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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63화 (163/1,559)

# 16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2화

"그런데, 이거 계속 묶어둘 거야? 그래도 땅 주인에 고용주인데? 이거 불법체류다?"

내 질문에 고풍스러운 복장을 한 엘프가 벌떡 일어나 활을 뽑아 들고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닥쳐라 인간! 내 당장 네놈을 죽여......."

"그만두세요! 콘대 장로!"

이윽고 큰 목소리로 좌중을 침묵시킨 그녀가 속이 보이지 않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으신 말이 있어서 오신 거겠죠? 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들어오셨더군요."

"이번엔 좀 사정이 있었거든."

고인 물은 썩는 거다.

완전한 차단은 그런 것이고, 결계가 너희 숲에 무슨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인데.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밀리아, 저분을 제 방으로 안내해주세요."

"하...... 하지만 유리아 님!"

울먹거리며 겁을 집어먹고 있던 여성 엘프 가드가 그녀를 불렀다.

"괜찮아요. 다른 인간은 몰라도 저분은 믿을 수 있으니."

그녀의 말에 주변이 또 한 번 크게 술렁였다.

* * *

뜨드득...... 뜨득.......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나를 옭아매던 나무줄기가 서서히 풀리며 손이 자연스러워진 나는 눈앞에 있는 차에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그녀가 처음 유리라는 이름의 하녀로 위장해서 왔을 때.

내게 차를 올리는 담당을 맡았을 때 보인 전례가 있지 않았던가.

"설마 이번에도 귀뚜라미를 우려낸 차를 내놓은 건 아니지?"

"어머, 맛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제 자신작이랍니다. 드셔 보셔요. 고용주님."

생긋 웃는데 그 시선이 더 시린 느낌이다.

"슬라임의 체액을 오랜 시간 숙성시켜서 만들어낸 차랍니다. 맛도 제 작품들 중에 최상품이고, 피부미용에도 굉장히 좋아요."

그리 말하며 똑같은 차를 망설임 없이 음미하는 그녀였다.

"......뭐 좋아."

까짓거, 비 선호하는 거지 못 먹는 건 아니다.

내 비위는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허기를 채우고자 살아 꿈틀대는 벌레도 씹어먹었던 내가 이 정도에 물러날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시선을 한 번에 끄는 것, 그리고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난 이들을 뭉개려고 온 게 아니라는 점이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적용한다.

"읍!"

그녀의 기괴한 입맛은 엘프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유명했던 모양인지 표정들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윽한 향이 코에 감돌며 의외로 중독성을 제공해왔다.

"맛있네. 마나 유동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고."

"어머, 그렇죠? 그렇게 효능이 좋은데 어째서 다른 분들은 마셔주시지 않는 걸까요......."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유리아의 진심 어린 시선에 그녀의 방으로 따라 들어온 장로들이나 몇몇 엘프 가드들은 그녀를 피해 시선을 돌려버렸다.

"보통은 비위가 상하면 건강에 좋다고 해도 못 먹는 게 대부분이니까."

킥킥 웃으며 어느새 비워버린 잔을 내려놓은 내가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예쁜 소녀다.

정확히는 여성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성년식은 이미 지났는지 성년 엘프 특유의 정령의 향기가 감도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마냥 어리진 않아 보였다.

그래도 조금 놀라웠던 점은 그녀의 외모였다.

어지간히 아름다운 종족이라 불리긴 하지만 유리아의 외모는 엘프들 사이에서도 단연 빛이 나고 있었다.

괜히 하이 엘프가 아니라는 것일 터다.

"다음에 차를 낼 땐 이건 올려도 좋아. 아무리 그래도 귀뚜라미 날개는 좀 아니더라고."

"어머,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씀이시라니."

작은 주먹을 말아쥐고는 쿡쿡 웃는 그녀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직시해왔다.

"그래요. 고용주님, 고용주님께선 이곳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그녀의 말에 내가 무언가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쾅!

"유리아 님! 더 볼 게 무에 있습니까! 이런 백해무익한 종족과 대화를 하는 것부터가 정신이 오염되는 기분입니다!"

격분하며 일어난 엘프 하나가 나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콘대 장로라 불리던 사내였다.

"인간, 네놈에겐 선택권이 없다. 어떻게 이곳을 알아냈는지 철저하게 알아낸 뒤에 죽여주마! 뭣들 하는가! 저자를 끌어내 감옥에 가두게!"

"그만 하세요."

담담한 유리아의 말에 더욱 분통이 터졌는지 그는 목에 핏발까지 세워가며 격노했다.

"아직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시겠습니까?! 어린 치기로 인해 수많은 엘프를 노예로 파실 생각이시냔 말입니다!"

"그만."

쿡쿡 웃는 유리아 헬리샤나의 말에 콘대 장로가 움찔거렸다.

"......하시라고 제가 한 번 더 말하게 하지 말아주시겠어요?"

입은 웃고 있는데.

-호오, 카리스마는 타고나는 체질이거늘.

'제법인데? 더욱 마음에 든다.'

유리아 같은 지도자가 엘프의 대변인으로 있는다면, 상당히 나와는 죽이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려보는 게 아닌 담담한 시선인데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어떤 의미로 보면 지배자에 걸맞은 분위기를 가진 그녀였다.

"지금 제가 대화를 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크흠......."

기 싸움에서 밀린 콘대 장로가 움찔거리자 그녀가 생긋 웃어 보이며 내게 말을 이어나갔다.

"말이 잠시 끊겼네요. 다시 본제로 돌아갈까요?"

"그러자고."

가볍게 응대하며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이 오염을 정리하기 위해서 내 도움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은데, 틀렸나?"

"맞아요. 고용주님이 가진 정령 친화력이 필요해요. 보통의 엘프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방대한 정령과의 친화력."

"최상급 정령을 소환해보려고?"

"네, 오염을 정화하기 위해선 그 정도 되는 수준의 정령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저 혼자선 불가능해요. 그래서 고용주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인스 영지까지 갔던 거랍니다."

유리아는 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내게 어설픈 속임수는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결과이리라.

하지만.

"때려치우자."

내 말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그게 무슨..."

"빙빙 돌리지말고 곧바로 직진하자고, 거래를 제안하지, 내가 숲을 정화해주마. 그러니 너희 모두 하인스 영지의 정식 영지민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내 말에 그녀가 동그랗게 뜬 눈을 가늘게 좁혔다.

"드워프와 같은 방식이로군요...."

"많은 걸 아는데?"

"드워프 장로라는 골다님은 제 특제 차의 주요 단골이신걸요."

골다 장로 영감이 차의 재료를 정확히 알았으면 기겁하겠지만.

모르는게 약이겠지.

내 웃음에 그녀가 마주 웃어준다.

"죄송합니다. 거절할게요, 하지만 고용주님의 도움은 필요해요."

"흐음.."

"대신 그에 따른 대가는 반드시 지불하겠습니다."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62. 신음하는 정령들.

그녀의 거절은 예상했던 대로다.

나는 느긋하게 생각하며 그녀의 요청을 승낙했다.

어차피.

'실패 할 텐데.'

의외로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어버린 탓일까.

유리아는 너무 흔쾌히 물러나는 내 결단에 의아해 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계획하고 있던 최상급 정령의 소환 의식이 치러지는 날 까지 내가 숲에서 체류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사사건건 결사반대를 외치던 장로들의 반발이 거세게 몰아쳤지만 유리아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그대로 강행했다.

그 이유 자체는 간단했다.

"이곳은 달의 숲 주민들의 고향입니다. 방법이 있다면 나는 세계수의 고집보다 실리를 택하겠어요. 장로들께서는 신목의 주민이니 숲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으신 것 같군요. 그렇다면 떠나셔도 좋습니다."

상당히 여려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강단 있는 그녀의 결정 때문일까, 결국 장로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물러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장로라는 저 엘프들은 그녀가 상당히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겠지.

'그게 나쁜 의미이든, 좋은 의미이든 말이야.'

느낌만 보자면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만.

이후 직접 나를 따라나선 유리아의 안내를 받아 오염의 근원이 되는 지역에 도달한 나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아파.......]

[구해줘.......]

곳곳에서 신음하는 정령들의 울음소리가 여지없이 들려왔다.

지독한 악취가 쉬지 않고 코를 자극하며 정신을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정령 친화도가 보통 수준이거나 낮은 이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참혹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정령 친화도를 올리기 위해 정령 여제 유리아나에게 잡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불의 친화도를 올리려고 마그마 속에 던져지고, 물의 친화도를 올리겠답시고 몇 달이나 심해 끝에 처박아 놨지.'

-세상에, 무식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러고도 살아있는 게야?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 할 수 있지만 결국은 해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극한의 환경 속에서 버틸 수 있게 준비를 했고 강제로 친화력을 끌어올리며 거의 육체 개조에 가까운 수련을 강행했다.

회랑에선 정령을 소환할 수 없다.

과거 환수 소환사인 셰인 스크리프트가 기억 속에 있는 세 마리 환수의 왕을 구현화 했듯, 정령 여제 유리아나 또한 그녀가 계약한 정령을 구현화 해 회랑에 실체화시켰던 게 전부였다.

회랑은 엄연히 혼의 세계, 그렇기에 살아있는 존재인 환수나 정령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정령과 계약을 맺지도 않고 친화도를 쌓는 유일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 정도가 조금 과하긴 했다.

"오염이 시작된 곳은 여기가 맞아?"

"맞아요."

나를 따라온 유리아의 대답에 말없이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뻗었다.

아름답고 깨끗했어야 할 숲은 정령이 오염되면서 덩달아 숲까지 망가져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살아 있는 식물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바닥의 흙은 마치 끈적끈적한 타르처럼 늪이 되어있었다.

"이 이상은 바닥까지 일그러져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늪이죠. 그러니 들어가지 않으시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늪의 한중간으로 걸어 들어가 버리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분명 순식간에 늪 아래로 빠졌어야 할 내 몸이 마치 딱딱한 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조금도 빠지지 않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간단히 에어 타일을 이용해 이동한 것이지만 마법에 대한 조예가 적은 엘프들이 그걸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무슨 문제 있나?"

"아, 아니요...... 당신은 도대체가......."

황당하다는 듯 늪의 입구에 멈춰선 그녀의 대답에 나는 말없이 바닥의 끈적끈적한 진액들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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