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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33화 (133/1,559)

# 13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6화

정확히 나와 일리나 페어가 향하는 포인트부터 눈보라가 빠르게 시험의 숲 전체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발빠르게 눈치채고 움직인 나와 다르게 거리가 조금 먼 다른 견습생들은 눈보라의 존재를 눈치채고 아마 재빨리 대처를 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지.

"흐읏...... 추워......."

사람 네다섯이 들어갈 법한 작은 동굴.

그 안에서 방한 코트를 뒤집어쓴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일리나였다.

처음엔 그저 쌀쌀한 공기였다.

판도라 영역은 대륙의 최북단에 자리한 장소로 기본적으로 냉기가 감도는 추운 지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외에 기후가 아직 추운 계절이라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 쌀쌀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을 에는 듯한 지독한 추위로 돌변했고, 급기야 강력한 눈보라로 바뀌기 시작했다.

추위 말고는 멀쩡하던 숲이 순식간에 눈에 뒤덮여 새하얗게 변해버렸다는 소리였다.

"그...... 그래도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전에 보급품을 회수하고 은신처까지 구해서 다행이야. 운이 좋았어."

싱긋 웃는 그 목소리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 멍청이를 어찌하면 좋을는지.

"네 눈엔 이게 운이 좋아서 해결된 걸로 보이냐?"

"......뭐야. 그럼 너 설마 이 눈보라가 몰아칠 걸 예견했던 거야?"

놀란 듯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예견했냐고 묻는다면 일단은 긍정할 수밖에 없다.

자연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건 정령이다.

보통 영지 같은 곳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적인 경관에는 정령이 상당히 많은 편이니 말이다.

지진이 오기 전에 동물과 곤충들이 먼저 대비하듯 움직이는 것과 똑같다.

다만 정령이 동물이나 곤충보다 조금 더 예민한 정도일까.

"어쩐지...... 갑자기 골렘으로 정신없이 밀어붙이더라니.... 가만! 그럼 이렇게 될걸 알면서도 강행돌파했단 말이야?!"

"너는 시험을 처야되고. 나는 내 일을 해야 하고."

이깟 눈보라에 포기할만큼 나는 무르지 않다.

륀느에게 은신처로 쓸만한 동굴을 찾으라고 보낸 후 나는 최대한 빠르게 보급품 회수에 속도를 올리고자 골렘으로 무식하게 밀어붙였다.

당연히 그녀와 내가 숲에 당당하게 들어선 것 때문에 상당히 많은 하급 마물들이 들이닥치긴 했지만.

저거노트의 무자비한 마탄 난사에 피떡이 되어 쓰러진 것도 이미 지난 일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것도 마법이야?"

"정령은 자연기후에 민감하거든, 기본적으로 추운 지방에서 지내는 정령이 추위에 떨 정도면 앞으로의 일이야 뻔하지."

"그런 게 있다는 말은 몰랐어."

정령사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고서에나 남아있는 정령의 동반자라 불리는 엘프들도 거의 보지 못하는 자연 정령을 대놓고 본다고 말한 꼴이니 말이다.

다만 일리나는 마법사도, 정령사도 아니었기에 내 말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진 못한 듯 보였다.

"그나저나 방한 코트를 입고 불까지 피웠는데도 이렇게 추울 정도라니, 저 안쪽은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일리나의 투덜거림에 나는 침묵한 채 손에 쥐어져 있던 방한 코트를 응시했다.

확실히 기사단에서도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왔지만 기사단이 진출한 지역은 판도라 영역의 초중부.

그 이상은 말도 안 되는 냉기에 견딜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완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코트가 싸구려인 거지."

"뭐? 야, 이게 얼마짜린 줄은 알아? 한 벌에 200골드에서 300골드는 가볍게 넘어가는 무지막지하게 비싼 녀석들이야."

200~300 금화 정도면 확실히 적은 돈은 아니다.

"방산비리는 어딜 가나 있는 법이다. 옷 벗어."

내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뭐, 뭐라고?!"

"인첸트를 보강해줄 테니까 코트 내놓으라고."

짜증스레 말하자 그녀가 빨갛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뭐...... 뭐야, 그런 거면 빨리 말하든가."

그렇게 말하며 급히 코트를 벗어 던지듯 건네주는 그녀였다.

"이거 봐. 이럴 줄 알았다."

이후 그녀에게 받은 방한 코트와 내가 입고 있는 방한 코트의 상태를 확인하며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인첸트 자체는 충실히 각인되어있지만, 상당히 날로 제작되어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새로 뜯어야겠네."

망설임 없이 코트를 펼쳐 바닥에 늘어놓은 뒤 손바닥에 마나를 끌어올려 코트에 올려놓았다가 천천히 허공으로 당겨냈다.

우웅.......

동시에, 푸른 빛을 띠는 수십 개의 마법진이 허공에서 내 손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량화, 내구도 증가, 냉기 저항.

여러 가지 인첸트가 되어있긴 하지만 그 촉매가 굉장히 저질적이다.

무엇보다 거슬리는 건. 인첸트의 조잡함.

매개체가 없다곤 하지만 기왕 손을 봐주는데 설렁설렁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기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손끝을 타고 동굴을 환하게 비추는 작업이 계속되자 양다리를 끌어모아 앉아있던 일리나가 신기하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후 보온 기능이 활성화되었는지 따뜻하게 데워진 코트를 이리저리 들어보며 즐거워하던 일리나는 곧 그걸 소중히 여기기라도 하듯 몸에 두른 뒤 양손으로 꼬옥 붙잡았다.

"하아...... 따뜻해, 진짜 대단해."

"간단한 작업 정도니까."

"이정도면 국보급 방한 코트인 건 알아? 제국의 황제들만 사용하는 정도라고. 제국 보고에 있는 스노우 가드 같아."

쿡쿡 웃으면서 새삼 놀랍다는 듯 코트를 여미는 그녀였다.

고요한 동굴 속에 모닥불을 피우고 바깥의 싸늘한 공기를 천으로 틀어막아 기온을 올리니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당혹스럽긴 해도 눈보라는 내일 동이 틀 때쯤엔 그칠 거야, 어차피 두 번째 시험은 내일 지령이 도착할 테니까. 오늘은 꽤 여유로운 편이고."

쿡쿡 웃어 보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네가 있으면 시험 합격은 떼놓은 당상이니까."

절대 탈락할 거라고 생각지 않는 단순한 사고방식이지만 그 안에는 나를 향한 믿음이 담겨있다.

* * *

휘이이잉!!!

지독하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숲.

평소엔 그저 서리가 끼어 하얗게 얼어붙은 나무들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이곳 시험의 숲에는 현재 모종의 이유로 인해 지독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단장님,"

마치 무게가 존재하지 않는 듯 눈발 위에 가볍게 올라서 있던 한 사내의 곁으로 수십여 명의 흑색 로브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수는 없었겠지."

"물론입니다. 광범위 결계를 펼쳤고 초월체 샨드라를 유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차적인 정신 장악에는 성공했다더군요."

"그래."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내의 눈빛은 시리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단장님."

"뭐지?"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기사단 견습생들이라는 변수가......."

"그런 햇병아리들이 가져다주는 변수로 인해 계획에 실패할 셈이냐?"

"하지만 그들은 재능이 있는 씨앗들입니다. 게다가 이번 견습생 중엔 조금 기이한 녀석도 끼어있다더군요."

흑색 로브를 입은 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20세도 채 되지 않은 견습생이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고 합니다."

"흐음? 제법 흥미로운 애송이군."

"그렇다면......."

"하나 걱정할 것 없다. 놈이 방해한다면 내가 직접 처리하지. 그리고 나머지 견습생은 초월체 샨드라의 제어를 위한 제물로써 가장 중요하다."

"......."

사내의 말에 흑색 로브의 인영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실패하지마라. 나는 이번일에 기사단의 미래를 걸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일제히 사라지는 그들을 보던 사내는 차가운 표정 그대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았다.

"날고 기어봐야 실전 경험 부족한 애송이일 뿐이지. 초월체를 상대로 어디 얼마나 나를 즐겁게 해줄지 기대해보마."

* * *

타닥...... 타닥.......

미리 쌓아둔 충분한 양의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신기하게도 모닥불에서 피워올려 진 연기는 특이한 기류를 형성하는 아티펙트를 이용해 동굴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닌 만큼 보급품 상자에는 야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이 들어있는 편이기도 했다.

고요한 동굴, 조용히 타들어 가는 모닥불 소리에 심취하기라도 한 것일까.

칼디라스를 품에 안은 채 흥얼거리는 일리나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토록 염원하던 기사단 정식 승급 시험을 치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이렇게 있으니까 좋다."

묘하게 아이 같은 마음가짐에 절로 웃음이 나와버렸다.

"좋다고?"

"가끔 이런 분위기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서. 넌 안 그래?"

그녀의 질문에 잠시 침묵이 오갔다.

나쁘진 않네. 이런 분위기.

유혹하는 듯한 그 모습에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하...... 그렇게 유혹해대는데 참을 수가 없네."

"뭐?"

밖엔 언제 그칠지 모르는 눈보라.

"데...... 데이비?"

"여긴 너와 나 둘뿐이고, 나는 지금까지 참아온 걸 조금 풀어볼 생각인데."

내 말에 그녀는 이 상황의 미묘함을 눈치챘는지 눈을 크게 떴다.

좁은 동굴.

미묘한 분위기의 남녀 단둘밖에 없다.

"왜, 왜 그러는 거야......."

당황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가 속없이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곧 웃음도 끊어졌다.

"데...... 데이비!"

"황녀라는 양반이 이렇게 경계가 약해서 쓰나."

그것도 대륙 5대 미녀 중 하나라 불리는 녀석이 말이다.

차가운 인상이긴 하지만 의외로 웃는 얼굴이 따스한 그녀는 확실히 어지간한 남자가 보기에 반해도 충분할 만한 미모를 지니고 있다.

"우, 웃기지 마! 접근하면 베어버릴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녀에게 휘적휘적 다가가자 녀석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입을 쩍 벌린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는 녀석의 표정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지...... 지금 시험 중인 거 몰라?! 게다가 네가 이상한 짓을 하면 선생님들이!......."

"지금 이 상황에 우리를 보고 있진 못하거든."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표정과 말투가 너무 진지했던 탓인지 녀석은 잔뜩 얼어붙은 얼굴이다.

"뤼...... 륀느!"

"륀느가 어딨는데?"

다급히 륀느를 찾아 외치는 그녀지만 애석하게도 좀 전까지 내 곁에 앉아 육포를 오물거리던 은발의 꼬맹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흐끅......."

급기야 파랗게 질린 얼굴로 딸꾹질까지 하는 그녀였다.

"데...... 데이비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이때만을 기다려왔어."

"이...... 이러지 마, 우린 친구잖아......."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제발......."

급기야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본래라면 당장 칼디라스를 빼 들고 덤벼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장 덤벼든다고 해도 눈 깜짝할 새에 제압당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걱정 마, 아픈 건 순식간이야. 곧 기분 좋아질 거다. 등짝, 등짝만 보여주면 돼."

"꺄악!"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던 그녀는 곧 등 뒤에 차가운 동굴의 벽면이 느껴지자 더욱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녀를 잡아챈 내손에 기괴한 소리가 동굴 전체에 뼈마디가 뒤틀리는 소리가 시원시원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우드득...... 우득.......

"아, 역시 이 손맛."

워낙에 회랑의 성깔 더러운 영웅들 비위를 맞춰주다보니...

이제는 거의 강박증 수준으로 따라붙는 욕구가 되어버렸다.

"꺄아악!!"

처참한 비명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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