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화
59. 죽음과 말로.
변신을 하면 티끌 만큼이긴 해도 강해질 것이다.
보통의 싸움에서 적이 강해지면 당연히 귀찮아진다.
그런고로 변신하면 귀찮아진다.
나무랄 데 없는 논리에 의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움직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쿠당탕!! 콰앙!
순식간에 파고들어 놈의 목을 틀어쥐고 처박기가 무섭게 날아든 두 자루의 쌍둥이 검이 놈의 양팔을 고정시키듯 땅에 처박힌다.
동시에 묵직한 파괴음이 일대를 짓누르며 지독한 중력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쿠...... 쿨럭...... 이 비겁한 놈......."
"내가 지금부터 그 지저분한 변신보다 더 끝내주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네놈은 절대 날 죽이지 못할 거다. 그 푸른 검이 치명적이긴 하나 그 정도 저급한 권능으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처...... 청다니 할 수 이써!!]
'착하지? 얌전히 기다려.'
아직 시동도 걸지 않은 청단이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네.
놈을 곱게 죽일 생각이었다면 청단이 홍단이의 권능으로도 충분하다.
놈은 두 쌍둥이 검이 가진 권능의 한계가 이 정도라 여기는 모양이지만 얼마든지 내가 힘을 불어넣는 정도에 따라 그 효력이 증폭되리라.
결국 내가 택한 방법은.
"계단식 살인이라고 아냐?"
"무슨?!"
[5급 성마법.]
[성화포(聖火砲)]
투쾅!!
마치 거대한 제세동기가 인간의 심장을 자극하듯.
막대한 신성력으로 뭉쳐진 백색의 충격파가 내 손바닥을 타고 터져 나와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동시에, 격한 신음을 흘린 놈이 크게 움찔하며 반쯤 감긴 기괴한 눈동자로 나를 노려본다.
"이 정도론 어림도 없!......"
[6급 성마법]
[성화포(聖火砲)]
투쾅!!!!
"커헉! 끄륵...... 크윽?!"
그래도 성화포는 대 마(魔)속성 공격인데, 별로 간에 기별이 안 가시나? 그럼 이건 어떠신가.
[7 위계 성마법]
[성화포(聖火砲)]
콰아앙!!!
일대를 장악하던 크레이터가 거대한 진동을 일으키며 또다시 한 번 지면을 파고들었다.
크레이터 안에 크레이터.
동시에 전체적인 크레이터의 크기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아프냐? 아직 남았는데."
"자...... 잠깐?! 머, 멈......."
[8 위계 성마법]
[성화포(聖火砲) 개(改)]
신익 레플리카 때보다는 훨씬 작지만 순백색의 신을 상징하는 날개가 한 쌍 모습을 드러내며 내 등 뒤에서 펄럭인다.
콰아아앙!!!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빛의 충격파.
이미 반쯤 처박힐 대로 처박혀 땅속을 파고든 놈의 신체는 변형이 되다 만 상태로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놈은 살아 있었다.
놈이 가진 기괴한 불사의 권능 대부분이 청단이에게 베여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재생하는 건 이 재생력이 놈의 순수한 육체 능력이라 봐도 무방했다.
역시 이런 건 홍단이로 베는 게 최고이긴 한데.
"키...... 키히히히!"
이윽고 내 등 뒤로 돋아난 대량의 신성력을 상징하는 백색의 날개가 사라지며 일대의 신성력이 서서히 사그라진다.
"이런, 효과 끝났나?"
공격이 멈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그가 반쯤 죽어가는 표정으로 킬킬거렸다.
"키...... 키힛. 키히히힛! 끝이냐? 끝이야?! 그래! 빌어먹을 놈! 내 몸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전부 변하면 네까짓 놈은 손수 정성스레 찢......."
"아직."
물론,
신성력이 완전히 침묵하긴 했지만 아직 끝이라고 한 적 없다.
놈의 말을 끊은 채 놈의 시선을 직시하던 내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황금빛을 번뜩였고 놈의 얼굴과 살짝 떨어져 있던 내 손이 마치 녀석의 얼굴을 감싸듯 움켜잡았다.
"한 발, 더 남았는데."
"자...... 잠깐!? 그만......!!"
[9 위계 성마법]
[강신]
[신의 손가락]
[대(大) 성화포(聖火砲)]
성화포 계열의 끝판왕!
9 위계 성마법인 강신. 그리고 그 강신의 여파로 파생시키는 조금 다른 성화포.
단순한 손가락 찌르기와 같은 원리이지만, 그 손가락이 인간이 아닌 신의 손가락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지간해선 9 위계 급의 성마법들은 그 여파가 오래도록 남기 때문에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다만.
이놈에겐 아낌없이 주리라.
그 위력은.......
적잖게 아플 거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일대 지역을 완전히 집어삼키며 정체 모를 순백의 깃털과 순백의 광휘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 * *
데이비 왕자를 막기 위해 출발했던 소드마스터 엔쟈 후작과. 엄청난 기세를 풍기던 뱀파이어 둘 모두가 패배했다는 소식은 반란군 진영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많은 인간을 몰살할 것 같던 괴물을 그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해버린 1 왕자 데이비가 보란 듯이 진격해온다.
게다가 느긋하게 다가오는 그의 전진속도에 맞추듯 뒤따라오던 왕국군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덩치를 불리며 뒤따르고 있다.
탈영한 반란군 세력. 억압당하던 세력. 눈치를 살피며 어디에 붙을지 간을 보고 있던 세력까지.
그 수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니 본대를 어느 정도 쪼개고 대부분의 병력을 뒷길을 통해 왕성 쪽으로 출정시켰던 반란군의 본채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애초에 사기가 그리 높은 반란군이 아니었기에, 전의 자체가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아직 많은 수가 남아있지만 베르부스 성의 수천 병사조차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지 않는가.
직접 창칼을 맞대고 싸운 이는 극소수이겠지만 그만큼 병사들의 동요가 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 병력은 이미 왕성으로 통하는 다른 길을 향해 출정 길에 올랐다.
아마 그들에게는 앞과 뒤를 모조리 틀어막혀 항복하거나, 몰살당하는 최후만이 남았을 것이다.
콰앙!!! 쾅!!
먼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오며 천막을 뒤흔들었다.
마탑의 정예수준은 아니라 해도 이번 전쟁을 위해 바리에타 공작이 암암리에 준비해온 전투 마법사 병단이 내는 소리가 분명했다.
쾅!! 쾅!!
계속되는 폭음.
지축이 뒤흔들리는 그 안에서도 바리에타 공작은 굳은 얼굴을 펴지 않은 채 말없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애초에 뱀파이어 페이스라는 그자가 없었어도 자신이 가진 수많은 비밀병기와 치밀한 계략이면 문제없이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졌다.
원래 왕비 내정이었던 그의 딸 리네스 바리에타를 제치고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변방 이름 없는 남작가 출신의 여자. 레니 알리샤드.
그녀의 아들. 1 왕자 데이비 올 라운 단 한 명에 의해서.
신중한 준비를 위해 거금을 사용해 드워프제 신식 무기까지 들여왔건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이상한 기운이 새겨진 병사들의 무기는 블루스틸의 검으론 쉬이 베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철 검보다 더 심하게 말이다.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인 대가는 혹독하다.
상식적으로 이럴 순 없다. 그리 외치며 절규하진 않았다.
그저 담담히 그는 자신의 손을 묵묵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제아무리 예쁜 꽃도 십 일을 붉지는 못한다 하였던가.'
이전 데이비의 성흔을 빌미로 라운 왕국에서 쫓아내고 칼루스를 하인스 영지의 영주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를 지나치듯 데이비가 했던 말이었다.
'공작, 아주 먼 곳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어떤 예쁜 꽃도 십 일을 붉지 못한다는 말이죠. 내 말뜻 알아듣겠습니까?'
그 어떤 것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고 쇠한다.
어쩌면, 데이비는 그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준비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가 펴놓은 함정에 있는 미끼가 너무 맛있어 보여 덥석 물어뜯은 자신의 과오일 뿐.
"아...... 아아! 사...... 살려?!"
콰앙!!!!
묵직한 소음과 함께 새카맣게 익어버린 거구의 귀족 하나가 천막 안으로 튕겨 들어와 나뒹굴었다.
"끄으...... 끄으으......."
전신이 불타 피부가 일그러지고 수축이 되는데도 살아 있는지 거구의 사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기었다.
"도망 안 갔습니까?"
이곳엔 수천의 반란군 병사가 아직 남아있다. 아직 전멸하지 않은 마법 병단도 소수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미뤄볼 때 그건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병사의 반수는 강제로 징집된 이들이 아니던가.
명분이 극명하게 불리한 자신들에 있어서 병사들이 자발적인 충성을 할 리는 없었다.
기회가 생기기가 무섭게 오합지졸처럼 흩어지거나 돌아서는 이들이 전부.
자신들의 상황이 유리했다면 그것을 이용해 더욱더 압박을 가해 그들을 통제했을 테지만.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난장판을 만들어버린 눈앞의 소년은 그들의 탈영을 순식간에 주도했다.
그동안 쌓여온 것들에 분노하며 스스로 돌아서서 바리에타 공작가의 병사들을 공격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혼란 속에서 바리에타 공작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소년에게 말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마셨어야 했소."
"그러게 말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그때였을 텐데."
"......."
"데이비......."
그때 바리에타 공작의 곁에 안절부절못하며 앉아있던 칼루스가 부들부들 떨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활을 틀어쥐고 그대로 화살을 메겨 데이비에게 겨누었다.
마치, 10살 때 사냥대회에 참가했던 날처럼 말이다.
"빌어먹을 천것이 끝까지 일을 그르치는구나!"
"말은 똑바로 해야지 멍청한 동생아. 이 사달을 낸 건 내가 아니라 너라는 사실은 짚고 가야지."
처음부터 네 어리석음이 왕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잖냐.
화살을 쐈던 것부터.
증거 없이 뱀파이어를 다루던 리네스 왕비와 다르게 대놓고 뱀파이어와 계약해 왕국민을 납치하고 피를 빨리게 만들었으니.
"뭐, 그걸 알고 묵인한 공작도 이제 한물간 거겠지요."
"뱀파이어의 힘은 이례적이지요. 그 힘을 다룰 수만 있다면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절대 왕정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콧대 높은 귀족들은 당신들을 이용한 것뿐일 텐데."
픽 웃으며 중얼거린 데이비가 활시위를 놓을 듯 부들부들 떨고 있는 칼루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너와 리네스 왕비를 죽이지 않고 그냥 뒀다고 생각하나."
"뭐라?"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다."
죽이지 않고 영원히 고통 받을 수 있게.
"죽어서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특히, 너와 네 동생 베네디트.
"으...... 으으...... 으아아아!!!"
그 말이 기폭제가 된 것일까.
격노한 칼루스가 결국 데이비를 향해 활시위를 놓았다.
서부 대륙에 서식하는 일각수의 뿔로 만든 고급 활의 위력은 일반 활과 확연히 다른 탄성을 지닌다.
어지간한 사람의 피부는 가볍게 뚫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칼루스가 사용할 정도이니 그에 따른 수많은 보조마법이 걸린 일급 장비이리라.
파악!! 푸욱!!!
곧, 섬뜩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악!!!!"
지독한 비명이 천막 내부에 울려 퍼진다.
비명의 주인은 다름 아닌 칼루스였다.
데이비를 향해 날아갔어야 할 화살은 그의 손짓에 그대로 낚아채 졌고 엇! 하는 사이에 칼루스의 한쪽 눈을 뚫어버렸다.
저런 치명상에 죽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용할 정도로 말이다.
"하아...... 끄으아아...... 아악!!!"
비명을 지르며 피가 줄줄 흐르는 눈을 감싸 쥐고 뒹구는 칼루스를 무시한 채 데이비가 바리에타 공작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