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3화
이윽고, 국왕 크리아네스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이에 회의장에 있던 귀족 모두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반란에 가담했던 대다수의 귀족들이 붙잡혀 지하 감옥에 갇힌 탓에 회의장에 있는 귀족의 수는 극도로 줄어있었다.
이대로 나라를 굴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담담하게 답한 것은 나였다.
비록 토벌군의 수장은 페일트리스 후작이었지만 이 전쟁에서 최소한의 피해로 모든 것을 제압해버린 게 나라는 걸 모르는 이는 이제 없다.
빈약하고 세력이 없던 왕자였던 나는, 이제 이 나라의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 게 옳은 일인지.
상대적으로 정보가 통제당했던 일이기에 마냥 여기저기 소문이 퍼지진 않았지만, 아마 이제 이 나라에선 무슨 일을 해도 시선이 몰릴 것이다.
아니,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 나라의 상태를 주시하던 주변국들은 다 눈치를 챘을 것이다.
"비통한 일이나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반역에 가담한 자들의 처리를 결정하고자 한다. 1 왕자 데이비 올 라운. 고개를 들라."
"......."
"그대는 이번 토벌 건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힘으로 절대 이뤄낼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업적을 세웠다.
"......."
그저 칭찬만이 아님을 알기에 침묵을 유지했다.
"묻겠다. 반란에 가담한 귀족들과 그 수장 바리에타 공작. 그리고 왕족으로서 그 의무를 저버린 두 왕자에 대한 처분을 어찌하고 싶더냐."
본래라면 국왕 크리아네스가 정해야 할 일이지만. 그는 그 이상을 나서지 않았다.
나를 시험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내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 자세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만 답이 있을 것이다.
그의 질문에 나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이를 뽑겠습니다."
"흐음......."
"흠......."
내가 한 말은 단순히 이를 뽑겠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를 강제로 뽑히는 이들은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자살을 방지시키겠다는 의도.
주로 이런 경우는, 극도의 중죄를 지은 이들의 모든 직위를 박탈하고 고된 탄광 노예로 강등시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노예제도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만.'
살아서 극도의 고통을 느끼고 싶다면 이용 못 할 것도 없다.
그동안 내가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기에 크리아네스 국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그리해야겠느냐. 그래도 한때엔 네 동생이었다."
"2왕자 칼루스는 나라를 뒤흔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뒤흔들고 있고요. 거기에 모자라 지엄하신 국왕 폐하의 권위에 도전까지 한 자들입니다."
"......."
"여기까진 객관적인 입장이지요. 저는 아직도 몸에 화살이 박히고 조롱당했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데이비.."
"제 동생에 칼루스와 베네디트라는 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말에 다른 귀족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였다.
"선처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저희의 간언을 넘기지 마시옵소서!!"
모든 귀족이 입을 모아 말한다. 개중엔 귀족파의 재산을 빼돌려 배를 채우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이번 일로 혹여나 보복을 당할까 걱정돼 확실하게 처리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좋다. 왕명을 내리겠노라."
머리가 아픈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던 그가 천천히 선언했다.
"들으라, 이번 일은 국가의 최대중죄인 역모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적의 수괴, 바리에타 공작과 2 왕자 칼루스 올 라운, 그리고 3 왕자 베네디트 올 라운의 모든 직위를 박탈. 노예로 강등한다. 차후 이들을 극악무도한 죄수들의 수감소인 하오지 노예탄광으로 보내 남은 생 동안 노역을 부과한다!"
엄숙하게 선언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숙여 보였다.
* * *
"왕비는 죽었다."
-결국, 이리되는군.
곁에서 들려오는 페르세르크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내가 담담하게 물었다.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상하셨습니까, 폐하."
"데이비."
"제게 가장 미운 존재는 칼루스와 베네디트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리네스 왕비였지요."
그다음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폐하이십니다.
"이 일을 제가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데이비. 그녀만큼은 내가 보내 주어야 했다."
"폐하의 과거사는 이제 제게 관심이 없는 분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 말에 그의 목소리가 드물게 단호해졌다.
"내가 해야만 했다...... 왕비의 악행은 분명했지만 이건 옳지 않았다. "
"그럴 거면 차라리 이야기를 하시란 말입니다."
"네 어머니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데이비, 리네스 왕비가 이 상황까지 내몰리면서도 유일하게 지켜준 약속이기도 했고. 그러니...... 이 일은 여기서 묻어다오."
아들 이기는 아버지 없고, 아버지를 모질게 떼어내지 못하는 나도 결국은 멍청한 호구였던 모양이었다.
서로 누가 잘했냐고 콕 집어 말할 자신이 있을까.
"......차기 왕태자는 바리스가 될 겁니다."
"......."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지금 현실에 생겨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데이비."
"폐하께 남은 수명은 이제 몇 달도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을 끊은 내가 한 손에 옅은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깟 독으로 인해 망가진 신체로 도망갈 핑계는 대지 마십시오."
[하이네스 힐]
우우웅!!!
강렬한 빛이 감돌며 그의 몸에 스며든다.
교황급이라면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초고위 회복마법이지만 장담컨대 이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한 회복마법은 교황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10년. 그 안에 이 나라를 안정시키세요. 그리고, 바리스가 왕이 되어 떳떳하게 왕국민 모두를 이끌 수 있는 성군이 되는 발판을 만들어내십시오. 바리스가 왕이 되는 것만으로도 그런 것들이 따라붙을 수 있도록."
"그것이...... 너를 방치한 이 아비에 대한 복수이더냐?"
"최소한의 양심을 믿겠습니다만, 또 이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다시 움직일 겁니다."
그때엔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쓰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을 이어 왕이 될 네 번째 아들에게 고통스러운 길을 남기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나는 왕에는 관심이 없으나.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동생은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나는 왕이라는 허울 좋은 쓰레기 같은 직위에 목을 매 바리스 녀석과 정치 싸움을 할 생각도.
되먹잖은 책임을 핑계로 나 스스로에 핑계를 덧씌울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이 나라의 왕자이기에, 1 왕자라는 자리에 있기에 내게 이제 돌아올 제대로 된 권리와 특혜에 따른 책임과 의무만큼은 이수할 생각이었다.
뻔뻔한 결론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날, 나는 왕자로서 왕태자가 되는 모든 권한을 포기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완벽한 탈출이다.
* * *
마지막이라면 마지막인 만큼 나는 하인스 영지로 떠나기 전 왕궁의 지하감옥을 방문했다.
"데이비!!!! 데이비이이이이!!"
씩씩거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칼루스가 발작을 일으키듯 덤벼들었다.
카앙!!
하지만 녀석과 나 사이는 촘촘하고 단단한 금속 철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쾅!! 쾅!!
"널 죽일 거다!! 아아아악!! 널 죽여 버릴 거다!! 데이비이이!!"
한쪽 눈에 붕대를 감은 채 악다구니를 쓰는 녀석의 나머지 눈동자에서 광선이라도 쏟아질 듯한 살기가 어른거렸다.
"신수가 훤하네, 칼루스."
이곳에 오는 길에 맞기라도 했느냐.
머리 위의 태양에 흑점이 끼였구나.
"데이비이이!!!"
"넌 이제 왕자도 뭣도 아니야."
"감히!! 감히 나를 기만하는 것이냐!!"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녀석은 바닥을 뒹굴며 울분을 토해냈다.
"너는 이제 하오지 탄광으로 광산 노예가 되어 끌려갈 거다.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거고, 평생을 그곳에서 노역에 살다 죽겠지."
"뭐...... 뭐라고?!"
"하오지 탄광 영지 몰라? 거기 기가 막히게 잘 알 텐데? 마음에 안 든다고 네 손으로 처넣은 죄 없는 사람이 몇 명이더라."
빛을 볼 수 없는 지독한 형벌의 광산.
뿌린 대로 거두는 거다 이 새끼야.
내 말에 녀석의 몸이 크게 움찔거린다.
어찌 모를까.
바리에타 공작가가 수많은 이들을 괴롭힌 방법 중의 하나가 자신들을 거스른 이들을 그곳으로 보낸 것들인데.
모르긴 몰라도 그곳에 있는 이들 중 반수 이상은 공작가 인원들을 향한 지독한 원한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걱정은 하지 마. 절대 죽이지 못하게 준비도 철저히 해놨으니, 앞으로의 시간은 길고, 네가 그곳에서 보낼 시간은 이제 네가 왕자로 있었던 시간보다 길게 될 거다."
넌 젊잖냐?
놀리듯 말하자 그가 눈을 부릅뜨고 철창에 매달렸다.
어떤 의미로는 죽음보다 더한 처벌이다.
"네까짓 게 나를 보낼 수 있을 거 같으냐?!"
"이미 결정 났고 조만간 네 자살을 막기 위해 집행자들이 올 거다. 아직 현실을 파악 못 한 모양인데......."
말끝을 흐린 내가 그를 똑바로 직시한다.
순간적으로 살기가 흘러나왔다.
"넌 지금 반란을 일으킨 중죄인이다."
중죄인.
그제야 상황파악이 되는 건지, 아니면 그 말이 가져오는 여파가 두려워진 건지.
그의 표정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데...... 데이비! 이러지 마! 우리는 형제잖아! 피를 나눈 형제잖아!"
"형제?"
"그...... 그래! 아...... 아니! 그렇습니다 형님! 하오지라니요! 설마 피를 나눈 동생을 정말 그 끔찍한 곳으로 보내시려는 겁니까?!"
광산 노예라는 말에 패닉상태가 되었는지 녀석이 필사적으로 손을 뻗으려 애를 썼다.
"형님!!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제발...... 제발!"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난 너 같은 놈은 몰라 새끼야."
* * *
하인스 영지는 내가 반란군을 진압하는 동안 한 차례 습격을 겪었다.
하지만 준비가 철저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법.
순수의 은으로 만든 드워프제 무기로 무장하고 단단히 준비하고 기다리던 린디스 제국의 소드마스터 10명.
그리고 데우스 액스 마키나를 가지고 있는 자아를 가진 골렘 륀느와 디셉티콘 편대.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모른 척하고 있지만 영주성의 하녀로 위장하고 있는 그녀까지.
오버한 전력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혹시 모를 변수는 무시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뱀파이어는 모조리 주살되고 도망쳤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는 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폐하의 명을 따를 뿐이지요."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노장의 말에 내가 하하 웃어 보였다.
"실은 그보다 왕자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를요?"
"예, 정말 감사합니다."
"딱히 감사받을 만한 일은 한 건 없는 것 같은데요."
내 말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감사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니요. 이 노인네의 유일한 삶의 낙인 황녀 저하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그대가 구해준 그 소동물 같은 황녀님의 기사일세.
'아 그래?'
기억을 못 하고 있었더니.
제법 충성심이 뛰어난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하인스 영지에도 많으면 좋으련만.
-지금만 해도 하인스 영지엔 축복받은 인재들이 많은 편이지, 그대는 그걸 알아야 해.
왜 모를까.
사람은 무엇이든 혼자서 다 해낼 수 없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영지에 내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