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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29화 (129/1,559)

# 12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2화

황제와의 독대를 마치고 접견실을 빠져나온 나는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황궁의 복도를 거닐며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 제안을 데오르트 황제는 흔쾌히 승낙했다.

자칫하면 국제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승낙의 의사를 보여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데이비 님, 륀느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판단."

"연구?"

"륀느의 후각 센서와 미각 센서를 자극하는 것에 대한......."

"밖에 나가면 원 없이 먹게 해줄게."

"륀느, 데이비 님의 주머니 사정은 높게 평가."

무표정의 얼굴이지만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 텐션이 살며시 높다.

"다만 그전에 먼저 확인할 것만 하고."

"륀느, 자세한 설명을 요구."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정말 우연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소매치기를 당했으니 그 소매치기범과 관련된 조직에 인생 실전을 보여주려고 쫓아간 게 전부였다.

그런데 거기서 구해낸 녀석이 나와 관련이 있는 인물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완전히 다른 이 세상에서 전생의 세상이었던 지구의 출신으로 추정되는 소년을 만날 확률은?

성녀 다프네는 신을 칭송하진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믿곤 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우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새삼 웃긴 일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녀석이 그쪽과 관련이 되어있다면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닐 테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읏!"

낭랑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오던 륀느를 낚아챈 내가 그대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인비저빌리티]

5 서클 비가시화 마법.

마치 흩어지듯 륀느를 끌어당긴 내 몸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복도 너머로 한 소녀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게 보였다.

마주치면 아주 조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미 충분히 오글거리는 짓을 했으니 더 엮이는 건 가급적 사절이었다.

특히.

저렇게 너무 착해빠진 성격의 황녀님이라면 죄를 짓는 기분까지 들 것이다.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보는 륀느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해주며 나는 묵묵히 소녀가 나를 지나쳐 가게 의도했다.

소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에이리아 알 린디스였다.

수인족 특유의 육체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숨을 헐떡이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급히 달려왔는지 보일 지경이다.

"하아...... 하아......."

급히 접견실이 있는 방향으로 달리던 그녀는 다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정확히 내 근처에서 멈춰 섰다.

"하아...... 하아, 그분의 향기...... 분명 여기인데."

'미친.'

-세상에 수인족의 후각이 좋다는 건 알았다만.......

수인족의 후각은 인간보단 훨씬 좋지만 그렇다고 개나 고양이처럼 후각이 미처 날뛰지 않는다.

인비저빌리티 마법은 어디까지나 시야 장애 마법으로 내 체향까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킁킁거리던 그녀가 울먹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자 반사적으로 몸을 빼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하악...... 하악...... 화...... 황녀 저하! 궁에서 이리 뛰시면 안 돼요오!"

"에렌다...... 그분이 여기 있어...... 여기 계셨다고."

"이미 그분은 본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하셨는걸요."

"안 돼...... 어떻게 만났는데! 이렇게 인사도 못 하고 보내드릴 순 없단 말이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상을 짓는 그녀였다.

순식간에 마나를 일으켜 체향까지 완전히 숨기고 나서야 그녀는 나를 찾는 것을 포기했는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도...... 돌아가요. 저하, 약 드실 시간이란 말이에요오......."

"아바마마를 뵐 거야. 아바마마께 그분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드려볼 거야."

생각을 굳혔는지 접견실 쪽으로 달려가는 에이리아를 보며 황급히 뒤쫓아가는 시녀였다.

"후우......."

"륀느 질문, 왜 만나지 않아?"

"내 느낌인데, 가끔씩, 직감이 위험 경종을 때릴 때가 있어."

"데이비 님 성격이 나쁘다고 판단."

"그것보다 당장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그리 말하며 륀느를 안아 든 채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륀느의 체격은 아담하고 작은 소녀이지만 저래 보여도 중량이 200kg은 넘는 편이다.

다만, 그 정도에 멈출 정도로 내 근력이 낮은 편은 아닌 만큼 이동하는 내 속도엔 큰 문제가 없었다.

* * *

"얌전히 있나?"

"예, 깨어나신 지 얼마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깨어나셨을 땐 과하게 발작증세를 보이셨지만, 율리스 5급께서 수면 마법으로 한번 재우신 후입니다."

숙소를 담당하는 하녀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두운 방 안으로 한 소년이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게 보였다.

"아아...... 아아, 엄마...... 엄마......."

꿈결에 가족이라도 만난 건지.

고급 마나석 전등을 밝힌 뒤 말없이 다가간 내가 녀석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자 녀석의 눈이 잘게 떨리며 천천히 뜨여졌다.

"여긴 어디...... 헉!!"

이윽고 소년이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났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설마 내가 데려온 이후로 지금까지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으...... 으아악!!"

파악!!

놀라 소리치는 녀석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발작증세를 일으킬 땐 다시 진정시키거나 다른 처치를 해야겠지만 내가 녀석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신 차려 인마."

멱살을 틀어쥐고 짧게 살기를 흘려보내자 녀석의 눈이 크게 뜨여지며 숨을 크게 들이쉬기 시작했다.

"좋아. 다른 사람들 전부 쉬고 있으니 조용히 하자고."

그리 말하면서 가볍게 손을 휘젓자 손가락 끝을 타고 푸른 마나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사일런스]

기본적인 소리 차단 마법이지만 이 소년은 내가 벌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주변에 소리 차단마법을 걸어놨다. 이제 너와 나 사이에 오간 대화는 다른 쪽에 들리지 않아."

담담하게 말하며 멱살을 놓아준 뒤 근처의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취조하듯 앉았다.

"좋아. 일단은 내가 널 구해왔으니 어느 정도 물어볼 권한은 있다고 본다만, 문제 있나?"

녀석과 내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아 보이지만 끽해야 160이 겨우 될까 말까 한 작은 키를 가진 녀석과 180이 넘는 내 체격의 차이는 큰 편이었다.

"아...... 아니요......."

"그래. 조금 놀랐을 거다. 이름은?"

"가...... 강무혁이요."

"나이."

"여...... 열다섯입니다."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한다.

"그래, 강무혁 씨. 그럼 조금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보자고."

"저기......."

"뭔데?"

"혹시...... 한국인이신가요?"

그의 눈동자엔 반쯤 의문이 섞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외향은 잘 봐도 한국인과는 조금 다른 외형이니 말이다.

중부대륙과 동부대륙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서구권과 동양권의 혼혈과 닮은 케이스가 많다.

즉, 나 또한 적당히 서구적인 모습과 동양적인 모습이 섞인 모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척 봐도 내가 멀쩡한 한국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리라.

문제는 내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이곳에서 그가 처음 듣는 한국어라는 점이었다.

"아니, 이곳 사람이다. 너는?"

"저는...... 한국 출신......."

직접 듣고 나니 황당하다는 기분이 더욱 짙게 들었다.

그도 나와 같은 죽은 자가 혼만 이동하여 환생한 케이스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녀석의 생김새는 완전한 동양인의 모습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차원 이동 같은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론상으로 한 생명체가 육체를 고스란히 가진 채로 세상을 넘는 건 불가능해. 아니, 애초에 생자가 세상을 넘는다는 발상 자체가 가능하진 않은 게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안해하는 건 나라는 특이 케이스가 있기 때문이리라.

세상엔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렇기에 나도 함부로 단정할 순 없었다.

이제 와서 내게 중요한 것은. 녀석이 어떻게 이곳으로 왔느냐가 아니라, 왜 이곳으로 왔냐는 것이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하물며. 차원 이동 같은 말도 안 되는 현상을 겪었다면 일반적인 가설을 모두 폐기처분 할 필요가 있었다.

-신의 의지.......

일반적으로 신이라 알려진 존재는 그 실존 여부를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지. 월등히 상위의 힘인 신의 의지라는 힘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차원 이동 같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건 그 힘뿐이리라.

즉, 이 녀석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우연? 그럴 리가.

멀쩡한 한국인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웃긴 노릇인데 그 와중에 우연처럼 만난 것이 하필 나라는 것이다.

이게 우연이 될 수 있는가.

내 경우엔...

불가능하다에 내 전 재산과 손모가지를 걸겠다.

생명의 의지로는 거스를 수 없는 무언가 거대한 흐름.

교단에선 이 같은 것을 보고 한마디로 표현하곤 한다.

[운명]이라는 거지 같은 용어로 말이다.

"저...... 저! 형은 저를 집에 돌려보내 주실 수 있는 거죠?! 그렇죠?! 저...... 저는 그냥 집에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서...... 그러니까...... x발...... 이게 그러니까......."

횡설수설하던 녀석이 파랗게 질린 채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다리가 꼬이기라도 했는지 그대로 다시 넘어져 버렸다.

"제발...... 제발 돌려보내 주세요! 형! 네? 제발요! 이런 거 다 필요 없어요! 영화나 소설처럼 이런 거 다 필요 없어요! 제발 돌려보내 주세요!"

거의 반 발작하듯 내 바지를 붙잡고 소리치는 녀석의 표정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아마 이 세계에 떨어지고 홀로 계속 헤맸던 모양이었다.

뭐하다가 온 녀석인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이 입고 있던 옷은 평범한 학교 교복이었다.

그 말인즉슨 멀쩡히 학교생활 하다가 끌려왔다는 소리인데.

"네? 형! 제발요!"

내 입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인지 녀석이 반 고함에 가까운 절규를 터뜨렸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가 절 걱정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 우욱!!"

그때였다.

녀석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틀어막더니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반사적으로 녀석의 등에 손을 올린 뒤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신성력이 닿기도 전에 녀석의 몸은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고 곧 정신을 잃은 듯 추욱 늘어져 버렸다.

"이게 뭔......."

황당한 사태에 페르세르크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일단 다음에 다시 보는 게 좋을 것 같네만.

혼자 발작하듯 소리치고 기절해버린 녀석의 황당한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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