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0화
-이전엔 조용히 들어가더니?
"그땐 잠긴 문에 열쇠 넣어서 조용히 들어간 거고."
이른바 비밀잠입 미션.
그때엔 엘프들과 마주칠 생각이 1도 없었으니 그리했다만.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안에 있는 귀쟁이들 모조리 끄집어내야 하니까. 간단히 노크 정도는 해줘야지."
단순히 소매 넣기마냥 몰래 들어가서 도와주고 나올 만큼 내가 성자로 보였더냐.
어림도 없는 소리.
-이른바 노크 작전이로군.
청단이로 베는 것이 아닌 파괴적인 힘으로 결계를 찢고 부순다.
그 노크.
조금 강렬할 거다.
"후웁!"
[마왕 유르그 식(式) 필살 붕권]
[압축]
[축소]
[아수라 패황권(阿修羅 覇皇拳)]
"실례합니다! 좋은 말씀 전해드리러 왔어요!"
후웅! 콰아아아아앙!!!!
초소형 대 폭발을 담은 일격이 그대로 엘프들의 마을을 보호해주던 결계를 아예 부숴버릴 듯 후려쳤다.
* * *
거대한 숲.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숲으로 한 소녀가 천천히 들어섰다.
"숲의 맑은 공기는 언제 마셔도 좋네요. 흐읏...... 하아......."
후드를 깊게 눌러쓴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던 소녀가 천천히 후드를 벗어넘기며 기분 좋은 신음을 냈다.
동시에 벗겨지는 후드 너머로 하늘빛의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엉덩이 즈음까지 흘러내리며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껍게 땋아낸 머리카락은 풍성한 만큼 관리도 쉽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스스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라도 하듯 갈라지고 푸석푸석해진 곳 하나 없이 찰랑거리고 반짝거렸다.
162센티 정도의 키.
푸른 빛깔의 신비로운 머리카락.
그리고, 맑은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장난기 어린 미소.
밝은 분위기로 인해 10대 후반정도로 보이지만 면밀하게 따지자면 20대라 봐도 무방할만큼 그녀의 미소는 느긋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앗! 유리아 님!"
"아아, 나의 친우 베르디스. 그간 잘 지냈나요?"
"드디어 돌아오신 겁니까?!"
소녀, 유리아 헬리샤나의 등장에 여기저기 퍼져 있는 나무 위에서 몇몇 사내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었다.
요정족, 혹은 숲의 주민.
그들의 귀는 다른 여타종족에 비해 길었으며 피부 또한 백옥처럼 맑고 미모가 수려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빛을 내는 풀숲을 지나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유리아 헬리샤나를 보며 엘프들은 손에 쥐고 있던 활을 허리춤에 채운 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죠?"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유리아 님!"
"모두 정령의 보살핌 덕분이랍니다. 그간 숲에는 별일이 없었나요?"
"예. 딱히 침입자도 없었고 몬스터들의 움직임도 잔잔했습니다. 정령수들은 조용했구요."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오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그 영향을 받은 정령수들이 난동을 부리기도 해서..."
우울한 듯한 한 엘프 사내의 말에 유리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들어갈까요?"
"아, 이런! 유리아 님을 너무 오랫동안 세워 놓았네요! 어서 가시죠! 마을의 모두가 유리아 님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한없는 호의를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에 유리아는 특유의 미소를 띤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접근하려 했던 왕자님이 갑자기 휴가를 내린 탓에 그녀도 잠시 숲으로 돌아온 꼴이었다.
"역시 유리아 님은 언제 봐도 아름다우셔요."
"나의 친우, 밀리아. 제 눈엔 당신이 더 아름답답니다."
"어머, 어디 가서 그런 소릴 했다간 몰매를 맞을 거예요."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는 엘프 여성의 말에 유리아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가셨던 일은 잘되었나요?"
"정말 흥미로웠답니다. 마냥 얻은 게 없는 여행길은 아니었어요."
"인간들은 조심하셔야 해요. 유리아 님은 인간으로 변장하셔도 그 미모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맞아요! 인간 놈들은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다고 들었어요! 제 동족을 노예로 팔기도 한다고.."
"어머, 야만적이야......."
재잘거리는 엘프들을 눈앞에 둔 채 유리아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물론, 인간들 모두가 선하다곤 할 수 없답니다. 여러분, 하지만 반대로 인간들 모두가 악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가 이번에 갔던 곳에는 한 나라의 왕자님이 계셨어요."
마치 옛이야기를 해주듯 그녀가 청명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분은 정말 신기한 분이셨죠. 인간들 사이에선 상당히 높은 직급으로 존재하는 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하층민 계급의 인간들을 위해 스스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분이셨답니다. 엘프의 시선에서 보아도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어요."
그녀의 말에 몇몇 엘프들이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그런 인간이 있단 말인가요?"
"그럼요. 인간은 모두가 같지 않아요. 모두가 다르죠."
그때였다.
"유리아 님. 외람되지만 인간은 모두 추악한 존재입니다. 과거 유리아님의 모친의 일을 잊으신 건 아니시겠지요? 또한 저희 엘프가 어째서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 존재 흔적을 지웠는지도요."
분위기에 초를 치는 한 엘프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어험, 유리아 님이 숲을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서 숲을 나가신 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정말 어리석고 위험한 판단이었습니다. 옛말에 어른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열매가 생긴다 하였지요."
"장로 콘대."
"잊으시면 곤란합니다. 엘프의 수도에서는 300년 전, 세상과 완전히 등지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드나들다간 꼬리가 잡힐지도 모를 일입니다."
툴툴대듯 말하는 콘대 장로의 말에 유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콘대 장로, 하지만......."
다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하지만이고 뭐고 간에, 유리아 님. 당신은 이곳 달의 숲의 수장이십니다. 수장으로써 좀 더 책임감을 가지시고 엘프로서의 고결하고 고귀한 긍지를 새기십시오.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은 유리아 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타박하는 듯한 말에 몇몇 엘프가 인상을 대번에 찡그렸다.
"언동을 주의해주세요! 콘대 장로님! 유리아 님이 그저 놀자고 밖으로 나가신 건 아니십니다! 인간들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정령의 가호까지 두르고 가셨어요!"
"그 정령의 가호가 언제까지고 멀쩡할 것 같은가?! 에잉...... 이래서 요즘 젊은것들은...... 쯧쯧."
"그만들 하세요. 지금은 숲의 상태를 보고 안도하는 정도이지만 조만간 해결법을 찾아올 겁니다."
"모두가 정령신의 뜻이고, 세계수의 뜻입니다. 세계수의 의지에 반한 이상 이 사태는 당연한 겁니다."
콘대 장로의 날카로운 말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은 순리가 있습니다. 운명이라곤 하나 이번엔 따를 수 없어요."
"유리아 님!"
"이번 일은 제 선에서 끝낼 거랍니다. 저는 제가 꾼 꿈을 믿어요. 귀인은 반드시 오실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제가 마을을 잠시 떠난 것이니까요. 반드시 강력한 정령 친화도를 가진 이들을 데려와 볼 테니까요."
유리아의 말에 콘대 장로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대로 가다간 유리아 님이 뭘 하기도 전에 늦을 겝니다! 인간은 사악한 존재입니다! 정령술에 한해선 비교할 가치도 없는 자들이지요! 그런 자들이 도움이 정말 되리라 보십니까?!"
"듣자듣자 하니까 정말 너무 하시네요 콘대 장로님!"
결국 분개한 엘프 가드 하나가 씩씩거리며 콘대 장로를 향해 소리쳤다.
"수장께 무례가 지나치세요!"
"무례?! 무례는 자네가 내게 하고 있는 것이 무례이고, 내가 하는 건 간언일세! 나는 무려 중앙의 귀족일세! 어디 촌구석의 가드 따위가 내게 언성을 높이는가!! 정신들 차리게! 바깥세상은 아무런 도움 안 되는 오염 덩어리들이야! 자네들이 생각이 똑바로 박혀있다면 오히려 유리아 님을 설득시켜서 세계수의 정화 세례를 받게끔 하는 게 옳은 일인 게지!"
"이를 말인가! 세계수가 정한 혼약을 거부한 탓에 세계수의 벌을 받은 게 어디 자랑인 일인가! 당장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를 드려야 할 터!"
콘대 장로뿐만 아니라 몇몇 장로 엘프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유리아 님! 이제 그만 고집을 꺾으십시오!"
"맞습니다! 아이나 님의 전철을 밟으실 생각이십니까?!"
마치 기회라도 잡은 듯 몰아붙이는 장로들의 모습에 유리아가 말없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동시에 그녀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기가 걸렸다.
미묘한 변화였지만 그녀를 오랜 시간 곁에서 보조해온 유일한 엘프 가드인 밀리아만이 그 변화를 눈치채고 눈을 부릅떴다.
터진다!
평소엔 그렇게 우아하고 조용하며, 신중한 유리아지만 한번 화가 폭발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웃는 얼굴로 사람 피 말려 죽일 수 있는 극도의 사디즘을 억누르고 있는 엘프.
그것이 바로 이 숲의 수장인 유리아 헬리샤나가 아니던가.
"콘대 장로."
"예! 유리아 님."
"그대들과 신목의 성자께서 언니에 대해 언급을 할 자격이 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밀리아가 급히 그녀를 말리려던 찰나였다.
"실례합니다! 좋은 말씀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온 누군가의 메아리 소리에 모두의 몸이 움찔 굳었다.
쿠웅!!!!!!!
동시에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거의 재앙에 가까운 진동이 숲 전체를 뒤흔들었다.
* * *
-데이비...... 조금 센 게 아닐까?
"음...... 아니 충분해."
조그마한 구멍을 내려고 했더니 일대 결계가 완전히 뒤틀려버렸다.
복구하려면 어지간한 정령술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만.
어차피 결과를 위해서는 부서져야 할 결계다.
-이제 곧 오겠군.
"경고, 데이비 님, 살기를 가진 다수의 기척이 접근 중. 륀느 공격해?"
한 손에는 빠루와 한 손에는 라이트 세이버를 뽑아낸 채 물어오는 륀느의 담담한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싸우러 온 게 아니야. 목표는 이미 반쯤 이뤘으니까 환대나 느긋하게 기다리자."
피잉!!!
카앙!!!
물론, 그 환대가 화살이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옅은 바람이 일대를 잠식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화살들이 공기를 찢고 날아든다.
일반적인 화살의 속도를 넘어선 빠른 속도였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파고든 륀느가 빠루를 이용해 화살을 쳐냈다.
그리고는 푸른 눈동자를 서늘하게 빛내며 그대로 손등 위로 거대한 포신을 만들어내고는 숲 저편을 겨누었다.
이런 와중에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인지 숲의 모습은 겉보기엔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정령화살이라."
그 모습에 나는 말없이 륀느가 쳐낸 화살을 주워들고는 중얼거렸다.
"분명히 좋은 말씀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라고 목적까지 밝혔는데."
"......."
"아직까지 자기들이 여기 사는 걸 안 들켰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겠지?"
내 말에 주변의 공기가 한순간 일렁였다.
"마을로 안내해줘. 너희들의 지도자와 할 말이 있다."
드워프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인간과 교류가 있었다 보니 적당히 예를 차려주는 게 더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생각하기에 이 깐깐한 귀쟁이들이 돌려줄 대답은 뻔하다.
그러니까.
"선택은 본인들 몫이지만, 책임 또한 본인들 몫이다."
차라리 위압을 가하는 것이 더욱 효과는 좋으리라.
서서히 짙어지는 기세가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정작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있지 않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이 격화되면서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기류가 주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결국 백기를 든 건 저쪽이었다.
사박.......
가벼운 나뭇잎 날리는 소리와 함께 좀 전까지도 고요하던 숲 속에서 초록빛 의상을 입은 한 사내가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