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14화
55. 무귀(武鬼)의 환향(2)
세상은 한 사람의 마음대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최대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몸에 칼이 꽂혀 죽어가던 시오 하울을 발견한 알리사 페트릭이 없었다면, 그 타이밍에 맞춰 연락을 취했던 보리스의 계속되는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견습생들이 이렇게 빨리 모여들진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변화는 배신한 기사단장, 가오르에게도 조금 곤란했다.
"그나저나, 밖에서 쓸데없는 짓을 했군. 덕분에 찾는데 애를 좀 먹었다만, 뭐, 이렇게들 모여있어 주니 다행인 게지."
"기...... 기사단장님? 기사단장님이 어째서......."
그중 몇몇 견습생은 자신들을 습격한 이가 다른 이도 아니고 리인포스 알파의 기사단장 중 한 명인 가오르라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니죠? 단장님이 저희를 죽이려고 하실 리가......."
"자네들에게 한가지 묻겠네."
로브인들이 서서히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네들은 인류를 위해서, 또한 위대한 기사단의 영광을 위해 한 몸 바쳐 헌신할 마음이 있는가?"
"당연하잖아요! 기사단은 이제 제 고향이나 다름없다구요!"
앵커나이트 중 하나인 쌍둥이 자매들의 외침에 그가 허허 웃어 보였다.
"그래, 샤이르 렌다 양. 그런 마음가짐일세."
"하지만 이렇게 선배 기사단원분들을 모두 죽이시고 저희를 이렇게 몰아붙이시는 것. 그리고 데이비를 죽이신 건 이해할 수가 없어요!"
샤이르의 독한 외침에 가오르가 눈을 내리깔았다.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해서네. 초월체 샨드라는 환술사인 트레브 견습생...... 아니, 이 일이 끝나면 특급기사에 오를 테니 특기사 트레브 경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 트레브 경의 힘만으론 완전히 제어할 수 없네."
"......."
"그래서 자네들의 힘이 필요한걸세. 너무 노여워 말게나. 자네들의 희생은 영원토록 잊지 않도록 하지. 이 기사단장 가오르의 이름을 걸고."
철저하게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며 그가 창을 뽑아 들었다.
"제물에 필요한 이는 5명이다. 너희들이 5명을 선발해준다면, 나머지는 기억을 지우는 조건으로 살려주도록 하지. 나라고 멀쩡한 이들을 죽이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아."
"웃기는 소리!!"
희생을 강요하는 가오르의 말에 감명을 받아 스스로 목을 들이미는 멍청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견습생들의 반응에 흑색 로브의 인간들이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인포스 알파의 기사단 수칙 제3조. 당신은 기사단원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원초적인 수칙부터 어겼어."
싸늘하게 말하며 검을 들어 올리는 일리나의 대답에 그가 끌끌 웃었다.
"애석하게 되었군. 모두 제압하라."
"예."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흑색 로브의 인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단의 평균 수준은 질병 관리단과 같이 대부분이 익스퍼트 이상, 게다가 실전경험은 그보다 더 높은 편이다.
게다가 흑색 로브를 입은 이들에게선 기사단이 가장 지양해야 할 인명 살상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명백한 현실로 답을 주었다.
"꺄악!!!"
"이런, 린시!"
활시위를 당겨 접근을 저지하려던 린시 페일라가 가장 먼저 바닥에 처박힘과 동시에 흑색 로브를 입은 이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녀를 깔끔하게 제압해버린 것이다.
"커헉!"
"꺄아아악! 싫어!"
"이거 놔!"
동시에 여기저기서 비명과 함께 견습생들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처박혀버렸다.
촤아악!!
물론, 견습생들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268기 견습생들 중엔 견습생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경지가 높은 녀석들이 많은 탓에 저항이 거세지 않다는 건 거짓이리라.
그중에서도 일리나 데 팔란의 행보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끄륵...... 끄르륵......."
목에서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며 무너져 내리는 이들도 결국은 사람이다.
그 괴기스러운 죽음의 장면 속에서도 일리나는 격노한 표정으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당신...... 실수한 거야."
"실수라?"
"나는 복수를 절대 잊지 않아,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표독스런 눈동자를 빛내며 그녀가 칼디라스의 신성력을 끌어올려 자신의 힘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포탄처럼 튕겨 나가며 그녀에게 덤벼들던 흑색 로브의 인영 여럿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멈추지 않고서 빠르고 부드러운 검로를 내보이며 가오르에게 파고들었다.
"호오......."
콰앙!!
파괴적인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태산 쪼개기.
한번 봤던 것은 쉽게 잊지 않는, 검에 한해선 어마어마한 재능을 보유한 그녀였다.
한번 봤던 데이비의 검술을 흉내 내는 수준에서 조금 더 발전시킨 그녀의 공격은 이전보다 더욱 날카롭고 무거웠다.
카가가가각!!
생각 이상의 파괴력에 놀란 듯 눈을 부릅뜬 가오르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탄성을 흘렸다.
"제법이군! 최고의 기재라는 말은 들었다만 이건 상상 이상이야."
"닥쳐!"
"죽여야 하는 게 아쉬울 지경이로고."
일리나의 실력은 대단한 편이다.
실제로 익스퍼트 중에선 그녀의 적수를 찾기 힘들 만큼 뛰어난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다만, 상대가 마스터라면.
그 마스터 서넛과 싸워서도 버틸 수 있는 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경험이 부족하구나."
퍼억!!
"꺄악!"
아주 잠깐의 틈을 만들어낸 가오르가 씨익 웃기 무섭게 흑색 로브인 하나가 그대로 몸을 던져 그녀를 제압한 것이다.
푸욱!!
동시에 가오르의 얇은 검 끝이 로브인과 그녀를 동시에 꿰뚫어버렸다.
"꺄악! 일리나!"
바닥으로 제압당한 다른 견습생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면서도 일리나의 눈빛에서 독기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계속해서 죽인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녀의 입가에서 시뻘건 선혈이 울컥울컥 흘러나오자 가오르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검 끝을 움직여 그녀의 복부를 거하게 베어버렸다.
"그렇게 그 소년이 보고 싶다면 보여주겠네. 먼저 가 계시......."
"잠시만요. 가오르 님."
그때였다.
다른 흑색 로브인들과 다르게 뒤에서 상황을 구경하고 있던 한 사내가 천천히 다가오며 그를 제지했다.
"잠시 죽이지 마시지요."
"음?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그녀는 정령의 축복을 받은 검신의 후예입니다. 그중에서도 굉장히 피를 짙게 물려받았지요."
"해서?"
"아마 좋은 다크 나이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의미 모를 사내의 말이었지만 가오르는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뭐,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오."
딱히 미련은 없다는 듯 가오르가 검을 뽑아내 버리자 일리나가 다시금 들썩거리며 피를 울컥 토해냈다.
"쿨럭...... 쿨럭......."
"분하신가?"
"......."
"모든 역사는 승자의 손에 쓰이는 법일세, 일리나 양. 그대는 죽어서 과거의 잔재가 되는 것보다 반이라도 살아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좋지 않겠는가."
마치 설득하듯 말하는 그 모습에 일리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피를 뱉어냈다.
"엿이나 먹어, 빌어먹을 사상범. 넌 데이비가 반드시 파묻어버릴 거야......."
"이미 죽은 자에게 기대를 거나? 안타깝군."
"웃기...... 쿨럭! 하아......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인데, 죽는다는 거야. 당장 불지옥에 떨어져도 태연하게 기어 올라올 놈이라고."
우웅.......
동시에 사내의 몸에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녀를 감싸기 시작하자 일리나의 피부가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
그리고는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더니 이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산 채로 반 망자가 되는 끔찍한 고통.
생살이 썩어들어가는 고통에 견습생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정령사 자매는 꼭 필요하니 상처 하나 없이 데려오도록. 샨드라는 어찌 되었나."
"좀 전부터 다수의 골렘들이 이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샨드라를 막을 정도는 아니지만 저희가 막기엔 역부족인 녀석들이라......."
흑색 로브인의 보고에 가오르가 짧게 혀를 차고는 한편에 널브러져 있는 거대 골렘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그 소년이 남겨놓은 골렘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기 그지없군. 밖에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술력을 본 적이 없어."
"샘플을 가지고 돌아가지요. 저희 연구진이 본다면 아주 난리가 날 겁니다."
이젠 목까지 쉬어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일리나의 모습에는 처음의 아름다움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회갈색으로 변해버린 피부, 새빨갛게 변한 눈.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섞인 침까지.
손톱은 갈라지고 길어졌으며,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졌다.
본래라면 이런 생자의 망자화를 막아줘야 할 칼디라스였지만 어째서인지 먼 곳까지 튕겨 나간 칼디라스는 침묵했다.
끝끝내 마지막 경련을 끝으로 완전히 침묵해버린 일리나의 모습에 린시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제 동기이자 친한 친구가 눈앞에서 처참하게 변하고 있는데 어찌 미치지 않을까.
상상 이상의 폭거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켜줄 이가 없는 상황에서 참혹한 상황에 내몰려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굉장한 전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저항할 의사를 거의 잃어버린 견습생들이 로브의 인영들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투웅.......
아주 옅으면서도 청명한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닿았다.
"어?"
"저게 뭔......."
쌔애애앵! 쿠웅!
그리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인지하기도 전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야에 담긴 하늘이 아주 잠깐 검게 변했다가 다시 제 색을 찾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지룡이었다.
날개만 있다면 완벽한 신화 속의 드래곤이라 착각할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거대한 빛의 광창에 꿰뚫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사정없이 바닥에 처박혀버린 마물의 왕.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기사단에 있어 공포의 상징인 초월체 샨드라였다.
* * *
콰드득!!
샨드라의 몸에 꽂힌 롱기누스의 거대한 창끝은 놈을 튕겨내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놈의 거체를 날려버렸고 급기야 그대로 대못을 박아버리듯 지면에 고정해버렸다.
"내 걸 봐. 어떻게 생각해?"
음 그래, 크고 아름답다고?
보는 눈이 있네.
갑작스레 날아가 처박혀버리는 거대한 존재. 샨드라의 모습에 침묵이 감돌았다.
벙찐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들을 무시한 채 하늘 위에서 포탄 떨어지듯 낙하하자 눈 앞에 펼쳐진 개판 오 분 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아주 난리가 났네, 얼씨구? 쟤는 왜 저래."
그런 내 시선에 한편에 널브러진 막내 골렘 퓨마가 보였다.
아무리 조정이 덜 끝난 녀석들이라지만 저렇게 당할 정도라면 꽤 많은 타격을 허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쪽엔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일리나가 보였다.
죽은 것은 아니다. 심장은 분명 뛰고 있는데 모습은 그야말로 오랫동안 방치되어온 시체마냥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륀느. 디셉티콘 편대 상황은?."
"디셉티콘 편대. 5체 중 3체가 전투 불능. 직접 회수해야 한다고 분석. 이외에 메가트론, 스나이퍼 다수 데미지가 누적. 운신은 가능."
아무리 5마리가 뭉치면 마스터도 찜 쪄먹어 버리는 골렘들이라지만 샨드라를 상대로는 상대가 나빴다.
이 정도 버틴 것도 굉장히 용한 꼴이리라.
륀느에게서 얻어낸 데이터를 조금 가용하면 전력이 상승할 것도 같은데.
"회수할 수 있지?"
"부서지고 찌그러진 파편을 회수할 경우, 메가트론, 스나이퍼 기동 가능. 나머지는 륀느가 직접 전부 회수해."
"그래."
크기야 륀느보다 크다지만 저렇게 완파되어버린 퓨마 같은 경우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챙겨올 수 있다.
"자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느긋한 내 모습에 가오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게 얼마짜린지는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