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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8화 (128/1,559)

# 12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1화

51. 이방인과 신물

사람들 대부분은 데이비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잔잔하게 끝이 난 음악은 끝없이 이어질 테니 말이다.

보통 귀족 여성들이나 왕족 여성들이 기본 소양으로 우아한 음악을 배우곤 한다.

피아노, 하프, 혹은 바이올린 같은 종류의 악기들을 말이다.

일리나도 피아노를 배운 적은 분명 있었다.

태생적으로 우아한 것에 취미가 없었기에 심도 있게 파고들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

첫음절부터였을까.

곁에 있던 윈리는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데이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일리나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그리고, 신비롭기 짝이 없다.

피아노 음악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나 싶은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듣기엔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에도 연회 홀 내부의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음악에 반쯤 홀린 듯한 모습이었다.

눈을 감은 채 마치 스스로 동화되듯 고개를 까딱이고 손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녀석을 보며, 일리나는 스스로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데이비의 손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반사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듯 손가락이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손에 쥔 와인잔을 톡톡 두드리던 그녀는 곧 음악에 맞추듯 등장하는 청록빛 머리칼을 가진 소녀의 모습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 빠른 템포로 음악을 연주하는 데이비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건반 하나하나가 눌러질 때마다 옅은 마나의 흐름이 소녀의 곁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마나가 음악에 호응하는 거 같아.'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음악은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하거나 심신을 안정시킨다.

그리고 전장에선 사기진작에도 큰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요소일 뿐.

이렇게 마나가 음악에 맞춰 진동하며 무언가 효과를 내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음악계통에 종사하는 이들이 본다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못 믿을 짓을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는 데이비는 평온한 표정 그 자체였다.

천재.

한가지 계통이 아닌, 상상도 못 할 수많은 계통에 재능과 노력이 엿보인다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한 것일까.

그는 스스로 단순히 한쪽 계통의 재능만 따지면 그보다 그녀 자신이 더 높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자신의 재능은 느리디느린 재능이건만, 이보다 못한 재능으로 그는 얼마나 노력했던 것일까.

그 부분에 관해선 일리나도 감히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유형화된 마나는 마치 오로라처럼 빛나며 소녀를 감쌌고 더욱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며 소녀를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고정했다.

홀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그런 밑 작업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하니 소녀를 바라만 보았다.

에이리아 알 린디스.

린디스 제국의 막내 황녀.

황족 중 유일한 수인 혼혈인 그녀는 머리 위에 돋아난 여우수인 특유의 귀를 숨기지 않은 채 눈부시고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흉측하다는 소문을 달고서 스스로 숨어들었다고 소문이 나 있던 막내 황녀는 더 이상 흉측한 외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외형만 따지면 딴에 5대 미녀라고 불리던 여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런 마당에 데이비가 벌인 작당 덕에 마나로 만들어진 빛무리까지 그녀를 신비롭게 만들고 있으니.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는 젊은 귀족들과 입을 가리지도 않은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귀부인들만 봐도 그 여파가 얼마나 큰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전신을 가리던 투박한 드레스와 가면을 벗어던진 그녀는 마치 지금까지 쌓인 모든 울분을 토해내듯 저 자신의 매력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시선을 한눈에 받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들어가던 그녀는 곧 묵묵하게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황제, 데오르트 알 린디스를 향해 조심스레 걸어갔다.

차갑고 근엄한 표정 때문에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던 린디스의 황제는 에이리아 황녀의 등장에 처음으로 표정이 미묘하게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곱구나."

"폐하......."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낮지만 온화한 목소리.

쌍두룡의 화신이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성격을 지닌 그답지 않은 모습에 다들 놀란 듯한 모습이다.

그 한마디에 에이리아의 어깨가 잘게 떨리더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황제는 말없이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잔잔하면서도 떨리는 듯한 음악이 천천히 끝을 맺었다.

말없이 두 부녀의 상봉을 보는 데이비에게 천천히 다가간 일리나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땠냐?"

"......대단하네."

"나가자."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데이비는 그녀를 지나치며 아무 미련 없이 돌아섰다.

"저대로 두게? 널 찾을 텐데?"

"오지랖도 이정도면 많이 부린 거지. 나는 레드문만 챙기면 돼."

픽 웃고 지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리나는 한참 동안 멍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부럽네......."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또 무엇을 두고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본인도 모르는 부러운 감정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 * *

린디스 제국의 황제, 데오르트 알 린디스와의 독대.

보통 그 앞에 선 이들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그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위압되어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케이스.

그리고 또 하나는 다시 없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케이스.

"결과에 이견은 없다. 짐은 그대를 믿었고, 그대는 짐과의 약속을 훌륭하게 지켜냈다."

담담한 그의 말에 내가 픽 웃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대가 요구했던 레드문은 소량이지만 경매 물품으로 분명 있었지. 다만, 짐은 그런 싸구려 보상으로 이 일을 넘길 생각이 없다."

"저는 그것으로 일단 충분합니다만."

귀부인들 사이에선 없어서 구매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도로 희귀하며 아름다운 보석.

당장 손가락 마디 하나만 한 레드문 한개가 저택 값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건네받은 레드문은 저택 십수 척에 달하는 대량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게 싸구려라니.

제국 황제의 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괜히 최강 대국중 하나라 불리는게 아니리라.

"이것은?"

"따로 만들어둔 처방전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못해도 한 달 이상은 복용하게 하십시오. 재발할 가능성이 있을 만큼 지독하게 증식해있었으니까요"

"황실 어의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의 대답에 내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믿을 수 있는 이입니까?"

"그건 무슨 의미이지?"

"제가 볼 때 황녀님은 이 나라 보수파에 굉장히 거슬리는 존재일 텐데요."

한 나라의 황제 앞에서.

그것도 면전에 대고 그 나라의 치부를 들먹이는 내 모습에 그가 쿡하고 웃어 보였다.

"감히 짐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그들이 에이리아를 노린다, 이 말인가?"

"제가 보수파였다면 이미 저질렀을 겁니다."

폐하. 아직 보수파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하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어지는 뒷말에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당장에라도 칼부림 날 것 같은 그 눈싸움에도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황족을 암살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독살이지요. 그리고 아직 에이리아 황녀님이 크게 입지를 굳히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이 가장 큰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일 테니."

내 경고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 동안 나를 지켜보던 그는 곧 입매를 비뚜름하게 틀어 올리며 쿡 하고 웃어 보였다.

"크...... 크크큭...... 하하하하하하!!!"

그리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껄껄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직 20세도 되지 않은 새파란 애송이가 이리도 겁이 없군."

"그렇습니까."

"마음에 든다! 좋다. 그 부분은 짐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지."

사실상 린디스 제국의 알력 싸움은 내게 관심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레드문은 그대가 에이리아를 치료해준 대가로 치도록 하지. 하지만!"

"......."

"짐의 보답을 그대는 아직 받지 못했다."

그리 말하며 그가 제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짐의 권위를 상징하는 반지중 하나이다. 받게."

"이걸 주시는 의미는 제가 생각한 게 맞습니까?"

"틀리지 않는다. 그대는 에이리아에게 다시 빛을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그 아이에게 큰 은혜를 주었지. 또한! 그대는 짐에게 딸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였다."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짐을 누구라 생각하는 것이냐! 대 린디스 제국은 은혜를 입은 자에게 절대 소홀하지 않다!"

그의 지극정성인 딸 사랑이 여지없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데이비 왕자."

"말씀하시지요."

"린디스 황실의 일원이 되겠는가?"

"거절하지요."

망설일 것도 없는 대답이었다.

즉답으로 거절 의사를 던지자 그가 실소를 숨기지 않고 큭큭 웃어댔다.

"담이 큰 건지 모르겠군."

"마땅히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니지요."

"좋다. 그대의 생각이 정 그러하다면 짐 또한 더는 요구하지 않겠다. 하지만 보답을 받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 그대가 거부한다 하여도 짐은 그대의 손에 마땅한 대가를 쥐어줄 것을 약속하지."

당당하게 그가 선언하듯 외쳤다.

"현 시간부로 대 린디스 제국은 약속대로 데이비 올 라운이라는 라운왕국의 1왕자의 우방이 되어줄 것이다!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이 린디스 제국의 안위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면, 세 번에 한하여 그대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리라!"

고작 황족 한 명을 치료해준 것치고는 과한 보답이다.

막내딸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것 같다고 여기긴 했지만 이정도면 대단한 수준이 아닌가.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 아닌.

개인과 국가 간의 약속.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또한! 세 번의 도움을 제하고서라도 린디스 제국은 라운 왕국이 아닌 데이비 왕자, 그대의 우방이 되어주겠노라."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나와준다면 나로서도 나쁘진 않았다.

안 그래도 조금 걸리는 게 없잖아 있던 참이었다.

"그렇다면 곧바로 한 가지 부탁을 드리지요."

"윤허한다!"

당당하고 엄숙한 그의 외침에 내 입이 천천히 떨어졌다.

장기적으로 보자. 넓게 생각해야 한다.

상대는 대륙 최강국이라 불리는 3 제국 중 한 제국의 황제.

짧게 머릿속의 정리를 마친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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