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5화
60. 발전하는 영지와 만남.
장난으로 넘기기엔 보여주는 게 있으니 안 믿기도 힘들겠지.
정작 그런 그의 표정엔 시기나 질투보다는 놀라움과 경외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부...... 부디 저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제가 가르쳐드린 게 있습니까?"
없는 거 같은데.
"마법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시는지 모를 겁니다 데이비 님!"
학구열로 가득한 눈을 번들거리며 의욕에 불타오르는 율리스의 모습에 나는 대강이나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나의 흐름이나 새로운 경지의 마법을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에겐 빚이 있었는데.
내가 없는 사이 그가 필사적으로 윈리를 구한 횟수만 두 번이다.
새삼 고마움이 느껴져 조금 서비스를 해줄까 싶기도 하다.
6 서클 돌입 정도야, 특제 데이비식 육체개조, 일주일이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봉인석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 마법진 위로 출력되는 빛의 문자들을 살짝 건드렸다.
"이걸 이렇게 해두면......."
관리하는 이들 입장에서도 편하게 다룰 수 있겠지.
정령의 힘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관리할 수 있으니 엘프들을 꼬셔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웅!!!
동시에 마법진이 활성화 되기 시작하며 거대한 물탱크 전체에서 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제대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내가 이거 만든다고 사흘 밤낮을 마법진 구조에 디버깅하고 있었는데.
"이게 정확히 어떤 거예요. 오라버니?"
궁금증을 참지 못한 윈리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물어왔다.
귀찮게 자꾸 물어본다면, 대답해줘야지.
암, 누구 동생인데.
"수류 펌프야."
"수류...펌프? 아 설마...... 왕성에나 설치되는 지하에서 바로 깨끗한 물을 끌어올리는 시설을 말하시는건가요?"
"펌프는 유지비가 엄청날텐데.."
생각 이상으로 단순한 결말에 윈리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계속해서 보여준 것들이 지금까지 정상은 아니었으니 이번에도 그런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기대는 보기 좋게 적중했다.
"관리만 해준다면 반 영구적으로 사용가능, 그리고 극도로 저렴하고 관리자체가 쉬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이거 하나면 하인스 영지에 만들어진 주거지역 전체 어디서든 물을 마음대로 끌어다 쓸수있다는거다."
현대 지구에선 어느집이건 물이 들어오지 않는 집은 거의 없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대부분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사용하는 이 세계에서, 가히 수로 혁명이라 불러도 될 만한 미친 시도.
이 발언이 대륙의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관심 없다.
"세상에...... 그런 게 가능해요?!"
보통 수온 조절이 되는 펌프 하나를 설치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든다. 그뿐일까, 매번 마나석을 교체해주고 관리 및 보수를 해야 하기에 유지비는 가히 천문학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규모가 작고 힘이 약해 보통의 경우 특정 자리에 단 한 개만 설치하는 게 가능하다.
"당장 부가장비가 부족해서 마법진을 500개나 설치하긴 했다만, 불가능한 건 아니야. 에이미."
"예, 예 부르셨어요 저하?"
"지금부터 영지 전체에 내 말을 전해."
그 말은.......
* * *
"어구, 릴리 어멈 아녀?"
"안녕하세요, 헬레나 할머니. 물 길으러 오신 거예요?"
"고럼, 힘쓰는 아들놈이나 손자 녀석들이 지금 농지 개간에 아주 열심이니 나라도 이런 걸 해야 하지 않겠어?"
허허 웃어 보이며 말하는 헬레나 할머니의 표정은 산뜻하게 밝았다.
"기분이 무척 좋으신가 봐요."
"나가 말이여, 오늘 아침에 허리가 쑤시지 않는 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쟈."
"아하, 그런데 좋은 일이라 하시면......?"
"흐음, 글씨여...... 왕자 저하께서 또 뭔가 거대한 걸 준비하시지 않을랑가?"
"왕자 저하께서요? 에이~ 지금까지 하신 것만 해도 얼마나 큰일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또 여기서 뭘 보여주시겠어요?"
"어구야? 릴리 어멈이 아직 뭘 모르는구먼? 왕자 저하께서는 말이여? 요로코롬! 요로코롬! 하면 없던 떡도 생긴다니께?"
비가 안와서 땅이 메말랐다더라.
그래서 비가오길 기도했다.
데이비 왕자님이 말하길, 그리하거라.
정말로 비가 내렸단다.
그 뿐인가. 날씨가 추워져 대책이 필요하다더라.
데이비 왕자님이 말하길, 그리하거라.
다음날부터 차갑기 그지없던 날씨가 훈훈하게 변하기 시작했단다.
다이나는 이런 헬레나 할머니의 말을 굉장한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과한 맹신을 보내는 헬레나 할머니의 모습에 릴리의 엄마인 다이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본래 다른 영지에 있다가 하인스 영지가 발전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케이스였다.
다 죽어가던 고향이 갑자기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온 부류라는 소리였다.
그런 만큼 그녀는 하인스 영지에서 벌어진 기적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바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영지민들 중 초기 영지민들이나 토벌을 나갔던 이들이 극도로 데이비 왕자를 맹신하는 걸 조금 바보 같다고 여기는 그녀였다.
하녀로 일하다가 쫓겨났던 그녀는 귀족이나 왕족이라는 높은 존재들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 되고 적의가 생겼다.
그래도, 이곳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이. 저하께서도 한계가 있겠죠. 나라님이라고 해도 다 사람인데."
"어이구야! 릴리 어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큰일난다니께."
"아하하하......."
무슨 최면도 아니고,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줄을 서서 기다리다 우물물을 길어 올린 다이나는 주책없다면 주책없는 헬레나 할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여기서 더 뭐 어쩌겠어요. 저희는 돈 없고 힘없는 평민인데. 이 정도로 안정적이고 세금을 거의 떼어가지 않는 영지만 해도 만족해야죠."
"잘 보랑께? 나가 말이여. 느낌이 팍! 하고 왔어야! 이건 필히 길조여 길조!"
"에고, 저는 어서 길어가야 할 물이 산더미라 어서 가봐야겠어요."
"아이고! 헬레나 할머니!!"
그때였다.
저 멀리서 작은 소녀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뛰어온 것이다.
"잉? 리니 아녀? 무슨 일이여?"
"헥...... 헥...... 다이나 아주머니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헥헥......."
"일단 숨 좀 돌려야겠네."
당황하며 퍼 올린 물을 바가지로 떠 건네주자 리니가 정신없이 물을 들이켜고는 눈을 반짝거렸다.
"저하께서 또 엄청난 걸 준비하셨어요!"
"뭐시여?"
"엥?"
잔뜩 활기 띤 리니의 말에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게 아니라 어서 가요! 같이 보면 알 거예요!"
몇 달 전 고블린 부락에 잡혀가서 모진 일을 당할뻔했던 소녀는 이제 우울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잡아끄는 모습에 두 사람은 당황하면서도 이끌리듯 그녀를 따라갔다.
* * *
"시상에...... 시상에...... 이게 뭐시여?"
"세상에...... 마나 펌프?!"
"웜머! 물이 따숩구먼! 이게 몬스터가 곡할 노릇이여!"
황당하다는 듯 주거지 한편에 새로이 설치된 구조물을 보며 헬레나 할머니가 소리쳤다.
"허이구야! 우물도 아니고 요걸 요렇게 돌리기만 혀도 물이 쏟아진다는 거 아녀? 그것도 흙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물이."
보통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평민들은 그 물을 모은 뒤 사용할 때 몇 차례 걸러서 사용하곤 한다. 그래도 수질이 나쁜 곳에선 별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커다란 쇠로 된 관을 살짝 비틀자 깨끗하고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기 시작한다.
귀족들에겐 물을 퍼 올린다는 게 익숙하지만 배운 것이 없는 이들에게 이것은 그야말로 신의 축복과 같은 신기한 현상이었다.
"왕자 저하께서 좀 전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어요! 곧 이걸 각자 집에 모두 설치해주시겠대요! 영지민 모두에게요."
"뭐시여?!"
그 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서 얼이 빠졌다.
이런 물이 콸콸 나오는 쇠관을 집안에 설치해주겠다니.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물을 매번 길으러 갈 필요도 없고 흙이 섞인 물을 걸러낼 것도 없다.
물을 데우기 위해 장작을 쓸 필요도 사라진다.
"그라믄...... 이제 우물에 물을 길러 갈 필요 없이 마냥 집에서 깨끗한 물을 받아 쓸 수 있다 이것이여?"
"네."
리니의 활기찬 대답에 헬레나 할머니가 눈을 부릅떴다.
"나가 기적을 보는 것이여...... 나가 기적을......."
리니의 말에 넋이 나간 헬레나 할머니와는 다르게 다이나는 눈이 가늘게 뜨여졌다.
"이건...... 분명 귀족가 같은 높으신 분들이 사용하는 마나 펌프인데......."
그녀도 모르진 않았다. 돈이 엄청나게 많은 귀족가에서 하녀로 일해 본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마법사들이 설치하는 펌프. 말 그대로 수로에서 물을 퍼 올리는 신기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그 와중에 이런 시스템을 높은 귀족가나 왕족들이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다이나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인생에 이...... 이런 걸 설치할 돈이 어디 있겠어? 보나 마나 아주 비싼 대가를 걸고 다른 것을 받아가실걸?"
무려 귀족가나 높으신 분들의 집이나 왕궁, 혹은 굉장히 고급진 귀족용 숙소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 돈이 얼마나 비싼지 매번 동료 하녀들에게 들은 바 있었기에, 더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어마어마하게 비싼 시설을 공짜로 천한 평민의 집에 설치해줄 리가.......
다이나는 귀족을 쉬이 믿지 않았다. 이런 엄청난 걸 설치하면 분명 빚이랍시고 엄청난 돈을 뜯길 터.
이전에 살던 영지에서도 그렇게 믿었던 귀족에게 딸아이 하나를 잃지 않았던가.
그런 다이나의 중얼거림에 리니가 헤실거렸다.
"잘은 모르겠는데...... 왕자 저하께서 직접 오셔서 말해주셨어요. 설치 자체는 공짜지만 물을 헤프게 사용하는 사태는 막아야 하기에 한달에 은화 10닢만 받으신다고.."
"뭐?"
왕국 최고의 도시 수도에서도 이런 건 불가능하다. 물을 퍼 올리는데 얼마나 큰돈이 들어가는데 그걸 고작 한 달에 10실버만 받고 평민들의 그 작은 집에 전부 설치해주겠다니.
"으음...... 그리고 이런 말도 하고 가셨는데에......."
고민하듯 우물거리던 리니가 기억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맞다! [복지 폭탄 받고 더 열심히 일해라, 이것들아.] 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복지가 뭐에요?"
"그......그러니까 복지라는 건......."
최대한 데이비를 흉내 내는 얼굴을 하며 성대모사를 하는 리니의 모습에 다이나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괜히 영지민들이 광신도마냥 믿고 따르는 게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