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18화
"그쪽 문제는 제가 조사해보겠습니다. 숲 속에서 죽어가던 배신자인 환술사 트레브를 확보했습니다.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알아보도록 하지요."
"맡겨보겠소, 그럼."
"그럼 이제 나머지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사망한 기사단원의 장례식과 부상당한 견습생에 대한 문제입니다만."
"견습생 하나가 사망하긴 했지만 나머지 견습생들은 크게 다친 이들이 없습니다. 이걸 천만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애석하게 여겨야 할지."
"정말...... 데이비 견습생이 없었으면 얼마나 큰 피해가 나왔을지......."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견습생 데이비가 가지고 있는 저력과 그가 알려주지 않은 내면은 그들의 이해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공적은 큽니다. 그에 따른 훈장과 직위를 고려하고 보상도 해주어야 합니다. 그뿐일까요! 그만한 영광스러운 일을 해낸 견습생을 위해 모두가 나서서 성의를 보여줄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 엄청난 업적을 세운 데이비 견습생은 어디 있습니까?"
기사단장 중 하나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일단 기숙사 방에서 잠시 쉰다고......."
덜컹!!
"죄송합니다! 보고입니다!"
갑작스런 기사단원의 난입에 놀란 회의장의 시선이 난입한 평기사에게 일제히 모여들었다.
"데...... 데이비 견습생이......."
"무슨 일인가!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당장 그만한 일을 벌여놨으니 혹시 리바운드 같은 게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그들이었다.
"펴......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탈주했습니다!"
그 외침과 함께 평기사가 꺼내 든 쪽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로밍나이트로써 후방 지원으로 빠지겠습니다.]
견습생이 시작부터 장기 휴직 선언을 던졌다.
침묵이 회의장 전체에 감돌았다.
* * *
배신한 기사단장 중 하나였던 가오르는 사망했다. 그를 따르던 흑색 로브인들은 단 한 명만을 남겨둔 채 전멸했고.
그들이 데려오려 했던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 또한 내 손에 눈을 감았다.
결과적인 측면에서 볼 때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은 내게 빚을 진 꼴이다.
비록 내가 견습생이긴 하지만 이번 일은 견습생의 손에서 마무리 지어질 만한 일은 분명, 아니었다.
"아......."
멍한 얼굴로 눈을 뜨는 일리나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때, 살만하나?"
"최악이야......."
인상을 잔뜩 찌푸린 탓에 안 그래도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 더욱 차갑게 변한다.
"여긴......."
"기사단 본부."
"......."
내 대답에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픽 웃었다.
"그럼 그렇지, 누가 누굴 죽였다는 건지."
"누가 들으면 죽길 바란 것처럼 보인다만."
"넌 죽으라고 100일 동안 신전에 기도해도 멀쩡히 돌아다닐 녀석이잖아. 그리고 그런걸, 바란 적 없어."
그렇게 말하던 녀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고통이 뒤따라 붙었는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며칠 정도는 요양해야 할 거다. 본국으로 돌아가."
"......분명 이상한 기운이 내 몸에 마구 들어왔는데......."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달은 그녀는 말끔하게 변했지만 미묘하게 메말라 보이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데이비."
이윽고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와락!!
그리고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나를 끌어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제 몸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는 건지, 지금 상황에 오히려 걱정해야 할 건 제 몸일 텐데.
진심 어린 안도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말없이 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 일리나의 목소리가 더욱 잠기기 시작했다.
"너, 강한 건 아는데...... 이상하게 불안해서...... 이번엔 진짜로 불안해서......."
초월체가 보통존재이던가.
그동안 그녀나 율리스가 나를 보고 미쳤다느니, 괴물이라느니 했지만.
그 당시 수준의 나조차도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를 이길 순 없었다.
고작 회랑에서 영혼에 새긴 힘, 그리고 깨어나서 급조하듯 만들어낸 서클과 환골탈태하지 못하는 몸은 엄연히 한계가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날 만큼 존재감부터가 다르지 않았던가.
말없이 울먹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슬쩍 들자 페르세르크가 애먼 짓 하지 말라며 양손으로 엑스자를 취한다.
내 장래희망 중 하나가 청개구리인데, 모르셨나.
우드득!
"꺄아악?!"
"근육 풀어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 지경이냐. 너 몸 쓰는 기초부터 새로 익혀라. 마나를 무리하게 사용하면 근육은 물론 장기까지 무리가 간다. 불구 되고 싶냐?"
"너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강하게 튕기고는 돌아섰다.
"죽다 살아난 주제에 입만 살아선."
"어...... 어디가!"
"영지로 돌아간다."
"샤,샨드라...... 초월체는?!"
초월체? 아아, 분신체이긴 했다만, 본체가 너무 강한 탓에 분신조차 초월체로 보인 그놈.
"보내줬어."
본체라면 대화라도 통했을지 모르겠다만,
내 말에 그녀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눈을 찌푸렸지만 곧 내 행동에 이해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검지만 펼친 채 위를 가리키는 행동이 뭘 뜻하는지를 모를 만큼 눈치가 없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너 지금 초월체를 때려잡았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초월체를?"
"잡았고 완전히 소멸시켰어."
"......너 사실 인간 아니지? 막 드래곤이라거나......."
"그리고, 시오 하울이 죽었다."
그리 말하며 옆에 있던 모포를 던지듯 그녀에게 덮어버렸다.
"시오 그 멍청이가......."
"내가 갔을 땐 이미 늦었더라."
의학으로도, 신성력으로, 도저히 살릴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있다.
부활의 권능.
비슷한 게 있기야 하지.
할 수는 있다.
작정하고 한다면 못 살려낼 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대가는 무엇이야?
'내 수명 1년. 그리고 신과의 계약에 따라 내 일생에 단 한 번.'
부활이라는 게 어디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당연히 위계만 따지면 9 위계 최후 성마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사용 자체도 까다롭거니와. 대가부터가 남다르다.
-재볼 것도 없는 저울질이었군.
시오 하울.
재능은 넘쳤지만, 녀석의 생명과 내 수명 1년은 비교할 수 없다.
놈에게 좋은 감정도 없고 딱히 녀석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의사의 시점으로 눈앞에 있는 부상자가 죽어 나가는 걸 볼 때의 기분은 마냥 좋지는 않더라.
녀석을 죽인 트레브는 직접 잡아 환술을 묶어버린 뒤 기사단에 던져주긴 했다만.
성자 타이틀을 지고는 있어도 나는 엄연히 신을 모시는 신자이되, 신과 거래한 장사치일 뿐이다.
"영지로 돌아간다. 당분간은 라운 왕국에 발 들이지 마."
"뭐?! 왜!"
"본국에서 요양해. 그리고, 라운 왕국은 당분간 좀 어수선할 거다. 제국의 황녀씩이나 되면서 무작정 들어와 있다가 무슨 소리 들어도 책임 못 져."
내 말뜻을 깨달은 일리나가 침묵했다.
뱀파이어에게 유감이 있는 그녀라곤 해도 이건 그녀가 끼어들 일이 애초에 아니었다.
이제까지 기다려왔잖아.
얼마나 더 기다려줘야 한단 말인가.
폐하에게 남은 내 배려는 이것으로 완전히 끝이다.
살짝 가라앉은 눈동자로 돌아서자 일리나가 황급히 내 옷깃을 잡아챘다.
"데이비."
"왜?"
"고마워......."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다치지 마. 너 다치면 내가 꿈자리가 너무 사나울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좀 전까지 일그러져 있던 표정을 지우고는 픽 웃어 보였다.
괜히 감정에 휘말려서 기분이 다운될 정도라니, 쓸데없이 감성적이다.
"그래."
* * *
간단한 편지만 남긴 채 견습생들이 깨어나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영지로 돌아온 나는 자경단장 몬미더와 현재 나를 대신해 자잘한 영지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 에이미, 그리고, 그녀의 자문스승인 베르닐 세 사람을 모두 호출했다.
"찾으셨습니까."
이제는 제법 기사 같은 느낌을 풍긴다.
그동안 베르만 경의 훈련 덕분에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영지 근위병들의 상태는 제법 좋아 보인다더라.
내 분위기가 미묘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살며시 어렸다.
"에이미, 베르닐 시종장."
"하명하십시오 저하."
두 사람의 대표로 베르닐 시종장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일단은 에이미가 어느 정도 작위를 내려받긴 했지만, 베르닐 시종장도 백작가의 방계로 그 직위가 낮진 않다.
"왕성의 일을 끝낼 생각이야."
"예?"
내 말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게 무슨......."
그는 머리가 좋은 사내인 만큼 내가 한 말의 뜻을 모르진 않는다.
이제 저쪽이 끝나건, 내 쪽이 아작나건 끝을 보겠다는 소리나 같다.
"그동안 폐하를 기다려드릴 만큼 기다려드렸어.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하인스 영지는 평소의 모습을 유지한다."
내 말에 그가 침묵했다.
"그리고 몬미더."
"예, 예! 저하!"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소리치는 녀석. 또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것일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의 귀족불신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나에 관해선 상당히 충정심이 깊다.
"넌 내가 말하는 곳으로 가서 사람을 좀 만나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놈의 근심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눈초리!
신중함은 약이라곤 하지만, 골 때리는 집안 내력은 별수 없는 모양이다.
57. 안 나오면 끄집어내리다.
"찾았습니다."
"찾았다고?"
갑작스레 허공에서 흐릿한 형체가 잡히더니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 잭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바리에타 공작령의 산하 영지인 올티아스 영지에서 각 영지의 행방불명자들과 흡사한 외향을 지닌 이들이 보였다는 보고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가 진입할 수 있는 것으론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명백히 제 능력 밖의 일이더군요. 하지만......."
말끝을 흐린 잭이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명백히 분노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 후에 개천에 버려진 시체 중 피가 완전히 빨려 미라가 되어버린 자들이 속속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캬...... 식상한 새끼들."
한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노리는 뱀파이어는 특정 조건의 인간을 납치하고 말라죽을 때까지 피를 뽑아내는 일을 암암리에 진행하고 있다.
혹시나 그럴 것 같아서 조사해보라 시킨 게 완전히 당첨된 꼴이다.
당연히 뱀파이어라고 다 때려죽일 놈은 아니라지만 이놈들은 도를 넘어서지 않았는가.
이후 나는 곧바로 수도에 있는 왕궁에 대한 이미지를 고정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정보는 계속해서 캐내. 나는 왕궁으로 간다."
"지금 이 시각에 왕궁으로 돌아가시려면 마나 게이트를 이용하시지도 못할 텐데요?"
"누가 마나 게이트를 쓴다던?"
힘 뒀다가 어디 써먹을래.
우웅.......
투웅!!
내 말과 동시에 바닥에서 보랏빛 마법진이 거대하게 드러나며 빛나기 시작하자 륀느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내게 달려와 내 다리를 끌어안았다.
"륀느, 데이비 님이 가는 곳은 따라가."
"여기 있지 그냥?"
"륀느, 거부해."
단호한 녀석이다.
딱히 상관은 없었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잭을 바라보았다.
"왜 또 놀라, 알 거 다 알면서."
"공간이동마법은 7 서클 아니었습니까?"
정보원이라고 정보 자체는 빠삭하다 이거지.
"이거 텔레포트 아닌데?"
[8 서클 공간 도약].
[워프]
텔레포트와는 다른, 더욱 상위호환적인 위치에 있는 이동마법.
치지지직!!
거대한 보랏빛 스파크가 주변에 진동하며 일순간 거대한 흔들림과 함께 내 시야가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