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8화
노인과 나는 말을 하나하나 움직일 때마다 한마디씩의 대화를 나누었다.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언제고 파멸을 걷는 법이지."
기본 말을 지켜내며 그가 이야기한다.
"한쪽에 모든 것을 치우친 탓에 나머지 고통받는 이들을 눈치채지 못하는 왕을 두고 우왕이라고도 하지요. 백성이 중요한 건 사실이나 다른 이들도 모두 같은 왕국민입니다."
"자네가 보기엔 왕국민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스로가 발전하려는 시민의식이 아닐까요. 너무 삶이 편해져 목표를 상실하면 진취적인 의지를 잃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죠."
"허허, 자네는 참 특이하군."
간단히 다른 이야기도 하며 수 싸움이 이어졌다.
노인의 실력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인간이 저기까지 수를 읽고 두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기행을 보여주는 탓에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그 수에 휘말려 끝까지 끌려다녔을 것이다.
"허어...... 정말 대단하군, 일곱 수 전의 그 배치가 이것의 발판이었구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도 엄청나신데요?"
씨익 웃으며 내가 들고 있던 코끼리 형태의 말을 전진시키고 그의 성벽형 말을 먹어치운다.
"'포위'입니다."
"허허, 젊은이, 너무 성급하군. 그리해선 다음 수를 준비하진 못할걸세."
"계산은 필수이지만 거기에 끌려다녀선 곤란하지요."
내 말에 말을 한차례 옮긴 그가 물어온다.
"자네는 마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법 말입니까? 신기한 현상을 일으키는?"
"허허,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찌 생각하나."
"글쎄요......."
"적탑의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의 경우 7 서클 마스터의 경지에 있다고들 하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어, 그라면 전설의 영역인 8 서클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지만 본인은 그런 말을 했다더군."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말을 한차례 옮겼다.
"7 서클 마스터에 이르면 이 세상의 이치를 모두 꿰뚫어보게 된다"
그의 말에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또한, 그렇게 말했다고 하네, 8 서클의 장막을 들추고 그다음 경지를 엿보았지만 그곳엔 오직 허무함뿐이었다. 라고......."
픽 웃음이 나왔다.
어느덧 [올드]의 판도는 최후의 최후까지 밀려있다.
과감하게 말을 포기하지 않고 질질 끌어온 내 쪽은 밀릴 만큼 밀려있었다.
딱히 회생의 가능성 또한 보이지 않는다.
"8 서클도, 9 서클도 이미 이론상으론 완벽한 게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본들 8 서클과 9 서클에 의미가 있는가 하고 말이네, 끌끌 '포위'일세, 다음은 점령이 되겠군."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말없이 침묵하던 나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
그리고는 거의 버려두다시피 한 말을 살짝 움직인 뒤 입을 열었다.
"저야 마법의 끝을 본 현자가 아니니 뭐라 할 말은 없네요."
"그렇겠지."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 현자라는 분은 마법사이면서 , 마법사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내 대답에 그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마법사가 아니다?"
"마법이 뭘까요?"
"비 물리를 연구하는 학문이겠지."
"학문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게 비 물리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인 마법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늘을 보세요."
내 말에 그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보였다.
"저 태양은 신이 만든 빛 덩어리일까요. 아니면, 저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보다 수백, 수천 수만 배는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아주 먼 거리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비춰주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내 말에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기 시작한다.
"자네......."
"연금술 학자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땅은 평평하고 저 태양이 우리가 사는 땅을 회전하고 있다고요."
"그런 것도 아는가?"
"한때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또 다른 학설에선 그런 말도 하지요. 저희가 사는 땅덩어리는 둥글고, 사실 우리가 있는 이 땅이 저 거대한 태양을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
"밝혀진 건 없습니다. 모를 수밖에요. 직접 가본 게 아니니."
"그것은......."
"비슷한 예시로 상식을 들 수 있지요. 완벽하게 밝혀진 예측. 그것은 반박할 건수도 없을만큼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직접 확인했을 때 다르면요? 다른 알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면요."
내 말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런 겁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여긴 것들도 사실상 모르는 것들투성이이지요. 마법도 그런 게 아닐까요? 세상에 완벽 같은 건 없습니다. 위로 올라가면 그 위가 존재하지요. 이론으로 완벽하던 가설이 직접 확인해 보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
"왜냐고요? 직접 확인해 본 게 아니라 가설일 뿐이잖아요."
"그러한가?"
"직접 확인하고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그저 아귀가 잘 들어맞는 가설이 분명하다고 자부하고 완벽하다 말한다는 건. 글쎄요. 그건 마법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도달해본적도 없잖아요."
"...."
"애초에 마법사가 추구하는게 뭡니까, 서클입니까. 학문의 탐구입니까."
완벽이라는 단어는 존재한다.
하지만, 완벽에 도달할 순 없다.
끝이라고?
9 서클 최후의 경지인 초월 단계에 들어서서도 다음 경지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작 7 서클로?
망설임 없이 내가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나를 이미 눈치채신 듯 한데.
"게임은 즐거웠습니다. 게임판은 나중에 받으러 가죠."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선 내 뒤로 노인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 * *
"직접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완벽을 논하는가라......."
의자에 홀로 남은 노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이 나이를 먹고 스스로가 이렇게 부끄러워지긴 처음이로고."
가설로는 8 서클도, 9 서클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등바등 다음 경지를 독파하려 노력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여겼건만.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껄껄 웃어 보인 그가 만족스레 수염을 쓸어내렸다.
"스...... 스승님!"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급히 뛰어오는 게 보였다.
적색의 로브에 짧은 머리카락, 그리고 수수한 이미지의 뿔테안경.
바로 노인의 유일한 제자였다.
"호오, 율리스가 아니더냐."
"헉...... 헉...... 스승님! 이곳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뛰어왔습니다! 오신다고 언질이라도 해주셨으면......."
"쯧쯧, 젊은 놈이 느긋한 마음을 품지는 못할망정 그리 급해서야 어디 쓰겠느냐."
"죄송합니다. 준비가 미흡하여 모시질 못했습니다."
"껄껄껄! 세상 살 만큼 산 노인네가 부귀나 명예에 집착하겠느냐. 그저 구경 온 것뿐이니 호들갑 떨지 말거라."
"후우...... 그나저나 이곳까지 오신 것은 데이비 님을 보러 오신 것입니까?"
율리스의 질문에 노인.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세상은 넓고 세 살배기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하더니. 아직 창창한 젊은이에게 많은 것을 깨닫는구먼."
"예?"
너털웃음을 흘리며 판을 정리하기 위해 손을 뻗은 그가 멈칫했다.
수세에 몰릴 대로 몰려 포위당해 있던 소년의 진영.
한 수만 더 놓으면 완벽한 외통수가 된다.
겉보기엔 절대 회생의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마지막의 한 수가 이상하다.
"호오...... 허...... 허허허!"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에 율리스가 의아한 모습을 지어 보였다.
"다섯 수. 그 안에 오랜만의 패배로구나. 이것 또한 나를 배려한 한 수렷다."
다 이긴 줄 알았는데, 말려들고 있었던 건 오히려 그였던 모양이다.
만족스레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율리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내 볼일은 끝났구나, 혹 데이비라는 그 어린 왕자를 만나거든 전해주거라."
"예, 무슨 말씀을......."
"약속은 지킬 터이니 언젠가 판을 가지러 오라고 말이야. 언젠가 설욕전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껄껄껄!!"
뭐가 그리 만족스러운지 허허 웃으며 가버리는 제 스승을 보며 상황을 모르는 율리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 * *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라...... 대단한 양반이긴 한데, 시대가 발목을 잡았네."
이곳이 티오니스 대륙이 아니라, 마법 대륙인 아트렐리아였다면 그는 8 서클 동화의 경지를 넘은 위대한 마법사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성장에 중요한 건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주변의 배경도 무시할 순 없다.
경쟁자가 없으니 의욕이 생길 수도 없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그래 보였나? 사실 간만에 흥미진진했거든."
회랑의 미친 영웅들에겐 이런 보드게임을 거의 이겨본 적이 없어서.
머리가 나쁜 양반들은 뭐만 하면 판을 엎어버리지, 좋은 양반들은 엇! 하는 순간 진형을 다 날려 먹고 들어오지.
벨런스 패치가 상당히 나쁘다.
그런 점에서 이런 흥미로운 치고받기는 오랜만의 호승심까지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실실 웃으며 품에 안긴 홍단이와 청단이의 등을 토닥여주자 녀석들이 기분 좋은 듯 품에 더욱 파고들어 와 고롱고롱 잠에 빠져든다.
-데이비, 아공간에 스태프가 하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초월의 종언이라고, 드래곤 하트 처박아놓은 무식한 스태프 하나 있지."
-본녀가 볼 수 있는 게야? 알다시피 본녀는 마법이 전문이라.......
"지금은 힘들어, 엘릭서랑 평상복, 롱기누스를 꺼낸 이후에 더 꺼내려고 하니까 환상처럼 흩어져서 안 꺼내지더라고."
섭선만 있으면 대량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고 스태프를 꺼냈으면 당장 초대형 방어 마법을 영지에 걸 수 있을 텐데.
괜히 죽창에 꽂혀가지고, 젠장.
뭐가 문제인 건지, 익숙하게 내 상태창을 열어 확인하던 중이었다.
"음?"
내 상태를 나타내주던 정보창에서 선행지수를 체크하던 항목이 변한 게 보이기 시작했다.
-선행지수 완료, 아공간에 있는 초월 급 물건 선택 소환 가능. 남은 횟수 1회.
"어?"
동시에 눈앞에 한 가지 항목이 추가된다.
그 내역을 본 내 눈이 가늘게 뜨여졌다.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하시겠다?"
왜 내게 성흔을 찍어 보냈는지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