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7화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버둥거리지만 이미 내 손에 잡힌 이상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하다!
바리스 녀석의 몸에 뭉친 근육들을 풀어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야들야들하면서도 탄력 있는 손맛이 절절하게 전해져온다.
역시 딱딱한 남자보다는 부드러운 여자 쪽이 안마를 해도 손맛이 좋다는 게 못내 씁쓸한 사실이다.
"아악! 자...... 잠깐...... 꺄악?!"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그녀였지만 계속되는 안마에 점차 힘이 빠지는지 저항하는 힘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그녀의 입에선 고통 어린 신음이 아닌 달뜬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아...... 하읏......."
바닥에 늘어진 채 체통도 잊고 숨을 헐떡거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잃은 처녀처럼 공허하기 그지없다.
반대로 나는 상당히 짜릿한 손맛에 절로 기분이 상승해 있었다.
"이것은 매우 부적절한 장면이라 판단,"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벽면의 공간이 일렁이며 륀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5 서클 마법인 인비져빌리티와는 다른, 연금술의 정수로 만들어진 비가시화 능력이었다.
살아있는 기계 심장, 데우스 액스 마키나의 효능이 대단하긴 하다는 게 저렇게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스스로의 성장.
륀느는 처음 각성을 시켰을 때 이후로 끊임없이 스스로 강해지고 내부에 숨겨진 비밀을 일깨워 새로운 점을 보여주고 잇다.
"데이비 님, 그 장난은 저질적이라 분석."
"절로 손이 갈 만큼 뭉쳐있더라. 참느라 고생했다."
"륀느, 선의도 상황을 봐가면서 하는 게 옳다고 추측. 그런 점에서 데이비 님의 행동, 배려가 없음, 륀느, 이것을 낮게 평가."
"그 돌직구에 나를 배려하는 방안은 없냐?"
"데이비 님, 배려가 필요 없을 만큼 막무가내. 뻔뻔함을 보유. 륀느, 그 점을 매우 높게 평가."
폭언에 대해 망설임이 없다.
장난스레 내게 다가와 육포를 받아가 오물거리는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동굴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할딱거리던 일리나는 고통과 미묘한 쾌감이 뒤섞인 오묘한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전신을 뒤덮는 나른함 때문인지 그대로 동굴 벽에 등을 기댄 채 잠들듯 눈을 감았다.
펄럭!
이에 나는 미리 준비해둔 보급품상자의 모포를 펼친 뒤 마나를 끌어올려 그대로 손을 짚었다.
우웅!!
동시에 방한 코트에 인첸트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수십 수백 장에 달하는 마법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지자 옅은 빛을 스스로 내뿜기 시작하는 모포는 마치 사람이 체온을 담아둔 것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이후 잠든 그녀를 뉘이고 모포를 덮어 준 나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져넣었다.
-긴장되는게야?
뭐라해도 결국은 초월체를 건드리는 것이니까.
시험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나는 곧장 다른이들의 눈을 피해 초월체를 자극한다.
기사단 상부가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이긴 하다만, 이건 나로써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름이 참 비슷하네.'
내 중얼거림에 일리나의 곁에 누워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륀느를 보던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물어왔다.
-비슷해?
'회랑에도 특질능력자는 몇 명 있었거든. 그중에 [셰인 스크리프트]라고 룩스라고 하는 다른 세상 출신의 양반이 하나 있었어."
평민 출신의 영웅.
특질능력자 중 환수 소환사라는 특수한 힘을 가지고 대륙을 침범한 수많은 적을 상대로 오래오래 남을 위업을 새긴 자.
"원래 그 양반이 계약하고 사역하는 환수는 세 마리 정도. 본래 환수 소환사들은 일생에 단 한 마리의 환수와 계약한다고 하는데 그 양반은 조금 특이하게 세 마리와 계약했거든."
-환수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이들인 게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환수라는 특이한 존재들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고민하다 답을 내려놓았다.
살아온 배경과 습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
상대를 죽이고 그 상대의 힘을 흡수해 스스로 진화하는 생명체.
눈이 많이 필요하면 스스로 진화하여 눈을 늘리고 발톱이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면 발톱이 단단한 적을 잡아 흡수하고 스스로 진화한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굉장히 근본 없는 조잡한 생명체이면서.
가장 위험한 생명체이기도 했다.
약점을 계속해서 보완한다니.
다음 세대에 면역을 물려주고 죽는 바퀴벌레보다 더한 생명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그런 환수라는 것들이 이 세계에 있는 게야? 아니면 그 룩스 대륙이라는 곳에.......
"환수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라. 본인들도 모르는 마당에 내가 알겠냐, 어찌 되었건 셰인 그 양반은 일단 힘 자체가 누구에게 가르쳐줄만한 게 아니라서 내게 가르쳐준 것이라고 해봐야 전투 경험이 전부였어."
-흐음.......
내 말에 흥미롭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그 세 마리라는 환수가 강했던 게야?
"강했지. 진짜 미치게 강한 것도 강한 건데, 그놈들은 하나같이 각기 고유 권능이 있어서."
하늘의 포식자 [메가로드리아].
지상의 패왕 [샨드라 미네아]
심해의 폭군[베헤모스]
-칭호부터가 장난이 아니군.
"처음엔 손바닥만 한 지렁이였다더라. 그런데 적을 죽이고 진화하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변해있었다네. 웃긴 건 말이야. 이 미친 환수 놈들이 얼마나 강했냐는 건데."
한 마리 한 마리가 그랜드마스터 급이라면 믿을 수 있겠냐.
이어지는 내 말에 페르세르크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여졌다.
"애초에 그랜드마스터, 그리고 그 위 단계가 흔한 회랑이니 딱히 놀라울 것도 없긴 하다만, 엄밀히 말해서 그랜드마스터는 괴물 중의 괴물이잖아."
-그렇지.......
"그런데 이 양반은 전투 경험에 실전만큼 좋은 게 없다면서 그 지렁이 놈들 세 마리와 나를 아무것도 없는 숲에 내다 던져놓은 거야."
그 미친 환수 놈들 브레스 한 번에 바다가 갈라지는 걸 보고 그때 당시에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격하게 들었더랬다.
-그럼...... 혹시 이곳에 있는 샨드라라는 초월체는.......
"다를걸? 애초에 샨드라 미네아가 이곳에 있었다면 판도라 영역은 물론 북부대륙 대부분이 마경이 되었을 테니까."
특히 고집불통에 성질 고약한 지룡 샨드라 미네아는 고작 이정도 영역에 만족할 놈이 아니다.
"그리고, 샨드라 미네아는 엄연히 화룡이야. 진짜 녀석이라면 이곳이 설원이겠냐, 화산지대가 되었겠냐."
더 생각할 게 무엇이겠는가.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는가?
"뭔데?"
-그대가 있었던 회랑에서 가장 강했던 인간은 누구였던 게야?
그녀의 말에 한가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요? 누가 제일 쎈데요?]
마침 회랑에 온지 얼마 안 됬을 때.
나는 순수한 마음에 그런 질문을 던진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아마겟돈!
지옥의 아포칼립스!
번들 거리는 눈으로 적을 찾아다니던 영웅들의 모습은 다시 보고싶지 않다.
휘말려서 몇 번이고 죽을고생을 했으니까.
결과적으로 그 미친 싸움의 승자는 둘이었다.
생존왕 헤라클래스와 데스로드 로 아이아스.
마치 허구 상에서 존재하는 과거의 전설을 읊듯 말하는 내 말투는 담담했다.
* * *
"초월체 샨드라가 아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직통으로 이동하고 있다고요. 그런 마당에 아이들과 연락할 수단이 전혀 없고, 녀석들을 보호하려고 보낸 기사단원들은 전원 연락이 두절."
쾅!!!
묵직하고 강렬한 주먹에 목재로 된 테이블이 일순간 박살이 났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단장."
격노하며 소리치는 이는 다름 아닌 보리스 텔만.
바로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의 견습생들을 오랜 시간 가르쳐온 선생님이었다.
"진정하게, 보리스."
"진정이요?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직 그 안에 있습니다!! X발! 초월체가 습격하는 일이 지금 장난 같습니까?!"
"지금 다른 기사단원들이 필사적으로 결계를 해제하고 있네. 분하겠지만 지금은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십니까!!"
고풍스러운 갑옷을 입은 노령의 사내가 보리스를 차분하게 쳐다보았다.
"좋네, 자네의 말대로 당장 그 아이들을 구한다고 해보지."
"......."
"자네는 방법이 있는가?"
"그건......."
"당장 시험의 숲에 펼쳐진 결계는 엄연히 마물의 것이 아니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지."
"그렇다면 설마......."
"아무래도 초월체를 길들이려는 자들이 외부와 손을 잡은 듯하네."
"빌어먹을!"
첩자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은 나왔지만 설마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일이 터질 줄이야.
"다시 묻겠네. 저 정체 모를 결계를 잘못 건드렸다가 내부가 어떻게 될지 몰라. 지금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초월체의 움직임을 최대한 저지하고, 내부에 있는 단원들이 견습생들을 빼낼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현실적인 대안이다. 보리스 또한 이 말에 현재로썬 어떻게 답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저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결계를 펼친 자가 있다면 아마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겠지요. 전 그놈을 잡아 죽일 겁니다."
"보리스."
단장의 조용한 부름에 그가 이를 빠득 갈았다.
"누구도 제 제자들을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두 번 실패는 없어요.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보리스!"
"리인포스 알파의 기사 수칙 1조!! 기사단의 적은 인류가 아니라 인류의 근간을 위협하는 마물이다!!"
그렇게 외치며 나가버리는 보리스의 뒷모습을 보던 기사단장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양손으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거늘...... 어째서 초월체를 길들이려 한단 말인가......."
판도라 영역의 왕 중에는 가장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초월체 샨드라.
다른 왕들과 다르게 상당히 조용한 움직임을 보이던 지룡의 포효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53. 기습
두 번째 시험은 판도라 영역 초입에 서식하는 중급 마물 중 하나인 블루 트롤의 다수 포획이었다.
끼이이이익!!
기본적으로 트롤이라는 몬스터는 짙은 남색에 2.5m에서 3m에 가까운 키를 지니고 있다.
놈들의 특징은 지독한 재생력으로 날붙이로 베어내고 몇 차례 불로 지져야 더 이상 재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 대륙에선 상식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다만 판도라 영역에서 발견된 변종 트롤,
즉 블루 트롤의 경우, 기존의 트롤보다 키도 작고 육체 능력도 떨어지지만 지독한 재생력 하나만큼은 기존 트롤과 확연히 다른 녀석들이었다.
기사단에서는 주로 단원들이 사용하는 회복약을 제조하는데 놈들의 피를 사용한다는 모양이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놈들에게 관심이 있는 편이다.
사람들은 왜 트롤의 재생력만을 특징으로 보는가.
'그 못생긴 얼굴도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시게.
"데이비!! 세 마리 전부 그쪽으로 가고 있어!"
수정구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느긋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저 멀리서 괴성을 흘리며 뛰어오는 트롤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무거운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런놈들의 저돌적인 돌격에 나는 손을 들어올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거노트. 컨셉은 벌집으로 가자."
[명령 수락.]
키이잉!!! 드르르르르륵!!!
작약이 터진 탄환이 쏘아져 나가는 것 같은 폭음도, 지독한 반동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 속도와 화력만큼은 이미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내 앞을 막아서는 메가트론의 거체가 놈들의 공격을 쳐냈고 근처에 대기한 채 6기통의 쇠기둥을 빠르게 회전시키던 저거노트의 무기에서 보랏빛 광탄이 무자비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한 정당 분당 500발.
하지만 한번 개량을 거친 녀석은 마탄 미니건이 무려 양손에 하나씩.
즉, 초당 16발에 가까운 포화력을 지닌다.
내가 구상했고 곧 써먹을 완벽한 전쟁병기가 되어가고 있는 꼴이다.
비처럼 쏟아지는 마탄 미니건 두 정이 쉴 새 없이 빛을 흩뿌리며 순식간에 놈들을 벌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캬아아아악!!
갑작스런 마탄의 포화에 바닥에 쓰러진 블루 트롤들은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비명을 내지르며 버둥거리지만 보랏빛 광탄들은 사정없이 놈들의 몸을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