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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48화 (148/1,559)

# 14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6권 21화

말없이 손에 쥔 돌멩이를 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하던 나는 고요하게 다가와 보고를 올리는 몬미더와 훈련을 담당하던 기사 베르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출발해보자."

담담하게 말하며 입고 있던 경장갑의 갑옷에 채워진 걸쇠들을 잠근 뒤 걸음을 내디뎠다.

하인스 영지에서 차출한 병력은 고작 500이다.

많은 수는 분명 아니다.

1만 명 단위로 싸우는 내전에서 500명이 끼인다고 큰 차이가 있겠는가.

물론, 어떻게 활동하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이들을 데리고 특수작전을 펼칠 생각 따윈 없었다.

"다들 모여줘서 고마워."

돈을 아주 처바른 덕분에 병사들의 장비 상태는 매우 좋다.

번들번들한 전신 메일과 손에 쥐어진 드워프가 만들고 날을 갈아낸 전쟁용 기창.

게다가 말을 타는 재주가 있는 몇몇은 풀 플레이트로 아머를 장착하고 기병대로서의 위엄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래 봐야 그 수가 10명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적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 영지를 거의 신경 써주지 못해 내게 서운한 사람들이 있을 거다."

내 말에도 좌중은 침묵한다.

처음 자경단원 때부터 나를 모셔왔던 위병들도 많지만 영지가 발전하면서 영지민이 이주해오고 이곳에서 근위병에 취직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새로운 병사들의 표정에는 얼굴 하나 내비치지 않던 성흔을 가진 어린 왕자가 과연 뭘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쓸데없이 빙빙 돌려 말하는 건 집어치우자고, 현재 이 나라는 나라를 좀먹던 귀족파가 반란을 일으킨 상황에 처해있다."

고요함이 감돈다.

"그들의 군세는 3만. 소드마스터가 하나에 정체불명의 존재...... 아니 집어치우자, 해충 같은 모기 새끼들이 몇몇 있다."

적의 군세를 확인한 병사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공포감이 어렸다.

전쟁같은 큰 규모의 싸움은 최근 몇십년간 거의 없다시피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은 제 힘을 이용하여 죄 없는 왕국민들을 징집하고 그들을 방패막이로 세워 왕국으로 진입하고 있다."

짧게 숨을 들이켜며 담담한 시선으로 그들을 훑었다.

"혹자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우리를 위해 해준 것도 없는 왕실을 지키기 위해 왜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하나. 우리를 쥐어짜기만 했던 빌어먹을 귀족들이 있는 곳에 왜 우리가 무기를 들고 찾아가 도와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들 거다. 틀렸나?"

내 말에 일부가 수긍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대로 자경단 때부터 나를 따라온 이들은.......

"그딴 게 무슨 상관입니까! 저희는 성자님께 은혜를 입었고 성자님을 따르는 겁니다요!"

고든의 외침에 그 옆에 있던 프리먼이 응수한다.

"맞습니다! 까짓거 성자님이 죽으랍시면 불구덩이도 뛰어들겠수!"

"마음껏 부려주십시오!"

"내 목숨을 성자님께!"

마지막에 누구냐.

저놈의 광신도들.......

성자라는 칭호가 일차적으로 부여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정식으로 세례식도 치르지 않았으니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크흠. 나머지는 그렇지 않겠지. 맞지?"

동의를 구하듯 처음 보는 병사를 집자 그가 움찔하더니 정자세로 차려를 취하며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성자님을 믿습니다!"

"......."

좀 그렇다고 해라 이 인간들아.......

연설을 도와주질 않네.

"뭐 좋아, 믿든 안 믿든 그건 내가 강요할 문제는 아니지. 하지만 한가지는 내가 확실하게 짚어 주도록 하지."

내 말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우린 왕궁을 구하러 가는 게 아니다. 속된말로 나도 현재의 왕실은 치가 떨리도록 x같아. 싹 다 갈아엎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축이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건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목소리 톤의 고저를 적당히 조절하고.

여기서부터 살짝 낮게.

"나아가 그대와 나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내 경우엔 왕국민과 후에 왕이 될 내 동생 바리스를 위하여. 그리고, 질긴 악연을 슬슬 끝내기 위해.

그리고 너희들은, 조금이라도 지금까지 기득권층으로 살아온 자들에 대한 복수를.

쿵!

동시에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몬미더가 거대한 핼버드를 들었다가 바닥에 내리찍었다.

동시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영지 병사들 중 일부가 몬미더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전염이 되듯 모든 병사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군중심리란 참.......

이놈들은 분명 물타기의 고수들일 것이다.

"현재 반란군의 상당수는 드워프제 신식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강철은 금방 베어지고 이가 나가게 되겠지."

내 말에 직접 무기를 옮겼었던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실제로 적에게 신식 무기를 팔아치운 주제에 본인은 구식무기를 쓰는게 정상은 아니다.

명백히 병사와 병사간의 싸움을 기준으로 했을때에 말이다.

"하지만, 그대들의 곁에 누가 있나!"

"저하께서 계십니다!!"

"그러니 나를 따라라! 전과 같이 약속하도록 하지. 너희들은 늦고 빠르고를 떠나 모두 하인스 영지의 가족이 되었다. 그런 가족을 영주인 나는 단 한 명도 버리지 않으마."

죽지 마라.

감히 내 허락 없이 죽을 생각도 하지 마라.

너희가 할 건 오로지 돌격뿐이고.

내가 할 것은 너희들과 너희들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니.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바닥에 검 끝을 내려 세우고 있던 의장용 대검을 가볍게 뽑아 들곤 소리쳤다.

"지금까지 너희를 괴롭혀왔던 놈들을 향해 하극상 한번 제대로 해보자."

3만의 적, 한 명의 소드마스터. 그리고 정체불명의 뱀파이어까지 있는 적을 상대로 단기간에 특화된 전투.

이게 뭘 뜻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아니었다. 왕국민을 지킨다는 입장인 내게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낸다는 선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거대한 연극일 뿐이다.

"전군!! 도구를 챙겨라! 대청소를 시작한다!"

영지 일대의 고블린이 청소였다면 모기 놈들은 대청소에 맞게 스케일을 조금 키워줄 뿐이다.

* * *

베르부스 산성.

라운 왕국의 수도와 바리에타 공작령의 가장 큰 길이 이어진 중간 요새로 외세의 침입을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는 거대한 성이기도 했다.

성벽의 높이만 30m가 넘고 너비가 10m에 달하는 초거대 성으로. 본래 라운 왕국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불굴의 요새이기도 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성벽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붉은색의 갑주를 입고 있었는데, 그들의 가슴팍엔 반란군이 된 귀족파를 상징하는 바리에타 공작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젠장...... 어쩌다가 이런 꼴이......."

이쪽 성벽을 지키는 병사는 총 5명이었다.

너무 적다고? 이유 자체는 간단했다.

반란군이 된 귀족파는 엄연히 침략하는 쪽.

그런 의미에서 병사 대부분은 침략에 중점을 두고 있지 수성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이 반격할 생각이었다면 그 전에 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상주병력이 현재 5천이 넘는 이 베르부스 성에 쳐들어올 간이 큰 놈은 없다는 지휘관의 입장도 한몫하는 편이었다.

"이봐.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빌어먹을, 류스 영지에서 끌려왔수다."

"미친놈들 도대체 어디서부터 징집을 해온 건지."

한참 떨어진 영지에서까지 차출되어 끌려왔다는 말에 병사 헤븐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알로스 영지에서 끌려왔네."

"허이구, 그 짝도 벽지에서 완전히 봉변을 당했고만."

"내 참,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 지키려고 성이나 지키고 있다니......."

거부할 순 없었다.

거부하는 순간 그들에게 내려질 처분은 죽음이다.

그것도 수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구경거리처럼 참혹하게 죽게 될 것이다.

아니면 소문처럼 으슥한 곳에 끌려가 그 정체 모를 괴물의 식사가 될지도 모른다.

"젠장...... 내 일평생 내 등골 빼먹던 영주놈이 따르는 귀족 놈들의 끄나풀이나 되어야 한다니."

가장 증오해야 할 상대를 힘이 없어서 지켜주고 있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에게 거역했다가 죽은 동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나저나...... 왕족들은 아주 꽁무니 빠져라 도망쳤겠구만."

"그러게 말이오. 병력의 수가 세배나 차이 난답디다. 이미 저 아래에선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 미친놈도 보았소."

그 말에 헤븐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미친 게지, 이 성벽을 누가 뚫어. 고작 1만으로 뚫기엔 성벽도 높고 두꺼운데."

유일하게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입구인 거대한 성문은 지난 100년간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다는 역사를 지닐 만큼 수많은 마법 장벽이 세워져 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성의 약점인 저 문을 뚫으려면 3 서클 이상의 마법사 50명 이상이 동원되어 방호 마법을 저지하고 거대한 충차로 반나절 이상을 두드려야 각이 나온다는 모양이더라.

문제는 이곳을 넘지 않으면 반격은커녕 왕국군 측에선 어떤 반격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에이 빌어먹을 세상! 카악 퉤!"

짜증스레 성 아래에 침을 탁 뱉은 그가 투구 아래로 비치는 햇볕이 비치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어?"

그때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의 눈에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보인 것이다.

"허이구야 x벌. 내가 뭘 잘못 봤나......."

쥐고 있던 헬버드를 가슴에 기댄 채 눈을 비비던 그는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믄 그렇제. 에이 육시럴 차라리 거대한 뭐라도 와서 이놈의 성벽 좀 뚫어버렸으면 좋겠네."

차라리 도망이라도 칠 수 있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헤븐뿐만이 아닌지 다른 이들도 죽상을 쓰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도망가."

그때였다.

고요하던 성벽의 위의 그들에게 처음 듣는 젊은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잉?"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는 마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듯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건 헤븐뿐만이 아니었는지 그곳을 지키고 망을 보던 다른 병사들 모두가 놀란 듯 목소리가 울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다들 고생이 많아."

여유롭게 웃으며 자신들을 지나쳐 성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높이가 30m...... 게다가 거대한 산 위로 지어진 성벽답게 그 아래 또한 2~30m쯤 되는 경사진 길로 이어져 있다.

그런 성벽을 아무런 소리 없이. 단숨에 올라왔다고?

비록 원치 않았지만 자신들이 지키고 있던 이곳을?

잔뜩 놀란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던 헤븐은 곧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며 그대로 성벽 안쪽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쿨럭! 아이고!"

높이가 30m인 만큼 그대로 떨어지면 피떡이 되어야 정상이건만.

성벽 안으로 날려져 떨어진 그의 몸은 마치 30cm도 안 되는 곳에서 떨어진 것처럼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무슨......."

평민 출신인 그에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 눈을 부릅뜨고 있던 헤븐은 곧 자신과 함께 성벽을 지키던 다른 병사들도 근처에 떨어져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악!!

그리고, 곧 자신들을 이곳까지 날려버린 소년이 가볍게 성벽 위에서 점프해 착지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사...... 삼십 미터......."

마치 가볍게 점프하듯 30m 높이의 거대한 성벽 위에서 뛰어내려 자신들을 지나치는 그의 모습에 헤븐이 입을 쩍 벌렸다.

"나야. 진입해."

그 말과 함께.

"상남자는 폭발을 돌아보지 않는 법이라더라."

능글거리며 중얼거린 채 등 뒤에 채워진 검집에서 얄팍한 검신을 가진 푸른 검을 꺼내 든 그가 성채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투둑.......

그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콰아아아아앙!!!!!

자신들이 있던 거대한 성벽 일부가 그대로 폭발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 사이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수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일제히 성 내부로 뛰어들어오는 게 보였다.

"전군 내 말을 새겨들어라."

우레와 같은 함성 속에서도 성채 내부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가는 소년의 목소리는 마치 완전히 계열이 다른 소리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소년은 손에 쥔 검신에 붉은 기류를 넘실거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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