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8화 (158/1,559)

# 15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7화

-그럼 왜 싫어하는 게야?

'그 썩을 카사노바가 내 눈앞에서 첫사랑을 아작 내놨거든.'

빌어먹을 궁신 아폴론.

하이 엘프 출신인 그 느끼한 양반 때문에 엘프에 대한 환상과 이미지가 개 박살이 났다.

-동심과 환상?

'데스로드 [로 아이아스]는 내 첫사랑이야.'

흑마법 수련을 위해 로 아이아스의 숙소를 찾아갔다가 침실로 같이 향하는 두 사람을 보고 몇 날 며칠은 정줄을 놨었더랬다.

그 뒤의 일?

알게 무엇일까. 그 안에서 지지든 볶듯,

아니 그래, 회랑에서 내 모습은 고작 10살짜리 꼬맹이였고, 수천 년 살아온 그들에게 나는 핏덩이 같은 꼬맹이라는 건 아는데.

그래도 그렇지. 동심을 그렇게 개 박살을 내놓냐고.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그 일을 그대로 성녀 다프네에게 고자질.

이후의 일은 아주 재밌게 흘러갔더랬다.

쌤통이다, 깨소금이나 처먹으라지.

-어린애도 아니고.......

'모태 솔로인 너는 그때의 내 충격을 이해 못 해.'

-그대는 정말 개자식이야.

분개한 전 마왕님이 내 귓불을 잡아 늘이고 귓구멍에 악악 소리를 지른다.

괄괄하고 괴팍한 여자들과 다르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고 부드러우며 청초한 인상의 [로 아이아스]는 그래도 내 인생에 있어선 첫사랑이고 이상형이나 다름없었다.

'내 인생에 첫사랑은 그래도 하나뿐이었다.'

전생의 삶 20년가량.

초등학교 이후로 무균실에서 대부분을 보낸 탓에 인생의 대부분을 영상 강의, 만화와 영화, 게임과 인터넷 갤러리 눈팅으로 보냈다.

현생의 삶.

10살이 되기가 무섭게 혼수상태에 빠졌으니 이상형을 만드는 게 어디 쉽겠는가.

그런 마당에 그 미친 하이 엘프가 엘프에 대한 환상을 추가로 개 박살을 내주니 마냥 호감이 안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할 말 있었던 건 아니었어?"

"그...... 그게...... 더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당황한 말투가 절로 흘러나온 그가 한발 두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곧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왜 그랬던 게야?

'그냥 장난 좀 쳤는데, 저렇게 도망가버릴 줄 알았나.'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잭, 아니 아이나 헬리샤나가 부탁하고자 하는 일은 엘프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엘프라...정령마법은 정말 마음에 드는데."

그들의 정령술이 나와 비교해서 높은 건 아닐 터다.

나는 종족의 한계를 넘어 강제로 개조당한 수준으로 정령과의 친화도를 끌어올렸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지의 자잘한 부분까지 내가 직접 움직여서 관리한다면 영지의 수명은 결국 내가 죽을 때 까지라는 말이 된다.

"슬슬 정령을 조금 소환을 해봐야겠다."

-당장 여기선 힘든가?

"어디든 터가 좋아야 하고. 준비도 필요해, 지금은 영지 외곽에 있는 엘프의 숲이 가장 가능성이 큰데...... 정령을 다루는 건 익숙한데 소환은 나도 처음이라. 확신이 안 서네"

나는 정령술을 빌린 정령으로 배웠다.

회랑에선 정령을 소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신중한 이유는.......

"게다가 거기 꼬라지를 보니 지금은 안 되겠더라."

* * *

계획이 착수되기가 무섭게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슬슬 새로이 완공되는 주거지에 수도를 연결하여 집안에서 언제고 온수와 냉수를 끌어다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뿐일까. 드워프 특유의 기술력과 내 지식의 일부를 적당히 투자해 건물의 견고함과 그 디자인의 변화, 그리고 내부 구조의 변화를 가해주니 아주 신세계스러운 건물들이 탄생하고 있다.

물론, 비싼 단가를 들여 만드는 건물들은 비쌀 수밖에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간다는 마인드를 가진 평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문제는 가볍게 해치워버릴 수 있었다.

이전의 가옥을 헐값에 사들이는 대신 새집을 무상제공 한다.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을지라도 나는 그대로 추진했다.

남는 게 돈이지 않은가.

하인스 영지는 현재 1만 명도 안 되는 영지민들이 살기엔 너무 많은 부를 쌓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덕분에 영지의 이미지가 또 한층 올라가고 영지민들의 얼굴에 기대감과 활기가 돋는 것 또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손해가 아니라 겉으로 볼 때 이 영지가 가지는 외관의 상승치가 가장 큰 메리트였다.

허름한 가옥이 늘어선 작은 촌 동네 영지가 아닌.

수도에서도 보기 힘든 예쁜 집들이 늘어선 그러한 영지 말이다.

"아하하하! 나 잡아봐라!"

"야! 너 잡히면 호온나!!"

작은 소녀의 스커트를 휙 들추고는 도망가는 소년을 쫓아가는 소녀의 모습.

전체적으로 활기를 띠는 영지의 모습을 느긋하게 앉아 구경하는 것에 취미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대놓고 구경하고 있으면 저런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 없으니 적당한 곳에 정자와 벤치들을 설치해놓은 내 휴양지이기도 하다.

"평화...... 좋지."

-감촉 좋은 허벅지에 따사한 햇볕, 나른한 공기에 늘어지는 기분이야.

입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말을 무시한 채 눈을 감고 나무 의자에 몸을 기댄다.

페르세르크도 이런 공기에 축축 늘어지는지 내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는 공기가 닿아 기분이 상당히 업되기 시작했다.

"으흠, 이곳에 젊은이가 있었군."

그때였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던 주변에서 갑작스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내 개인 휴양지라 해도 마구잡이로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기에 출현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벤치의 등받이 뒤로 고개를 젖혀 시선을 들자 좀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한 노인이 허허 웃으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어르신?"

"허허, 근래에 본 것들 중 가장 활기찬 영지로고, 옆에 앉아도 되겠나?"

동시에 거의 버릇처럼 심연의 권능을 끌어올리자 노인의 정체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또 좀 의외의 인간인데?'

-그러게 말일세.

저 영감이 이렇게 동네 할아버지마냥 길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간이었나?

* * *

"허허, 젊은이, 얼굴이 아주 폈군. 마음이 아주 편안한 모양일세 그래."

편안하냐, 하면 그래도 여유가 꽤 느껴지는 기분이긴 하다.

"평화롭지 않습니까?"

"그렇긴 허지.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지를 밝게 만드는 건 영지민들의 얼굴에 서린 저 행복한 미소 때문이겠군."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목적과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당장을 뒷받침해줄 최소한의 의식주가 주어지면 활기를 얻게 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당당하게 그들의 자존심을 끌어올렸고 수많은 복지정책으로 그들의 목적의식을 키워 올렸다.

위생에 문제가 되는 더러운 하천과 우물을 모조리 덮기 시작했고 깔끔하게 직접 마법을 설치한 수도관을 통해 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드워프의 기술력과 내가 가진 마법. 그리고, 막대한 자본이 만들어낸 말 그대로 금수저의 도시.

그 금수저의 혜택을 누리는 건 다름 아닌 영지민 전원이지만.

영지민이 살기 좋아지면 소득이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인구가 자연스레 늘게 되고 사기가 오르면서 영지의 수익이 자체적으로 증가한다.

서로서로 돕고 사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미래의 변혁은 내가 시도해보고 싶은 변화 중 하나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착취하는 건 고대시대부터 내가 전생에 살았던 현대 시대도 변함없이 이어져 왔기에 그렇지 않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이것이 어디에서 한계에 부딪힐지는 나로서도 쉽게 예상하기 힘드니까.

-다만 너무 편해지면 사람은 게을러지기 마련이지.

'줄타기를 잘 해야지.'

부과효과는 또 있었다.

살기가 좋아지고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그만큼 치안 문제를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찍이 여러 영지나 도시를 돌아봤지만 이곳만큼 활기찬 곳은 거의 없더군."

"어르신께선 여러곳을 돌아다니셨나봅니다."

"허허, 소싯적엔 모험을 그리 좋아했었다네. 허허! 롱소드 하나에 스태프, 그리고 잿빛 로브와 모자만 쓰고 광활한 평야를 누비곤 했지."

길이가 긴 벤치의 한편에 앉은 그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곱게 자란 수염을 쓸어내렸다.

"이 영지의 영주님은 능력이 좋은 모양이로고."

"영주님이요...... 아. 그렇죠."

"아직 20대도 되지 않은 왕자님이라 들었네만. 뭐 아는 것이 없는가?"

"글쎄요...... 높으신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저도 모르지요."

내가 내 입으로 뭐라 하기도 뭣하지 않은가.

"이 와중에도 무언가 또 다른 것들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과...... 인간과의 생활에 쉽게 녹아드는 호의적인 드워프...... 그리고 대륙에서 모여든 각종 상단과 마탑, 신전, 연금학파."

"흐음."

"상업을 먼저 발달시킨 곳에는 자연스레 사람이 몰리는 게지. 하지만 너무 편해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법이기도 하다는 걸 잘 알고 있군, 이곳의 영주님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제법 자신있나보이."

껄껄 웃으며 그가 물었다.

"기왕 이리된 것. 젊은이, 이 노인네와 어디 게임이라도 해보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아이들을 보며 실실 웃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게임 말입니까?"

"팔란 제국에서 유명한 보드게임일세."

체스.

아니 정확히는 체스와 비슷하게 말을 사용하지만 조금 다른 [올드]라는 이름의 전략 수 게임이다.

간만에 재미가 돋은 느낌이기도 하고, 저만한 위치의 양반이 뭐하러 이곳까지 왔는지 궁금해진 터라 나는 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의 제안에 응했다.

"올드를 두는 법에 대해선 알고 있는가?"

"저도 제법 좋아해서 말이죠."

"허허! 젊은이가 마음에 드는구먼, 그래, 규칙은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함세, 동부 식을 원하는가, 중부 식을 원하는가."

그의 말에 나는 고민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헤르마탄 식으로 가실까요."

"자네......."

내 말에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헤르마탄 식은 분명 동부 식과 중부 식이 나오기 전에 흥행했던 규칙이로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요."

관심이 많은 게 아니라 산증인들에게 직접 들었다. 헤르마탄 식은 성녀 다프네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있던 것으로 사실 내겐 이 방식이 가장 익숙하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규칙이야 조금 변하긴 했지만 거의 원형은 남아있으니까.

"허허, 정말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좋네, 헤르마탄 식 규정으로 어디 둬 봄세."

의욕이 돋았는지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을 빠르게 정렬했다.

"이건 말이네, 사실 고위 귀족가에서 유희용으로 사용하는 상급품일세. 마법이 인첸트 되어 말을 올려놓기만 해도 자동으로 배치되고 반칙을 자동으로 방지하는 고급품이지. 어떤가, 내게 이기면 이걸 선물해줌세."

"뭐, 좋습니다."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리 보여도 이 늙은이가 연장자이니 선공을 양보함세."

아마 혼의 나이로만 치면 제가 수배는 더 살았을 겁니다.

흥미가 돋는다.

울드의 전략게임은 체스와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게임. 다만 서로 간의 수 싸움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과연 이 거물 같은 양반이 가진 수를 읽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그가 이것을 꺼내 든 건 조금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마냥 쉽게 이기진 못할 겁니다. 어르신.

씨익 웃으며 편하게 앉은 내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병사, 기사, 신관. 그 어떤 말도 중요한 법이네, 자네는 어떤 것을 먼저 움직이겠는가."

그의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왕의 말을 집어 들었다.

"뭐가 되었건, 왕이 움직이지 않으면 병사는 따르지 않는 법이겠죠."

노인의 얼굴에 흥미가 더욱 짙어졌다.

내가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아낸 모양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