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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1화 (121/1,559)

# 12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5권 21화

"륀느 질문."

"뭔데?"

"데이비 님, 아직 적의 수괴를 찾지 못했다고 분석 중."

"그렇지."

그 뱀파이어는 죽은 게 아니라 도망간 것이니까.

"그렇다면 대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아, 그거, 생각해놓은 바가 있어."

"륀느, 이해 불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

"들어와."

륀느의 말을 무시한 채 문을 향해 내가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하녀복을 입은 소녀 하나가 천천히 들어왔다.

평범한 복장의 하녀였다.

"저하, 차를 대령하겠습니다."

긴장한듯한 어조였지만 미묘하게 느긋한 그 속내가 비친다.

"전부터 느낀 건데, 굉장히 향이 독특하면서도 괜찮은데, 이 홍차는 직접 우린 건가?"

"네? 아아...... 넵!"

미묘하게 기뻐 보이는 하녀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라서, 이름이?"

"유, 유리라고 합니다."

"유리라...... 뭐 좋아, 사정이 뭐가 되었건 이 영지에 발을 붙인 이상 하인스 영지민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담담하게 말하며 일어선 내가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내가 없는 사이에 영지를 잘 부탁하지."

"네? 저는...... 그저 일개 하녀......."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주면 돼."

"그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야. 너도 원하는 게 있어서 이곳에 온 거라 생각하는데."

내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던 유리는 곧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그런데, 이건 뭐로 우려낸 건지 물어봐도 되나? 굉장히 맛이 독특하고 좋은데?"

"아...... 정말인가요? 제 자신작이랍니다. 저하, 귀뚜라미 날개 껍질로 우려낸......."

"푸훕!!"

그녀가 차에 굉장히 독특한 시도를 하는 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이야기였다.

* * *

3대 제국은 마나 게이트를 통한 이동이 굉장히 활발한 국가들이다.

대부분의 영토에 거대한 마나 게이트가 자리하고 있고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자리해 마나 게이트의 출입을 관리한다.

그 덕에 하인스 영지에서 떠나 린디스 제국의 수도에 도착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보통 같으면 수도의 마나 게이트 사용은 제한이 엄격할 텐데 기간이 기간이다 보니 상당히 넉넉한 느낌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

-아름다운 도시로고.

마나 게이트를 감싼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제국 수도의 모습에 페르세르크는 연신 감탄을 흘리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수도의 중앙에 위치한 크고 아름다운 황궁, 그리고 백색의 깔끔하게 포장된 바닥과 활기가 넘치는 거리.

괜히 살기 가장 좋은 국가라 불리는 삼 제국 중 한 곳이라 불리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식상한 풍경이지만 안정적이다.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가급적이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구경시켜달라고 하더니 내게는 흔한 광경이라도 그녀에겐 새로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많은 듯 보였다.

-그렇구나, 동대륙의 북부국가들이 여기까지 발전한 게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본녀가 있던 칼디라스는 팔란 제국 밖으로 나간 일이 거의 없으니까.

"너도 좋아 보이냐?"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 나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륀느에게 묻자 녀석의 무덤덤한 시선이 내게 꽂혀왔다.

"륀느, 모든 모습이 새롭다고 판단."

하긴, 기동 전의 기억이 없는 녀석에게 마을이라고 해봐야 하인스 영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륀느, 새로운 정보 해석을 요구."

"음?"

녀석이 한쪽으로 손가락을 뻗으며 가리킨다.

"륀느, 후각을 자극하는 기묘한 냄새에 감정회로가 빠르게 구동하는 것을 분석. 이는 차후, 전투에 치명적인 결함을......."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을 해 그냥."

기본적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페르세르크와 다르게 이 녀석은 골렘인 주제에 음식을 섭취하고 그걸 바이오 에너지로 치환하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녀석의 몸을 감싸는 외피를 개방했을 때 소화기관과 비슷한 것들이 있더라니 싶었다.

기계로 대체된 육체 일부나 표면을 제외한 내부의 일부는 일반적인 생명체와 다름없으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답변이었다.

"어머 어서옵셔! 동생과 나들이?"

길거리 노점에서 평범한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던 사내가 호기로운 미소를 띠며 물어왔다.

"정정 요구, 륀느, 데이비 님의 소유물."

"아...... 음...... 노예였구만."

륀느의 말에 노점 주인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심상찮게 변했다.

그러고 보면 린디스 제국은 노예제도에 상당히 반감을 가진 국가라고 들었는데.

"흐음...... 형씨, 타국에서 왔나 보구먼, 내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가급적이면 노예라 하더라도 대놓고 노예라고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특히 이 나라에선."

따악!

"제 동생입니다. 성격이 저래서 조금 이상한 녀석이니 이상한 오해하지 마세요."

가볍게 륀느의 이마에 딱밤을 갈기고는 흘리듯 말하자 노점 주인의 경계하는 얼굴이 다시금 사라졌다.

"아, 그렇군! 미안하오. 제국에 살다 보면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에게 반감이 서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오."

"들었냐? 오해 살 만한 발언은 하지 마."

"륀느, 이해 불가. 강한 자가...... 읍!"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입을 틀어막고 주의를 시키자 녀석의 무덤덤한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수락, 납득할 수 없으나 이해."

녀석의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범위이지만 억지로라도 납득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륀느 질문, 데이비 님은 왕족, 한데 어째서 이들에게 경어를 사용해?"

"보통 귀족들은 직급을 드러내는 복장이나 휘장을 차거나 수행인을 데리고 다니거든. 그리고 보통은 이렇게 노점에서 무언가를 살 때도 본인이 사는 경우는 없어."

"륀느, 왜 손이 있는데 직접 하지 않는 건지 이해 불가. 급한 경우 제대로 된 대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그렇게 실용적으로 살면 계급이 왜 나왔겠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녀석은 내가 알려주는 새로운 상식들이 그저 신기한지 고개를 몇 차례고 기웃거렸다.

"경고, 성분 분석, 닭으로 추정됨. 매우 미각에 자극이 강하다고 판단. 하나 더 섭취해서 정보분석을 요구."

"자, 이것도 너 먹어라."

언제 제 손에 있던 것을 다 먹어치웠는지 내 것까지 당당하게 요구하는 녀석의 뻔뻔한 태도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고 상식이 부족한 동생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기분이다.

"말 나온 김에 홍단이 청단이도 제국 수도 구경이나 시켜줄까."

그리 말하며 남들이 보이지 않게 두 자루의 검을 꺼내 들자 녀석들이 일제히 인간형으로 변하며 꺄르륵 거리고 내게 안겨들었다.

"홍단이 청단이, 오늘은 아빠랑 신나게 놀까?"

"꺄핫!"

"홍다니 막막! 놀아도 대?"

"사고만 치지 말고."

아직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기 같은 녀석들답게 감정표현이 단순해서 편하다.

제국의 황실 파티는 이틀 후에 이루어지지만 벌써부터 수도에 들어오는 귀족들의 행렬로 붐비기 짝이 없었다.

그 덕분일까. 수도의 활기는 평소보다 짙었고 구경거리도 상당해 보이는 것이 황궁 예산부 측에서 아주 작정하고 자리를 폈다는 게 여실히 보일 지경이었다.

어차피 내게 중요한 것은 황실 파티가 아닌 파티 참가자들이 참석하는 경매에 있다.

이틀 뒤 연회가 시작되고 경매가 두 번째 날에 개최된다는 점을 미뤄보면 실상 그때까지 남아도는 게 시간이리라.

홍단이를 목말 태우고 청단이를 품에 안아 든 나는 륀느가 떨어지지 않게 녀석의 손을 꼭 잡고 당겼다.

"자, 그럼 숙소로 들어가는 건 저녁으로 하고 어디 신나게 돌아 다녀보자."

내 말에 두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꺄르륵 거리며 좋아라했고 륀느는 좀 전 내가 건네준 것까지 깔끔하게 먹어치운 뒤 손가락을 쪽쪽 빨며 내 손을 잡아당겼다.

"륀느, 닭고기로 분석되는 것의 더욱더 세밀한 미각 분석을 요구."

"알았다 더 사줄게."

아무래도 이 세 녀석 중에서 륀느는 어마어마한 대식가가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괜히 실없는 웃음이 픽 흘러나온다. 당연히 외향만 따지면 넋을 놓고 볼만큼 귀여움을 겸비한 녀석들이라 주변의 시선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다만, 그 시선이 마냥 고운 자들만 있는 게 아니고 이렇게 구경만 하는 행인들이 상당히 노려지기 쉬운 먹잇감이라 여겨진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아서였다.

* * *

툭!

"엇!"

인파가 많은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사람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양손을 이용해 세 녀석이 떨어지지 않게 붙잡고 있던 나는 의도하지 않게 작은 체구의 소년과 부딪혔고 소년을 넘어뜨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죄...... 죄송합니다."

바닥에 쓰러진 소년은 꾀죄죄한 몰골을 한 작은 소년이었다.

반쯤 공허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사과하는 녀석의 모습에 괜찮다며 손짓하자 녀석의 시선이 곧 내게 목마를 타고 있는 홍단이와 품에 안긴 청단이에게 향했다.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다.

말없이 지켜보던 녀석은 곧 고개를 숙이고는 인파들 사이로 숨어들 듯 사라졌다.

"륀느 질문. 어째서 잡지 않았는지 이해 불가."

"음?"

"데이비 님의 소지품을 가져간 것으로 분석 중. 형태나 크기를 스캔해본 결과 금화 주머니로 판단."

"내버려둬."

픽 웃으며 내가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꼬맹이를 흘깃 바라보았다.

"데이비 님 자선사업가는 아니라고 판단."

"그래서 그냥 두라고 한 거야."

"으음...... 이해 불가."

"소매치기는 그 자리에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륀느, 매우 긍정. 데이비 님 눈치 파악능력 매우 높게 평가."

먹고 살기 팍팍한 애들이라서 소매치기를 알면서도 당해준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그게 어른이건 애들이건."

절로 입가에서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를 건드렸으면 뿌리까지 뽑힐 각오는 해야지.

하던 것을 멈춘 채 발걸음을 돌린 나는 소년이 사라졌던 방향을 향해 아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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