게든 그 틈 사이를 파고들어 와 녀석들을 공격하지만.......
애석하게도 놈들의 무지막지하게 튼튼한 장갑에 큰 피해를 주진 못했다.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기능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 덩치가 커져 버린 것도 있고, 단일 화력이 강한 대형 몬스터들을 스나이퍼가 가까이 가는 족족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급기야 몬스터 중 몇몇이 두 골렘의 틈을 파고들어 지나쳐버리기 시작했다.
물론, 녀석들의 그런 시도에도 륀느는 무언가의 대비를 해놓았다.
기잉!! 기이이잉!!
-끼아아아악!!
서걱!!
-까아아악!
거대한 단검을 든 기동성 중시의 기동 타격 골렘 퓨마와 전기톱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골렘인 메가트론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비 님, 계산상으론 놓치는 몬스터가 다수. 륀느, 참전해야 한다고 판단."
"그래, 나가서 마음껏 날뛰어라."
저리 작은 체구라도 실상 5기의 골렘보다 가장 튼튼한 륀느이니 몬스터를 상대로 당할 일은 없겠지.
나풀거리는 스커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낸 녀석이 손등 위로 기이한 장비를 소환한다.
"근접 전투를 채택. 타입 라이트 세이버. 륀느, 이것을 높게 평가."
치이익!!
마치 오러 블레이드를 구상해서 만든 것처럼 양쪽 손등 위로 튀어나온 장비에서 마나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녀석의 등허리에 난 작은 날개가 펄럭이며 날아오른 녀석이 몬스터 무리 한복판에 육탄 폭격을 가했다.
콰앙!!!!
강렬한 폭격음과 함께 이어지는 상황은 말 그대로 쓸어담는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의 양민학살!
갑작스런 륀느의 난입에 깜짝 놀란 몬스터들이 당연히 반격을 가해보지만.
카앙!!
륀느의 행동을 막기는커녕 저 연약해 보이는 피부조차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지 주춤거렸다.
겁을 먹고 흩어지는 놈들을 제외한 채 지휘를 받아 전진하는 녀석들만 정신없이 날려버린다.
"세상에...... 저게 뭐야......."
"마나를 무식하게 뭉쳐서 검으로 만들다니......."
옆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은 거의 넋이 나가 버렸다.
"저 녀석은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괜히 현자의 돌, 혹은 데우스 액스 마키나 골렘이라 불리는 게 아니겠지.
솔직한 내 심정이 현 상황을 대변해주었다.
아무리 출력이 좋은 골렘이라도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하면 충전시간도 필요하고 장갑이 찌그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륀느는 그야말로 완전한 골렘이라는 걸 과시하기라도 하듯 거침이 없었다.
륀느가 강제로 진형을 무너뜨리며 전투에 파고든지 꽤 시간이 흘렀을 때.
지휘능력이 일순간 사라졌는지 몬스터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져 마구잡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방향은 영지의 반대편이라 굳이 쫓아가진 않았다만...... 날 잡아서 잔당을 처리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이후, 여기저기 장갑이 찌그러진 골렘들을 대동한 채 내게 돌아온 륀느는 여기저기 찢어진 복장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낭랑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륀느, 일대 몬스터의 생존반응 확인. 위협이 되는 적은 없다고 판단, 데이비 님의 칭찬을 통해 출력을 증진하는 방법을 추천."
생각해보면 륀느는 강자와의 상대에도 어느 정도 쓸만하지만 반대로 양민학살엔 확실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무표정이면서도 미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48. 린디스 제국의 수도.
린디스 제국의 막내 황녀,
황족 중 유일하게 수인 혼혈인 에이리아 알 린디스는 여타 다른 황족들과 다르게 3년 이상 남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다.
아니, 식사뿐만 아니라 몇몇 시녀를 제외하곤 맨살조차 보인 적이 없었다.
고귀한 혈통인 황족이 남들의 시선에서 피하고자 가면을 쓰고 장갑을 벗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맨살을 보이지 않는다?
황당한 일 같지만 근 몇 년 가까이 그녀에게는 익숙한 현상일 뿐이었다.
그녀가 남들이 보기에 참혹할 정도로 증상이 끔찍한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나이 13세에 발병한 병의 이름은 [악마의 피], 다른 이름으론 융해 가속바이러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번 발병하면 현재로썬 치료방법이 없다고 알려진 참혹한 병이었다.
전신에 징그러운 푸른 반점들이 돋아나고 몸의 체온이 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당장 운신이 불가능해지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병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타 다른 발병자와는 조금 케이스가 달랐다.
바로 외면에 드러나는 검푸른 반점들이 징그럽게 돋아난 것을 제외하면 일반인과 다름없이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체온은 정상. 몸 안에 활보하는 다른 장기들이나 근육, 지방도 멀쩡하다.
병으로 인한 노고로 인해 몸이 조금 야위긴 했지만 실상 그건 병과는 관계없이 입맛이 떨어진 결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외향만큼은 도저히 어릴 적 보여주었던 뽀얗고 미래가 기대되던 청초한 모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린디스 제국에는 한때 수인을 천하게 여겼던 사상까지 아직 남아 있으니 그녀의 입지는 실상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모르는 곳에선 왕도 욕한다는데 끔찍한 병에 걸린 황녀는 오죽할까.
그래서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장갑을 꼈다.
전신을 완전히 가리는 투박하면서도 수수한 드레스를 절대 벗지 않았고 린디스 제국 황제의 명에 따라 치료를 위해 성국에서 약 2년 이상을 보냈다.
"저, 정말...... 제가 나을 수 있는 건가요?"
아주 잠깐, 희망이 서린 그녀의 질문에 눈앞에 앉아있던 깐깐한 인상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미 오르뎀 영지에서 이 치료 방법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대부분 이 병을 치료하는 데에 성공했고 모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요."
"아아!"
얼마나 오랜 고통이었는가.
가면을 쓴 그녀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스로가 가장 힘들었던 그녀였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몸을 가꾸고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존재한다.
에이리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 하던 꿈많은 황족 소녀였다.
특히 최근에 와서 그녀는 성국에서 돌아오던 길에 아주 잠깐 마주쳤던 한 남성을 찾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알아보았지만 알아낸 것은 생각 이상으로 시원찮았다.
이 대륙에서 흑발 정도는 상당히 잘 보이는 편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부 대륙으로 가면 오히려 흑발의 사람이 더 많으니 말이다.
그녀가 이외에 기억하는 것은 마법사라는 점, 그리고, 은은한 산수유 향이 풍겨 나온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물론, 그를 찾아낸다고 해도 찾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어지간한 이들이 봐도 눈을 찌푸릴 만큼 흉측한 몰골이었으니 말이다.
"반드시 나으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린디스 황제 폐하께서는 이번에 황녀님의 성년식을 맞아 성대한 파티를 여실 모양이더군요."
수인족이라곤 하나 그녀의 입지를 공고히 만들기 위해.
에이리아의 목소리가 약간 들뜨기 시작했다.
"그러네요. 꼭...... 낫고 싶어요."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황녀님이 가면을 벗고 참석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깐깐한 인상의 고르네오 남작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언뜻 보면 상당히 불안한 웃음이지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곧 완전히 나아 그 사람을 찾아 만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가면 속으로 숨겨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를 치료하러 온 고르네오 남작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녀를 계속해서 옥죄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 *
아무도 모르게 넘어간 영지의 위기 이후 후드의 뱀파이어는 추가적인 공격을 가해오지 않았다.
다만 공격을 수비해야 하는 현재의 입장에선 뭐라도 단서를 조금 흘려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마정석을 임의로 만들려면 홍마보석이 필요한데."
홍마보석, 다른 이름으론 레드문.
루비보다 새빨간 특유의 보석이다.
현재 내 고민은 여기에 몰려있었다.
바로 골렘의 유형은 여러 가지로 만들었으니 이제 단가를 낮춘 양산형 개체를 만드는 것.
수르트의 마나 가공법으로는 빠른 시간 안에 마정석 급의 효율을 가진 물건을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장인의 자존심이 있는데 일반 골렘에 사용 기간까지 제한이 걸리는 일반 마나석 골렘을 만들 순 없다는 게 현재 내 지론이었다.
하다못해 스스로 힘을 회복하고 일반 마나석과는 질이 다른 마정석을 박아넣은 골렘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 하나하나 훈련하는 건 그 단가는 싼 편에 속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일반적인 근위병들로는 골렘 하나의 가치를 따라올 수 없다.
언제까지고 내가 버프를 걸어주고 활동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최소한 마정석 한 개에서 두 개는 들어간 골렘을 만들어야 상당히 쓸만해 질 텐데. 문제는 마정석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인데.......
재료가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마나석이나 그 외의 재료들은 금방 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