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3화
침묵은 오래갔다.
그러니까.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난리를 치던 녀석이 쓰러져 버렸으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건 녀석의 몸에는 마나 한줌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분명 명백히 일반인이 분명한데.
신기한 듯 녀석의 몸에 맥을 짚어보던 나는 문득 의식 저편에서부터 밀려오는 수마에 인상을 찌푸렸다.
환골탈태를 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렇게 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적은 없는데.
-데이비? 데이비!
페르세르크의 외침을 들으면서도 나는 반쯤 감기는 눈을 억지로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움직이려다 그대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이 나른하고 따스한 수마.
그리고 전신에 감돌기 시작한 조금 특이하고도 신비로운 신성력.
아, 이거.
뭔지 알 것 같다.
'진짜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오네.'
일반 신성력과 다르게 고밀도의, 좀더 높은 차원의 신성력을 발현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다.
* * *
빰! 빰빰! 빰빠라빰빰!
싱그러운 나팔소리.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바람.
눈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노을이 진 하늘.
천상으로 향하는계단과 그 끝에 보이는 백색의 광채가 서린 문.
"식상하게 천국의 계단이냐."
멍하니 중얼거린 나는 한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 지뢰는 함부로 밟으면 안 되는거다.
차원이동자로 추정되는 그녀석이 내 눈앞에 나타난 건 결국 이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신의 의지, 즉, 흐름인 모양이다.
아름다운 나팔소리는 분명 일반인을 홀리는 그런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완전히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 신성력을 접할 때 한번 와봤던 공간이지 않던가.
펄럭...
"그럴 줄 알았다."
짜게 식은 얼굴로 고개를 들자 계단 최상층의 거대한 백색 빛으로부터 대여섯 정도의 신비하게 생긴 존재들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겉 외향은 분명 천사와 흡사했다.
하지만, 얼굴에 이목구비는 존재하지 않았고 신의사자라던 륀느처럼 머리위에 원고리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데 마치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은 신성함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이윽고, 내 지척까지 다가온 천사가 천천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우웅..
따스한 신성력이 전신에 감돌기 시작하며 굳어있던 신성력이 일부 공명하며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좀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던 내 손에 미묘한 이물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촉감만 치면 약간 따스한 돌멩이 같은 느낌이다.
이에 말없이 손을 들어 내 손을 내려다보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옅은 빛을 내뿜는 작은 돌멩이가 쥐어져 있는게 보였다.
화아아아아악!!!!
동시에, 몽롱하게 이어지던 내 의지가 일순간에 뒤틀리며 잔잔한 수면을 뚫고 튀어나오듯 돌변했다.
"하아...하아..."
마치 숨을 잔뜩 참고 있다가 내뱉은 것처럼 거칠어진 숨소리였지만 나는 그것을 가눌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다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본 적 없는 아주 신비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데이비! 어찌된게야! 갑자기 쓰러지다니!
당황한 채 소리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멍하게 있다 홀린 듯 중얼거렸다.
"이젠 하다하다 신내림까지 받네."
영혼상태에서 성녀 다프네의 도움을 받아 이뤄냈던 접신과는 다른 완전한 접신.
그 여파 때문일까.
몸이 나른하다.
* * *
거의 수백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전력질주로 달린 것처럼 몸이 무겁다.
페르세르크가 괜찮냐며 재차 물어오지만 지금은 당장 잠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데이비? 데이비!
미안한데, 5분만 더 자자.
그 5분뒤에는 10시간만 더 기다려주라.
내 중얼거림이 입 밖으로 나갔는지 페르세르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 한숨만 내쉰다.
-...그래, 푹 자버리게.
그녀는 말없이 내 팔을 잡아 끌어 침대로 유도하면서도 시선을 쉽게 떼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자기 눈꺼플이라더니.
정신없이 빠져든 잠.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한 느낌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날이 지나 새로운 해가 뜨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제야 일어난게야?
"내가 얼마나 잤냐?"
-여덟 시간 정도.
그녀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간 손해봤네."
정확히 열 시간 자려고 했는데.
-웃기는 소리하지말고 말해보아. 손에 그게 도대체 뭐야.
그녀는 내가 잠들기 전에 했던 신내림이니 접신이니 그런 것보다 내 손에 있는 게 더욱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음...이게 그러니까."
그제야 손에서 느껴지는 작은 이물감을 눈치챈 나는 제대로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꿈에서 막 돌아왔을땐 당장 정신이 몽롱해서 다 때려치고 자고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이미 한번 푹 자고 나니 정신이 생각보다 멀쩡하다.
"마나도 아니고, 신성력도 아니고, 사령마나도 아닌데."
그렇다고 정령의 맛인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돌멩이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작은 사이즈였다.
하지만 일반 돌멩이와 다르게 겉 표면이 상당히 각이 져있고 내부가 신비하게 타오르는 것처럼 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냥 놔두면 전등으로 쓰기 좋겠다. 취침등 같은거."
-쓸데없는 소리. 이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그런 용도로 써먹기엔 너무 거대해.
그녀의 말 대로였다.
장난스런 표정을 지운 채 말없이 돌멩이를 노려보던 나는 곧 이런 상황의 가장 좋은 해결사.
바로 심연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삐릭!
모르는게 있으면 역시 심연 표 지식인이지.
[잔불]
[신물]
[사용자의 육체가 붕괴할 시 단한번에 한하여 부활.]
[남은 수량 1회]
[특수 조건 - 초월체급 이상의 적과 교전시 사용가능하며, 사용 여부는 자동 발현.]
.....
"아, 음...그러니까."
-신물?
"신이 자신이 마음에 든 인간에게 내려주는 신의 하사품이. 신물이긴한데...."
이게 원래 이렇게 번갯불에 콩볶아먹듯이 손에 쥐어지고 그런게 아니거든?
좋은예로 성서에 보면 2대성녀가 `가지고 있었다는 생명석이 그런 류의 물건이었다더라.
분명 성서에는 수천명의 기도를 어여삐 여긴 신의 의지가 백일에 걸쳐 응축시킨 힘으로 2대성녀에게 꿈을 통해 하사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이자 의지인 신의 의지가 만들어낸 법칙을 벗어난 놀라운 물건.
그것이 바로 신물이다.
실제로 이 [잔불] 이라는 이름의 돌멩이가 가진 효능은 나로써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비록 제한이 초월체 이상급의 존재와 교전시라는 특수 제한이 붙어있긴 하지만, 여분의 생명이라는건 내게 큰 의미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가지 생각에서 사고가 멈췄다.
"강무혁. 이 새끼 어디갔어."
싸한 느낌에 벌떡 일어나 녀석이 잠들어있을 방으로 뛰어 들어간 나는 곧 깔끔하게 비워져 있는 방을 확인하고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와 이거."
뒤통수 한방 거하게 맞은 느낌이 든다.
"이봐."
"부르셨습니까."
"여기있던 녀석 어디갔나."
내 질문에 빨랫감을 옮기던 하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며칠전부터 자고있던 녀석 말이야."
"죄송합니다...이 방은 며칠 전 부터 계속 비워져 있었습니다만."
-맙소사, 기억을 못해?
기억을 못하는게 아니라. 아예 없었던 인물이겠지.
강무혁.
아무래도 이자식은 지구에서 차원이동해 온 놈이 아니라.
신이 만들어낸.
나를 신몽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
녀석과 접촉하는 것으로 나는 나도 모르게 신몽으로 입장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은 것 일테고.
내 관심을 끌기 위해선 역시 전생의 인연 말고는 없으니까.
"참, 내가 모시는 신이지만 지랄 맞네 진짜."
-그대, 그러다가 신벌을 받을게야.
"알 게 뭐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신의 호기심과 관심을 받은 몸.
신에게 사랑을 받되 신의 헌신은 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신에게 배려를 기대할 순 없다.
그것이 초대 성녀 다프네에게 신성 마법 수련을 받으면서 새겼던 유일한 내 약점아닌 약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평생을 신께 봉사해온 신실한 신자가 어느날 돌아가신 신의사자를 만나고 그를 따라 이동했다가 성지를 발견했다는 내용은 성서에서도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그 성서의 내용과 현재 내가 겪은 일이 다를게 뭐겠는가.
보통 성국의 신실한 신자들이 평생을 걸쳐 한 개라도 겪어볼까 말까한 이들이 너무 후하게 내려진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밀어주지?"
괜한 불안감이 들긴 하지만.
결과만 따지자면 마냥 손해도 아니다.
"새로운 득템은 언제나 환영이야!"
그리 말하는 내 시선이 침대로 향했다.
전날 까지만 해도 중학생정도 되는 소년이 잠들어있던 침대였다.
"너만 빼고."
망설임 없이 강무혁이라는 녀석은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기로 한다.
정신을 쏙 빼놓는 신몽은 사양하고 싶은 기분이다.
* * *
신몽(神夢)의 여파는 마치 숙취처럼 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사라졌다.
깔끔하게 사라져버린 그 이질적인 기분은 이제는 기억할래야 할 수도 없지만 거짓은 분명 아니었다.
"응? 오라버니? 그게 뭐에요?"
이렇게 눈앞에 신몽의 증거이자 신이 내게 내린 물건이 있지 않던가.
말없이 잔불을 던졌다 받았다 반복하고 있자 윈리가 신기하다는 듯 잔불을 바라보았다.
"마치, 따스한 불을 보는 것 같아요. 작지만 아주 따스한.."
말 끝을 흐린 윈리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흐릿해진다.
신물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홀린다더니.
반사적으로 잔불을 확장 주머니 속에 밀어넣은 뒤 녀석의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튕겨주자 흐리멍텅하던 윈리의 동공에 이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핫?! 제가 뭘 하고 있었던거죠?"
아무래도 남들에겐 보여주면 안될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애물단지 아닌 애물단지를 어떻게 해버릴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 회랑에서 마법사 스승인 오딘에게서 흘려들었던 한가지 이론이 떠올랐다.
"가만, 죽었다가 부활할 수 있다고?"
아무런 제약없이?
그럼 몸을 내 입맛대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눈이 크게 뜨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