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20화
"흐음...... 레드문 말인가요?"
"레드문이요? 그건 귀부인들이 사용하는 장신구용 보석 아닌가요 오라버니?"
윈리가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구해야 하는데 구할 수 있나 싶어서."
가장 중요한 재료. 바로 레드 문이라는 아주 새빨간 보석이다.
뭐, 알려지기는 그저 아름다운 보석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 보석 안에 숨겨진 성능에는 마정석을 제련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담겨있었다.
"레드문을 찾는데 왜 율리스 님께 물어봐. 그런 장신구용 보석은 이쪽 레이디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내 고민에 한쪽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음미하던 일리나가 픽 웃어 보였다.
"왜, 장신구 선물할 사람이라도 생겼어?"
은근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윈리의 표정이 단번에 창백해진다.
"아...... 안 돼요!"
"응?"
"아...... 아니에요."
다급히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내가 바라보자 윈리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다시 앉아 머리를 푹 숙여버렸다.
"별건 아니고, 마정석을 만들 생각입니다."
"마정석을...... 만든다고요? 그게...... 별 게 아닙니까?"
내 대답에 율리스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마정석이 가지는 가치를 아는 마법사라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예,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재료로는 당장 수급 가능한 동력원이 없어서요, 다른 재료는 어렵지 않게 구했습니다만."
"마정석은 보통 마나석 수백 개가 자연적인 어떤 힘에 의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고 하지요. 그래서 발견되는 횟수도 극도로 적은 탓에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요."
율리스가 고민하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걸 임의로 만든단 말입니까?"
"재료만 있으면 가공되는 과정 정도는 시간 싸움이죠."
동시에 그의 눈에 탐구욕이 번들거렸다.
"데이비 님! 부디! 제게도 가공하는 작업을 보여주세요!"
보는 건 상관이 없는데 봐도 모를 텐데.
"문제는 가장 중요한 레드문이 없어요. 물량이 없다고 하네요."
"아...... 하긴, 레드문은 정말 보기 힘든 보석이라 귀부인들 사이에서도 꿈의 보석 중 하나이긴 해."
내 말에 일리나가 심드렁하게 설명해주었다.
"당장 구하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걸?"
"네가 아는 한에선 구할 방법이 없어?"
내 말에 그녀가 고민하듯 침묵했다.
"글쎄......."
황녀라도 물량이 없으면 구하기는 어렵다는 건지.
침묵하는 그녀를 보니 어지간히도 쉽게 구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마법 물품을 파는 상단의 카탈로그나 경매 관련 안내서를 뒤적거려봐도 실상 레드문에 관한 정보를 찾기는 어려웠다.
"레드문은 말이야. 아주 귀한 환경에서 우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보석이야, 마냥 돈이 있다고 구하기도 쉽지 않고. 너, 사교계의 귀부인들 사이에서 레드문을 가지고 있는 이가 얼마나 큰 입지를 가지는지 모르지?"
키득거리며 내게 그녀가 비웃음을 던졌다.
"아아, 기분 좋아.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지? 이 황금만능주의 같으니."
"도움받기 싫다고?"
"야!"
내 말에 그녀가 인상을 콱 찡그렸다.
"진짜 치사하게 한 입으로 두말하기 있어?! 네가 그러고도 왕족이야?!"
"적어도 황족이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너 그 성격 숨기는 거 대륙에 있는 남성들을 기만하는 거다. 사기야 사기."
나와 함께 있다가 꼭지 돌아버린 그녀의 성격을 본 율리스, 그리고 윈리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던 건 기억이 난다.
지금 심란해 죽겠는데 어딜 자극해.
나와 일리나의 말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가끔 보면 일리나 님과 데이비 님은 꼭 오랫동안 서로를 사모해온 연인관계 같네요. 음...... 확실히 두 분 다 선남선녀이시기도 하고. 허울 없는 모습도 그렇고."
"웃기지 말아요! 내가 이런 싸이코랑......."
비명을 지를 듯 창백한 표정으로 일리나가 반박해왔다.
"하지만 일리나 님의 그 성격은 데이비 님과 있을 때만 나오지 않나요?"
"그건......."
"쿡......."
마지막으로 웃음을 참는 윈리의 참전에 그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나...... 황족인데...... 그래도 팔란 제국 황녀인데......."
울상을 지으며 추욱 처진 그녀를 무시한 채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결국 이건 보류해야 하나."
한번 꽂혔을 때 확실히 해놔야 하는데 물건이 없다니 방법이 없다.
"그리고 보니 데이비 님. 데이비 님께도 이번에 개최되는 린디스 황실 연회파티 초대장이 날아왔나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 그거 말이죠. 보통 왕국의 왕족은 한 명에서 두 명 정도 참석하니까요. 제가 듣기로는 라운 왕국에선 칼루스 그 멍청이가 참석한다고 들었어요."
연회? 의사소통도 제대로 못 하고 있을 그 원형탈모 돌대가리가?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터다.
"흐으...... 저도 한 번쯤은 꼭 참석해보고 싶었는데......."
괜히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윈리였다.
"확실히 들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 열리는 린디스 황실 연회는 펜타곤 홀이라고 했지요. 500여 명에 달하는 드워프가 3년간 쌓아 올린 궁으로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다른 어떤 궁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들은 바 있습니다."
율리스의 말에 윈리가 울상을 지었다.
"네...... 안 그래도 라운 왕국 사교계에서도 이번에 열리는 린디스 황실 연회에 한 번쯤은 참석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때문인가. 그 칼루스 성격 개차반 자식의 파트너라도 되어보려고 영애들이 아득바득 애쓰는 것도 봤구요."
그녀의 말에 내가 침묵했다.
"어? 이거 초대장 아니야?"
문득 내게 와있는 서류뭉치 사이에서 곱게 포장된 서신을 발견한 일리나가 눈을 반짝였다.
"그런데...... 완전히 구겨져 있네요......."
"알만하다 알 만해...... 이 자식 분명 관심 없어서 던져놨다가 여기저기 치인 게 분명해요."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초대장을 개무시할 만큼 막장은 아니야."
"그나저나 데이비에게도 따로 왔다는 건 역시......."
"데이비 왕자님은 제법 유명한 편이니까요."
간이나 본다는 심정으로 보낸 것인지.
에이미가 가져다 둔 서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서류로 쌓아서 덮어버렸던 건 사실인 듯하지만 말이다.
"오라버니!"
순간, 내게 무언가 갈망하는 눈길을 보내기 시작하는 윈리를 보며 나는 격렬한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실상 매우 귀찮기 짝이 없다. 하지만 저 열망에 가득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오라비로서 이 정도 시간도 못내 주는가! 하는 내적 갈등이 치솟는 것도 사실이었다.
"흐음......."
"아 참. 린디스 제국이라 하니까 생각난 건데, 이번에 연회 참가자들을 고객으로 귀금속 경매를 하곤 해. 쉽게 구할 수 없는 각종 진귀한 보석들이 나오는 거로......."
"가야겠네. 윈리, 황실 구경하고 싶다고 했지?"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일리나의 표정이 뭐 이딴 놈이 다 있냐는 듯 변해버렸다.
* * *
기본적으로 각종 연회의 파트너에 남매가 참가하는 경우는 그리 희귀한 경우가 아니다.
린디스 황실에 참가의 의사를 밝히자 일리나는 기다렸다는 듯 윈리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윈리 님은 내가 잠시 데려갈게."
"어딜 가려고."
"너 말이야, 큰 파티에 초대받은 레이디가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그럼 이걸 가져가."
"직인? 영지 자금을 쓰라고?"
내가 일리나에게 건네준 것은 영주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어음을 찍어낼 때 꼭 필요한 직인이다.
즉, 내가 그녀에게 건네준 건 전생의 기준으로 치면 법인용 블랙카드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런 계통은 조금 젬병이니까. 얼마를 쓰건 윈리가 절대 밀리지 않게만 해줘."
"흐응...... 그거 공금 횡령 아니야?"
황당하다는 듯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당당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억울하면 돈 벌든가."
"와...... 이런 자식이 운영하는 영지가 잘만 굴러가는 게 신기할 지경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사업은 내 장점이 아니다. 그저 기술로 날로 해 처먹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다만, 일리나는 한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영지엔 이미 더 이상 돈이 들어갈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자금이 돌고 있다. 여기서 더 들이부어 준다고 한들 이득은 하나도 없다는 것까지 모를 내가 아니었다.
"막 긁어도 된다 이거지? 막 내 것도 사버린다?"
"대신 긁은 만큼 윈리는 완벽하게 해줘."
"핫...... 오라버니! 제게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허둥거리는 윈리의 입을 틀어막듯 일리나가 벌떡 일어났다.
"어림없는 소리!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서 꾸미지 않는 건 조물주에 대한 모독이에요, 따라와요. 내가 아주 요정을 만들어줄 테니."
당황하는 윈리의 등을 팍팍 떠밀며 키득거리는 일리나는 아주 작정하고 돈을 쓸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부자라고 해도 마구잡이로 지르는 게 재밌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율리스 님도 참가하십니까?"
"아...... 예, 일단은요. 일리나 님과 파트너로 내정되어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윈리가 고생이 많구나."
연적이 너무 강하다.
저렇게 괄괄한 성격을 지니곤 있어도 겉보기엔 정말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덜컥!
"데이비! 윈리 님을 데리고 본국에 들렀다가 합류할 거야. 넌 알아서 와!"
당당하게 외치고는 다시 나가 버리는 일리나를 보며 율리스가 쓰게 웃어 보였다.
"일리나 님과는 어릴 적부터 어느 정도 면식이 있었습니다. 저래 봬도 정말 순수하고 착한 분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순수라.......
헛웃음이 나왔다.
* * *
윈리를 데리고 팔란 제국으로 떠나는 행렬에 율리스가 합류했다.
당연히 두 사람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사고를 몰고 다니는 체질인 윈리는 솔직히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마냥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팔란 제국은 몰라도 아직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수많은 사람이 몰릴 법한 린디스 제국이라면 안전 요소가 필요하다.
"린디스 제국에 도착하면 윈리의 곁을 지켜줘. 쓸데없이 접근해서 애먼 짓을 하려는 놈들은 팔을 분질러도 좋아."
"륀느 질문, 그건 명령?"
"자잘한 일은 부탁으로 가자."
"알겠어, 륀느, 부탁 적극 수행해, 호위 임무, 색적 임무, 매우 우수하다고 스스로 판단."
"그래그래."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 매우 우수하다고도 판단."
"음, 그건 아닌 거 같다."
의사소통 능력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저 아담한 귀여움을 가진 그녀이니 말투도 귀엽게 봐줄 만하다지만 괴리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머리 위에 그 고리도 좀 지우고."
"비 가시화 가동."
륀느의 눈이 반짝거리기가 무섭게 그녀의 머리 위에 부유하던 원형의 고리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내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과학력의 집합체가 따로 없다.
자신의 몸에 기이한 부분을 모두 비 가시화 한 녀석이 책상 위에 손을 턱! 하니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